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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1 거울의 페르소나

거울의 페르소나
갠지스 강의 구상도
다비
블루 블루
시조새
영혼이 맑아지는 시간
우리가 멈추기 전에
용골에 돋는 옹이
잠 속의 잠
목과木瓜
산월
천정의 소리
정체성이 무어냐고
미륵의 노래
손금의 바다

채석강
쓸쓸하고 씁쓸한 것
연잎과 거미
바람은 기다림이 아니다

2 기우는 달

기우는 달
대장간의 노을
남김없이 남는 것
눈썹 하나 차이
별이 된 영혼
부재
빗물
어머니 주머니
수염 풀
쉬 소리는 시 같아
슬픈 성탄
의욕과 처지 앞에서
이장
가을 발자국
누구나 가진 이름 하나
백목련 진다
누이
신화와 목마
플라타너스
어린 징 소리

3 나무 장례식

나무 장례식
나무 도시에서 죽다
개미와 게미
오동도
신가리 낚시터
오목눈이 사랑
우울한 날
투명이 부른 산새
제비꽃
억새 비
신발에 대하여
만날 수 없는 너에게
10월이 가면
첫사랑
괜찮다는 갈대
쇄루우灑?雨
머나먼 당신
들에 핀 꽃이 너의 마음이라면
불편한 사육

4 달동네의 겨울

달동네의 겨울1
궁금한 말
말테우리의 꿈
무직자
사라진 지문
시간을 만지다
디아스포라
주인 없는 연장
수화手話
가을 속 가실이
더위
낡은 의자에 대하여
소리의 죽음을 보고
말을 묻다
어쩌면 연꽃 밭 서호
어린 마음

| 작품론 |
삶의 관조와 생명성, 휴머니즘의 미학/ 강경호

저자 소개 1

임인택

광주 출생 2018년 《시와사람》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광주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수상 시와사람 시학상 수상 시집 『시時와 시詩』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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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26g | 125*200*20mm
ISBN13
9788956656984

책 속으로

저 속에 타자가 웃고 있다
나인 것처럼 웃으나 실은 허상의 그림자다
나는 웃지만 속으로 울고 있다
가면의 세계가
위악을 증폭시키는지도 모른다
범벅이 된 사실과 진실을 칼로 자르듯
논픽션과 픽션을 가리는 일이 가능할까
마음을 모르는 거울이 표정만 반사할 뿐
매일 아침 오늘은 신나는 일이 있을 것처럼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는 것이다
언젠가 깨질 거울과 나의 안팎을 감싸고
해명에 대부분의 시간을 바친다
말과 표정, 마음이 따로 가는 생이
가식과 페르소나를 남발하면서 울고 웃는다
달빛을 반사하는 둥근 허구 같은 추석이다
너에게 웃으면 웃어지듯
오는 것 반갑고 가는 것 반가운
가면 서운하고 오래 머물면 버겁다는
나는 부서지지만
세상 거울은 깨지지 않는다.
---「거울의 페르소나」중에서

강 가 불타 불티 올라
구상도의 계단 가장 낮은 곳에 발목을 담그고
뼈의 구릉 하구를 이룬다
불꽃 디아도 릭샤에 부딪힐까
십사억 인도의 신비
물비늘 그늘에 날아드는 흰 재
그 사이로 흰옷은 어른거려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
정좌하고 명상하는 사람
미처 다 태우지 못한 주검을
강에 흘려보내는 사람
힘겹게 몸을 트는 수천키로 강줄기는
원소로 환원하는 피안의 세계로 흐른다
물질의 잠에서 깨지 않음으로
비로소 아침을 맞이할
물화 된 사과가 하트 모양으로 축조된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 그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 삶이 있는
사라의 탯줄 속에 무슨 꿈이 서릴까
강의 길이만큼이나
따가운 불티만큼이나
몸에서 불로 물에서 흙으로 다시 태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옷 벗은 영혼
저리 니르바나로 가는 여정일까
---「갠지스 강의 구상도」중에서

봉안당 숲 안개 속
불살 타고 붙는 연기
봉두 풀어 헤치고 불티 산에 오른다
타악 탁 고승 한 분이 맨발로 걸어 가신다
세사의 거친 길 타는 심지 속에
면벽 허공에 청수로 걸러내다
몇 번이나 넘어졌을 두 발이 거마 위에 단정하다
토막 친 나무 탑 지평으로 낮아지고
도요 가마 연꽃 무늬 하얀 소반에
뜨겁게 살았던 사리 몇 알 남기셨을까
해탈교 건너는 침울한 목탁 소리
뒤따르는 불두화 연꽃의 그림자가
합장한 손끝에서 파르르 떨린다
두 평 저자 흰 벽에 살거리가 눈 뜨고
하루치 노을 나무 끝에 졸리듯 걸려있다
태워질 것 버려질 것을 안고 사는 우리
닳으면 신발도 도반 한다고 말할까
소지가 타면 저 너머 도리상 만나질런지
덤 없다 덧없다 죽음은 미완의 묵화 같다
점묘법으로 그린 초상화 앞세우고
주머니 없이 사뤄 인적 드문 산골을 지나
새 한 마리 서천 가는 뒷모습
내게 사리 없고 공 없음을
돌아보지 못할 것 같다.
---「다비」중에서

