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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부 쾌/불쾌 제1장|낯설고 두려운 ‘보통이 아닌 몸’: 연극 〈인정투쟁; 예술가 편〉을 중심으로 _ 이진아 제2장|마리즈 콩데의 『아름다운 크레올(La Belle Cre?ole)』, 매혹과 혐오 사이에서 _ 이가야 제3장|오리엔탈리즘 무대화하기: 긴터스도르퍼/클라쎈 〈Othello, c'est qui?〉, 브렛 베일리 〈Exhibit B〉를 중심으로 _ 손옥주 제2부 원한 제4장|‘원한’은 대항담론이 될 수 있는가?: 장 아메리의 원한에 대한 사유를 중심으로 _ 전유정 제5장|피해자의 자리를 전유하기: 베트남전쟁 참전 트라우마에 대한 영화적 재현의 국적과 젠더 _ 조서연 제6장|불안과 원한의 정치: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의 감정동학 _ 이명호 제3부 슬픔 제7장|애도와 우울의 서사: 콜슨 화이트헤드의 『제1구역』 _ 김경옥 제8장|외상적 경험의 공간적 접근: 토니 모리슨의 『빌러비드』 _ 육성희 제9장|정상성의 폭력과 감정의 재현: 불온한 존재들을 위한 잔혹 동화 〈사이코지만 괜찮아〉 _ 김혜윤 제4부 수치심 제10장|혐오스러운 세상을 성찰하는 윤리적 수치심의 발명: 코로나19 이후 발표된 한국소설을 중심으로 _ 이행미 제11장|고려시대 싫어함[厭-嫌-惡]의 감정과 사회적 인식 _ 전경숙 제12장|마이너리티 간의 공감은 가능한가?: 일본 한센병소설 속 마이너리티의?‘관계 맺기’ _ 이지형 제13장|영화 〈수치(Shame)〉와 21세기 성 담론 _ 김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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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지닌 몸의 한계와 고통에 대해 인지한다는 것과 장애의 몸을 긍정한다는 것의 공존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농인 부모의 자녀인 코다(Children of Deaf Adults: CODA)로 태어난 영화감독 이길보라는 신경학적 장애로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실이 아니라 그저 기본값’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감각의 상실에 대하여 슬픔이나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비장애중심적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는 장애가 있는 몸의 경험은 다층적이고 복합적이며 입체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납작한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의 주도권을 갖고 말하기를 강조한다.
--- p.45 그의 프랑스어와 아프리카식 춤사위가 오히려 재현의 주체가 되어 야오 자신에 대한 되르의 재현 행위, 그리고 공연 중간중간 터지는 폭소를 통해 이 불균형한 관계에 대해 묵인해 온 관객의 태도를 역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오가 공연을 통해 궁극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상 셰익스피어 원작 속 오셀로에 투영된 유럽인들의 편향적 시각,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동안 유럽 문학과 공연예술계가 그려왔던 아프리카인 혹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분열적 클리셰에 다름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메시지가 공연 마지막에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이들은 자신이 폭소하던 순간이야말로 자기 안에 일상화되어 있던 타자에 대한 정치적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 p.88-89 타인을 박해함으로써 자기실현을 행하는 자를 눈앞의 절대적 권력자로 경험한 희생자들은 결코 악의 평범함과 같은 허황된 수사를 머릿속에 떠올리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고문당한 사람은 이 세계에 절대적인 지배자로서의 타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거기서 지배란 고통을 가하고 파멸시키는 권리로 드러난다는 것을 경악과 함께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십 년이 지난 후에도 어깨가 탈구된 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마주해야 하는 희생자들에게 원한의 한계를 설파하고, 속죄, 화해, 용서를 이야기하는 것만큼 폭력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 p.111 참전군인의 피해자성이 가해자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라는 점은 실제 베트남전쟁에서 제대한 군인들이 겪는 PTSD 문제를 다룰 때의 난점이기도 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80년 개정된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III)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밀라이(My Lai) 학살을 비롯한 다수의 민간인 학살 행위에 가담했던 참전군인들의 후유증을 PTSD로 진단하는 데 동의했다. 이 개정은 “자신에 의해 트라우마를 입은 가해자”라는 새로운 지위를 구성하면서 트라우마 사건을 스스로 저질렀든 남에 의해 당했든 전쟁 피해를 입은 모든 군인의 증상을 도덕적 평가 없이 PTSD에 포함하도록 했다. 그러나 전시 가해자의 트라우마를 인정한다는 것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자의 면책을 주장하거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필연적으로 도출하지는 않는다. --- p.130-131 정체성 정치를 원한의 정치의 변종으로 읽어내는 브라운의 분석이 더욱 힘을 발휘하는 대목은 2000년대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우파 정체성 정치를 설명할 때다. 