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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아이
· 제1장 · 제2장 옮긴이의 말 |
Jinsei Tsuji Hitoanri,つじ ひとなり,ツジ 仁成, ?仁成,츠지 진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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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네기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끄응 신음한 뒤에 말을 이어 갔다. “일단 호적이 없으니까 주민 등록표도 존재하지 않지요. 당연히 건강 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합니다. 이대로 가면 의무 교육조차 받기 어려워요.” 저런, 이라고 중얼거리며 히비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렌지는 귀여운 마스코트가 되었다. 담장을 넘어 어디선지 모르게 찾아오는, 잘 길들여진 남의 집 고양이 같은 존재였다. 엄마 아카네는 클럽에서, 그리고 아빠 마사카즈는 호스트로 밤일을 하고 있었다. 렌지가 태어난 곳도 이곳 나카스였다. 쥬오 거리 일대에서 렌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간혹 이름까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한밤중에 술 취한 어른들 사이를 쪼르르 뛰어다니는 어린애라고 하면 이미 유명 인사였다. 나카스 사람들은 그를 ‘한밤중의 아이’라고 불렀다. “아동 학대에 대한 것도 업무 효율을 따져서 가장 심한 케이스부터 처리하게 되거든요. 순위를 매기는 거예요. 그나마 이 케이스는 아직 어떻게든 헤쳐 나갈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라고 넘겨 버리는 겁니다.” “렌지의 경우도 그렇습니까?” 히비키가 물었다. 네기시가 얼굴을 들고 히비키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렇다고 해야겠죠. 그 아이는 강하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을 힘이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자꾸 뒤로 미루게 돼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 아이부터 먼저 살려야 하니까. 그렇게 렌지 일은 뒤로 밀립니다. 변명 같지만 그게 실제 내 본심이에요.” 무대 주변에 모인 가족 일행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에 여유롭고 행복해 보여서 자신과는 크게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들이었다. 우스운 얘기와 동작을 펼치는 피에로의 쇼를 평화로운 가족들 옆에서 구경하기가 왠지 조심스러웠다. 렌지는 히사나 옆을 벗어나 광장 한 구석의 벤치로 몸을 피했다. 히사나가 달려와 물었다. “왜, 재미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다들 즐거워하잖아. 나는 그런 거 별로 못 봐서 왠지 불안해.” (중략) “가족끼리 온 사람들, 어쩐지 불편해서.” 두 사람은 동시에 푸훗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엄마랑 둘이서 살아. 아빠는 누군지도 몰라. 그래서 여기 처음 왔을 때, 너하고 똑같은 생각을 했어. 나도 가족끼리 온 사람들이 싫더라. 근데 이제 괜찮아. 너도 금세 익숙해질 거야.” 여태까지 항상 혼자 지내 왔기 때문에 뒤에 붙은 그림자 같은 존재에 묘한 이질감도 느껴졌다. 귀찮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탓에 답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묘한 두근거림을 동반하는 뭔가 기쁜 감각…….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감각이었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걱정하는 마음, 누군가를 위해 행동하고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에 마음이 뒤흔들렸다. 그런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소년의 작은 가슴속에 회오리쳤다. 그런 탓에 감정의 에너지를 미처 제어하지 못하고 일곱 살 소년은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렌지의 빛나는 눈동자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광채였다. 됐어, 라고 히사나는 생각했다. 이제 괜찮아. 그리고 열세 살의 그날을 경계로 어른 키만큼 자란 렌지는 다시금, 하지만 경계심 가득한 채로 한밤중의 어둠과 소란스러움에 몸을 숨기고 바깥 세계로 조금씩 발을 내디뎠다. --- 본문 중에서 |
2016년, 나카스 파출소에 재발령된 히비키는 어느 날 근무 중 패싸움을 말리다가 한 청년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람을 본 순간 히비키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만난 한 소년이 떠오른다.
2005년, 사건 사고로 바람 잘 날 없는 유흥가 나카스 파출소에 신입으로 부임한 히비키는 한밤중에 돌아다니는 아이, 렌지를 만난다. 히비키와 경찰들은 렌지를 붙잡고 부모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아이의 부모는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어 아이를 데리러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후로도 한밤중에 종종 마주치는 렌지가 신경 쓰인 히비키와 경찰들은 렌지에게서 학대의 흔적을 발견한다. 렌지는 아동종합상담센터에 들어가고, 거기서 렌지에게 호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의욕이 넘치는 신입 경찰 히비키는 렌지에게 호적을 취득시켜 주려고 나서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일이 틀어지고 마는데... |
뉴스를 보다 보면 호적 없이 수십 년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이 소설은 호적이 없는 한 아이의 삶을 조명한다. 주인공 렌지는 부모가 원치 않아 호적에 올라가지 못한 아이이다. 작품에서 경찰 히비키는 렌지가 호적을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방면으로 알아본다. 히비키는 처음에 아동종합상담센터로 가지만, 직원은 매뉴얼대로 응하며 구청이나 법무국에 문의해 보라고 말한다. 이어 구청에 찾아가 문의하지만 직원으로부터 법률이 애매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답변만을 받는다. 추후 찾아간 법무국에서도 부모를 설득해 서류를 제출하라는 말만 들을 뿐, 정확한 대책을 얻지는 못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려지는 허술한 국가적 시스템은 우리 현실과도 비슷하다. 법의 사각지대에서는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존재한다. 방치와 학대 속에서 일찍 조숙해진 주인공 렌지의 모습은 현실 속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가슴을 울리기도 한다. 작품에서는 경찰 히비키가 아동종합상담센터 상담사 네기시와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동 학대에 대한 것도 업무 효율을 따져서 가장 심한 케이스부터 처리하게 되거든요. 순위를 매기는 거예요. 그나마 이 케이스는 아직 어떻게든 헤쳐 나갈 것이다, 아직은 괜찮다, 라고 넘겨 버리는 겁니다. (중략) 그 아이는 강하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을 힘이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도 자꾸 뒤로 미루게 돼요.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 같은 아이부터 먼저 살려야 하니까. 그렇게 렌지 일은 뒤로 밀립니다.” _본문 중에서 아동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이 많고, 그중 ‘덜 심한 아동 학대’는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상담사의 말은 현실과 다를 것이 없어 씁쓸하기만 하다. 이렇게 냉담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지역 축제에 대한 활기차고 생생한 묘사와 이를 보며 희망을 품는 아이의 삶이 어우러지고, 또한 아이에게 손길을 내미는 어른들의 모습이 담겨 있어 마냥 어둡기만 한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밤중의 아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좋은 어른들을 보며,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