잘 지내지 못해요
산국 수국의 하늘 빛을 미신처럼 혐오한다는군요
푸른 핏줄로 감싼 어머니의 자궁을 생각해 봐요
오랫동안 기다림과 우묵한 시달림으로
당신을 내 준 아침이 터져 흐르지 않나요
부딪힌 이마가 뾰족하고
찢긴 입술 피멍으로 들어서면
놀라서 다독이던 누가 있었나요
산성도나 타인의 심상을 탓하지 않아요
편견과 갈증으로 타던 장미의 여름이 지나면
끝없이 물결치는 푸른 바다로 갈 거예요
물든 날을 즐길 거에요
어머니와 나 하늘과 바다가 서로 부둥켜안고
붉게 젖는 저녁의 감정을 울먹일까요
젖어 붉는 저녁을 물어 볼 거예요
지어 부신 꽃말로 때리지 마세요
자궁 안팎은 한 색으로 되어 있지 않더군요
푸른색은 안 되나요
꽃은 꼭 다른 색이어야 하나요
흔들리며 한 철 비에 젖는 화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즐거운 비명이죠
산방 꽃 차례로 석태 낀 눈이 환해졌다면
불안한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의 머리에
멋진 핀을 꽂아 드리겠어요
어차피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피고 연습도 없는
슬픔으로 져야 하니까요
당신의 내일이 그리운 어제를 삼키고
흩어지는 말들이 미완성되는 오늘
이유가 있건 없건 한번의 삶
장렬히라고 말하고 싶어요.
---「블루 블루」중에서

구겨지기도 했을 이 없는 해오라기
걷게 되면서 날지 못한 새 비 맞고 섰다
처진 죽지에 굽어진 등마루
퇴화된 깃털이 빗물을 말리는지 터는지
골판지 같은 몸에 주름이 자글거린다
끌던 폐지 키트를 잠시 멈추고
허리를 뒤로 재껴 보지만
강대나무 꺾이는 소리에 놀란 관절
바닥을 원 없이 안아 볼 것처럼
지면으로 허리 목은 휘어지고
민들레 꽃씨처럼 무게의 반란이 희미한 길을 낸다
목관 치수에 몸피를 맞추나
능소화 담벼락에 닳고 허물어지는데
한세상 견디다가 하늘 새로 돌아간다면
수리의 몸에 들어가 완판될 것 같은 티벳 벼랑 새의 후손
메마른 입술은 무어라 말을 하지만
들리지 않는 당부
이 세상 최후의 말
섬몽을 묻지 않기로 했다.

---「시조새 - 始祖」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품론|

삶의 관조와 생명성, 휴머니즘의 미학
- 임린 시집 『시(時)와 시(詩)』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존재한다. 이것을 삶이라고 한다. 시인은 태어남과 죽음의 간극에서 끝없는 질문을 한다. 실존의 방식과 자신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가족과의 관계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과의 상생방식인 생명성 탐구,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사람들의 삶을 살핌으로 해서,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성과 자신의 실존에 대해 사색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한다. 가족에 대한 연민과 측은지심은 물론이고 세계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시인이 본질적으로 휴머니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인간의 탐욕에 대한 실존방식에 대해 성찰하는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보다 인간다움을 지니고자 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탐욕과 결핍,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현대자본문명의 그늘 속에서 불안을 견디는 연약한 인간 존재의 실존의 몸부림이 있다. 임린 시인의 시적 발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시인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여서 공감영역이 확장된다.

2.
서정시는 시인이 마주하는 시대의 현실을 반영한다. 현실은 늘 불화와 모순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시대의 안테나’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은 현실의 제문제를 발견하고 수면 위로 띄워올리는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을 일러 ‘예언자’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나약하다. 어떠한 형태의 권력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무던하고, 보기에 따라서는 어리석은, 순진한 아이를 닮았다. 이렇듯 시인이 시대의 그늘을 발견하고 제 목소리를 내는 내적 에너지는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살피면서, 시인 자신의 삶을 살피는데서 연유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말하듯 서로가 관계 짓고 있는 공동체여서 그 관계의 본질을 묘파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근원적으로 살필 수 있다.