앞서 설명했듯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하층 백인 남성들은 외부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 성적 소수자들, 여성들로부터 자신이 누려왔던 기득권이 박탈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이제 스스로를 빼앗긴 피해자라 생각하는 상처 입은 하층 백인 남성들은 자신들의 인종적·문화적·종교적·성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결집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2016년 트럼프의 당선은 이들의 정치적 결집에 힘입었다. 이들의 내면을 물들였던 원한의 감정이 트럼프를 지지했던 우파 포퓰리즘을 추동하는 힘이다. 원한은 ‘백래시’의 시대의 지배적 감정구조다. --- p.165-166 로이트에 따르면 사랑하는 대상을 잃은 상실, 즉 “사랑하는 대상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깊은 슬픔은 그 대상에 부과되었던 모든 리비도(Libido)를 철회시켜야만 “슬픔의 작용이 완결”되고 “자아는 다시 자유롭게 되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대상의 완전한 대체 가능성을 통해 애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어서 우리 곁을 떠나면 그와의 감정적 고리를 끊음으로써 그에게 투자했던 심리적 에너지를 회수해 다른 사람한테 다시 투자”해야만 우리는 슬픔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프로이트의 애도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애도가 기억을 통해 이루어짐을 이야기한다. --- p.181-182 접점이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인물들은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비로소 바라보게 되거나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게 된다.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관계의 확장을 통해 개인의 슬픔과 우울을 극복하고 정상성의 세계 안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잉되거나 결핍된 정서를 지닌 드라마 속 인물들은 이를 애써 극복하거나 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슬픔과 우울 그리고 트라우마로부터 도망치거나 압도당하기보다 스스로의 감정과 내면을 솔직하게 마주하고 그것을 계기로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조지 보나노(George A. Bonanno)는 “기억을 통해 상실의 슬픔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끄집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이 훨씬 더 변화된 삶에 잘 적응할 수 있다”라고 조언한다. --- p.249 혐오가 점점 더 교묘한 방식으로 나타나면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세분화될 수 있다. 「특별재난지역」의 일남과 가영은 문화자본의 격차로 현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아를 형성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이들이다. 이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내에서도 계급, 문화자본의 차이로 혐오와 폭력의 사슬에 걸릴 가능성이 상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남과 가영은 여성혐오의 피해자로 대상화되지만, 그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모른다. 또한 이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면서 생길 수 있는 수치심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역으로 혐오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노와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대한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 p.279-280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따르면 싫을 ‘염’자는 부수이자 소리부인 ‘기슭 엄(厂)’자와 의미부인 ‘물릴 염(猒)’자로 형성(形聲)된 한자다. ‘물릴 염(猒)’자는 ‘달 감(甘)’쪽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물릴 정도로 먹어 배부르다’라는 뜻이다. 자체 그대로 ‘개 견(犬)’자는 개를, ‘고기 육(肉)’자는 고기를, ‘입 구(口)’와 일(一)을 합한 ‘감(甘)’과 더해져 ‘맛있는 고기를 싫증 날 정도로 먹는다[猒]는 뜻에서 ‘싫증나다’, ‘염증을 느끼다’, ‘싫어하다’의 뜻이 나왔다. --- p.289-290 이러한 시선의 다양성은 한센병자 주체와 다른 마이너리티 간 관계의 양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소외와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에 문제 제기를 하는 입장에서 ‘동반자’여야 마땅할 마이너리티 간 관계가 정작은 공감과 동행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이너리티 내부의 소외는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선천적 장애인에 대한 한센병자의 소외,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한센병 활동가의 