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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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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 6

제1부

11월
12월
울컥, 똬리 1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3
그때
완벽한 어둠은 없다
해가 꾸는 꿈, 붉새
각인刻印
그 바람이 나다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날개에 바치다
내 하루의 전부
숨비소리


제2부

옛 1
옛 2
목어 날다 1
목어 날다 2
목어 날다 3
고스란하다
말없음표, 풀씨로 날리는
어떤 길은 항상 비어있다
幻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2
바다, 침묵의 재구성
학다리역, 여전하시지요
저녁이 오고 있다


제3부

그미 1
그미 2
그미 3
그미 4
그미 5
그미 6
그미 7
그미 8
그미 9
그미 10
은연
가을, 이시돌 목장
화양연화花樣年華
배롱나무 수레가 되겠네


제4부

눈설레 1
눈설레 2
그런 버릇에 저문다
하염없이, 는
가을을 허락하다
내 안에 갇힌
아카시아잎을 세러 갔다
비렁길
바흐, 무반주
하루라는 오해
물의 방
나무, 견디다
밤길에 관한 한 인상
폐사지


제5부

진달이섬
경계는 없다
가을, 그 바깥
낙엽을 읽다
춘니春泥
고요가 아니다
가을, 책
꿈에 1
꿈에 2
느리게 넘겨지는
머리 속 공터, 실마리만 남았다
글썽이듯
너만 모르지
여름은 간다


작품론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김종

저자 소개 1

광주 출생 경희대학교 가정학과 졸업 2004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23년 《시와사람》 신인상 당선 다박솔 동인 광주문인협회 회원 시집 『생각이 많은 것들은 고요가 깊다』 『드들강, 저 황홀한 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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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70쪽 | 125*200*20mm
ISBN13
9788956658698

책 속으로

11월



물매암이
부들 곁에서 죽어가네
노을처럼 황홀한 갈잎 하나
죽음을 감싸려 허방을 움켜쥐네

부들의 품이 얼마나 따뜻한지
지고 있는 하늘이 울음 깨물 때, 잠드네
어둠 몰려와 빗살무늬 번지네

강은 밝힐 수 없는 어두운 거울
잠시 출렁일 뿐
검은 노을 빛나네






12월



그가 온다
장기판의 졸 같은

바람은 허공을 가르고
들풀은 오래 품어 온 칼날로 바람을 자른다

봉두난발
그가 온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같은
12월


✽예수의 열 번째 제자.
유다와 같은 이름 때문에 ‘가롯인이 아닌 유다’로 기록된다.
12 제자 중 한 분인데도 성경에 단 한 번 등장할 뿐 행적이나 기록이 없다.







울컥, 똬리* 1



젊은 엄마
이마에 흐르는 물 손등으로 뿌리며
물동이 이고 비탈길 올라 저문 대문 들어서네
부은 발등, 물 끼얹고 서둘러 저녁밥 짓네
우묵한 양은 냄비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
밥물이 끓는다
눈보라 일 듯 넘친다
소복이 솟은 쌀보리 능선
드문드문 강낭콩 섞인 주걱에 묻어나는 가난, 달다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
두레 밥상에 어린 것들 둘러앉힌 성찬례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
대문 앞 늘어진 수양버들, 머리까지 끌어 덮고 잠에 든다
꿈이 길다
기억이 흘러가는 발밑, 뿌리가 내린다
바람에 머리카락 터는 버들개지
물감 번지듯 종소리로 날아간다, 사라진다

어둡지만 캄캄하지 않고
환하지만 가볍지 않은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 반쪽이라도 나눠 갖고픈

울컥, 똬리


✽옛날 물동이를 일 때 머리에 얹는 동그란 생활 도구.
✽제주의 ‘봉성소락’이라는 곳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그곳 주방에 걸린 짚으로 만들어진 똬리를 보며 느낀 소회를 옮겼다.







울컥, 똬리 2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파란 하늘과 나생이꽃 앉은 너른 들 있다

실눈 뜨고 입술 꽉 문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 그득 채우고 바가지 엎어
똬리 위에 올린다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 순하게 귀 젖는다
이마에, 목덜미에 투명한 얼룩이 흐른다

기억에는 출렁이는 심연이 있고
生이란 기껏
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지만
저마다 바람 풀어놓은 풀숲 어디쯤 지나
비틀비틀 걸음은 자꾸만 넘어지자 보채고
눈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온 골목은
수군수군 길 비켜 도망치는 것들뿐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
열무꽃 빛 환한 잠자고 싶어 목울대 맑은 울음 고이던

내 어린 큰 언니







울컥, 똬리 3



나비 떼 자욱한 파꽃들 은하 이룬 곳
마르지 않는 큰새암
웅얼대는 입담, 몸 웅크려도 들리는 어깨 너머 숨소리
빨랫방망이 두들기며 엉킨 속내 푼다
구름 한 점씩 내려다보고 개똥지빠귀 날개 털면
버들개지, 귀 연다

술래는 담벼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골목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진다
‘찾으러 간다!’
‘들키지 마라!’
찾기에도 들키기에도 난감한 해저녁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
키 낮은 대문은 어두웠고 해야 할 일이 먼저라는 것은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
물동이 아래 똬리 얹고 비틀비틀 온다

내 어린 작은언니






그때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재灾의 수요일
사제는 내 이마에 재를 얹고 성호를 긋는다
감싸 쥐여주는 견고한 침묵
혀에 얹어준 붉은 장미, 성체
진홍의 단죄
빈 손바닥에 앉은 햇살 비낀 허공이 그 큰 음성을 껴안는다
잿빛 하늘의 우울을, 그가 일용하는 슬픔을 나눠 갖는다
하늘을 나눠 가진 그믐달처럼
낯익은 묵음이 돌이킬 수 없는 자전축의 기울기만큼 가까이

이천여 년 전 어느 하오
역광도 비껴가는 골고다 언덕
고독의 다른 이름, 나자렛 남자의 늑골에서
뚝, 뚝, 뚝, 흐르는 핏방울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痛點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
당신이라는 어스름의 경계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
잠든 이의 눈꺼풀을 쓸어주는 붉은 꽃의 혀
세상이 막무가내여도 고요함이 물속 같다면
나, 그 꽃을 따라 나서리
가슴으로 걸어가리

서늘한 무풍의 나라
통증이 멎는 나라

그때,






완벽한 어둠은 없다



聖衣처럼 어둠이 온다
허튼 말, 담아두었던 말 쏟아진다

밤은 투명 망사 스타킹을 신고 캉캉 춤을 추는
고양이의 울음을 걸치고
얼빠진, 그러나 진지하다고 믿는 숭고한 술잔에 입술을 담근다
혼자서는 다 가질 수 없는 달콤한 유혹 뒤로
잔뜩 엎질러진 달빛
텅 빈 골목길 축축한 구석에 누워
괜찮다, 괜찮다 쓰다듬는 결백한 예수의 손을 잡는다

밝다
너무 밝다
완벽한 어둠은 없다
침묵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언제 칠흑으로 들어가려나
장미는 장미 속으로 사라졌다
고양이는 아늑한 구석방으로 숨었다
서랍 깊이 숨겨두었던 어린 귀를 꺼낸다
신의 은밀한 일, 꽃 피우려 한 줌 눈물을 모으는 일을 듣는다

매몰찬 애인처럼 황홀한
색色은 빛의 고통*


✽괴테.






해가 꾸는 꿈, 붉새*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
밑줄 친 지평선 밀치고 온다
귀밑머리 은빛 바람으로 온다

쏟아지는 버들개지 흰 솜털들
붉어지는 수숫대
너를 밀치고 나를 밀친 원시림
알 수 없는 깊이로 넋두리에 빠졌다 밤새 우는 것들의 붉은 비명

해가 꾸는 꿈, 붉새

있다,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 무거워
유황 냄새나듯 벌겋게 달군 인두질
불현듯 휘고 굽이치는 붉은 것이 눈을 찌른다

문득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
마음을 펴봐
빈 손바닥 같은 허공
아, 그 허공의 응답

달그락 자리 바꾸는 별 하나
환하게 돋는 불티 한점
저물며 빛을 키우다 어둠을 잉태하고
누이야,
누이야,
내가 버리고 온 이름을 부르는 네가 오더구나
울음이 울음을 삭이고
어둠이 어둠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엿듣는 네가 오더구나
어린 침묵들 하나둘 모여와 붉게 젖은 귀, 치마폭에 감추고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 되더구나


✽핏빛처럼 붉은 노을.





각인刻印



새는 제 가장 어린 깃털을 뽑아 안개를 만들고
가지 끝에 앉으면 나무들 신열에 들뜬다
새의 혓바닥 같은 새순들 눈이 젖는데
본디는 그리 붉지 않았을 숲
바람은 가장 아픈 데를 찾아 나무의 지워진 기억을 찌른다
상처를 주고 그 흔적을 그의 몸에 새기는 것이
제 살아있는 증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무는 서둘러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들고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절망은 하늘빛이 아니라서
심장을 뛰게 하는 제 몸에 새기듯 퍼지는 청록의 빛
스며든 붉은 가시
발톱을 숨긴 새 운다, 달래도 운다
새의 윗입술이 제 머리칼을 스칠 때 나무는 휘발한다
마음에 얇은 얼음 자박자박 끼는 듯 깊어진 둥근 것들
구름이 나무를 건너는 동안
붉은 살얼음이 스러지는 동안, 햇빛 속을 걸어간다, 일 없다






그 바람이 나다



새 떼, 한숨처럼 길다
자미꽃, 잿빛 하늘에 스민다
내 몸에 흐르던 피도 스민다
자미꽃 천 번, 만 번 붉게 피었다 지면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도 붉을까
다 해진 무릎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넜으리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수피 틈에 울음 새어나왔으리
가지 끝, 새가 허공을 두드리면 한 겹 껍질을 벗으려나
내 안에 뭔가 함부로 휘저어질 때
바람이 나무 끝에 이르러 몸을 여럿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 파묻고 흐느낄 때 물끄러미 바람의 연산을 생각한다
모였다간 흩어지는 푸른 파동
마주 서서 숨죽인 응시로 어둠 밀치고 물이 물을 껴안듯
나무가 일으키는 찬란한 춤의 셈법
솨 솨 솨,
그 바람이 나다

