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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목차

코발트블루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기억은 끼니처럼 돌아온다

오후를 둘러메고
홍시의 내면
돌확의 시간
노을로 지은 습지
멍든 꽃
라벤더 마시는 시간
네 시의 더께
한 끼의 무게
아궁이 뒤에 숨은 웃음
게마인샤프트
감자꽃
우기의 자리
밤에 든 사색
참빗
첫물 머위
기억으로의 초대


제2부 계절을 사랑으로 번역하다

신맛
흩날리다
연서를 물고 나는 나비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강
포곡새의 여름
중년의 색조
오월의 파문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새
아포리즘의 탄생
풀꽃 사랑
완두콩 여자
여름의 수면
제스퍼 빙산을 보며 커피 한 잔
서랍의 감정
향수

이별은 열두 장이다


제3부 상처와 상처의 경계에서

마디에도 숨이 있다
유일 서사
해묵은 슬픔이 탱탱해지는 시간
물속의 돌멩이
2023년의 갈색
지하에서 지상으로
호흡기를 달고 바다 밑으로 내려간다
도어록
푸른 천막촌
산복도로 라비린스


블랙홀의 기분
검정 구두
칸칸
모탕
눈물의 골마지
기대치의 양면성
이어도는 잠들지 않는다
코발트블루
그늘


제4부 다시 푸름으로 흐르는 시

황홀한 패배
겨울 선운사
서석대
환산정
얼굴탑
노송
이소와 귀소
길은 만장萬丈으로 물결치고
굴레를 벗어난 짐승처럼
구름의 문장
내가 장마가 되는 동안
벽창호
눈 뜬 씨앗
초록 쉼표
수액
나비의 강
소리에 젖다
빨노초의 약속
새해는 새 뜻
피트향
72그루 사과
나의 길


서평
영적 고독을 통해 다다른 은총의 시학 / 강대선

저자 소개 1

·2024년 《열린시학》 등단 ·2026년 『에세이스트』 신인상 「최화백 갤러리」로 등단 ·시집 『허공층층』 (상상인, 2022 출간) ·제4회 포랜컬쳐 전체대상 ·남명 시화전‘안개’선정 ·이어도 문학상 시 부문 금상 수상 ·문예마을 문학상 수상 ·독도문예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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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76쪽 | 130*210*20mm
ISBN13
9788956658636

책 속으로

오후를 둘러메고



잠을 깬 건 순전히 투박한 사투리 때문, 때 묻은 보따리 두 개를 손에 들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목소리로 언니야, 나 간다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손 흔드는 저 파마머리 여인네

느긋하게 눈 감은 채 의자에 몸 묻고 가다가 쉬고 가다가 풍경을 만나려는 계획이 장애물을 만난 것이지요

기차는 푸푸 몸 풀더니 출발을 알려오고

파마머리는 자리에 앉아 옥수수며 고구마 챙기며 출렁이는 젖가슴을, 야생의 젖가슴을 싱싱하게 울리며 옆에 앉은 사람에게 지나온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그 이야기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고향에 물들어 가슴이 싱싱하게 출렁이고, 풍경은 만나는 일이 아니라 젖어 드는 일,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이 눈을 뜨는 일

나는 달리는 풍경에 가슴 부풀고, 파마머리는 내 옆으로 옮겨와,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 햇살에 부푼 오후는 하늘로 떠오르고





