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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_009
오프닝 코러스 _011 제1장 배질 레지널드 앤서니 세인트데니스 _018 제2장 조지프 이즌바움 _041 제3장 엘리너 데 라 루 _079 제4장 휴 앵거스 매커피 _130 제5장 로저 에인트리 모티머 _192 제6장 클리프턴 로더릭 존슨 _252 제7장 캐럴라인 오드리 덴턴스미스 _301 파이널 코러스 _369 해설 | 온화한 할머니가 될 수 없다면 _389 |
Winifred Holt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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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한테는 골칫거리가 되는 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일흔 넘은 여자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겠어요? 혼자 하숙집에 사는데 집세는 밀리고, 우리가 준 헌 옷을 입고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들을 하겠다고 종종거리며 다니고, 아무도 실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저녁밥으로 마가린 바른 빵을 먹는 인생에요.”
--- pp.15~16 “늘 말하지만 이 고약한 세상에 필요한 건 친절밖에 없으니까. 있잖아, 엘리너. 나이를 먹으면 인생에서 물질적인 것들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주는 것도 좋아하게 돼. 나는 항상 정신적인 것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질적인 것을 자주 빌리는 사람이 되고 말았어. 나는 선선히 받으려고 노력했지. 늘 말하지만 자비로운 선물에는 두 가지가 필요해. 후하게 주는 사람과 선선히 받는 사람.” --- pp.100~101 “친척들이 너한테 그만 발버둥 치고 망한 여자들이 사는 클럽에서 노령연금을 받아 살라고 말한 적이 있어? 성공을 빼고 아무것도 안 남은, 정말 아무것도 안 남은 적 있니? 네가 너의 특권을 모두 다 벗어던진다고 해도, 엘리너, 넌 우리 세대의 헐벗음, 외로움,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을 거야.” --- pp.111~112 젊은 세대가 왜 이렇게 중요한 거야, 하고 휴는 생각했다. 왜 스물두 살의 젊은 남자가 절주나 무장해제, 대중 위생을 지지하는 것이 쉰다 섯 살이 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휴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남들이 아무리 다르다고 강조해도 세대들은 서로 아주 비슷해 보였다. 젊은이들이 너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161 엘리너가 조용하게 말했다. “제 일을 가장 잘 판단할 사람은 바로 저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휴가 말을 더듬었다. “아니, 아니요. 물론, 그렇지 않아요. 여자는 그럴 수 없어요.” “여자에 대해 뭘 아시죠?” 엘리너가 물었다. “그리고 저에 대해서는 뭘 아시죠?” --- p.187 그러니까 캐럴라인은 정말 무일푼이고 회사는 돈 많고 나이 든 여자가 재미 삼아 해보는 것이 아니라 운을 건 필사적인 도박이었다. 휴는 속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이렇게 가난이 탄로 난 것이 또 어떤 복잡한 문제를 일으킬지는 몰랐지만 모든 가난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가난이 일을 방해하고 정신을 산란하게 하고 사람과 신념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 p.190 회의록의 형식적인 문장이 캐럴라인을 안심시켰다. 미사에서 사용하는 친숙한 단어들이 그랬듯이. 그 단어들에는 소중한 것이 덧없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든든하게 남은 것이 있었다. 익숙하고 관례적인 사업 절차 덕에 이즌바움의 배신이 그리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잠 못 드는 밤과 낮에 이 단정한 문장들로 나는 무엇을 했던가? --- p.303 “지금껏 사랑이 자기희생과 이어져 있다고 알아왔지만 어쩌면 내가 틀리고 네가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이 모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기엔 너무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너는 네 길을 가야지. 도와줄 수는 없지만.” --- p.332 “나는 모든 것을 참아왔어. 온갖 것을. 가난과 좌절, 외로움을. 하지만 이건 너무해.” --- p.345 물론 전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캐럴라인 자체가 웃음거리였다. 평생이 웃기는 광대극이었다. --- p.384 엘리너는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로저를 보았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식이 끝났다. 엘리너는 베티와 도러시를 따라 묘를 떠나면서 프림로즈 한 다발을 묘에 던졌다. 치료소 침대에서 캐럴라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빠르게 외쳤던 말이 지금 다시 들리는 듯했다. “잠깐만 생각해봐, 엘리너. 난 아주 놀라운 인생을 살았어.” 정말 그랬다. 그렇게 살아야 했다. 한계를 정하지 말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 p.3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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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든 연민이든 멋대로 하라지!’