출판사 리뷰

▣ 작품론

| 평설 |


“生, 열무꽃 빛 환한 잠”인가
- 어둠의 심장에서 새어 나온 인간의 여러 말들


김 종
(시인, 화가)


임해원 시인의 시집 『울컥, 똬리』는 목울대를 밀어 올리는 ‘울컥’으로 주체 못할 감정을 표현하면서 그 출렁거림의 무게를 견디는 ‘똬리’라는 사물적 장치로 노래를 이어가고 있다. 똬리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기 위해 올리는 둥근 받침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시집에서는 가난과 노동, 여성들의 생애, 가족사의 애도와 생존을 떠받쳐 온 기억의 구조물로 상징된다. 요컨대 『울컥, 똬리』는 울음을 토해 내는 노래라기보다 그 울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친 노래라는 점에서 주목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시적 서정성은 감정의 분출보다 이를 지탱하는 형식에 가깝다는 게 평자가 갖는 생각이다.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임해원의 이번 시집은 슬픔을 앞에 두고도 이의 극복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에 슬픔과 함께 걷거나 나아가는 법, 머리에 담긴 기억의 무게를 이고도 밥을 짓고 꽃을 바라보는 법을 보여준다. 임해원의 시적 세계에서 어둠은 몸을 눕히는 공간이고 눈물은 꽃의 물이며 사라진 사람들은 강과 바람과 새의 얼굴로 돌아오는 그리움의 표상들이다. 그래서 「울컥, 똬리」는 오래된 상처를 다독거리는 한편으로 삶을 물처럼 흐르도록 펼친 사랑의 도록이라 할만하다.
이 시집을 거드는 큰 축은 ‘경계’의 의미화에 닿아있다. 빛과 어둠, 산 자와 죽은 자, 어린 시절과 현재, 개인의 상처와 세계의 슬픔, 강과 바다, 이름과 이름 없는 존재 사이의 경계가 끊임없이 나뉘면서 시인은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요컨대 어둠은 “사라짐이 아닌 쉼”이며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는 꽃길과 강물, 새와 바람으로 이어지는 존재들의 상대적 변형이라 할 것이며 빛 또한 무조건적 구원 이전에 “빛의 고통”을 품은 존재로 드러난다. 이 시집은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임해원이 요량한 사물들과 그 사물에 배어든 시간과 체온을 더듬어간다. 물동이를 인 어머니의 이마, 상여 꽃의 색, 강을 향해 흐르는 마음의 무늬, 눈보라 날리는 허공, 상처 입은 나무와 붉은 꽃 등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로 이동하는 장면들로 드러난다.
그러나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상실된 기억을 복원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사라진 것들이 어떻게 자신의 거처로 되돌아오는지를,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어떻게 시적 언어의 결을 송이송이 개화하는지를 집요하게 탐문한다. 여기에서 시는 기억의 저장고가 아니라 기억 이전의 몸과 기억 이후의 몸이 맞닿는 장소로서 위치한다.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상엿소리의 떨림, 우물의 어둠, 강의 물길, 붉은 꽃과 눈보라의 허공 등등은 각기 독립된 이미지가 아니라 한 생애에 축적된 연대된 감각들이 서로를 호출하는 통로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리 보면 임해원의 언어는 자연물을 통해 기억을 되살리는 감성적 특성을 눈여겨보게 한다. 버들개지, 어리연, 애기동백, 솜다리꽃, 달개비, 나생이꽃, 수양버들, 오동나무 등등이 자주 등장함과 동시에 이들 꽃과 나무들은 단순 사물이라기보단 발언하지 못한 자들의 목소리이자 오래된 여성들의 생애이고 삶의 아픔을 대신 피워 낸 몸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나 “그미” 연작에서 읽은 ‘꽃’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 표현한 것이고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방식이며 다시금 되살린 감정의 형식이기도 하다.
하나 임해원의 작품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여성의 언어적 계보이다. 젊은 엄마, 큰언니와 작은언니, 쿠마리, ‘누이’로 불리는 존재들은 모두가 가난과 노동, 성장통과 억압, 사랑과 상실 등을 몸으로 통과시키고 있다. 시인은 이들을 개별화하지도 영웅화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물동이의 무게, 부은 발등, 고무신 등을 숨을 곳 없는 골목처럼 일상의 장면으로 불러내어 노래의 형식으로 들려준다. 말하자면 시각화를 넘어 시적 청각화에 닿아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들의 삶은 비장한 서사가 아니라 밥을 짓고 물을 길으며 울음을 삼키는 일상의 성스러움으로 빛을 투사하고 있다. 이 시집에서 반복되는 “붉음”이란 어휘 또한 눈여겨지는 부분이다. 붉음은 피, 노을, 동백, 장미, 상처, 성체, 생리, 불꽃을 이어가는 생명의 강렬한 표식이자 통증의 색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이들 붉음을 통해 상처와 생명, 사랑과 죽음 등이 상호 멀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 시집의 서정성은 단지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이들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윤리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는 기억을 서사로 정리하기보다 감각으로 되살리는 특이함 또한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상처를 고백의 공간에 가두지 않고 여성의 노동과 몸, 공동체의 장례와 토속의 언어, 자연의 순환과 종교적 상상력으로 확장해 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때문인가 이 시집에서 빛은 어둠을 지우지 않고 어둠 또한 빛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둘은 서로의 내부에서 존재의 느낌을 심화시켜 간다. 그러므로 시집 『울컥, 똬리』에서 읽은 ‘울컥거림’은 감정의 파열 상태가 아니라 기억이 몸을 통과할 때 일어나는 현재적 진동이라 할 것이고 이럴 때 똬리는 그 진동을 견디는 삶의 낮고 둥근 형식으로 읽힌다. 시인은 그 같은 똬리 위에 물동이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언니들의 생애, 죽은 이들의 이름, 상처 입은 몸들의 침묵,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내일의 빛까지를 조심스레 올려놓고 서로를 받쳐 든 존재들의 묘사를 조용하고도 깊게 증언하는 것이다.

밀고 들어오는 어둠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 화폭에 앉는다
소용돌이치는 색의 기억들이 진하게, 순하게 쏟아진다
태양을 필사적으로 붙들던 노랑, 숨을 멈춘다
허공의 새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수평선을 긋고 그 금을 넘어오는, 온 적이 없는 배를 그린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
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

빛의 심장에 들어온 모든 존재는 자기 역할 후 사라진다

빛과 어둠의 경계
그 아우름에서 으름덩굴 속 고양이처럼 뒤엉킨다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
빛은 부드럽게 위로부터 내려와 어둠으로 스민다
미모사처럼 움츠러든다
겁먹은 아이처럼 자신의 노랑 속에 제물인 양 드러눕는다

여기저기 툭, 툭 끊어진 의식의 실타래
외면하듯 구겨진 잿빛 모자를 눌러쓴다

훗날
먼 훗날
바람이, 새가, 바다가 나를 그린다
우두커니 뒹굴던 돌이 나를 그린다
빛과 어둠
한결같거나 다르다
- 「빛과 어둠, 화가 1」

「빛과 어둠, 화가 1」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을 빌려 존재의 생성과 소멸을 그리고 있다. 어둠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장면은 그 즉시 도달한 창조에의 순간에 진입함을 의미한다. 시는 이어지면서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이어지고 재현 불가능한 초월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화가는 세계의 전체가 아니라 빛의 심장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존재 또한 포착하려 한다. 특히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라는 구절에 오면 이 시집 전체를 관류하는 사유가 소멸은 절멸이 아니라 ‘휴지休止’라는 사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빛과 어둠은 대립하는 두 개의 항목이기보다 하나의 몸이 번갈아 걸쳐 입은 옷과 같으며 스스로의 풍경이 바람과 새와 돌에 의해 “그려지는”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주체와 대상,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자의 경계를 허무는 순환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색채어-노랑, 잿빛-의 선명한 대비와 회화적 동사-앉는다, 쏟아진다-의 대비적 사용이 시각적 밀도를 높이는 동시에 관념적 진술을 구체적 이미지로 육화시키고 있어 이 시의 실감이 커진 것이다.
임해원 시인은 위의 작품을 통해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첫 구절의 이미지부터 이 시집의 핵심 세계관을 압축해 내고 있다. 작품에서 화자는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태어나 화폭에 앉는다고 생각한다. 화가는 태양을 붙들던 노랑, 멈추지 않는 새의 울음, 오지 않은 배를 그리면서 보이는 풍경보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결핍을 포착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하늘은 그리지 않는다/한 번도 제 본디를 보여주지 않았기에”라는 표현에서 강한 시적 여운이 남는 것은 물론이고 이 시를 더더욱 인상 깊게 한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정작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같은 시적 불가사의 앞에서 이내 겸손해진다. 특히나 후반부에 와서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한편 쉼”이라고 말할 때의 삶의 고단함과 상실을 차이 나게 받아들인 시인의 태도가 이채롭다. 훗날 바람과 새와 바다와 돌이 ‘나’를 그린다는 결말은 창작적 주체가 결국은 자연과 세계 속으로 흩어지는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여겨진다.