홍시의 내면



툇마루 구석진 곳에서
박스는 홍시를 품고
노을은 허공의 길로 흘러가고 있다

홍시의 내면에서 인고忍苦가 붉음으로 발열한다

성숙은 완성으로 가는 늙음
보드라운 인내의 속살을
내 몸 깊숙한 곳으로 흘러가게 한다

깊디깊은 맛을 완성하기까지
홍시는 내밀하게 시간을 더듬어 왔을 것이다

붉은 피가 돌았을까
홍시는 떫은 계절을 되새김질한다
박스 속에서 황홀한 빛깔의 주황빛 오촉 전등이 불을 켠다

단물 든 어머니가 보이신다

눈물이 뚝, 떨어진다





돌확의 시간



어리연꽃 위로
소낙비 지나가고
수면에는
흰 구름 한 장 피어난다

노란 꽃대 길게 밀어 올리면
뜰에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는다

묵직한 시간의 결 따라
돌확은 오래된 서사를 품고 있다

푸른 잎은
나를 감싸던 어머니처럼
한 겹 더
수면 위로 올라오고

새벽 물동이 출렁이던 소리
쌀 씻던
손끝의 맑은 부딪힘
채소 잎맥에 살아 있던
푸른 탄력

돌확의 결 따라
하나둘 되살아난다

붉은 김칫소
물들이던 손끝
흔적마다
눈물 한 방울
익는다





노을로 지은 습지



노을 물든 습지에서
물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오른다

하루가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시간
내 그림자도 길게 눕는다

맴도는 바람은 수면 위에 머물고

떠내려온 잎사귀 한 장
노을에 젖어 천천히 가라앉는다

제 모습 비추던 나무들도
그림자 거둔다

내 몸에도 물 흐르고 노을 지는지
노을로 지은 습지에
새들의 날갯짓이 차오른다

눈길 머무는 곳마다
흔들리며 이어지는 길
길가의 간판도 조금씩 어둠을 입는다

바람과 구름처럼 나이 먹고
계절 사이 떠돌다
잘 걸어왔느냐고
그림자에게 묻는다

어둠 깊어지면
별 하나
가만히 내려앉는다






멍든 꽃



살결을 스치는 바람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머문 자리에도

푸른 자국 하나 남는다

상처를 품지 않은 꽃은 없다

나비가 나풀거리던 봄을
오래 바라보는 오후

향긋한 차 한 잔 속에도
가만히 우러나는 그리움

엄마를 생각하면
봄이 먼저 멍해지고

앨범을 펼치면
접혀 있던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날아오른다

그 모습을 따라
나도 한참 멈춰 서 있으면
하늘하늘 날아온 나비 한 마리

그 길 따라
당신 건너오실 것만 같아
자꾸 나비를 바라본다

그리움 머문 자리마다
멍든 꽃 한 송이 핀다




라벤더 마시는 시간



잠겨 있던 기억을 여는 열쇠는

라벤더 향

책갈피 사이에 눌려 있던 계절 하나
향기가 번질 때마다

닫혀 있던 시간의 서랍이
하나씩 열린다

먼지 쌓인 기억들 사이로
당신의 웃음이 먼저 걸어 나오고

말없이 접어 두었던 그리움도
천천히 빛을 얻는다

시간의 서랍마다
라벤더 행이 차오르면

분홍빛으로 머물던 날들이
창가에 앉아
다시 꽃처럼 피어난다





네 시의 더께



주위 맴도는 햇살로 부드러운 바람의 숨결 짓는다

몸을 던진 꽃잎으로 타오르는 재를 남긴
늦봄, 네 시가 구겨지면
모닥불의 뒷모습 같기도 한
아버지 헛기침이 툇마루 걸터앉는다

햇볕에 고들고들 말려진 천 기저귀 같은, 지나가는 구름

피어난 모란으로
아버지의 웃음을 짓는다

들숨과 날숨으로 벽을 넘는 담쟁이들

어떤 그리움은
늙음 없는 영원 속에 깃들어 산다

겉옷 한 자락 지상에 걸쳐두고 가신
오후 네 시,
모란 떨어진 툇마루

아버지 헛기침이 꽃잎처럼 내려앉는다





한 끼의 무게



바람결에 담겨오는 생각이 한 끼입니다
오래된 추억의 골짜기에서 봄볕에 익었던 그윽한 향기 한 끼입니다
이팝나무 몇 그루 심어 놓고 공복을 달래던 상상도 한 끼입니다

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향기처럼 당신 생각이 기척으로 닦아옵니다

순백으로 서 있는 이팝나무가 당신이었을까요

여름이 허기진 나는 하얀 밥그릇 앞에 앉아 있습니다
당신의 일부인 듯 내 안에서 그리움으로 익어가는 향기
풀빛도 되고 산들빛도 되는 한 끼입니다

바람결에 고봉으로 담겨오는 당신입니다

그리움의 더께가 쌓여 저 산의 봉우리가 되었을 때
잇속을 하얗게 드러내던 가난이 울먹입니다

어느 날 문득, 이팝나무꽃이 비바람에 쏟아져 내립니다

떨어진 꽃을 한 움큼 입에 넣고 깨물면
당신이 주르륵 흘립니다

혀끝으로 올라오는 비릿한 추억이 스며듭니다
당신의 냄새가 기억을 가득 채울 것 같습니다

그 무게로 인해 내가 오늘을 살아갑니다

출판사 리뷰

▣ 작품론


영적 고독을 통해 다다른 은총의 시학


강대선


한영숙 시인은 내적인 정결함을 지향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집 『코발트 블루』는 기독교적 신앙과 영적 고독을 깊이 탐구한 시들과 맥이 닿아 있다. 다형 김현승 시인의 시에서 고독이 인간이 절대자 앞에 홀로 서는 자리였다면, 한영숙 시인에게 고독은 가족과 고향의 기억, 사랑과 이별, 상처와 죽음을 통과하며 자신을 비우고 내면을 정화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한영숙 시인의 시에서 꽃과 바람, 물과 별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상처받은 현실과 영혼의 세계를 잇는 상징적 매개다. 특히 물은 기억과 정화, 재생을, 바람은 보이지 않는 영혼과 기도를, 꽃은 생명과 소멸을, 별은 부재한 존재와 초월을 환기한다. 이는 물과 공기, 불과 흙과 같은 근원적 물질이 인간의 깊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고 본 바슐라르의 ‘물질적 상상력’과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와 만나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고 있어 한영숙 시인의 시에서 자연은 풍경에 머무르지 않고 기억과 상처를 씻고, 죽음과 이별을 영적인 회복으로 전환하는 통로가 된다. 김현승이 고독의 수직성을 통해 절대자를 향했다면, 한영숙은 가족과 고향, 자연과 영혼을 순환하며 고독을 정결과 은총의 자리로 변화시킨다.


1. 기억을 불러내는 방식

시인은 유년,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가족 공동체를 다룬 작품들을 통해 사물과 음식, 그리고 후각적인 감각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시인의 시에 나오는 밥, 소반, 아궁이, 돌확, 홍시, 감자, 머위, 툇마루, 골목, 기차, 철로와 같은 시어들은 과거를 소환하는 오브제들이다.