우스꽝스러운 할머니가 되더라도 지켜야 할 나다움 여성과 아동, 흑인 등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사회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 인정받는 소설가였던 위니프리드 홀트비의 대표작 중 하나. 국내 초역. 개인적인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는 일흔두 살의 주인공 ‘캐럴라인’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의 목소리를 담아낸 소설로, 가난한 비혼의 노년 여성을 향한 혐오와 연민의 시선을 가볍게 튕겨내는 작품이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장마다 다른 인물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는데, 거의 매 장이 ‘불쌍한 캐럴라인’이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꿋꿋하게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캐럴라인의 모습은 독자들로 하여금 정말로 ‘불쌍한’ 이들이 누구인지 되묻게 만들고 노년 여성에 대한 선입견을 한 꺼풀 벗겨낸다. 한편 『불쌍한 캐럴라인』 출간 이듬해에 신장병의 일종인 브라이트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음에도 주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다음 소설 『사우스 라이딩』의 집필에 몰두한 홀트비의 모습은 죽음 직전까지 일을 놓지 않았던 캐럴라인과 겹쳐 보이는데,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오늘날까지 대중에 사랑받으며 홀트비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무심한 당신은 알지 못했던 기꺼이 감내하고 기어이 꿈꾸는 삶 캐럴라인이 누구인지 묻는다면 그의 조카는 “혼자 하숙집에 사는데 집세는 밀리고, 우리가 준 헌 옷을 입고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일들을 하겠다고 종종거리며 다니고, 아무도 실어주지 않는 글을 쓰고, 저녁밥으로 마가린 바른 빵을 먹는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또 다른 조카는 더 짧게 소개할 수도 있다. “대단한 기생충, 엄청난 멍청이, 기막히게 지루한 분, 크나큰 고통거리지.” 미혼에, 가난하고, 이렇다 할 업적도 없는 일흔두 살의 캐럴라인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캐럴라인이 죽은 뒤에도 친척들은 그를 애도하는 대신 귀찮은 존재 하나가 사라졌다며 안도한다. “일흔 넘은 여자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겠”느냐면서 캐럴라인을 조롱하고, 캐럴라인의 인생 전체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캐럴라인이 작성했다는 유언장의 내용을 들어보면 누구라도 이상함을 느낄 만하다. 평생을 가난하게, 여기저기 빚을 지며 살았으면서 수천 파운드나 되는 돈을 어떤 사람에게 얼마씩 나눠주겠다고 자세히도 적어뒀으니 말이다. 캐럴라인, 당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건가요? 조지프는 덴턴스미스가 크리스천 키네마사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회사는 그녀의 말에서 생겨났다. 그녀의 노동으로 존재했다. 회사는 그녀의 이상을 향했다.(66쪽) 일흔두 살의 캐럴라인은 어떤 삶을 살았나. 『불쌍한 캐럴라인』은 곧바로 캐럴라인의 이야기로 들어가는 대신 캐럴라인의 주변 인물들, 그러니까 캐럴라인이 온몸을 바쳐 성공시키고자 한 영화사 ‘크리스천 키네마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내 펼쳐놓는다. 한몫 챙기려고, 인맥을 쌓으려고, 필름을 팔기 위해, 불쌍한 캐럴라인을 돕고 싶어서 등등 회사에 모인 이유는 저마다지만 “크리스천 키네마사 그 자체”인 캐럴라인을 향한 시선은 고만고만하다. 연민 혹은 혐오. 회사에 ‘한 발씩만 걸친’ 사람들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온몸을 바쳐 일하는 캐럴라인을 안쓰러워하거나, 남들보다 더 가진 것이라고는 나이뿐이면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한 그를 혐오스럽게 여기거나. 거의 매 장이 ‘불쌍한 캐럴라인’이라는 말로 끝나는 소설의 형식적 특징은 캐럴라인을 향한 이런 시선을 잘 나타낸다. 개인적인 사랑보다 강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열정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정말 있어요. 적어도 저 같은 여자들에게는 있어요.(331쪽) 소설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닌 캐럴라인 스스로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온갖 고통과 불편과 외로움과 실패도 지켜야 할 큰 뜻만 있다면 가치 있는 것이 된다”라며 남들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가는 캐럴라인의 모습은 앞서 쌓아온 가난한 노년 여성을 향한 편견을 깨부순다. ‘실현 가능성 낮은 일에 아등바등 목매다는 가난한 할머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기대하는 용기를 잃지 않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해서 혐오스러운 할머니’는 ‘우스꽝스러워지더라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단단한 할머니’로 바뀐다. 그러나 변한 것은 캐럴라인이 아닌 그를 바라보는 시선뿐. 위니프리드 홀트비는 ‘불쌍한’ 캐럴라인을 통해 편협한 시선과 짧은 수식어로는 누군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그러니 당신 역시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아니든,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규정되고 고정되지 말고 살아가라는 찬란한 응원은 덤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와 애나 번스 등이 수상한 ‘위니프리드 홀트비 기념상’ 위니프리드 홀트비는 사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 『타임 앤드 타이드』와 『맨체스터 가디언』을 비롯한 정기간행물에 여러 편의 글을 발표했고, 독립노동당에서 활동했으며, 페미니스트 단체 ‘식스 포인트 그룹’의 일원으로 과부, 비혼모, 아동 등을 위한 인권 운동을 펼쳤다. 또한 유엔의 전신인 국제연맹의 연사로서 세계 각국을 방문했는데, 이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열악한 상황을 목격하고는 흑인 노동조합 결성을 열렬히 주장했다. 홀트비는 서른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유산과 책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 거주구인 소웨토에 남겼고, 이를 토대로 비유럽인을 위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도서관인 ‘위니프리드 홀트비 기념 도서관’이 개관했다. 아울러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린 ‘위니프리드 홀트비 기념상’도 제정되었는데, 가즈오 이시구로와 애나 번스 등이 이 상을 수상했다. 홀트비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모두를 선선히 남겼기에 “나는 항상 정신적인 것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라고 했던 캐럴라인의 목소리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