살아있는 이가 죽으면
초상집 지붕 위로 망자의 저고리가 던져지고
바람 잦은 산비탈 외딴 상엿집
상여는 마을로 내려왔다
초상집 마당에서 흩뜨려진 뼈 마디마디를 맞춘 상여
널*을 품고 일어나 비상을 꿈꾼다

어른들은 상여꽃으로 망자의 죽음을 추측했다
붉은 꽃이면 ‘편한 세상 살다 갔네’
온통 흰 꽃이면 ‘아프다 갔네’ 혀를 끌끌 찼다
만장 앞세운 상여에 올라탄 상여꾼이 요령을 흔들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님도 꽃길 가소!’ 상엿소리 뽑으면
’어허야 디여라, 인생 백 년 꿈이로다!’ 맞장구치며
어디만큼에서 제 살았던 데 돌아본 상여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들었다

꽃 꺾어 머리에 꽂고
쪽두리꽃에 앉았던 나비 따라 나부대던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뭐라 말해야 하나
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
그럼에도 눈꺼풀 누르던 겨운 졸음 속 뽀얀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 그 그윽함을

어서어서 가자구요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꽃 진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
걸어온 길들 스르르 몸을 숨기며
어디만치 왔나
어디만치 왔나
물어도 대답 없이

하염없음이 하염없게
✽관의 토속어, 사투리
- 「옛 1」

전통 장례 풍속을 소재로 한 「옛 1」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초상집 지붕에 던져지는 저고리, 상여 꽃의 색으로 망자의 다음 시간을 장식하고 짐작하는, 민간이 지켜온 생사의 해석 방식이나 상엿소리와 화답하는 상여꾼의 가락 등이 구체적이고 생생한 민속적 디테일로 드러난다. 이 같은 풍속의 형상은 현상의 단순 재현에 그치지 않고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 들었다”는 구절처럼 소멸이 아닌 변신과 귀환의 과정으로 바뀌게 된다. 화자는 유년의 기억 속에 환청처럼 고여있는 상엿소리에 울먹이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화자는 관찰자적 거리를 좁히고 개인적 정서로 진입한다. 후반부의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 이어지는 언어의 반복 구조는 삶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를 리듬감 있게 형상화한 것이며 “어디만치 왔나”를 묻는 물음에 대답한 것은 존재의 행로가 본질적으로 그 같은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마지막에 읽은 “하염없음이 하염없게”라는 부사의 반복적 사용은 단순 나열이 아닌,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오랜 여운으로 이어가려는 의도일 것이다.

공동체의 장례 풍습이 노래된 「옛 1」은 죽음의 풍경을 복원하면서 상여, 상여꽃, 만장, 요령, 상엿소리, 널 같은 토속적 사물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고 망자의 마지막 길을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드는 장면으로 그려간다. 죽음은 한편으로는 슬픔이면서도 공동체가 떠받드는 하나의 엄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특히 상여꽃의 색으로 죽은 이의 삶을 짐작하는 장면은 민간의 애틋한 상상력이 그 같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붉은 꽃은 편안한 삶, 흰 꽃은 아픈 삶의 의미가 읽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은 “뭐라 말해야 하나/그걸 어찌 말로 다 하나”라며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달빛에 파먹히던 어둠에의 “그 그윽함”이 이 시의 중심의미처럼 드러난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먼 어느 곳을 적시려는지 뻐꾸기가 강 뒤쪽에서 운다

해를 삼킨 연초록
나이테 굵은 나무의 새살들
손사래 치며 가는 망혼亡魂 같은 빗줄기
보랏빛 주렁주렁 달고 선 오동나무
발 아래 먼지 뒤집어쓴 며느리밑씻개
그들이 내 자음 모음이다

내 이름 잊은 날
누구도 내 이름 부르지 않고
나도 누구의 이름 부르지 않게 된
팔월과 시월 사이
붉어지는 사과가 뚝 떨어질 때
잃어버린 자음 모음 찾으러 풀밭 뒤적일 때
가슴 아래 어디쯤 틈새기 있어
노래 한껏 줄인 여치가 찾아 준 적 있다

바닥이 허방인 제 가슴 안고
어떤 간절함에 맞닿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
너는 너에게, 나는 나에게 묻는 피톨 같은 길
꽃의 다른 얼굴, 나비가 노랑을 품고 낮게 날면
외진 곳이 지닌 순결처럼 지평선을 품은 이가
수평선의 얘기를 듣느라 귀가 지워지는 것도 모른다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
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 그 끝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

강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대자연의 여정을 자아의 정체성 위에 겹치게 그려낸 시다. 화자는 뻐꾸기 울음,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 등 구체적인 식물과 동물의 이미지들을 “내 자음 모음”이라 명명하면서 자연물을 자기 존재의 구성 요소로 이어서 임해원 만의 독특한 시적 발상을 보여준다. “내 이름 잊은 날”이라는 표현으로도 화자는 사회적 관계망에서 이탈하여 익명의 존재로 남는 순간을 포착하는가 하면 그에게서 생성된 공백을 여치의 노래로 채워내고 있다. 시의 중반에서 시인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수수께끼”라는 구절로 존재론적 불가지성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나비와 지평선, 포개놓은 수평선의 이미지로 시야를 점차 확장해 가는데 이때의 강은 화자보다 먼저 도착해 “나는 바다야”를 외치는 의인화된 존재로 드러나고 자아의 완성이 언제나처럼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강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지는 지점에서 시가 끝나는 것은 당초 시인의 시작 의도가 이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시적 정체성이란 고정된 지점이 아니라 흐름 자체이거나 일부임을 암시하는 구조적 장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 보면 「그리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이름을 잃은 존재가 다시금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을 노래한 서정성이 실팍한 시다. 연초록, 나이테, 빗줄기, 오동나무, 며느리밑씻개는 시인이 의도한 “내 자음 모음”이 되는 반면 시인에게 자연은 말의 근원이자 정체성을 되찾는 자리이기도 하다. “내 이름 잊은 날”은 단지 망각의 순간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가 끊기고 자기 자신마저 멀어진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풀밭을 뒤적이는 행위, 여치의 낮은 노래, 꽃과 나비의 움직임은 잃었던 언어를 다시금 소환하면서 읽은 “늘 나보다 먼저 도착하는 강/늘 ‘나는 바다야’ 외치는 강”은 존재의 지향을 아름답게 발언한 의미를 지닌다. 강은 아직 바다가 아니지만 이미 바다가 되어가고 있다. 이리 보면 인간 또한 도착하지는 못했어도 어떤 간절한 방향을 향해 흐르며 흐르며 이미 그것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다.

비로소 허공이야
가늠할 수 없는 거기는 깊어
자잘한 애탐을 날갯질하는 설렘
누가 이름 지어 부르는가
대답이 더디다

빗금으로 발을 친
아,
너무 많은 입술이
너무 많은 귓볼이
바람으로 모여 기억의 초점을 내려놓고
어떤 중력에 닿고서야 멈추는 축포처럼
새 떼 날리는 흰 손의 모반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
내리꽂고 혹은 치솟는, 저희끼리 부딪친 산산조각 또한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누구인가 그는
여전히 대답이 떨렸다

비스듬히

눈
설
레
✽눈보라와 세찬 바람의 우리 말
- 「눈설레* 1」

제목에서 읽은 순우리말 ‘눈설레’-눈보라와 세찬 바람-는 언어적 형태와 리듬을 눈보라의 감각으로 재현하려는 실험성이 상당한 작품이다. “너무 많은 입술이/너무 많은 귓볼이”처럼 반복되는 구절은 눈발이 흩날리는 낱낱의 순간들을 암시하며 “진실한 가짜의 희디흰 허공들”이라는 역설적 표현에 이르러 눈이라는 자연현상에서 실재와 허상을 감별하려는 이중구조를 보인다. 화자는 이름 붙이기를 거부하며 “이름 지어 부르는가”,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는다” 등을 반복하는데 이는 아무렇게나 흩어지는 것들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효과가 있다. 마지막 부분에서 “눈/설/레”로 글자를 해체하여 형태 또한 실제로 눈이 비스듬히 흩날리는 시각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구체시具體詩적 전달이거나 이미지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다소 난해하고 파편적인 연쇄적 이미지가 독해의 문턱을 높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눈보라의 방향성을 체현하는 형식적 선택은 아닌가 싶다.
제자리로 돌아와서 ‘눈설레’는 눈보라와 세찬 바람을 의미하는 우리말이다. 이 시는 시각과 청각에다 몸의 떨림까지를 더하여 이 시의 감각성을 되살리고 있다. 허공은 깊고 설렘은 날개처럼 날아오르고 그 누가 불러도 대답은 더디고 읽은 뒤의 기쁜 감정을 넘어 불안과 애탐, 나아가선 기억의 파편을 흔들림으로 드러난다. “너무 많은 입술”, “너무 많은 귓불” 등이 바람 현상으로 읽히는 것은 말하지 못한 것과 듣지 못한 목소리들의 집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진실한 가짜”라는 역설 또한 눈보라의 환영을 보이면서 마지막의 “눈/설/레”로 분절된 음운상의 표기 또한 흩날린 눈발이 바람을 가르는 효과처럼 읽힌다.

새 떼, 한숨처럼 길다
자미꽃, 잿빛 하늘에 스민다
내 몸에 흐르던 피도 스민다
자미꽃 천 번, 만 번 붉게 피었다 지면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도 붉을까
다 해진 무릎으로 나무는 겨울을 건넜으리
크레바스처럼 갈라진 수피 틈에 울음 새어나왔으리
가지 끝, 새가 허공을 두드리면 한 겹 껍질을 벗으려나
내 안에 뭔가 함부로 휘저어질 때
바람이 나무 끝에 이르러 몸을 여럿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 파묻고 흐느낄 때 물끄러미 바람의 연산을 생각한다
모였다간 흩어지는 푸른 파동
마주 서서 숨죽인 응시로 어둠 밀치고 물이 물을 껴안듯
나무가 일으키는 찬란한 춤의 셈법
솨 솨 솨,
그 바람이 나다
- 「그 바람이 나다」
「그 바람이 나다」는 바람을 매개로 하여 자연과 자아가 합일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새 떼의 날갯짓을 “한숨처럼 길다”고 묘사한 첫 행부터 시어들의 청각과 촉각을 넘나드는 감각의 교차를 능숙하게 시도한다. 자미꽃-백일홍-이 피고 지는 개화의 순환성은 “저세상보다 더 멀리 가버린 그”에 대한 그리움과 겹쳐지고 나무의 겨울나기를 “다 해진 무릎”이라는 신체 이미지는 자연물의 형상에다 인간적 고통을 감정이입으로 투사한 것이다. 시의 중반에서 바람이 나무를 스치며 “여러 몸을 갈아입다가” 잎사귀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낀다는 구절은 바람이라는 무형의 존재에 신체와 감정을 부여하는 의인화의 과정에 다름 아니다. 화자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바람의 연산”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수학적 어휘로 드러내는데 이는 자연물에 내재한 질서와 운동의 셈법을 그리 융합한 것으로 읽힌다. “솨 솨 솨”라는 의성어에다 “그 바람이 나다”라고 발언하는 결말은 관찰의 대상이던 바람과 관찰하는 주체가 마침내는 하나로 만나는 순간을 간결하게 초점화하고 있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
위의 작품에서 바람은 애도하는 몸이자 시인의 자아로 드러난다. 자미꽃의 붉음은 죽은 ‘그’에게 닿고 싶은 그리움의 색채가 그 같다는 의미이며 겨울을 건너면서 갈라진 나무의 수피에는 오래 밴 울음이 불빛이 날듯 흐르고 있다. 여기에서 나무와 화자는 상처를 견디며 계절을 지나온 합일된 존재이다. 그런가 하면 바람은 하나의 몸이 아니라 무수히 모였다 흩어지는 사물의 분산이고 나무의 춤을 받아들인 파동의 방식이라 할만하다. 물이 물을 껴안듯 바람과 나무와 화자는 서로의 슬픔을 감싸면서 마지막에 읽은 “솨 솨 솨,/그 바람이 나다”라는 화두 속으로 이내 사라지는 자연과 리듬의 순간을 하나로 모은다고나 할까.