저 속에 타자가 웃고 있다
나인 것처럼 웃으나 실은 허상의 그림자다
나는 웃지만 속으로 울고 있다
가면의 세계가
위악을 증폭시키는지도 모른다
범벅이 된 사실과 진실을 칼로 자르듯
논픽션과 픽션을 가리는 일이 가능할까
마음을 모르는 거울이 표정만 반사할 뿐
매일 아침 오늘은 신나는 일이 있을 것처럼
거울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는 것이다
언젠가 깨질 거울과 나의 안팎을 감싸고
해명에 대부분의 시간을 바친다
말과 표정, 마음이 따로 가는 생이
가식과 페르소나를 남발하면서 울고 웃는다
달빛을 반사하는 둥근 허구 같은 추석이다
너에게 웃으면 웃어지듯
오는 것 반갑고 가는 것 반가운
가면 서운하고 오래 머물면 버겁다는
나는 부서지지만
세상 거울은 깨지지 않는다.
- 「거울의 페르소나」 전문

페르소나Persona는 원래 연극에서 쓰이는 탈Masklchanacter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비롯됐다.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밖으로 표출하는 공적 얼굴이다. 실제 성격과는 다르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한 개인의 모습을 의미한다. 흔히 서양의 가면무도회에서 자신을 감추고 탈의 모습으로 또 다른 자신을 드러내곤 하였다. 「거울의 페르소나」에서 화자는 거울을 바라보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타자’로 인식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이 “나인 것처럼 웃으나 실은 허상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개의 모습이 있다. 서로 갈등하며 진정한 자신의 자아와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의 유혹은 두 개의 모습이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한다.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때문에 화자는 “나는 웃지만 속으로 울고 있다”고 진술한다. 여기에서 거울 속의 내가 웃고 있지만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탓에 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진실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웃고 있는 나는 진실된 나의 모습이 아닌 까닭에 자신이 탈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는 울고 있는 것이다. “매일 아침 오늘은 신나는 일이 있을 것처럼/거울 앞에서 얼굴을 매만지”지만 대부분 “말과 표정, 마음이 따로 가는 생”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자는 “가식과 페르소나를 남발하면서 울고 웃는다”고 토로한다. 이 작품에서 ‘거울’은 매우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거울은 실제의 거울이기도 하면서 ‘세상거울’이다. 실제의 거울은 자신의 모습을 현상적으로 비춰주는 것을 말하며, 세상의 거울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사회구조를 가리킨다. 두 개의 상반된 거울 사이에서 화자는 갈등한다. 실제의 거울은 깨뜨릴 수 있지만, ‘세상거울’은 욕망이 만든 거울이므로 어느 개인이 쉽게 깨뜨릴 수 없다. 거울이 자신을 비춰줌으로써 화자는 거짓된 자아와 참된 자아를 구분하게 된다. 그러므로 실제 현상적으로 모습을 비춰주는 것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바라보는 거울은 진실된 나와의 만남, 즉 탈 이면의 참된 자아를 만나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에서 화자가 거울 속의 페르소나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자 한다. 「갠지스 강의 구상도」는 인간의 본성과 근원적인 자아에 대한 사색을 하고 있다.

강 가 불타 불티 올라
구상도의 계단 가장 낮은 곳에 발목을 담그고
뼈의 구릉 하구를 이룬다
불꽃 디아도 릭샤에 부딪힐까
십사억 인도의 신비
물비늘 그늘에 날아드는 흰 재
그 사이로 흰옷은 어른거려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
정좌하고 명상하는 사람
미처 다 태우지 못한 주검을
강에 흘려보내는 사람
힘겹게 몸을 트는 수천키로 강줄기는
원소로 환원하는 피안의 세계로 흐른다
물질의 잠에서 깨지 않음으로
비로소 아침을 맞이할
물화 된 사과가 하트 모양으로 축조된다
피안과 차안의 경계를 따지지 않는 그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 삶이 있는
사라의 탯줄 속에 무슨 꿈이 서릴까
강의 길이만큼이나
따가운 불티만큼이나
몸에서 불로 물에서 흙으로 다시 태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옷 벗은 영혼
저리 니르바나로 가는 여정일까
- 「갠지스 강의 구상도」 전문

인도에서 갠지스강을 ‘어머니의 강’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생각한다. 이 작품의 배경은 갠지스 강이다. 그곳에는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정좌하고 명상하는 사람/미처 다 태우지 못한 주검을/강에 흘려보내는 사람” 등으로 붐빈다. 강에서 이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신성한 종교의식이다. 힌두교에서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는 의식은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는 것처럼 거듭 새롭게 태어나는 의식이다. 정좌하고 명상하는 것도 정신을 맑게 함으로써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는 행위이다. 특히 죽은 사람을 화장시켜 강물에 띄우는 것은 “몸에서 불로 물에서 흙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니르바나’는 모든 번뇌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체를 화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옷 벗은 영혼”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목숨을 다하게 되면 “물질의 잠에서 깨지 않음으로/비로소 아침을 맞이할/물화 된 사과가 하트 모양으로 축조된다”고 한다.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죽어도 죽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영원한 생명성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주체는 “피안과 차안의 경계를 따지지 않”고, 새 “삶 속에 죽음이 있고 죽음 안에 삶이 있는”, 즉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삶을 관조하며 실존방식에 대한 모색을 보여주는 작품 「쓸쓸하고 씁쓸한 것」에서도 삶의 본질을 묘파하고 있다. ‘쓸쓸함’과 ‘씁쓸함’의 감정을 부정적인 의미로 여기지 않고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읽고 실천적 덕목으로 이해한다. 임린 시인의 시편들에서 특히 불교적 사유를 많이 보이는 것은 시인의 정신세계가 거기에 닿아있으며, 세계관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다비」는 고승의 다비식을 통해 허무를 그리며 ‘서천 가는 새 한 마리’ 같은 존재가 인간임을 탐구하고 있다. 「영혼이 맑아지는 시간」에서는 보름달이 떠 있는 시간을 “부처의 영혼이 부도의 사리에서 깨어나는 시간”으로 바라보며 “만물이 정적에 있고도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몰아沒我’ ‘물아物我’, 즉 자신을 잊고 있는 상태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더불어 “망각과 해탈의 경계에서 굽은 것이 한 아우라로 펴”진다고 함으로써 존재방식을 불교적 상상력으로 드러내고 있다. 「미륵의 노래」는 고대 문화재를 발굴하여 출토된 유물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아/여러 갈래로 흩어지지만/탑의 정신 화엄의 말씀”만이 남아있음을 되새기며 삶의근원을 살피고 있다.

