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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1부 강이 문을 열다/ 봄마중꽃/ 무탈(無?)/ 산수유나무 꽃문이 열릴 즈음/ 쑥떡/ 삼월에 내리는 눈/ 사월/ 카란을 꿈꾸다-팬데믹에 갇힌 젊음에/ 그냥 가보고 싶었다/ 시간/ 마이 아푸다/ 말빚/ 사람의 길/ 바라나시의 새벽/ 수종사 나한신종꽃의 말/ 고분화엄사 하수구/ 큰길/ 낮달 제2부 쿠션언어/ 쌓을수록 낮아진다/ 낙산사 무료 국수 공양간/ 차를 마시다/ 성전니르바나로 가는 길/ 난 널 이해해/ 봄동꽃이 피기 전에입과 주둥아리/ 사는 모습이 경전이다/ 새벽달/ 전화벨이 울리는 동안/ 불이, 코로나19 미뉴에트에 맞추어/ 무지정답/ 폐사지에서/ 부처가 된 느티나무/ 잡초는 위대하다/ 산이 울다/ 염주 제3부 붉은 지심도에서/ 쇠백로/ 고목-500살 된 수종사 은행나무/ 오미자 차입추 전날/ 광장시장 먹자골목/ 구절초/ 말실수/ 아기 방귀/ 가을밤/ 꿈꾸는 불씨/ 갈대가 사는 법/ 겨울 바다에 꽃이 피다-KBS 인간극장, 푸른 바다의 전설/ 외할머니의 수의슬픔/ 다시 쓰다/ 중국 오대산 북대에서/ 오늘은 누구세요?/ 잉걸불/ 눈제 4부 니 맘 내 맘/ 큰오빠/ 열매달/ 시월 햇살/ 가을 연지에서/ 이환이/ 제주도/ 열다섯 살의 달밤/ 내가 졌다/ 딸/ 이웃/ 하얀 저물녘/ 조개구이/ 겨울새들이 날아간다/ 사랑해서 미안해요/ 가벼운 힘/ 엿/ 꽃전/ 길을 걷는다 [인터뷰] 꽃 한 송이 혹은 불교적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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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불지 않은 한 해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진 한 해도 없었다 무슴슴한 한 해도 없었다 입안에 혀 같은 인연은 더더욱 없었다 내 마음도 나에게 그랬다 숨이 차면 느리게 걷고 말[言]이 말[馬]이 되어 달리면 말[言]을 쉬게 하고 슬픔이나 아픔이나 외로움이 손을 내밀면 낯설지 않은 숨처럼 보듬고 더 슬프고 아프지 않아 고맙다고 다독인다 거친 바람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흔들리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걷는다 느리게 ---「무탈(無?)」중에서 술기운이 거나하게 사람을 어르는 밤 땅을 흔들며 집으로 오는 발걸음 가슴에 꼭 안긴 누런 종이봉투는 구겨져서 울상이 되었다 부산역 맞은편 화교 마을 화덕에서 바싹 구운 속이 텅 빈 빵 말수가 적어 무뚝뚝하기 그지없지만 얼굴에 불그레한 술꽃이 피면 달콤하고 부푼 말이 술술 새어 나왔다 잠사태 나는 눈꺼풀 밀어 올리며 빵보다 먼저 배부르게 먹던 오라버니 따뜻한 마음 간간이 짖어대던 누렁이와 산마루에 걸터앉은 달님도 혀 꼬인 목소리 아련하게 들었다 빵보다 달달하고 따뜻한 속마음 수십 년이 흘러도 지지 않는 꽃 ---「큰오빠」중에서 수만 글자가 빼곡하게 앉은 책 읽고 또 읽으며 기대었다 어느 날 거센 폭풍우가 몰아친 터전 내 일처럼 보듬어주는 손길 버겁도록 생채기를 남기고 떠나는 사람 얇은 언어로 소설을 써서 흩뿌리는 사람 애써 무덤덤한 눈빛 낯익은 것들이 낯설게 떠난다 먼지 나도록 기대었던 책 속 글자들은 표정 없이 누워 있다 다급하고 절실한 순간 사람 모습에 경전이 펄떡거린다 ---「사는 모습이 경전이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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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미형 시인의 2010년 두 번째 시집 『인연이 흐르는 강』을 펴낸 이후의 흔적이다. 시인은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씨앗은 잘 자랄 리가 없는 데도 어리석게 합리화시켜서 마음밭에 심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모든 것은 빈틈없는 인과(因果)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속속들이 알아차렸다. 때로는 휘청거리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시간을 시인은 세 번째 시집으로 세상살이 사람들과 만난다.
문학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치열한 삶에 위로와 용기와 희망이라는 필수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화려하고 달곰한 언어가 넘치거나 또는 담박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따뜻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더러는 시인의 시를 아포리즘 시라고 말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표정과 행동의 마음곳간, 그 소중한 곳에서 솟는 생각이 사람의 흔적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숨 한 번 크게 쉬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뾰족한 생각을 안으로 돌리면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 급하게 세어보아도 열 개는 넘는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순간, 움츠렸던 마음 한 모퉁이가 다시 무리 속으로 들어와 서서히 평온을 찾게 된다. 문명과 과학이 빛의 속도로 놀랍게 발전하고 있지만, 생각은 생물처럼 살아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곳이 이 시집에 있다. 시인의 말 늘 잊지 않았던 길을 나섰습니다 그 길목에서 만난 희노애락의 일상이 오늘입니다 마음통장에 남겨진 잔고가 쓰면 쓸수록 넉넉하게 불어나서 따뜻하게 나눌 수 있도록 더 단순하고 낮게 걸어가겠습니다 만사만물에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