젊은 엄마
이마에 흐르는 물 손등으로 뿌리며
물동이 이고 비탈길 올라 저문 대문 들어서네
부은 발등, 물 끼얹고 서둘러 저녁밥 짓네
우묵한 양은 냄비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
밥물이 끓는다
눈보라 일 듯 넘친다
소복이 솟은 쌀보리 능선
드문드문 강낭콩 섞인 주걱에 묻어나는 가난, 달다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
두레 밥상에 어린 것들 둘러앉힌 성찬례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
대문 앞 늘어진 수양버들, 머리까지 끌어 덮고 잠에 든다
꿈이 길다
기억이 흘러가는 발밑, 뿌리가 내린다
바람에 머리카락 터는 버들개지
물감 번지듯 종소리로 날아간다, 사라진다

어둡지만 캄캄하지 않고
환하지만 가볍지 않은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 반쪽이라도 나눠 갖고픈

울컥, 똬리

✽옛날 물동이를 일 때 머리에 얹는 동그란 생활 도구
✽제주의 ‘봉성소락’이라는 곳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그곳 주방에 걸린 짚으로 만들어진 똬리를 보며 느낀 소회를 옮겼다
- 「울컥, 똬리* 1」

가난했던 유년의 저녁 풍경을 애틋한 서정성으로 복원한 ‘똬리’ 연작의 첫 편이 「울컥, 똬리* 1」이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는 젊은 엄마의 모습에서부터 저녁밥을 짓는 현장적 구체성까지는 그 자체로도 서사적 리얼리즘이라 명명할 만하다.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거나 “가난, 달다”와 같은 역설적 형용성은 드러나게 결핍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깃든 정서적 온기를 끈 놓지 않고 있다. 밥물이 넘치는 장면을 “눈보라 일 듯”이라 표현한 비유 또한 사소한 일상에다 부여한 시적 표정이 실감 되고 “두레 밥상”을 “지상에 부려놓은 에덴”으로 표현한 부분이 낙원의 다른 표현임을 선언적으로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 와서 잠든 가족의 풍경 위로 시간의 서정성이 흐르고 “온몸이 우물인 엄마의 젖은 얼굴”이라는 이미지에다 쉬지 않고 길어 올려 무언가를 제공하려는 온축된 사랑이 읽힌다. 제목이 보여준 ‘울컥’이라는 감탄사로 이 작품의 전체에 스민 격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다. 반복되지만 연작의 첫 번째인 「울컥, 똬리 1」은 젊은 엄마의 노동을 따뜻하면서도 아픈 기억의 자리로 불러낸다.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거나 부은 발등에 물을 끼얹고 저녁밥을 짓는 엄마의 모습은 가난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러나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는 표현에 오면 가난 앞에서도 의연한 시인의 긍정성이나 심적 달관을 읽을 수 있다.
그에다 쌀보리와 강낭콩이 섞인 밥에는 가족을 먹이는 손의 온기와 사랑이 배어 있고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이라는 구절에서 생은 거창한 이념보다 누군가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스미듯이 보여준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재灾의 수요일
사제는 내 이마에 재를 얹고 성호를 긋는다
감싸 쥐여주는 견고한 침묵
혀에 얹어준 붉은 장미, 성체
진홍의 단죄
빈 손바닥에 앉은 햇살 비낀 허공이 그 큰 음성을 껴안는다
잿빛 하늘의 우울을, 그가 일용하는 슬픔을 나눠 갖는다
하늘을 나눠 가진 그믐달처럼
낯익은 묵음이 돌이킬 수 없는 자전축의 기울기만큼 가까이

이천여 년 전 어느 하오
역광도 비껴가는 골고다 언덕
고독의 다른 이름, 나자렛 남자의 늑골에서
뚝, 뚝, 뚝, 흐르는 핏방울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痛點

이 풍성한 외로움의 배후
당신이라는 어스름의 경계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
잠든 이의 눈꺼풀을 쓸어주는 붉은 꽃의 혀
세상이 막무가내여도 고요함이 물속 같다면
나, 그 꽃을 따라 나서리
가슴으로 걸어가리

서늘한 무풍의 나라
통증이 멎는 나라

그때,
- 「그때」

가톨릭의 재의 수요일 전례를 시적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존재의 유한성과 고독의 현상성을 언어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전례문을 시의 서두에 배치하여 죽음에 대한 진중한 명상적 분위기를 부여한다. 이마에 재를 얹는 사제의 행위를 “견고한 침묵”과 “진홍의 단죄”라는 상반된 질감의 언어로 병치한 점이 눈여겨지며 종교적 의례가 지닌 엄숙함과 고통을 동시화하려는 시도 또한 읽힌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는 피의 이미지는 “그 혈흔이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는 구절이 나의 존재를 감각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시의 후반부에서 “잠든 이의 콧속에 불어넣는 붉은 꽃의 숨”소리와 동일한 표현 등은 종교적 구원의 이미지를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재해석한 것이며 고통과 위로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역설적 현상을 보여준다. “통증이 멎는 나라”를 인간적 갈망으로 마무리한 이 시는 존재의 유한성이 이내 평안에 이르는 길임을 스미듯이 암시한다. 우리는 위의 시 「그때」에서 재의 수요일과 예수의 수난을 통해 인간의 유한성과 구원에의 갈망을 읽으면서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상의 주문은 죽음을 향한 경고를 넘어 삶을 더 깊이 성찰하라는 당부로 읽힌다. 이마의 재, 혀 위의 성체, 붉은 장미, 골고다의 핏방울 등은 신앙상의 결곡한 상징이면서 고통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희생의 이미지에 다름아니다.
시인은 예수의 혈흔을 “내게 관여하는 따뜻한 통점”이라 부른다. 그러면서 타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고백을 들려주면서 후반부의 붉은 꽃은 잠든 이를 깨우고 눈꺼풀을 쓸어주며 고요한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그때”는 과거의 종교적 사건이라기보다는 고통과 사랑이 현재의 나에게 도달한 순간의 다른 말인 것이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파란 하늘과 나생이꽃 앉은 너른 들 있다

실눈 뜨고 입술 꽉 문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 그득 채우고 바가지 엎어
똬리 위에 올린다
떠오르다 가라앉는 물, 순하게 귀 젖는다
이마에, 목덜미에 투명한 얼룩이 흐른다

기억에는 출렁이는 심연이 있고
生이란 기껏
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지만
저마다 바람 풀어놓은 풀숲 어디쯤 지나
비틀비틀 걸음은 자꾸만 넘어지자 보채고
눈 마주치지 않으려 멀리 돌아온 골목은
수군수군 길 비켜 도망치는 것들뿐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
열무꽃 빛 환한 잠자고 싶어 목울대 맑은 울음 고이던

내 어린 큰 언니
- 「울컥, 똬리 2」
‘울컥, 똬리’ 연작 두 번째에서 우리는 두레박이 오르내리는 우물가의 풍경과 물을 긷는 어린 언니의 고단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반만 채워도 되는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어린아이의 수고는 가난한 살림을 너무 빨리 짊어진 조숙함이며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잠언적 진술을 삽입하여 개인사를 보편적 삶의 통찰로 확장해 간다. 비틀비틀 넘어질 듯한 걸음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골목길을 묘사한 ‘어린 화자(혹은 언니)’가 감당해야 했던 부끄러움과 피로를 담담하면서도 아프게 그리고 있다.
“내일은 멀고 오늘은 다 지나가 버려”라는 구절에 오면 유년에의 시간 감각이 미래보다 오늘에 붙들려 있던 삶의 묘망함을 압축적으로 읽을 수 있다. 마지막 행인 “내 어린 큰 언니”로 시상이 수렴되면서 앞서 묘사된 소녀의 익명성은 차차 구체적인 혈육으로 좁혀지고 이 작품의 연작이 개인적 가족사에 대한 헌시이고 독자에게 뒤늦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시인이 꾸는 “열무꽃 빛 환한 잠”
「울컥, 똬리 2」는 한마디로 우물에서 물을 긷던 어린 큰언니의 기억을 중심에 두고 노래한다. “두레박 올려진 캄캄한 바닥” 그 아래에 하늘과 들판이 있다는 첫 장면의 설정은 깊은 우물과 넓은 세계가 계속 이어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물동이를 그득 채우는 일은 필요충분적 삶의 조건이면서 어린 몸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지난함이다. “生이란 기껏/마음속 사나운 짐승 한 마리 어르고 달래는 일”이라는 대목에 와서 삶의 내면을 가슴 뭉클하게 마주한다. 길은 자꾸 넘어지라 보채고 골목은 수군거리며 피하고 그러면서 오늘은 이내 지나간다. 그럼에도 시인은 “열무꽃 빛 환한 잠”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서 큰언니는 단순한 과거의 인물을 넘어 어린 나이임에도 삶의 무게를 무리하게 짐진 존재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가 꾸는 꿈, 붉새*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
밑줄 친 지평선 밀치고 온다
귀밑머리 은빛 바람으로 온다