잠을 깬 건 순전히 투박한 사투리 때문, 때 묻은 보따리 두 개를 손에 들고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목소리로 언니야, 나 간다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손을 흔드는 저 파마머리 여인네

느긋하게 눈 감은 채 의자에 몸을 묻고 가다가 쉬고 가다가 풍경을 만나려는 계획이 장애물을 만난 것이지요

기차는 푸푸 몸을 풀더니 출발을 알려오고

파마머리는 자리에 앉아 옥수수며 고구마를 챙기며 출렁이는 젖가슴을, 야생의 젖가슴을 싱싱하게 울리며 옆에 앉은 사람에게 지나온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내고

그 이야기 듣다 보니 어느새 나도 고향에 물들어 가슴이 싱싱하게 출렁이고 풍경은 만나는 일이 아니라 젖어 드는 일,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이 눈을 뜨는 일

나는 달리는 풍경에 가슴이 부풀고 파마머리는 내 옆으로 옮겨와 어디까지 가냐고 묻고, 햇살에 부푼 오후는 하늘로 조금씩 떠오르고
-「오후를 둘러메고」 전문

이 시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파마머리 여인네’를 통해 시인의 유년과 고향, 가족 공동체의 기억이 현재 속으로 되살아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인의 다른 작품에서 밥, 소반, 아궁이, 돌확, 홍시, 감자, 머위, 툇마루, 골목, 기차, 철로 등이 과거를 불러내는 오브제로 기능하듯, 이 시에서는 사투리, 보따리, 옥수수, 고구마, 파마머리, 젖가슴, 기차가 기억을 깨우는 매개가 된다.
특히 시의 첫머리에서 화자를 잠에서 깨우는 것은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언니야, 나 간다이”라는 투박한 사투리다. 이 목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오래전 고향에서 들었을 법한 어머니와 할머니, 이웃 여인들의 목소리를 환기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의 목소리”라는 표현은 세련되지 않았지만, 생명력이 살아 있는 공동체의 언어를 뜻한다. 파마머리 여인은 한 개인을 넘어, 화자의 기억 속에 자리한 고향의 어머니, 할머니, 이웃 아낙네들의 집합적 이미지로 확대된다. “때 묻은 보따리 두 개”에서 보따리는 단순한 짐이 아니라 살아온 시간을 싸서 들고 다니는 물건이다. 그 속에 든 옥수수와 고구마는 시인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감자, 홍시, 머위, 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음식들은 배고픔을 채우는 먹거리를 넘어 가난했던 시절의 가족, 나누어 먹던 식탁,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길을 불러낸다. 음식은 기억을 가장 직접적으로 몸으로 되돌려 놓는 오브제다.
이 시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출렁이는 젖가슴”, “야생의 젖가슴”이라는 이미지다. 여기서 젖가슴은 관능적인 신체라기보다 생명을 먹이고 키우는 모성의 원형적 이미지다. 옥수수와 고구마를 챙겨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풀어내는 여인의 모습에는 어머니와 할머니 세대의 생활력이 나타난다. 그래서 “싱싱하게 울리며”라는 표현은 젊음의 육체보다 오래된 공동체가 지닌 생명력을 강조한다.
또한 파마머리 여인이 “지나온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장면은 시인의 기억 방식과도 맥이 닿아 있다. 기억은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음식 냄새나 사투리 한마디, 오래된 사물 하나를 계기로 두서없이 생생하게 풀려 나온다.
전환점은 “어느새 나도 고향에 물들어”라는 구절이다. 화자는 처음에는 조용히 기차 여행을 즐기려 한다. “눈 감은 채 의자에 몸을 묻고” 풍경을 바라보려 했지만, 파마머리 여인이 그 계획에 ‘장애물’처럼 끼어든다. 그 방해가 오히려 화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열어 준다. 처음에는 외부의 소음이었던 사투리가 어느 순간 자신의 고향을 되살리는 목소리가 되고, 낯선 여인의 이야기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기억이 나의 기억을 깨우는 순간이다.
“풍경은 만나는 일이 아니라 젖어 드는 일, 보는 일이 아니라 새로이 눈을 뜨는 일”이라는 구절은 바라보는 사람의 기억과 감각이 스며들 때 비로소 자기만의 풍경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젖어 든다’는 표현에는 시인의 특징적인 감각이 들어 있다. 과거는 머리로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냄새와 맛, 소리와 촉감처럼 몸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타인의 생명력이 화자에게 전염되고, 타인의 고향 이야기가 화자의 고향을 깨우는 이 시에서 고향은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사투리와 음식, 몸짓과 이야기 속에 살아 있는 공동체적 감각이다. 시인은 「오후의 철로」에서도 고향으로 향하는 문을 연다. 돌확과 홍시 그리고 한 끼의 밥과 소반, 아궁이 같은 오브제를 통해 가족의 시간을 복원한다.


기억은 기억을 잇는 발자국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발자국이 모여 기억의 관을 만든다

당신을 그곳에 초대하고 싶다

눈앞에서 수만 장의 벚꽃이 흩어지듯
포개도 포개도 전부를 쌓아 올릴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바람을 따라 설렘과 실망, 만남과 실연, 성공과 실패까지도
무수히 떨어지던 그 길에서
당신을 만났고 헤어졌다

사라져도 사라진 게 아닌
기억의 저층에 당신이 뿌리 박고 산다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은 내 안에서 현현하는 꽃

