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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007
스탕달 085 허위욕과 진리의 기쁨 087 초상 096 삶의 영상 106 자아와 세계 168 예술가 200 심리주의 231 자기표현 244 영원한 현존 265 |
Stefan Zwe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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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인간감정의 가장 깊숙이 감추어진 부분을 꿰뚫어 볼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그 감정의 내부에 깊숙이 들어가 그것의 발가벗은 모습을 볼지라도,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 p.52 그리하여 철학자 이폴리트 텐Hippolyte Taine의 확언을 빌리자면 그의 작품은 셰익스피어 이래로 있었던 인간기록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전시장이 되었다. 발자크는 개별작품이 아니라 전체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그는 산악과 계곡, 무한정한 지평, 음침한 심연과 급류로 이루어진 하나의 경관처럼 관찰되기를 원한다. 발자크와 더불어 소설을 내적 세계의 백과사전으로 보는 사고가 시작된다 ― 도스토옙스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단절되었을 것이다. --- p.77 요컨대 감상적인 자들에게는 감미롭게 대하고, 경솔한 자들에게는 냉소적으로 대해야 하며, 그리고 가끔은 그 반대로 행동하되, 늘 냉철하고 정신적으로 풍부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 p.103 “그가 감흥이 없을 때는 재치도 없어 보였다”고 자평한다. 다시 말해 올바르게 사유하기 위해서 항상 감흥을 받아야 하지만, 그러나 다시 정확하게 감각하기 위해서 자기 감흥의 박동수를 헤아려야 하는 것이다. --- p.175 이렇게 그의 서사적 문체 속에는 치유 불가능한 공상가의 비극적 암울함이 단도처럼 찌르는 환멸의 아이러니와 뒤섞여 있는 것이다. 그의 소설들에서 스탕달은 현실세계를 증오스럽게 그리는 만큼이나 이상적 상상의 세계 또한 타오르는 열정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이런 영역뿐만 아니라 저런 영역, 정신과 감정으로 이루어진 이중세계 및 그것의 비밀을 대가다운 솜씨로 묘파했던 것이다. --- p.216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만을 연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사람들을 알기 위해서는 그들을 실제로 겪어 보아야 한다.” --- p.244 스탕달에게는 오직 영적으로 강조된 인상들만이 망각증세를 극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지독한 이기주의자가 자서전적으로 세계를 입증하는 자가 될 리는 만무하다. 왜냐하면 그는 반추하여 느끼되, 도대체가 반추하여 사고하지는 않는 까닭이다. --- pp.254~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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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와 스탕달
『발자크/스탕달을 쓰다』는, 천재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와 스탕달에 대해 쓴 평전이다. 마치 두 작가로 직접 살아 본 듯, 평전 속에 나타나는 츠바이크의 생생하고 실감 나는 필치는 이 작품이 평전이 아니라 하나의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장면장면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본연의 섬세한 감정을 바탕으로 두 작가를 평전 속에 그럼직한 인물로 새로이 그려 낸 츠바이크의 글쓰기는 놀랍다 못해 가히 경이로운 경지이다. “그가 칼로써 이루지 못한 것을 나는 펜으로 이루리라.”(24쪽) “『인간희극』은 그 자체가 변화하는 것으로 존재하면서 영원히 변화하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75쪽) 소설만이 아니라 콩트, 에세이를 포함, 무려 90편이 넘는 작품들을 『인간희극』 안에 엮은 발자크는 대단한 다작가였다. 특유의 뛰어난 관찰력과 세심한 묘사로 당시의 인간군상을 작품 속에 생생히 담아냈기에 『인간희극』은 심지어 후대 연구자들이 당시의 사회사를 알아보는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이전의 작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현실성에 입각해 집필한 그의 사실주의 작품들은, 동시대의 또 다른 문호 스탕달의 작품들과 함께 프랑스 현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데, 이러한 대작가 발자크가 이번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풍부한 표현력으로써 재창조된다. 벨리슴(beylisme)과 스탕달 신드롬(Stendhal syndrome)의 창시자! 점선과 같았던 그의 센티멘털한 생의 테두리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펜촉에 의해 선명하게 덧그려져지다! 발자크와 함께 당대의 뛰어난 작가로 알려진 스탕달은 살아생전 발자크와 몇몇 저술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문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연인으로도, 군인으로도 그리고 끝내 작가로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탕달의 작품들뿐 아니라, 처세 철학을 뜻하는 ‘벨리슴’, 뛰어난 예술 작품을 감상한 직후의 이상 반응을 뜻하는 ‘스탕달 신드롬’은 현대에도 여전히 뜻이 통한다. 이는 스탕달의 영향력이 얼마나 유효한지를 보여 준다. “바로 영혼의 가장 섬세한 비약이 시간 속에서 가장 멀리 퍼져 나가는 파장을 지니는 것이다.”(270쪽)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전까지 세간의 냉대와 괄시 속에서도 이들은 끝내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부단하고 뛰어난 글쓰기의 동력은 광기와 거기에 깃든 천재성이었을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그들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그 감정에 공명하여 생동감 넘치는 주인공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게 비슷한 일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