쏟아지는 버들개지 흰 솜털들
붉어지는 수숫대
너를 밀치고 나를 밀친 원시림
알 수 없는 깊이로 넋두리에 빠졌다 밤새 우는 것들의 붉은 비명

해가 꾸는 꿈, 붉새

있다,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 무거워
유황 냄새나듯 벌겋게 달군 인두질
불현듯 휘고 굽이치는 붉은 것이 눈을 찌른다

문득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
마음을 펴봐
빈 손바닥 같은 허공
아, 그 허공의 응답

달그락 자리 바꾸는 별 하나
환하게 돋는 불티 한점 저물며 빛을 키우다 어둠을 잉태하고
누이야,
누이야,
내가 버리고 온 이름을 부르는 네가 오더구나
울음이 울음을 삭이고
어둠이 어둠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엿듣는 네가 오더구나
어린 침묵들 하나둘 모여와 붉게 젖은 귀, 치마폭에 감추고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 되더구나
✽핏빛처럼 붉은 노을
- 「해가 꾸는 꿈, 붉새*」

노을을 뜻하는 순우리말 ‘붉새’를 제목으로 한 이 작품은 원시적이고 강렬한 색채 이미지로 가득하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라는 다소 관능적이고 파격적인 도입부부터 작품은 노을을 여성적 신체와 겹치게 그리고 있다. 버들개지의 하얀 솜털과 붉어진 수숫대의 대비 또한 언어적 선명성을 더하고 “붉은 비명”이라는 공감각적 표현 또한 저녁이 몰고 오는 격정적 분위기를 시각과 청각을 넘나들어 형상화한다. 중반에 등장하는 “젖은 눈을 가진 하이에나”와 “선사시대를 거쳐온 사랑”이라는 표현은 노을 앞에서 촉발된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감정을 인두질과 유황 냄새 등으로 환기한 강렬한 감각어로 시의 온도를 한층 끌어 올린다.
후반부에 와서 화자는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다”며 익명성에 터 잡은 연대의 감각을 보여주는데 “누이야, 누이야” 하고 반복 호명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어둠과 울음을 삭힌 존재로 그려진다. 시는 결국 소멸해 가는 노을빛에서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겨누는 등불”이라는 내면화된 빛의 이미지로 수렴되고 소멸의 화려함에서 응축된 정신성에 나아간다. 위의 작품에서 ‘붉새’는 핏빛 노을의 다른 이름을 그리 부르지만 동시에 억눌린 여성성과 이름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도 함께 읽히고 있다. “속곳 활활 태우는 여자”는 관습과 억압의 경계를 밀쳐버린 원초적 존재이며 이 시가 제시한 ‘붉음’은 비명과 사랑의 수치와 그 해방을 동시에 드러낸다. “나 또한 이름 버린 것들의 누이가 될 것 같은데”라는 고백은 이 시가 의도한 핵심 표현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다.
시인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름을 빼앗긴 존재들의 자매가 되려 한다. 그리고 ‘누이야’라는 호명으로 상처 입은 이들을 거듭 부르고 있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등불은 세상의 바깥을 밝히기보다 “안으로만 향하는 눈동자”를 치환하고 작품 속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빛이라 하겠다.

나비 떼 자욱한 파꽃들 은하 이룬 곳
마르지 않는 큰새암
웅얼대는 입담, 몸 웅크려도 들리는 어깨 너머 숨소리
빨랫방망이 두들기며 엉킨 속내 푼다
구름 한 점씩 내려다보고 개똥지빠귀 날개 털면
버들개지, 귀 연다

술래는 담벼락에 이마를 대고 눈을 감는다
골목은 실타래처럼 헝클어진다
’찾으러 간다!’
’들키지 마라!’
찾기에도 들키기에도 난감한 해저녁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
키 낮은 대문은 어두웠고 해야 할 일이 먼저라는 것은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
물동이 아래 똬리 얹고 비틀비틀 온다

내 어린 작은언니
- 「울컥, 똬리 3」

「울컥, 똬리 3」은 연작 세 번째로 나비와 파꽃이 어우러진 공간에서의 술래잡기 놀이가 유년의 골목 풍경을 간절하게 복원한다. 큰새암-우물-가의 빨래하는 소리, 개똥지빠귀의 날갯짓 같은 배경 묘사가 정겨운 마을 공동체의 질감을 실감 가운데서 살려내고 술래잡기라는 유희적 소재가 “찾기도 들키기도 난감한 해저녁”이라는 구절에 와서 은유된 삶으로 전환하고 있다. “술래의 몰두는 아름다웠으나 외면을 일찍 익혔던”이라는 대목은 놀이 뒤에 숨겨진 아이의 고단한 현실이 시간조차 넉넉지 않았던 어린 노동자의 처지로 바뀌고 있다.
“헐렁한 코백이 고무신”을 신고 물동이 아래 똬리를 얹은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모습은 ‘큰언니’와 대구를 이루면서 “내 어린 작은언니”로 이내 돌아오고 연작 속 자매들의 개별적 초상을 완성한다. 유희와 노동, 명랑함과 애잔함이 한 자리에 공존하는 이 작품은 가난한 시절에 함께 자란 자매들의 섬세한 고생을 기억의 차원에서 그려낸다. 「울컥, 똬리 3」은 작은언니의 어린 시절을 골목과 놀이, 노동의 풍경으로 불러내면서 큰새암과 빨랫방망이, 담벼락과 술래놀이, 키 낮은 대문 등 사라진 마을의 풍경까지 아이들의 놀이로 되살리며 아름답지만 “해야 할 일이 먼저”인 가난한 삶의 일상으로 돌리고 마음 놓고 숨을 수도 없었던 시절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는 이 시의 정서적 막막함을 숨김없이 응축한 것이리라.
시대를 초월하여 아이에게 놀이는 항용 자유로움이어야 한다. 하지만 헐렁한 고무신이 주어지면서 작은언니에게는 물동이와 똬리, 비틀비틀한 걸음 속에 작은언니의 어린 날이 견뎌 낸 삶의 장엄함처럼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
굵은 장딴지, 벨벳 망토 두른 어깨
검은 호수가 닫혔다 천천히 열리는 사이
햇살은 투명한 얼룩으로 어룽댄다
얼마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언어인가, 네 응시는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가 외따로 떠 있는 거기
몇 점 파란 불꽃 흔들리고 젖은 뺨을 반씩 나눠 가진다
그만, 고백한다
괜찮니?
괜찮아...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지고
내일은 멀고 오늘은 아예 가버렸기에
너의 바깥, 너의 빗장을 열어주고 싶어
가슴속 섶 불 꺼내주고 싶어
온몸이 우물인 네 긴 속눈썹에 입술 얹으면 눈을 감는
열렬히 나를 듣는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
- 「가을, 이시돌 목장」

제주 이시돌 목장이 배경이 된 이 작품은 말[馬]과 화자 사이의 일치된 교감을 그리면서 동물의 눈을 통해 종種을 넘어선 정서적 유대를 공유하고 있다.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첫 구절은 말의 눈을 심연 같은 공간으로 형상하고 이국적 비유를 통해 “투르키에 모스크 불빛의 고요”와 그 깊이를 한층 확장해 간다. 시의 중반에 “괜찮니?/괜찮아...”라는 짧은 대화체의 삽입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언어적 소통을 극적으로 압축한 측면이 있고 “슬픔은 슬픔으로 어루만지고”는 잠언적 문장을 시의 핵심적 메시지로 제시한다.
화자는 말의 “바깥”과 “빗장”을 열어주자는 욕망을 토로하는데 여기서는 관찰자적 시선을 넘어 상대의 내밀한 고통에 동참하려는 동일시의 감정이입이 읽힌다. 마지막 행 “종種의 경계, 부질없다”는 단언은 이 시가 궁극적으로 겨냥한 지점이며 존재 사이에는 언제나 근원적 경계 허물기를 짧지만 명료한 여운처럼 남긴다. 「가을, 이시돌 목장」은 목장의 말 혹은 소를 바라보며 상처 입은 존재와 교감하는 한편 “긴 속눈썹 아래 검은 호수”라는 표현으로 동물의 눈을 내면의 공간처럼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그에서 비롯한 응시는 오히려 인간의 말보다 더 깊은 고요를 조장한다.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
시인은 작품을 진행하면서 화자와 동물, 화자와 자기 자신 사이에 오가는 위로의 언어를 보여준다. 그리고 “슬픔은 슬픔으로만 어루만져진다”는 문장은 이 시집을 열어가는 중요한 단서로 읽힌다. 상처는 쉽게 지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상처의 온기가 가까이 있을 때 얼마쯤은 이를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의 경계, 부질없다”는 결말은 거듭 생명들 사이를 이어가는 근원적 연대를 그리 발언한 것이리라.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
소문으로 떠도는 꽃
길 끄트머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다 돌아오곤 했다
나무가 더 간절히 손을 모아 자드락길을 보여주었다
제 기운만큼 밀어 올리는 초록의 파동처럼
내 안에서 뭔가가 함부로 폭발할 때
그 꽃, 솜털 덮인 그 꽃의 투명한 그늘을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관여하고 싶었으나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바람이 수천의 몸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
뼘 가웃 남짓 강 저편 어딘가 피었다는 솜다리꽃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을
눈썹 손으로 찾다 돌아오는 게 내 하루의 전부였다
가벼운 것들, 귓가에 붐비던 더운 숨들
홀연 몸을 바꾼 비 젖은 하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의 고요가, 자드락길의 침묵이 기도였음을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라고 썼다
- 「내 하루의 전부」