기억은 기억을 불러 기억을 낳는다
서랍에 넣어둔 환한 기억 하나 당신 앞에 가져다 놓는다

스위치를 올린 전등처럼
영원한 순간으로 환해지기를

쿵,
가슴에 박히는 문장으로
꽃 피우기를

-「기억으로의 초대」 전문

이 시는 시인의 기억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점이 독특하다. 제목인 「기억으로의 초대」에서 ‘초대’는 과거를 혼자 되짚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의 공간으로 ‘당신’을 다시 불러들이는 행위다. 따라서 이 시에서 기억은 닫힌 과거가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만나 다시 관계를 이루는 장소로 기능한다.
첫 구절인 “기억은 기억을 잇는 발자국”은 이 시의 중심 명제다. 발자국은 지나간 흔적이면서 동시에 다음 걸음을 부르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억은 또 다른 기억을 불러내고, 그렇게 이어진 기억들이 한 생애를 구성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발자국이 모여 기억의 관을 만든다”에서 ‘관’은 기억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기억의 박물관 혹은 기억의 집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삶은 수많은 시간의 흔적이 쌓여 만들어진 공간이다.
“눈앞에서 수만 장의 벚꽃이 흩어지듯/ 포개도 포개도 전부를 쌓아 올릴 수 없는 기억”이라는 대목에서는 기억의 본질이 벚꽃의 이미지로 구체화된다. 벚꽃은 피는 순간부터 떨어질 운명을 품고 있다. 따라서 벚꽃은 아름다운 순간과 소멸의 순간을 동시에 상징한다. 기억 역시 붙잡으려 할수록 흩어지고, 하나를 떠올리면 그 뒤에서 또 다른 기억이 떨어져 나온다. ‘수만 장’이라는 표현은 기억의 무한성과 불완전성을 함께 보여준다.
“설렘과 실망, 만남과 실연, 성공과 실패”라는 대립적 경험들이 길 위에서 함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시인은 좋은 기억만을 선택하지 않는다. 사랑과 상처, 성취와 좌절 모두가 한 사람을 이루는 기억이다. 이는 기억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수용하는 태도다. 그 모든 시간이 축적된 자리에서 “당신을 만났고 헤어졌다”는 문장이 놓이면서 사랑의 기억에 중심으로 들어온다.
“사라져도 사라진 게 아닌 기억의 저층에 당신이 뿌리 박고 산다”에서 ‘기억의 저층’은 기억을 지층처럼 생각한다는 점에서 앞의 내용과 조응한다. 표면에서는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깊은 층에는 여전히 존재하는 기억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나 베르그송의 기억론과도 연결할 수 있다. 베르그송에게 과거는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의식 아래 축적되어 있으며, 어떤 계기를 만나면 다시 현재로 솟아오른다고 했다. 이 시의 ‘당신’ 역시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기억의 심층에 잠재해 있다가 다시 나타나는 존재다. 이어지는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은 내 안에서 현현하는 꽃”이라는 표현은 기억이 단순히 ‘떠오른다’는 말보다 종교적이고 영적인 뉘앙스를 가지는 이유다. 이는 보이지 않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기억은 과거를 복원하는 정신 작용을 넘어 부재한 존재를 현재에 다시 부르는 제례의 힘으로 작용한다.
이 지점은 한영숙 시인의 기독교적 영성과도 연결된다. 죽음과 이별로 사라진 존재가 기억 안에서 꽃으로 다시 ‘현현’한다는 것은 부활 이미지다. 여기에서 꽃은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부재가 존재로 바뀌는 상징, 죽음이나 이별을 넘어 다시 살아나는 영혼의 이미지가 되기 때문이다.
“기억은 기억을 불러 기억을 낳는다”라는 구절은 이러한 시인의 기억관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서랍”은 닫힌 기억이고, “전등”은 다시 밝혀진 기억이며, ‘꽃”은 되살아난 존재로 연쇄적인 기억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어둠 속에 보관되어 있던 기억이 꺼내지고, 전등처럼 밝혀지고, 마침내 “쿵, 가슴에 박히는 문장”이 되어 꽃이 핀다. 여기서 기억은 마침내 시가 되는 과정에 이른다. 기억을 불러내는 일이 곧 시 쓰기이고, 시 쓰기는 사라진 존재를 다시 현재로 데려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영숙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기억을 밝히는 일이며, 사라진 존재에게 다시 한 번 꽃의 몸을 부여하는 일로 해석할 수 있다.

2. 사랑을 건너가는 방식

첫사랑, 이별, 오래 남은 그리움, 관계의 어긋남을 다룬 시인의 작품들은 사랑을 꽃과 눈, 커피, 향기, 계절, 강물로 번역된다. 꽃과 낙화, 눈물과 첫눈, 커피와 향수, 철길과 바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대상이다. 꽃처럼 피어났다가 지는 일의 반복을 통해 시인은 한 시절을 건너간다.


눈물은 꽃,
돌담은 볕이 따스하고
다시 눈물이 피어날 때 볕꽃이 떨어진다

지는 건 찰나,
흐르는 물이 나에게 방향을 묻는다

사랑은 첫눈,
금방 녹듯이 질퍽이면 좋겠지만
떠난 사람과 남은 그림자가 서로 어긋나고

쌉싸름한 눈물을 흘리며 어둠을 응시하면
신맛의 커피는 보디감이 깊어진다

다크초콜릿, 견과, 향신료의 끝맛을 이별의 맛으로 생각할까

밋밋하고 두루뭉술한 시간에 별이 떨어질까 두렵고

이십 년과
오 분이 쌓이고 무너지고
꽃과 잎새가
햇빛과 그늘이
서로에게 기대어 꽃을 피운다는 생각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와서