보수적 시선, 한센병 요양소 내부의 조선인 한센병자에 대한 소외에 이르기까지 그 소외 양상 또한 실로 다양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이너리티 간 공감과 연대에 희망을 가탁하는 것은 차별·소외·혐오 문제야말로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보편적 실존의 문제로 사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화라는 보편적 소외와 한센병이라는 특수한 소외에 각각 직면한 노인과 여성이 차이를 넘어서 내적으로 교섭하는 「사랑의 형태 1」은 마이너리티 연대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 p.341-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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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제이자 시대의 문제, 혐오
혐오의 문화적 표상 혹은 재현에 주목하다 혐오는 인간의 감정 중에서도 강하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이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The Expression of Emotions in Man and Animals)』에서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제시한 놀람, 공포, 행복, 슬픔, 분노, 혐오의 여섯 가지 감정이나, 또는 『인간다움의 조건(Humanity: an Emotional History)』에서 스튜어트 월턴(Stuart Walton)이 거기에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을 덧붙여 논의한 열 가지 감정 중 혐오는 강도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혐오는 두려움이나 증오 같은 ‘회피 감정’들과 자주 겹쳐서 나타난다. 그 외에도 수치, 분노, 멸시, 질투 같은 여러 이웃 감정들이 혐오와 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감정의 계열을 이룬다. 따라서 혐오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감정 복합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혐오 복합체는 또한 정동으로서도 작동한다. 사실 정동을 가리키는 영어 ‘affect’는 정서, 감응, 감동, 정동, 심지어 아펙트로 번역될 만큼 그 뜻이 너무 다양해서 단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더라도 사전적 의미에 근거해 설명하자면 정동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심리학적으로 정동은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감정, 또는 그 영향이 표현된 심적 표상을 가리키기도 한다. 한편 최근에 자주 거론되는 정동이론으로 오게 되면, 정동은 감정의 차원을 넘어 몸과 몸을 관통하고 순환하면서 영향을 주고 효과를 초래하는 경험의 강렬함과 그 비인격적이고 집합적인 강렬한 흐름, 울림, 에너지로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어떻게 정의하든 정동의 핵심 요소인 영향, 움직임, 효과성은 감정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반영과 굴절’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13명의 필자들이 바라보는 혐오 재현의 양면성과 복잡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재현이라고 하면 흔히 원래의 사건, 생각, 진실을 있는 그대로 옮기거나 모방하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 표면이나 거울에 사물을 비추는 반영(reflection)이라는 단어에는 바로 그런 재현에 대한 관습적인 통념이 담겨 있다. 반면 굴절(refraction)은 빛이나 소리가 물 표면을 통과할 때 휘거나 꺾이는 현상을 말하는 용어로, 어떤 요인들에 의해 뒤틀려서 표현되는 재현의 다른 모습을 빗댄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반영으로서의 재현에도 시공간의 차이나 흔들림은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굴절로서의 재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재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유형의 재현 중 반영이 굴절보다 진실에 더 가까울지는 미지수다. 책은 총 4부, 13개 장으로 구성되며 동서양의 소설, 희곡, 연극부터 TV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텍스트들을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먼저, ‘쾌/불쾌’를 다루는 1부에서는 불쾌를 거부하면서 그것에 끌리는, 혹은 프로이트(Sigmund Freud)식으로 말하면 혐오스러운 대상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그것과 마주하는 인간 내면의 이중성에 대해 살펴본다. 2부에서는 과거의 고통으로 박제되기를 거부하는 희생자들의 동력이자 역사를 외면하는 가해자에 대한 저항의 원천으로서의 ‘원한’의 정치학을 대항담론, 감정동학, 피해자 서사의 틀에서 접근한다. 이어서 3부 ‘슬픔’은 사랑의 대상을 잃어버린 인종적 타자, 성 소수자, 장애인, 난민, 입양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애도, 우울, 트라우마의 이야기를 슬픔의 서사학 측면에서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4부에서는 모멸감과 자기혐오에 휩싸인 자기부정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동체와 자아를 구성하기 위한 윤리적 감정으로서 ‘수치심’의 영역을 탐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