3.
현대자본문명 사회는 인류역사상 어느 시대보다도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을 도구화·사물화 하고 있다. 끊임없는 탐욕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가장 안전하고 따스한 기초공동체인 가족조차 물질적 토대를 근거로 해체되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해도 부를 축적한 계층은 더욱 물질적 가치를 탐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사회환경이다. 이러한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구조에서 젊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노인들은 그들대로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불어 청년인구는 줄어들고 노인인구는 넘쳐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모순에서 야기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제문제들이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좀먹고 있는 실정이다. 예로부터 집안이 건강해야 우리 사회도 건강해진다고 하였다. 그랬을 때 이러한 오늘 우리 시대의 제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임린 시인의 일련의 시편들은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연민이 깃들어 있다.

어려서 앞도 가리지 못했던 시절
빨랫감을 개키던 어머니는
잠투정을 깨워 소변을 누이곤 했다
쉬 하는 소리에 터진 줄기가 헛방을 나가면
쭈쭈쭈 고추를 말리고
엉덩이와 배를 가만가만 두드려 주셨다
그래서일까 쉬 소리에 길들여져
쉬 소리 같은 시가 시골 뒷산
대숲 바람이 되어 귀에 붙는다
아내의 시간에 돈 되는 일로 핀잔을 듣지만
건네다 본 먼 하늘은 별을 키웠다
가다가다 사는 게 막막 강산일 때는
이따금 부모님 잠든 산 숲을 찾아
새소리, 꽃 내음에 흠씬 젖다가 어둑발로 끌린다
어머니의 토닥거림은 푹신한 뭉게구름이지만
아득히 안는다
흩어진 마음 다잡지 못하고 꿇은 무릎
어르는 어머니 말씀에 보습을 벼르는데
바람에 무너지는 이삭은 가눌 수 없다
어머니와 통성하는 온전한 시간만큼
젖은 돗자리에 앉아
까치 놀로 날아가는 검은 새떼의
목메는 저녁을 말하고 싶다.
- 「쉬 소리는 시 같아」 전문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시점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그것이다. 과거의 시점에는 어린 화자를 돌봐주던 어머니와 아내의 시간이 있고, 현재의 시점에는 이러한 과거를 회상하는 화자의 발화 지점이 있다. 서정시는 모두가 과거에 일어난 정서적 사건들이다. 그런 까닭에 서정시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들을 오래 묵혀두었다가 정신적·정서적으로 숙성시켜 상상력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부여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잠투정하는 화자를 깨워 소변을 누이곤 했다. 오줌발이 헛나갈 때면 어머니는 “쭈쭈쭈 고추를 말리고/엉덩이와 배를 가만가만 두드려 주셨다” 그러면서 ‘쉬’ 소리를 냈다. 유년에 소변을 누이던 어머니의 ‘쉬’ 소리를 여지껏 기억하는 화자는 ‘쉬’ 소리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다가 “쉬 소리 같은 시가 시골 뒷산/대숲 바람이 되어 귀에 붙는다”고 고백한다. 마침내 쉬를 누던 화자는 시인이 되어 시를 쓰고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는 일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이지만, “건네다 본 먼 하늘은 별을 키웠다” 이 작품은 유년에 어머니가 아들의 소변을 누게 하던 ‘쉬’ 소리가 동음이어서 시(詩)로 변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인에게 ‘별’을 키우게 한다. ‘별’은 ‘참되고 맑은 영혼’을 말한다. 때로 살다가 눈앞이 막막할 때는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새소리, 꽃 내음에 흠씬 젖”는다. ‘새소리’ ‘꽃내음’ 또한 ‘맑은 영혼’의 다른 말이어서 화자가 삶과 시의 일치를 꿈꾸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린 시인이 왜 시를 쓰는지를 극명하게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어머니의 묘가 있는 산에 있으면 “어머니의 토닥거림”이 느껴진다. 이승과 저승의 간극을 뚫고 어머니와 화자가 뭐라고 이야기를 나눈다. 저녁 노을이 내리는 때까지 어머니의 묘 앞에서 그저 목이 메인다.