「내 하루의 전부」는 부재하는 대상이란 소문으로만 존재한다는 전제하에 솜다리꽃을 통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 “강 저편에 솜다리꽃이 있다는 말 들었다”는 전언 형식의 도입부부터 미확인의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 드러난다. 화자는 매일 같은 자리, 나무에 등을 기대고 꽃을 향해 손을 뻗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하는 “벼랑 근처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는 일은 외면하고 싶었다”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이에서 비롯한 욕망과 두려움이 심리적 섬세함을 포착하면서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직설적 진술이 이 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루고 뒤이은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그 꽃”이라는 이미지와 그 연결로 고통과 치유가 하나의 대상 안에 공존함을 암시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기다림의 행위는 결국 “침묵이 기도였음을” 뒤늦은 깨달음으로 수렴하고 마지막 행의 “종일 솜다리꽃이 웅성거린다”는 메타적 진술은 시 쓰기 자체가 부재를 견디는 하나의 방식임을 드러낸 것이리라. 위의 작품 「내 하루의 전부」는 솜다리꽃을 찾아 강 저편을 바라보는 화자의 하루가 기다림과 상처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실제로 보지 못한 꽃이기에 그 꽃은 희망인가 하면 결핍이며 계속 살아 움직이게 하는 삶의 이동을 표적 삼는다. 그리고 “가로세로 여닫는 괄호 더듬듯” 꽃에 관여하고 싶다는 말은 꽃을 소유하거나 규정하지 않고 그 존재의 여백을 조심스럽게 더듬고 싶은 심정이 읽힌다. 거듭되지만 “산다는 건 아프다는 것”이라는 표현상의 직절성 또한 이 시를 이끄는 정신적 정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에서 비롯된 아픔은 체념을 넘어 상처를 다독이듯 피어있을 꽃으로 이동한다. 마지막에서 “침묵이 기도였음”을 깨닫는 순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화자의 하루가 이미 또 다른 하루에 진입하고 있다.

초경이 시작된 쿠마리*
살을 적시는 붉고 비린 피, 그 순결이 부끄러워 눈을 감는
소름 돋는 아픈 것들이 달려들어
떠나는 걸음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낯설어질 때
누이야, 누이야
흐르는 피, 양수처럼 지천에 꽃을 피우렴
뜨거운 입김 없이 차가운 것들 가슴 파고들면
스스로 캄캄한 빛을 새기는 서로를 궁금해해
일렁이는 가슴마다 길을 잇대며 쓰러지는
세상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네가 오더구나
이름을 훔쳐가렴
면류관을 씌워줄게
그미, 달개비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만 5세 안쪽의 어린 소녀를 선발해 여신으로 섬기다 초경이 작하면 은퇴시켜 평생 죄인 취급을 받거나 천대받으며 살았다
- 「그미 3」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소재로 한 이 시는 여성의 순결과 희생, 그리고 사회가 여성의 신체에 부과하는 상징적 폭력과 맞서고 있다. 초경과 함께 신성을 박탈당하고 평생 천대받는 쿠마리의 운명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살을 적시는 붉고 비린 피, 그 순결이 부끄러워 눈을 감는”이라는 구절을 통해 여성의 생리적 현상이 수치와 단죄의 표지로 전락하는 부조리를 보여준다. “누이야, 누이야”라는 반복 호명도 이 연작 전체를 관통하는 자매애적 연대를 형성하고 개별적 고통을 공동체적 슬픔으로 확장시키는 장치가 되고 있다. “세상의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네가 오더구나”라는 구절에서 생리라는 생물학적 사건을 생명의 순환과 연속성을 상징하는 신성한 사건으로 읽어가면서 마지막에 “이름을 훔쳐 가렴/면류관을 씌워줄게”라는 화자가 올린 역설적 제안은 사회가 박탈한 ‘신성’을 시적 언어로 되찾는 화자의 견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그미, 달개비’라는 들꽃의 이름으로 마무리된 시가 이내 신화적 존재 내지는 순환의 감각으로 재회귀한다. 「그미 3」은 네팔의 쿠마리 제도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신성화와 배제의 폭력을 읽을 수 있다. 어린 소녀가 ‘살아 있는 여신’으로 숭배되다가 초경을 시작하면 버려지는 현실은 ‘순결’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잔인한 희생인지를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인은 그 피를 수치가 아닌 “양수처럼 지천에 꽃을 피우”게 하는 생명의 힘으로 바꾸면서 “이름을 훔쳐 가렴/면류관을 씌워줄 게”를 역설적으로 들려준다.
기존 사회가 붙여준 이름과 왕관은 어느 의미에선 억압의 장치일 수 있다. 시인은 쿠마리에게 새로운 이름, “그미, 달개비”를 건네면서 달개비의 푸른 꽃은 상처 난 존재에게 다시 피어날 자리를 부여하는 시적 면류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드들강이 운다
오래 운다

잊을 리 있겠는가
걸어가는 누군가 아프다

어제 던진 돌멩이
저무는 물길을 잰걸음으로 건너고 있다

그리웠고, 그리움은 고됐기에
물속 뻗은 가지에 초록 잎 열리더니
버들치 헤엄치고
붉어지듯 흥건한 물길에 노란 꽃 핀다

미리 가서 기다리던 꽃
등 굽히고 일어선다
강이 업힌다
흠뻑 젖어 서러운
강 따라 걷다 강이 되어버린
그미, 어리연
- 「그미 1」

‘그미’ 연작을 여는 작품 ‘1’은 드들강이라는 구체적 지명을 배경에 두고 그리움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형상화한 임해원의 작품으로는 비교적 짧은 시다. “드들강이 운다/오래 운다”는 도입부는 인간에게 자연물에 슬픔을 투사하는 의인화이며 이후 이어지는 “걸어가는 누군가 아프다”는 구절과 조응하면서 강의 울음이 곧 누군가의 아픔임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다. “그리웠고, 그리움은 고됐기에”라는 진술은 인간적 그리움을 신체적 노동에 가까운 것으로 인식한 화자의 시적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물속에 뻗은 가지에 초록 잎이 열리고 버들치가 헤엄치는 장면 묘사를 거쳐 “강이 업힌다”는 구절에 이르면 자연물과 이에 따른 사물적 정서가 하나로 겹쳐진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그미”는 여성적 존재를 특정하는 멋스러운 말로서 마지막 행인 “강 따라 걷다 강이 되어버린/그미, 어리연”은 그 자체가 강물과 동일시되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마침내는 풍경 속으로 흡수되거나 흐르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미 1」은 드들강의 물길에 일렁이는 그리움과 그 상실을 구조적으로 그리고 있다. 강은 누군가의 아픔을 기억하며 오래 울고 어제 던진 돌멩이마저 저무는 물길을 건넌다고 했다. 이 시에서의 화자의 시간은 앞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고 돌멩이와 기억과 꽃이 강을 건너며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스스로를 넘어서고 부정해야 하는 자연
“강 따라 걷다 강이 되어버린”이라는 표현은 상실의 극점을 보여주고 사랑하는 이를 따라 걷던 사람이 어느새 그리움이나 물 흐르는 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마지막의 “그미, 어리연”은 물 위에 피어있는 꽃에게 존재적 그리움을 부여한 표현이며 물에 젖어 서러워진 마음은 강물이 꽃으로 피고 그 꽃을 업고 흐른다는 것이다.

새들이 장맛비 사이를 젖지 않고 날아갈 때
세상의 중력은 회오리 속으로 빨려든다
땅을 비집고 나온 지렁이가 빗물에 몸을 불릴 때
세상 모든 틈은 틈이 아닌 것으로 채워진다
심어진 지 예순 몇 해가 지나자 괄호처럼 비어갔다
속이 빈 나무에서는 어떤 새도 울지 않지만
가끔 목쉰 바람이 흘러 나왔다
어제는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닌데
달력을 떼어내다 숫자 위에 손가락을 가려본다
달과 별이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다가
사는 일의 예언과 죽음의 좌표를 읽어낼 때
어둠의 매몰과 빛의 팽창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뜨개질 그물코에 엮이듯
절망과 외로움의 흔적들이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
감히 生을 조율할 수 있다고 믿는 오늘
잠시 완벽했으나 붉게 젖어 부끄런 새벽을 맞는
하루라는 오해
- 「하루라는 오해」
「하루라는 오해」는 일상에서 만난 시간의 불연속성과 그에 따른 의식적 허무를 다소 관념적으로 사유한 작품이다. 장맛비 사이를 젖지 않고 날아가는 새와 빗물에 몸을 불리는 지렁이 등은 서로 다른 존재의 병치로 시작하여 “세상 모든 틈은 틈이 아닌 것으로 채워진다”는 역설적 진술에 나아간다. 속이 빈 고목으로 “괄호처럼 비어 갔다”는 이미지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가 서서히 공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어제는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닌데”라는 명제적 타당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화자는 시간의 불가역성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을 읽어가게 한다.
중반부에서 읽은 “어둠의 매몰과 빛의 팽창”이라는 대구는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빛과 어둠의 모티프를 시간론적 인식으로 옮겨놓았고 “감히 生을 조율할 수 있다고 믿는 오늘”이라는 구절에서의 삶은 언제든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적 오만을 자기적 언어로 성찰한 것이리라. 제목에서 본 ‘하루’라는 단위는 실은 완결된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오해”에 불과하다는 인식으로 시는 일견 견고한 듯 보이는 일상적 감각들을 시간의 개념처럼 흐르게 한다. 위의 작품은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허약한 구분인지를 보여 준다. 장맛비, 지렁이, 빈 나무, 바람, 달력 등은 모두가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로서 “어제는 오늘이 아니고 오늘은 내일이 아닌데”라는 자각적 표현으로 인간은 달력의 숫자로 시간을 붙잡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감히 生을 조율할 수 있다고 믿는 오늘”의 인간은 그대로 자신의 오만을 드러내고 만다. 우리는 하루를 계획하면서 그 하루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은 절망과 외로움, 예측 불가능한 빛과 어둠 결에서 계속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물체에 불과하다. 마지막에 읽은 “하루라는 오해”는 그런 의미에서 허무가 아니라 겸허라는 의미이며 하루를 소유할 수 없음에서 잠시 완벽했던 빛과 꽃의 순간마저 더 크고 소중한 의미로 나아가고 있다.