눈물이 꽃이 된다는
생각 속
생각

-「신맛」 전문


이 시는 첫사랑과 이별, 오래 남은 그리움, 그리고 끝내 맞닿지 못한 관계의 어긋남을 맛과 꽃, 눈, 커피, 빛과 그림자의 감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에서 사랑은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고 지고 다시 떠오르는 감각의 순환이다. 시인은 사랑을 직접 설명하기보다 꽃과 낙화, 첫눈과 눈물, 커피의 신맛과 보디감 같은 감각적 이미지에 옮겨 놓음으로써 지나간 관계를 현재의 감각 속에서 다시 살려낸다.
“눈물은 꽃”에서 눈물은 본래 상실과 슬픔의 표지이지만, 시인은 그것을 ‘꽃’으로 전환하고 슬픔은 단순히 흘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다시 눈물이 피어날 때 볕꽃이 떨어진다”는 구절에서는 피어남과 떨어짐이 동시에 일어나고 사랑 역시 처음에는 꽃처럼 피어나지만, 피어나는 순간 이미 낙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의 꽃은 사랑과 이별을 함께 품는 상징이다.
“지는 건 찰나”라는 짧은 문장은 사랑의 소멸이 얼마나 갑작스러운지를 보여준다. 이어지는 “흐르는 물이 나에게 방향을 묻는다”는 표현은 이별 이후의 삶이 단순한 종결이 아님을 암시한다. 강물이나 흐르는 물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정작 화자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한다. 여기서 물은 시간의 흐름인 동시에 이별 이후 방황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흐르는 것이 화자에게 방향을 묻는 역설은 사랑이 끝난 뒤 시간조차 방향을 잃어버리는 화자의 심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사랑은 첫눈”이라는 표현에서 ‘첫눈’에는 설렘과 순수함, 처음이라는 특별함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첫눈은 쉽게 녹는다. 화자는 “금방 녹듯이 질퍽이면 좋겠지만”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실제 사랑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끝난 관계 역시 화자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그 때문에 “떠난 사람과 남은 그림자가 서로 어긋나고”라는 구절이 생긴다. 떠난 사람은 이미 부재하지만, 그 사람의 그림자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사랑의 기억은 ‘커피’의 맛으로 구체화되는데 “신맛의 커피는 보디감이 깊어진다”는 표현에서 산미는 처음 혀에 닿는 선명한 감각이고, 보디감은 입안에 오래 남는 무게와 밀도다. 이를 사랑에 대응시키면 첫사랑의 날카로운 기억과 이별의 아픔이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삶의 깊이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다크초콜릿, 견과, 향신료의 끝맛” 역시 같은 구조를 가진다. 시인은 이별을 하나의 단일한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쌉싸름함, 고소함, 매운 향, 긴 여운 등이 복합적으로 남듯, 오래된 사랑 역시 슬픔과 미련, 고마움과 서운함, 그리움이 뒤섞인 채 남는다. 그래서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라기보다 혀끝과 몸에 남은 후미(後味)가 된다. 이 시의 제목인 ‘신맛’도 결국 첫사랑과 이별이 남긴 감정의 산미라 할 수 있다.
시간의 표현도 주목할 만하다. “이십 년과/ 오 분이 쌓이고 무너지고”에서 객관적인 시간의 질서는 무너진다. 첫사랑 이후 이십 년이 흘렀어도 어떤 기억은 오 분 전의 일처럼 생생할 수 있다. 반대로 불과 오 분 사이에 하나의 관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꽃과 잎새가/ 햇빛과 그늘이/ 서로에게 기대어 꽃을 피운다는 생각”은 관계에 대한 화자의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다. 사랑은 밝은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햇빛과 그늘, 만남과 이별, 기쁨과 상처가 서로 기대어 한 사람의 삶을 완성한다. 한영숙 시인은 이별까지도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는 상처가 사라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상처를 자기 삶 속에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다.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와서/ 눈물이 꽃이 된다는/ 생각 속/ 생각”에서는 다시 처음의 “눈물은 꽃”으로 돌아간다. 처음에는 선언처럼 제시되었던 이미지가 마지막에는 하나의 깊은 사유로 변한다. 사랑 때문에 흘린 눈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꽃이 되고, 그 꽃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 시가 된다.

「이십 년과 오 분」에서 사랑은 달콤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숙성된 신맛과 쓴맛으로 시작한다. 「꽃으로 흩날리다」와 「연서를 물고 나는 나비」에서는 사랑이 피고 지는 꽃과 날아가는 나비로 형상화된다. 이처럼 사랑은 거리의 문제가 심화되고, 「아포리즘의 탄생」과 「풀꽃 사랑」에서는 소유하지 않는 사랑, 흘러가는 사랑으로 건너간다.