이처럼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가족의 관계성은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으로 뜨거운 마음들이 가족이었던 것을 규명하고, 가족의 유대관계가 건강한 생의 기틀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눈썹 하나 차이」 역시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과 슬픔의 정조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하늘엔 애별이 없다
갈무리 잘하고 길 조심 하여라

꿈이 다리처럼 길었다
일터에 다다르니 입구가 막혔다
달력도 잠들었던지 오늘은 휴무일이다
등 뒤로 우묵한 땀이 흘러 내린다

어젯밤 꿈을 떠올리며
물고기 같은 생시를 찾아서
영산강 근처 비석산을 오른다

걱정만큼 눕는 풀잎
강아지풀 봉분에서 먼저 반기는데
변명 같은 등 뒤가 아리다
그림자는 제 꼬리를 골목에 버려진 개처럼 쓸쓸하다

이리도 먼 이승과 저승의 길
머리에서 발 끝까지 만날 수 없는
부모님 꽃술이 하늘 끝으로 날아가
소리 내어 짖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 「눈썹 하나 차이」 전문

시적 화자는 “하늘엔 애별이 없다”를 전제하고 작품을 전개한다. 하늘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없다는 말에서 ‘하늘’이라는 공간성은 ‘이별 없는 세계’를 말한다. 화자는 아직 지상에 있고 부모님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하늘에 있음이다. 물론 ‘하늘’이라는 공간성은 인간이 부여한 ‘영원성’을 함의하는 고처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죽으면 지상을 떠나 하늘로 간다고 믿고 싶은 것은 죽었어도 죽지 않았다는 욕망에서 기인한다. 불교에서는 인간관계를 차안此岸, 현실 밖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나눈다. 이 작품에 이를 적용하면 차안과 피안이라는 공간에는 각각 화자와 부모님이 있다. 화자가 부모님을 만나지 못하는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화자는 밤에 꿈을 꾸었다. “일터에 다다르니 입구가 막”힌 답답한 꿈이었다. 그래서 화자는 “영산강 근처 비석산을 오른다” 그곳에 부모님 봉분이 있다. 그렇지만 살아서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각각 차안과 피안이라는 공간에 있어 “이리도 먼 이승과 저승의 길”이라고 화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친다. 부모님의 봉분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뒤숭숭한 꿈 때문에 시름에 겨운 화자의 시선에 “걱정만큼 눕는 풀잎/강아지풀 봉분에서 먼저 반”긴다고 한다. 봉분에 다다른 화자는 부모님께 “변명 같은 등 뒤가 아리다”고 한다.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지 아니면 또다른 사연이 있는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부모님께 죄송하고 불편한 마음이다. 그리고 “소리 내어 짖지도 못하고” 울음을 삼키며 봉분 앞에 죄인처럼 무릎을 꿇었다고 함으로써 죄스럽고 비탄한 화자의 심경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이승과 저승, 즉 삶과 죽음의 세계가 ‘눈썹 하나 차이’지만 이 눈썹 하나 차이가 그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참담한 감정에 휩싸임을 아프게 노래하고 있다.

유독 임린 시인은 가족 중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시편이 많다. 「빗물」에서 생전의 어머니는 십리 장터에 좌판을 벌여놓고 비오는 날 비닐 막 속에서 웅크린 모습을 상기시킨다. 어머니 세상 떠난 후에 비오는 날이면 “몸뻬 입은 한 여인”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모습이다. 이러한 화자의 심정은 매우 아프다. 그리움과 죄스러움의 정서를 안타깝게 노래한다. 「어머니 주머니」는 어머니가 “서울 가면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더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월급이 속주머니에서 사라져 버렸다. 털린 돈이면 어머니 생활비를 보탤 수 있을텐데, 비정한 서울살이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화자의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깃들어 있다. 「수염 풀」에서는 면도를 할 때 자꾸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는 수염이 까칠하면 버릇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수염풀’과 ‘수염’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수염풀’은 어머니 무덤의 웃자란 풀이고, 수염은 화자 자신의 몸에 자라는 털이다. 면도를 하면서 어머니 무덤의 무성한 풀을 벌초해야겠다는 생각이 이 작품의 메시지이다. 「대장간의 노을」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직장을 던지고 아버지와 함께 대장장이 일을 한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곡괭이를 만들다 말고 서쪽으로 돈다”. ‘서쪽’은 ‘저 세상’이니 아버지를 생각하는 터이다. 화자의 진술에서 “아버지는 스승이자 하늘이었”기에 대장간 불을 연상시키는 저녁 무렵 노을은 아버지를 떠올리는 기제이다.

「백목련 진다」도 ‘백목련’을 통해 ‘누이’를 떠올린다. 그러므로 ‘백목련’은 시인의 상상력으로 빚어진 세상 떠난 누이를 가리키는 상관물이다. 백목련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누이를 그리워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을 드러내고 있다.