마냥 꽃 피고 꽃 지던 마음 어찌 살았느냐고
찻잎 머금은 입술로 우는 새, 가지 끝에 앉으니
꽃이 펄펄 끓는다
배냇짓 손사래로 왔다 가는 봄, 여름, 가을
이마에 바람 세차도 등 기댄 겨울이 참 맑았노라고

새, 제가 낳아둔 알을 깨뜨리러 가는 중

꽃 벙글 때 죽어버려야지
그믐달 뜰 때 죽어버려야지
부유하는 마음, 제 꿈도 다 꾸지 못하면서
너는 누구의 꿈으로 피었다 허위허위 지느냐고

이 세상 어찌 살 거냐고 또 묻는다면
나, 여태 쿵쿵 뛰는 가슴이거늘
그대, 저 붉은 입술 차마 못 잊겠으면
성큼 오시라
서럽게 붉은 몸 여는 그 길로

그미, 애기동백
- 「그미 9」

동백, 그중에서도 늦겨울에 피는 애기동백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강렬함과 죽음 충동이 뒤섞인 정념을 노래하고 있다. “꽃 벙글 때 죽어버려야지/그믐달 뜰 때 죽어버려야지”라는 반복된 다짐에의 음성은 절정의 순간을 소원하는 화자의 미의식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만개한 채로 떨어지는 동백꽃의 생태와 이의 소멸이 절묘하게 겹쳐져 있다.
“제가 낳아둔 알을 깨뜨리러 가는” 새의 이미지는 생명이 다음 생명을 위해 스스로를 넘어서고 부정해야 한다는 잔혹한 자연의 섭리를 암시하면서 시 전체에 비극적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다. “너는 누구의 꿈으로 피었다 허위허위 지느냐”는 물음은 불확실성을 향한 존재에의 근본적 질문에 닿아있다. 그리고 화자 또한 이에 대해 명료한 답 대신 “나, 여태 쿵쿵 뛰는 가슴이거늘”이라는 신체적 반응으로 응수한다. 마지막에 와서 “서럽게 붉은 몸 여는 그 길로” 오라고 초대하는 화자의 목소리에는 죽음과 생의 절정을 열어 제친 애기동백의 이미지는 삶을 뜨겁게 피워낸 사물적 소멸을 읽을 수 있다. 「그미 9」는 늙어 감, 사랑, 죽음의 충동과 생의 의지를 동시에 품어내면서 꽃 피고 꽃 지는 마음으로 살아온 세월을 묻는 목소리, 자신이 낳은 알을 깨뜨리러 가는 새의 이미지로 삶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부수며 나아가는 역설적 과정임을 암시하고 있다.
거듭되지만 “꽃 벙글 때 죽어버려야지”라는 표현의 반복은 죽고 싶다는 선언이라기보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머물고 싶어 하는 욕망적 간절함이 읽힌다. 그러나 결말에 와서 화자는 “여태 쿵쿵 뛰는 가슴”이라고 말하면서 아직 살아 있는 심장은 사랑을 향해 “성큼 오시라”고 손짓한다. 이 작품에서 애기동백의 서러운 붉음은 죽음의 색이면서 끝내 닫히지 않는 사랑의 입술이라는 의미로 이어진다.

「시력 상실은 암흑이 아닌 고독의 한 형태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聖衣처럼 어둠이 온다
허튼 말, 담아두었던 말 쏟아진다

밤은 투명 망사 스타킹을 신고 캉캉 춤을 추는
고양이의 울음을 걸치고
얼빠진, 그러나 진지하다고 믿는 숭고한 술잔에 입술을 담근다
혼자서는 다 가질 수 없는 달콤한 유혹 뒤로
잔뜩 엎질러진 달빛
텅 빈 골목길 축축한 구석에 누워
괜찮다, 괜찮다 쓰다듬는 결백한 예수의 손을 잡는다
밝다
너무 밝다
완벽한 어둠은 없다
침묵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언제 칠흑으로 들어가려나
장미는 장미 속으로 사라졌다
고양이는 아늑한 구석방으로 숨었다
서랍 깊이 숨겨두었던 어린 귀를 꺼낸다
신의 은밀한 일, 꽃 피우려 한 줌 눈물을 모으는 일을 듣는다

매몰찬 애인처럼 황홀한
색色은 빛의 고통*
「완벽한 어둠은 없다」

「완벽한 어둠은 없다」는 보르헤스의 잠언인 “시력 상실은 암흑이 아닌 고독의 한 형태”를 제사題詞 삼아 어둠과 빛의 관계를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로 재구성한 시다. “밤은 투명 망사 스타킹을 신고 캉캉 춤을 추는” 것에 비유된 위의 시는 관능적인 도입부에다 어조부터가 자못 발랄하기 그지없다. 어둠에 대한 통상적 두려움을 고양이의 울음과 술잔의 이미지를 결합하여 밤이라는 시간에다 세속적이면서도 신성한 이중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텅 빈 골목길에서 “괜찮다, 괜찮다 쓰다듬는 결백한 예수의 손을 잡는다”는 구절은 종교적 위안을 이미지화하여 어둠 속에 스며든 구석방은 이내 구원의 처소임을 암시한다.
“밝다/너무 밝다/완벽한 어둠은 없다”는 짧은 행갈이의 반복에서 시의 제목이 담고 있는 역설이자 어둠에도 항용 스며 있는 빛에의 인식을 리듬감 있게 포착한다. 마지막에 인용된 괴테의 “색色은 빛의 고통”이라는 아포리즘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색채와 명암에의 사유이다. 그리고 이럴 때 어둠은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빛이 겪은 고통과 그 변용으로 재정의한 인식이 이채롭게 읽힌다. 작품 「완벽한 어둠은 없다」는 시력의 상실과 고독, 어둠과 빛의 관계를 사유하면서 어둠을 성의聖衣처럼 걸쳐 보지만 그 어둠에도 고양이의 울음, 달빛, 예수의 손, 장미와 어린 귀가 남아서 “완벽한 어둠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이 작품에서의 어둠은 공포만이 아니라 듣는 능력을 되찾는 공간의 또 다른 이름으로 “서랍 깊이 숨겨두었던 어린 귀를 꺼낸다”는 구절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는 고독 속에서 그간 잊고 지낸 감각과 순수를 되찾음은 물론 괴테가 일갈한 “색은 빛의 고통”이라는 선언적 문장 또한 이 시집 전체를 통어하는 미학이자 색채로서 빛이 고통을 통과할 때 생긴다는 아름다움에의 시적 의도 또한 가볍지 않았다.

늘 그가 있다
썰물을 내려보낸 갯벌
구멍 난 가슴을 쓸어내리듯 선을 긋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하늘이 기진할 때까지
눈물처럼 투명해서 슬퍼지는 물살 사이
조그만 상처에도 아픈 그를 데리러 온다, 물금이

찔레 가시 같은 하루
술병도 의식도 텅 빈 가슴은 붉은 먼지
가다 말다 멈춘 길, 모두 붉은 먼지
끔찍이 아름다운 연옥처럼

조바심 난 물소리
구름은 빗방울의 꿈이 밀어 올린 날개
하늘은 바다를 향한, 바다는 하늘을 향한 처연한 구애
간극의 극복, 침묵의 심연과의 고독한 대면은
한 줄 빛나는 요약처럼 물금이 그어진다

닻이 내려진다
더 깊이 내려갈 것이다
빛이 그를 끌어가려 애써도 움직이지 않는다
다만 바다에 닿아 바다를 볼 것이다
물길을 내며 더 멀리 흐르는 것을 볼 것이고
잠기고,
고이고,
차오르고
누구인가 오래전 잊혔던 그의 이름을 부를 때
바다가 될 것이다
- 「빛과 어둠, 화가 2」
위의 시는 ‘화가’ 연작의 두 번째 작품으로 갯벌과 바다의 풍경을 빛과 어둠의 화해, 그리고 존재의 궁극적 귀결로 그리고 있다. 썰물이 빠져나간 갯벌을 “구멍 난 가슴을 쓸어내리듯” 선을 긋는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연의 지형과 인간의 상처를 겹쳐놓고 제시된 “물금”이라는 시어로 물이 만들어내는 경계선이 상처를 치유하는 손길임을 암시한다. “하늘은 바다를 향한, 바다는 하늘을 향한 처연한 구애”라는 구절은 두 개의 대극적 표현을 그리움과 관계지어 형상하면서 그 간극을 극복하는 과정을 “한 줄 빛나는 요약처럼 물금이 그어진다”로 응축한다. 후반부에 와서 닻이 내려지고 “더 깊이 내려갈 것이다”라는 예상과 만나면서 이는 어떠한 빛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둠과 심연으로 나아간다는 화자의 의지적 태도를 보여준다.
결말에서 “누구인가 오래전에 잊혔던 그의 이름을 부를 때/바다가 될 것이다”라는 구절은 마지막 이미지-”훗날... 나를 그린다”-와 조응하면서 망각과 호명을 거쳐 마침내는 자연 그 자체로 존재의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갯벌에 그어진 선을 따라 화가는 “조그만 상처에도 아픈 그”를 데려오는데 여기서의 ‘그’는 화가 자신일 수도 있고 상처 입은 타인일 수도 있고 그림 속의 존재일 수도 있다. 여기에서 “물금”은 바닷물이 들어온 자리에 남아있는 경계선의 다른 이름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하늘과 바다, 고독과 침묵, 상처와 회복 사이를 가르는 한 줄의 빛으로 변하는 동시에 닻을 내리고 더 깊이 내려가겠다는 결말 부분에서의 다짐은 고통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겠다는 심적 견결함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바다에 닿아 바다가 되었고 상처를 바라보는 자가 끝내 상처의 넓이를 품어내는 존재로 옮겨 앉았던 것이다.