중년의 노을 화폭 위로 날아가는 붉고 푸른 종소리

가난한 화가의 팔레트에서 닳아진 붓으로 찍은
야수처럼 거친 파도 소리, 진청색 외로움이 깃든 섬마을

색색으로 올라오는 그리움이 샘물 차오르듯 차오르면
수평으로 그어진 먼바다에서 오는 검은 옷을 입는다

점점이 찍히는 남별들이 결을 따라 도란도란 퍼져나가면
한 생의 길이 굽어지는 청춘의 어디쯤
사랑과 이별에 물든 가슴이 붉고 푸르게 쿵쾅댄다

빨간 황홀이 지나간 중년의 화폭에 내려앉은
파랗고 노란 조각난 꿈들을 별인 듯 하나둘 모아

시가 머무는 새벽 창가에 자분자분 풀어놓는다
-「중년의 색조」 전문


이 시는 중년의 시간을 하나의 화폭으로 보고, 그 안에 청춘의 기억과 사랑, 이별, 외로움, 꿈의 잔해를 색채와 소리로 겹쳐 놓은 시다. 첫 행의 “중년의 노을 화폭 위로 날아가는 붉고 푸른 종소리”는 시각과 청각이 결합된 공감각적 이미지다. ‘붉고 푸른 종소리’는 실제로 볼 수 없는 소리를 색채로 전환하면서 중년의 복합적인 정서를 드러낸다. 붉음은 지나간 열정과 사랑을, 푸름은 외로움과 그리움, 아직 남은 꿈을 암시한다.
“가난한 화가의 팔레트”와 “닳아진 붓”은 삶을 오래 살아온 자의 소진과 흔적을 보여준다. 닳았다는 것은 동시에 오래 그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에 상처와 결핍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한 사람의 화폭에 색으로 남는다. “야수처럼 거친 파도 소리”와 “진청색 외로움이 깃든 섬마을”은 중년의 내면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색색으로 올라오는 그리움이 샘물 차오르듯 차오르면”에서는 기억이 수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수평으로 그어진 먼바다에서 오는 검은 옷을 입는다”는 구절은 중년의 정조를 무겁게 만든다. 검은 옷은 상실과 애도, 죽음의 예감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이다. 붉고 푸른 색조 속으로 검정이 들어오면서 중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상실을 알고 있는 나이가 된다.
“한 생의 길이 굽어지는 청춘의 어디쯤/ 사랑과 이별에 물든 가슴이 붉고 푸르게 쿵쾅댄다”에서 시인에게 중년은 청춘과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청춘이 굽어져 현재까지 이어진 자리를 의미한다. 지나간 사랑과 이별이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는 점에서 과거는 끝난 것이 아니다. “붉고 푸르게 쿵쾅댄다”는 표현은 다시 색채와 청각을 결합하면서 기억의 생생함을 살린다. 시인은 “파랗고 노란 조각난 꿈들”을 하나둘 모아 “시가 머무는 새벽 창가”에 풀어놓는다. 시인은 조각난 꿈이 시가 된다고 말한다. 중년은 꿈이 사라진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꿈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언어로 바꾸는 시간으로 인식한다. 별처럼 흩어진 꿈의 조각들을 모으는 행위는 시인에게는 시 쓰기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중년은 쇠락의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삶의 모든 색을 다시 섞어보는 시간이다. 청춘의 붉은 열정, 이별의 푸른 외로움, 상실의 검정, 아직 남은 꿈의 노랑이 한 화폭 안에서 겹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색들을 하나씩 모아 시로 옮기는 행위를 통해 시인은 중년을 상실 이후의 시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색을 입히는 창작의 시간으로 바꾸고 있다.

3. 상처를 넘어서는 방식

시인은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죽음, 질병, 가난, 억압, 불안, 단절, 사회적 상처를 다룬 작품들을 통해 생의 의미를 묻는다. 신체와 사물의 상처가 개인의 생애뿐 아니라 시대와 공동체의 문제로 확대되는 시인의 시는 질문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병실, 호흡기, 검정 구두, 칼날, 도끼, 모탕 등을 통해 상처를 승화의 지점으로 끌어올린다. 수족관과 그물, 가난과 노동,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바라본 생의 통찰을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매미처럼 울던 사람

가을을 머금은 나무에 붙어
점점 고요해진다

눈꺼풀이 떨리듯

여름 한 철
조용히 몸을 접는다

창틀에 걸린 빛 한 조각
서서히 기울고

침묵의 마디마디마다
울음의 결이 스며 있다

창밖엔 비바람

병상 위
멀어지는 매미 소리

허물 하나 남기고

생을 벗는다

마디마디 지나온 시간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마침내

고요의 절경 속으로
들어간다

-「마디에도 숨이 있다」 전문

이 시는 병상 위에서 죽음에 가까워지는 한 존재를 바라보면서, 삶의 끝에서도 생의 의미는 어디에 남는가를 묻는 시다. “매미처럼 울던 사람”은 한 생의 격렬함을 압축한다. 매미의 울음은 짧고 강렬하다. 여름 한 철 자신의 존재를 온몸으로 울어내는 매미의 생은 시인의 눈에 인간의 삶과 겹쳐진다. “가을을 머금은 나무에 붙어/ 점점 고요해진다”는 여름이 생의 절정이라면 가을은 쇠락과 죽음의 시간을 암시한다. 이때 죽음은 갑작스러운 단절의 의미보다 계절이 바뀌듯 서서히 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과정으로 표현된다.
“눈꺼풀이 떨리듯/ 여름 한 철/ 조용히 몸을 접는다”는 구절에서는 신체의 움직임과 계절의 소멸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살아온 생을 다 접고 마지막 한 면만 남기는 이 이미지는 시인이 병실과 호흡기, 상처 입은 신체를 통해 생의 본질을 묻는 다른 작품들과도 연결된다.
“침묵의 마디마디마다/ 울음의 결이 스며 있다”에서 마디는 나무의 마디이면서 동시에 인간 생애의 마디다. 사람은 삶을 살아가며 질병, 가난, 노동, 억압, 이별과 같은 수많은 마디를 통과한다. 겉으로는 아무렇게 보이지 않아도 그 안에는 울음과 고통의 흔적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따라서 ‘마디’는 단순한 개인적 상처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시대와 공동체의 고통까지 축적된 흔적으로 확대된다.
“병상 위/ 멀어지는 매미 소리”에서 화자는 삶의 세계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매미 소리는 살아 있는 세계의 소리이지만, 병상에 누운 사람에게는 점점 희미해지는 외부 세계의 신호다. 병실은 따라서 삶과 죽음 사이의 문턱이 된다. “허물 하나 남기고/ 이 생을 벗는다”는 구절은 죽음의 흔적으로 남은 매미의 허물은 버려진 껍질이면서 동시에 한 단계의 생을 통과했다는 증거다. 따라서 육체는 허물처럼 남고, 존재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독자에게 준다. 시인은 죽음을 완전한 소멸이라기보다 육체라는 껍질을 벗는 사건으로 바라본다.
“마디마디 지나온 시간을/ 손끝으로 더듬으며”라는 표현에서 삶의 고통을 끝까지 확인하려는 시인의 태도가 담겨 있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생을 더듬는다. 그 마디에는 질병뿐 아니라 가난, 노동, 억압, 불안, 단절과 같은 사회적 상처도 함께 들어 있다. 개인의 신체에 새겨진 고통이 결국 한 시대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이 시는 개인적 죽음에서 출발해 삶을 힘겹게 만들어온 사회적 의미까지 묻는다.
“마침내/ 고요의 절경 속으로”는 죽음을 극적인 비극으로 끝내지 않는다. 절경은 본래 아름다운 경치를 뜻하지만, 이 시에서는 모든 울음과 소리를 지나 도달한 고요의 상태를 가리킨다. 병과 고통을 겪은 존재가 마침내 도달한 침묵을 시인은 하나의 높은 경지처럼 바라본다.