4.
헤아릴 수 없는 우주의 별들 중에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구별만이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고 축복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푸른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생명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생명은 고귀한 축복이다. 우리 선조들은 만물유생(萬物有生), 즉 모든 물질엔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범신론적 사유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전에 생명의 아름다움과 존엄성을 인식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문명은 인간중심적 사고에 의해 자연을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이룩한 인간의 문명은 자연의 희생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대가로 자연은 인간에게 보복을 하고 있다. 지난여름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무더웠고 가장 많은 비를 지구촌 곳곳에 퍼부어 많은 피해를 초래하였다. 임린 시인의 생명성 탐구의 시편들은 이러한 배경에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몸집이 불어나는 공룡, 병든 날씨의 유랑
십자가 피뢰침이 절절하다
안테나 곁으로 바람의 전선이 현악기처럼 울고
눅진한 시멘트벽 위에 검푸른 꽃이 핀다
흐린 상처에도 무진장 제공하는 하늘의 재료
공기 물 햇볕도 사 먹을 줄이야
바람과 목숨도 사 먹을 것이다.
숲을 컹 컹 울리는 갈퀴손이 다녀가면
설계도 위에서 산 숲은 쓰러지고
잘려 나간 나무에 산새도 불면 한다.
풍경화일까 우주의 고슴도치가 되어 가는 지구
켜진 전구 알 같은 지구
숲이 사라진다면 사막화된 모래 언덕에
바오밥 나무나 바퀴벌레 또 무엇이 살아 남을까
한쪽에서 환경 환경 소리 들리고
방황의 움직임 칡덩굴로 얽힌 날
편리가 불편이 될 개연성
딱딱한 생각 떠오르다 지워진다
눕고 싶어 오는 먹 비
출근하러 불어 터진 어깨가
매캐한 공해 속으로 사라진다.
어둡고 습한 지하도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가면
허름한 사람 계단 구석에서 둥글게 말리고
깔고 자는 신문지 기사 한 꼭지에
겨울은 먼 곳에서 멈칫거린다고 한다
봄을 기다리는 곳에 수시로 닥치는
추운 벽이 움추려든다
- 「우울한 날」 전문

인간의 탐욕과 이로 인한 폐해를 비판한 작품이다. 화자는 훼손된 지구 생태계를 “몸집이 불어나는 공룡, 병든 날씨”라고 지적한다. 자연 구성체의 일부인 인간을 ‘공룡’으로 비유하고, 자연환경 훼손으로 인한 증상을 ‘병든 날씨’라고 단적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훼손된 지구를 음울하고 비탄에 빠진 목소리로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눅진한 시멘트벽 위에 검푸른 꽃이” 피고, 한때는 지천에 널렸던 “공기 물 햇볕도 사 먹”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숲을 쓰러뜨리고, 그곳에서 살던 생명들은 터전을 잃었다. 이러한 지구의 모습을 불 켜진 “전구알 같”다고 한다.

온난화로 생태적 위기로 치닿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것은 앞에서 밝힌 것처럼 물질적 이익을 도모하고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편리가 불편이 될 개연성”이라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이 시는 임린 시인의 시편 중에서는 비교적 정직한 언술로 호소한 것으로 시적언어보다 일상적 언어가 오히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작품의 명제가 ‘우울한 날’이라는 것을 시어를 통해 알 수가 있다. ‘공룡’ ‘병든 날씨’ ‘검푸른 꽃’ ‘흐린 상처’ ‘갈퀴손’ ‘잘려나간 나무’ ‘불면’ ‘전구알’ ‘사막’ ‘바퀴벌레’ ‘방황’ ‘불어터진 어깨’ ‘공해’ ‘어둡고 습한 지하도’ ‘추운 벽’ 등 한 편의 시작품에 이토록 부정적인 이미지와 불편한 정서가 난무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지구 환경이 어떻게 훼손되어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어들이다.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성장한 인간의 과학문명과 기술자본은 지구 환경을 지구의 역사 이래 생명체에 의해 인위적으로 훼손되고 오염되어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독일에서 시작된 생명운동은 문학적으로 형상화되기에 이른다.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 생명성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를 통해 생태환경을 보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에 대한 전제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하였다. 다음의 작품 「개미와 게미」도 생태학적 상상력에 기댄 시이다.

길에 버려진 단무지 한 조각
집게로 치우려다
까맣게 엉긴 개미를 보고 주춤했다
거둬야 할 허접으로 여겼지만
그들에겐 몇 끼 양식인 줄 몰랐다
더듬이로 송수신하면서
단단한 턱 치차로 부수어 물고 간다
걸핏하면 부딪히는 마당에
함께를 어떻게 알았을까
스스로 몸 낮춘 미물이
백세를 족히 살며
게미 나는 개미 앞에서
호모사피엔스라 내세울 일일까
하늘이 끓어 말복 평상에서
코 고는 개미가 보는 미개인
쉬지 않고 부지런히 댐을 쌓고 있는 개미 가족
새삼 달리 보였다
- 「개미와 게미」 전문