한영숙 시인은 「유일 서사」와 「해묵은 슬픔이 탱탱해지는 시간」을 통해 갇히고 해체되는 생명을 보여준다. 「물속의 돌멩이」와 「2023년의 갈색」에서는 상처를 견디는 개인이 등장하고, 「도어록」과 「벽」에서는 사람 사이의 경계와 단절이 중심이 된다.


4. 다시 푸름으로 건너오는 시간


한영숙 시인은 상처 이후의 회복, 자연과의 교감, 생명에 대한 경외, 시 쓰기의 이유를 시에 담는다. 한 시절을 통과한 시인이 자연과 언어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시인은 강물과 흐름과 씨앗과 새싹, 구름과 문장, 새의 날개와 귀소 등을 통해 시 쓰기와 자기 회복의 과정을 거친다.


녀석은 내 스파링 상대
녀석이 연초록빛 주먹을 뻗으면 나는 아찔하다
풀잎 향기를 영양제로 먹고
초록 멍이 든 채 다시 링에 오른다
시 한 줄로 뻗은 내 주먹을 피하면서
녀석은 초록, 노랑, 핑크 빛깔로 잽을 날린다
머리 위로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날 때
녀석은 라일락보다 곱고 은은한 향기로 부드러운 어퍼컷을 날린다
가슴 적셔오는 초록 코피
녀석은 번쩍 손을 들어 보인다
분주하고 시끌벅적하고 향기롭고 요란한 경기가 끝나자
심판을 깜냥도 되지 않는다는 듯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손을 쳐든다
황홀한 붕괴였다
설레는 침몰이자 가슴 두드리는
환한 보랏빛 패배
녀석은 새싹 돋아나듯
연초록빛 미소를 띠고 나를 안았다
샛말갛게 피어오르는 하얀 구름처럼
나도 녀석에게 풀빛 같은 미소로 답해줬다
농익어 가는
푸른 오월의 링에서
-「황홀한 패배」 전문

이 시는 자연과의 대결을 가장한 회복의 시이며, 동시에 시 쓰기의 본질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겉으로는 ‘녀석’과 화자가 링 위에서 맞붙는 권투 경기처럼 전개되지만, 실상 이 대결은 인간과 자연, 상처 입은 자아와 생명의 힘, 시인과 언어 사이의 긴장을 형상화한다.
중요한 점은 이 싸움의 끝이 승리가 아니라 “환한 보랏빛 패배”라는 데 있다. 이 패배는 굴복이나 좌절이 아니라, 자연의 생명력 앞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황홀한 자기 해체와 재생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녀석’은 강력한 생명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연초록빛 주먹”, “초록, 노랑, 핑크 빛깔로 잽”, “라일락보다 곱고 은은한 향기” 같은 표현으로 자연의 감각을 결합한다. 주먹과 잽, 어퍼컷은 본래 폭력의 어휘이지만 이 시에서는 향기와 색채, 새싹의 생명력으로 변환된다.
“초록 멍이 든 채 다시 링에 오른다”는 구절은 상처 이후의 회복을 잘 보여준다. 멍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초록 멍’이라는 표현을 통해 상처가 생명의 색으로 바뀐다.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오히려 다시 링에 오를 수 있다는 역설이다. 이 시에서 자연은 상처의 색깔을 바꾸고, 그것을 다시 살아갈 에너지로 전환한다.
“시 한 줄로 뻗은 내 주먹”은 이 작품을 단순한 자연시에서 시론으로 확장한다. 화자의 무기는 결국 시다. 화자는 자연을 향해 시 한 줄을 던지지만, 자연은 그것을 가볍게 피해 더 화려한 색채와 향기로 응수한다. 시인은 자연을 자신의 언어로 포착하려 하지만 언제나 자연의 생명력이 언어보다 크고 풍부하다. 시인의 이러한 자각은 자연을 소유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계속 실패하는 언어적 존재를 환기한다.
이 작품의 ‘패배’는 “황홀한 붕괴”, “설레는 침몰”, “환한 보랏빛 패배”으로 부정적인 상황을 긍정적이고 찬란한 감각으로 바꾸는 역설을 가져온다. 자아가 무너지고 침몰하지만, 그 과정이 황홀하고 설렌다는 것은 시인이 한 시절의 상처와 고통을 지나 회복의 시작을 의미한다.
“녀석은 새싹 돋아나듯/ 연초록빛 미소를 띠고 나를 안았다”는 장면은 대결이 교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스파링 상대였던 자연이 마지막에는 화자를 품고 화자도 “풀빛 같은 미소”로 응답한다. 자연의 초록빛이 화자의 몸과 표정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의 생명력이 인간에게 전이된다.
씨앗과 새싹은 재생을, 강물은 멈추지 않는 흐름을, 구름은 변화와 생성의 가능성을, 새의 날개와 귀소는 상처 이후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힘을 의미한다. 「황홀한 패배」의 권투 링도 같은 기능을 한다. 링은 싸움터이면서 동시에 시인이 자연과 만나 다시 감각을 회복하는 공간이다.
“농익어 가는/ 푸른 오월의 링에서”에서 푸른 링’은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이 넘치는 장소로 변한다. 여기서 시인은 자연을 이기려 하지 않고 그 생명력 속에 자신을 놓는다. 자연에 패배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되찾는 것이다.