시적화자는 길에 버려진 단무지 한 조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치우려다 문득 멈칫하고 만다. 인간에게는 쓰레기로 보였을 단무지 한 조각이 또 다른 생명에게는 식량이 된다는 것을 단무지에 “까맣게 엉긴 개미를” 통해 발견한다. 개미들은 “단단한 턱 치차로 부수어 물고 간다” 개미 떼가 걸핏하면 부딪히는데 더듬이로 송수신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며 질서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눈에는 한낱 미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저들 나름대로는 생존본능을 일깨우는 생명활동 때문에 지금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을 것이다. 화자는 단무지를 조각내어 끌고 가려는 개미 떼에서 생명의 경의와 존엄성을 발견한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몸 낮춘 미물”들이 지닌 생명력에 “게미 나는 개미 앞에서/호모사피엔스”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인간에게서 부끄러움을 느끼기에 이른다. 개미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댐을 쌓”는다. 이러한 개미를 통해 말복날 평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 아닌 ‘미개인’이라고 부르고, 개미라는 아주 작은 생명체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임린 시인의 생명성 탐구 시편은 그의 시집 곳곳에서 생태환경보전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나무장례식」은 시 제목이 암시하듯이 생명체를 위협하는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을 보여준다. ‘나무의 장례식’이라고 붙인 시제가 시인의 발언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 도시에서 죽다」 역시 나무의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도시라는 공간은 과학과 문명이 집약된 장소이다. 이러한 장소에는 나무들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그럼에도 메마른 도시에 억지로 심어진 나무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죽어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신가리 낚시터」에서도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준다. 낚시터는 갇힌 공간이다. 이곳에 물고기를 가둬놓고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는 인간의 비정함을 고발하고 있다. 「투명이 부른 산새」에서도 종교적 성소인 교회의 외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의 비극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있다. 교회 외벽을 투명한 유리로 꾸며놓아 새들이 하늘인줄 알고 날아가다가 죽는 모습에서 “주님은 생명을/인도하시지만” 자신들의 욕심만을 좇아가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비윤리성을 반성과 성찰의 시선으로 노래하고 있다.

5.
임린 시인의 시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기층민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드러내는 경향이다. 시가 현실을 반영해야 효용성을 실천하기 위한 시인의 시선이 중심으로부터 이탈되어 소외된 민중들의 삶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일이야말로 나 아닌 타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서정시가 지닌 아름다운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현실은 늘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구도로 나누어져 조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는 무직자의 처지가 되어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고, 또 누군가는 건강이 나빠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또 어떤 집단은 낯선 이국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면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가슴이 훈훈한 시인은 파타피지크Parphysique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즉 전통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상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한다. 이상적인 세계관은 유토피아와 다름없을진대 시라는 언어예술을 통해 시인의 개성적인 언술로 형상화시키는 예술적인 행위이다. 임린 시인의 시편에서도 시인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보다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인적이 저녁처럼 뜸하다
일당 팔만 원을 받고 파했다
예약 없는 귀가에
내일을 모르는
진눈깨비 내린다
젖은 작업화를 벗어 발을 말린다
벨이 조용하다.
상처엔 좌판 남기고 가신
어머니의 발라준 침이 명약이었다
가끔 거친 손으로 발라주던 된장
공부 싫어 집 나간
외아들 찾아 사방으로 헤맸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눈이 내린다
성인 되어 차린 속이
헤아릴 수 없는 눈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분간할 수 없는
소리 들렸다 사라진다
구급차 소리 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녁은 굶은 아이 대하 듯
함박눈은 푹푹 내려
덮는다
- 「무직자」 전문

물질적 풍요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소비가 미덕이라며 소비를 권장하는 시대이다. 자본주의가 이룩한 부요한 성취를 실천하는 한켠에서는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삶의 경계에서 서성이고 있다.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불평등사회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이라는 허울 좋은 그늘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에 대해 대부분 외면하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에는 이러한 풍경이 쉽게 눈에 띤다. 그러므로 시인이다. 시적 화자는 직업이 없는 사람이다. 직업이랄 수 없는 일당 팔만 원을 받고 하루하루 고용불안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예약이 없는 무직자로 어쩌다 인부로 팔려나갈 때만이 일을 한다. 그 날은 진눈깨비가 내려서 “젖은 작업화를 벗어 발을 말린다” 무직자의 어머니는 생전에 좌판을 벌여 근근이 살아갔나보다. 외아들은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어서 대처로 돌아다니는 아들을 찾아다녔다. 죽어서 눈이 되어 눈으로 내리는데 아들은 무직자의 처지가 되어 이제사 철든 모습으로 회한에 젖어 눈을 맞는다. 지난날 어머니는 아들의 상처에 침을 바르고 된장을 발라주었다. 이렇듯 안타깝고 아픈 사연을 안은 아들은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함박눈을 맞으며 세상을 버겁게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 속의 어머니와 아들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상처지고 저미는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수화手話」는 언어 장애인들의 삶에서 아름다운 인간애를 발견하는 작품이다.