화폭으로 건너가는 황량한
바람을
안으로 옮기고 싶어요

뼈로 일어선 억새들 사이로
사내가 바람으로 건너가요

우듬지부터 뿌리까지
한 몸으로 저무는 들판

우람하고 훤칠한 하늘을 만나요

땅거미 질 무렵
물감으로 근육과 향기를 지어
통증처럼
캔버스에 뱉으면

붓끝으로 오는 봄 향기가
젖꼭지로 붉어져요

고목에 매서운 발톱을 찍어대던 눈발도
이제는 한 잎의 봄을
토해놓고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운 자리에
알몸이 터진 사내의
살갗과 허리를
코발트 물감으로 덧칠해요

어둠 뚫고 나오는 별들이
바늘처럼 쏟아지면
삭풍에 서 있는 나목은
하늘 향해 벌거벗은 사내

마구 덧칠하는 꿈 사이로 달빛이 흐드러지면
꿈틀거리는 저 푸른 울음

틈새에서
엽록의 시간을 견디는 뿌리들이
코발트블루의 밤을 건너요

사내는 울음 삼켜
밖으로 봄을 터트려요

-「코발트블루」 전문

이 시는 상처 이후의 회복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시적 과정을 보여준다. 시의 시작에 등장하는 “황량한 바람”은 한 시절을 통과한 시인의 내면 풍경이자 상처의 흔적이다. 시인은 그 바람을 피하지 않고 “안으로 옮기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고통을 받아들여 언어와 예술의 재료로 바꾸려는 태도이며, 화폭과 캔버스는 곧 시 쓰기의 공간으로 읽힌다. “통증처럼/ 캔버스에 뱉으면”이라는 구절에서 상처는 물감과 향기, 이미지로 변환되며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억새와 고목, 나목, 별과 달빛, 뿌리는 시인의 회복을 돕는 자연의 존재들이다. 특히 “엽록의 시간을 견디는 뿌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준비하는 힘을 상징한다. 겨울을 견디는 뿌리처럼 시인도 상처와 고독을 견디며 새로운 문장을 준비한다. “눈발”이 마침내 “한 잎의 봄을 토해놓는” 장면은 고통 자체가 새로운 생명의 토양으로 전환됨을 보여준다.
마지막의 “사내는 울음 삼켜/ 밖으로 봄을 터트려요”는 이 시의 핵심이다. 처음에는 황량한 바람을 안으로 받아들였지만, 끝에서는 자신의 내부에서 생성된 봄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따라서 「코발트블루」에서 시 쓰기는 상처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그것을 견디고 생명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다. 코발트블루는 고독과 통증의 색이면서 동시에 하늘과 물, 재생의 가능성을 품은 색이며, 이 시는 자연과 언어를 통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시인의 회복과 귀소의 과정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영숙 시인의 시 세계는 기억과 상처, 고독과 회복, 자연과 영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인은 유년과 고향,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와 가족 공동체를 밥, 소반, 아궁이, 돌확, 홍시, 감자, 머위, 툇마루, 골목, 기차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과 음식의 감각으로 불러낸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매개이다. 사랑과 이별, 오래 남은 그리움은 꽃과 낙화, 첫눈과 눈물, 커피의 신맛과 향기, 강물과 바람으로 번역되며, 사라진 존재는 기억 속에서 다시 꽃으로 현현한다. 또한 질병과 죽음, 가난과 노동, 억압과 단절의 상처는 병실, 호흡기, 칼날, 도끼, 모탕, 허물과 같은 이미지로 구체화되지만, 시인은 이를 비극에 머물게 하지 않고 생의 의미를 묻는 자리로 끌어올린다. 자연은 이러한 회복의 중요한 통로이다. 씨앗과 새싹, 강물과 구름, 별과 바람은 상처 이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생명의 징표가 된다. 시인의 기다림과 고통은 발효를 거쳐 초록의 꿈으로 발아한다. 한영숙 시인에게 시 쓰기는 고통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통과하여 다시 살아가는 언어를 얻는 일이며, 기억과 자연과 영혼을 연결하여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정결과 회복의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끊임없는 시 쓰기를 통해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영성 깃든 한영숙 시인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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