얼굴에 묻은
까시래기를 닦아 주는 여자의 손

졸리운 버스 불빛
어둠이 내리고 남녀가 오른다
좌석에 나란히 앉아 말이 없다

여남은 정류장 지나 손짓 눈짓하더니
불빛 환한 상가 앞에서
손잡고 내린다

창밖을 배도는 수상한 구름
비 뿌리면 말의 우산도 없이
거친 대처를 어떻게 건너 갈까

말들이 시시각각 뒤집히면서
보이는 것을 앞세워 껍질로 우기면
세상은 훨씬 더 멀어져 있는데

등 뒤에 등이 있고 바람 뒤에 바람이 있다

비가 내리고
윗옷을 벗어 주는 모습
두어 정거장을 지나쳤어도 젖은 밤길이 춥지 않았다.
- 「수화手話」 전문

저녁 무렵 버스에 남녀가 올라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그러나 말이 없다. 남자의 얼굴에 묻은 까시래기를 여자가 닦아준다. 버스가 여남은 정류장을 지나자 남녀는 손짓 눈짓 하더니 “불빛 환한 상가 앞에서/손잡고 내린다” 이들은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앞의 상황으로 보아 두 사람은 부부이거나 연인이거나 서로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세상은 언어를 통해 소통하며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언어가 아닌 손짓발짓의 언어, 즉 수화手話를 통해 소통한다. 남녀가 버스에서 내린 세상은 수상한 구름이 떠 있다. 이들을 지켜본 화자는 “비 뿌리면 말의 우산도 없이/거친 대처를 어떻게 건너 갈”지 걱정스럽다. 여기에서 ‘수상한 구름’은 ‘비구름’을 의미하며, ‘수상한 구름’이라는 기표가 함의하는 것은 기상현상으로 나타나는 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의 우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세상과의 소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거친 대처를 어떻게 건너 갈” 것인지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다. “말들이 시시각각 뒤집히”고 “보이는 것을 앞세워 껍질로 우기”는 등 소통의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 입을 이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다. 그런데 비가 내리는 밤길에 “윗옷을 벗어 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여진다. 그런 까닭에 “두어 정거장을 지나쳤어도 젖은 밤길이 춥지 않았다.”는 진술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수화는 언어장애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는 언어이다. 그렇다보니 세상과의 불통 때문에 많이 불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이들의 삶에 뜨거운 불을 지피는 것을 발견한 화자가 오히려 이들에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밖에 소외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편들 중에 「달동네의 겨울」이 있다. “피붙이 두고 온 맨몸”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맵지 않은 날 없었던 지난한 삶”을 살아온 시적 대상은 여전히 겨울 추위와 집세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작품을 그리는 시인의 눈길에 연민이 깃들어 있다. 「말테우리의 꿈」은 담살이를 하는 말몰이꾼의 삶을 고단하게만 바라보지 않고 “말발굽 소리에 어둠을 날려보낸다” “홑바지로 견딘 훈훈한 겨울은 옛이야기”가 말해주듯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인의 시선으로 하여 작품에 활력이 넘친다. 「가을 속 가실이」는 산후통으로 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홀아비의 삶을 화자가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하굣길 흙 묻은 가슴에 안겨오는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비의 심정을 휴머니즘 관점으로 투시하고 있다. 「시간을 만지다」는 요양원의 안쓰러운 모습을 형상화 하였는데, ‘요양원’을 ‘섬’에 비유하여 쓸쓸하고 외로운 노년의 삶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

6.
인간은 뭇 생명들과는 다르게 사유한다. 사유는 보다 인간다움을 추구하기 위한 상상력의 발현이다. 특히 시인은 시를 통해 사유의 세계를 구체화하여 궁극적으로는 휴머니즘을 꿈꾸고 지향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자본문명사회, 그것도 자본주의 이념으로 작동하는 오늘날은 인간을 사물화하여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우리 사회에 평배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여 임린 시인은 자신만의 파타피지크Pataphysique를 보여주고자 한다. 삶을 관조하며 반성과 성찰을 통해 보다 나은 완성된 인간이 되는 세계를 꿈꾼다. 불화와 모순이 들끓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제문제로 인하여 파생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살피며 자신의 모습도 이에 투영시켜 관계의 본질을 묘파한다.

시인과 가장 가까운 공동체인 가족의 역사에서 어머니, 아버지, 누이의 헌신과 슬픔을 되새기며 사랑과 상처를 통해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가족애를 노래한 시편들은 사랑의 넘치는 가족관계를 지향한다.

생명성을 드러낸 시편들에서는 지구온난화현상은 인간중심적 사고로 인해 멸망의 길로 치닿을지도 모르는 위기의식을 고조시킴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인간과 자연이 상생해야 한다는 시인의 절박함을 부르짖고 있다.

이렇듯 생명성에 깊은 관심을 가진 시인은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소외계층에 대한 연민을 보여준다. 이것은 삶의 공동체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질 때 세상은 인정이 넘치고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누릴 것이라는 임린 시인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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