새는 제 가장 어린 깃털을 뽑아 안개를 만들고
가지 끝에 앉으면 나무들 신열에 들뜬다
새의 혓바닥 같은 새순들 눈이 젖는데
본디는 그리 붉지 않았을 숲
바람은 가장 아픈 데를 찾아 나무의 지워진 기억을 찌른다
상처를 주고 그 흔적을 그의 몸에 새기는 것이
제 살아있는 증거라 여겼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무는 서둘러 단단한 껍질 속으로 숨어들고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절망은 하늘빛이 아니라서
심장을 뛰게 하는 제 몸에 새기듯 퍼지는 청록의 빛
스며든 붉은 가시
발톱을 숨긴 새 운다, 달래도 운다
새의 윗입술이 제 머리칼을 스칠 때 나무는 휘발한다
마음에 얇은 얼음 자박자박 끼는 듯 깊어진 둥근 것들
구름이 나무를 건너는 동안
붉은 살얼음이 스러지는 동안, 햇빛 속을 걸어간다, 일 없다
- 「각인刻印」
작품 「각인」은 나무와 새의 관계를 상처와 그 흔적의 의미를 탐구한 시다. 새가 제 깃털을 뽑아 안개를 만든다는 초현실적 이미지는 그 자체로 수일秀逸하다는 평가가 마땅하다. 이 작품의 시작은 “본디는 그리 붉지 않았을 숲”을 거쳐 “바람은 가장 아픈 데를 찾아 나무의 지워진 기억을 찌른다”는 구절에 들고 고통이 곧 기억을 되살리는 매개재임을 암시한다. “상처를 주고 그 흔적을 그의 몸에 새기는 것이/제 살아있는 증거라 여겼을 것이다”라는 대목에서 우리는 이 시의 핵심 주제가 생명의 상흔이야말로 역설적 인식의 또 다른 증거라는 사실이다.
나무가 껍질 속으로 숨어드는 몸짓과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라는 화자의 단호한 방어적 어조가 병치 되면서 시는 생존을 넘어선 어떤 의미 찾기의 갈망과도 연접해 있다. “절망은 하늘빛이 아니라서” 절망을 색채로 규정하는 방식은 이 시집의 언어 감각과 상통하고 마지막에 읽은 “새의 윗입술이 제 머리칼을 스칠 때 나무는 휘발된다”는 이미지는 상처를 준 존재와의 관계에 닿아있다. 그리고 그 같은 순간은 이내 소멸한다는 실체적 아이러니를 통해 ‘각인’이란 결국은 관계가 끝난 자리에서 다시금 시작하는 흔적임을 암시한다. 「각인」은 상처가 몸과 기억 위에 새겨지는 상처의 방식을 나무의 생애로 그린 것이다. 겸하여 바람은 “가장 아픈 데를 찾아” 나무의 지워진 기억을 찌른다는 것이다.
상처를 새기는 일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 바람 앞에서 나무는 이내 껍질 속으로 숨어든다. 이는 인간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을 감싸는 모습과 닮아있다. 그러나 이 시는 상처에서 멈추지 않고 “돌로 굳은 심장을 뛰게 하는/청록의 빛”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새순, 풀빛, 생명의 기운 등은 굳어진 마음을 다시금 움직이게 하다가 마침내는 “햇빛 속을 걸어가고 일 없다”는 말로 담담한 회복을 의도하고 있다. 이쯤에서 상처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처와 더불어 햇빛 속을 걷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갓 깨어난 자음 모음들이 골똘해지는 말
마음 안에서 널뛰는 것들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말
부서지고 바스라진 마음이 몰래 숨어들어 눕고 싶은 말

저승도 보인다는 오동꽃 환한 날
삭정이 끝에 앉았다 일어서는 마른 바람 소리
박물관 말간 유리 너머 애기 독널 곁 껴묻거리들
적막이란 적막, 죄다 갉아먹는 초록빛 여치 소리
시집올 때 가져온 베갯잇 속 부리 맞댄 새 두 마리
어릴 적 띄운 물수제비 여태 날아 팽팽하게 휜 허공
싸리빗질 절집 마당 날아가던 곤줄박이 뜨끈한 물똥 공양
아버지 머릿내 절은 퇴침
대청마루 오도마니 앉아 있는 다듬잇돌
어머니 휘일諱日, 고봉으로 담은 메 진지 한 그릇

하염없이... 하염없다
- 「하염없이, 는」
위의 작품은 유년의 기억을 구성하는 사물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창작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을 한결 드높이는 방식으로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갓 깨어난 자음 모음들이 골똘해지는 말”이라는 도입부는 언어 이전에 혹은 언어가 갓 태어난 원초적 감각을 환기시키는 자리에 오동꽃, 애기 독널의 껴묻거리, 여치 소리, 베갯잇 속 새 문양, 물수제비, 절집 마당의 곤줄박이, 아버지의 퇴침, 어머니의 휘일 제사상 등등 구체적이고 촉각적인 사물들을 정연한 구조로 이어 나간다.
이러한 열거법은 사연을 담은 서사적인 설명 없이도 한 개인의 유년과 가족사 그리고 전통적 삶의 결을 압축적으로 재현하는 효과를 낳으면서 각 사물이 환기하는 감각-적막을 갉아먹는 여치 소리, 뜨끈한 물똥 공양 같은 촉각과 후각의 결합-이 이 작품에 풍부한 질감을 부여한다. 마지막 행인 “하염없이... 하염없다”는 제목의 반복이자 변주에서 생성된 기억들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그리움의 속성을 이번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소멸과 지속, 상실과 기억의 주제로 마무리한다. 작품 「하염없이, 는」 ‘하염없이’라는 부사에다 사랑의 해석을 가하는 시다. 시인은 이 말을 “마음 안에서 널뛰기하면서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말”, “부서지고 바스라진 마음이 몰래 숨어들어 눕고 싶은 말”이라 부르고 있다.

예수의 피는 사랑의 이미지로 피어나고
언어가 오만가지 감정을 표현하고 규정하는 도구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상처 난 마음의 피난처가 되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이 시의 후반부는 오동꽃, 독널, 베갯잇의 새, 물수제비, 아버지의 머릿내, 다듬잇돌, 어머니의 기일상 같은 기억에의 사물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고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파편으로 존재하지만 ‘하염없이’라는 말 안에서 하나의 질서로 모아지고 있다. “하염없이... 하염없다”라는 끝맺음은 그런 의미에서 설명을 멈춘 자리에서 언어가 더더욱 깊어지고 끝내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울림에다 시인 자신을 눕혀 둔다는 의미이리라.
임해원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밀도가 고른 개별 이미지로 빚어졌다 하겠는데 연작의 구조로 마주친 화가, 똬리, 그미 등을 통해 상호 형성한 저마다의 서사가 “유년의 상실→자연과의 합일→죽음의 수용→빛과 어둠의 화해”라는 순환적 구조를 이끌고 있다. 임해원 시인의 이 같은 구상은 일견 관념적이고 압축적인 이미지가-「눈설레」, 「하루라는 오해」 등-독해의 밀도를 드높이는 것은 물론 이들이 시인의 감상적 서정에 그치지 않고 언어적 또는 물성의 탐구로 이어진 것이다. 소멸과 생성, 어둠과 빛, 유년과 현재, 인간과 자연이 끊임없이 서로를 넘나드는 시집 『울컥, 똬리』는 상실을 슬퍼하되 그에 머무르지 않고 순환하는 리듬의 생명력을 비상한 표현으로 읽어가게 한다. 임해원의 시집 『울컥, 똬리』를 관통하는 사유는 우선하여 사물에 내재한 경계의 해체와 이의 재구성이라 하겠다. 작품 「빛과 어둠, 화가 1」에서 진술한 “어둠의 심장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표현은 이 시집의 시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배제하는 상대적인 항목이 아니며 이에 따른 빛은 어둠으로부터 태어나고 어둠은 빛이 쉬어 가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둠은 사라짐이 아니다, 쉼이다”라는 구절로 죽음과 소멸을 무無로 간주하는 통념을 뒤집어버린다. 어둠은 끝이 아니라 존재가 다른 형식으로 이행하기 직전의 호흡으로 읽은 것이 그것이다.
이들 사유는 「완벽한 어둠은 없다」에 오면 더더욱 선명해진다. 시인은 어둠 속에서 장미, 고양이, 달빛, 예수의 손, “어린 귀”를 발견의 언어로 보여주면서 어둠은 감각을 압수하는 절대적 결핍이나 압제가 아니라 오히려 바깥의 소음이 더 미세하게 가라앉는 소리이며 이를 더 크게 듣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괴테로부터 견인된 “색은 빛의 고통”이라는 문장은 이에 딸린 언어적 울림 또한 사물이나 사람의 고통과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색은 투명한 빛의 체온에서 생성되기보다 굴절되고, 부딪히고, 어둠을 통과한 빛만이 형태를 얻는다는 임해원 만의 색채관에서 붉음, 노랑, 청록, 잿빛 등이 바로 그 같은 통과의 흔적이라 할만하다. 그리하여 「빛과 어둠, 화가 2」에서의 ‘물금’은 이 시집의 경계 미학을 인상 짓는 핵심 이미지로 읽힌다.
갯벌 위에 남은 ‘물금’은 바다와 육지, 밀물과 썰물, 채움과 비움이 상호 접촉했던 자리에 그어진 경계선이다. 시인은 물금의 흔적에서 “한 줄 빛나는 요약”이라는 놀라운 표현을 남긴다. 이는 삶을 단순하게 정리한다는 뜻이기보다는 수많은 감정과 기억의 충돌이 하나의 선으로 집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가는 그 선 안에서 더 깊이 “닻을 내”리고 마침내 “바다가 될 것”이고 타자의 고통을 재현하는 자가 그 고통의 바깥에 서지 않고 고통의 물성으로 진입하는 행위를 담아내는 것이다.
그리 보면 시집 『울컥, 똬리』가 담은 서정성은 여성의 노동과 돌봄에의 기억이 바탕을 이루는 것을 볼 수 있다. 「울컥, 똬리 1」에서 젊은 엄마는 물동이를 이고 비탈길을 오르고 부은 발등에 물을 끼얹고 쌀보리와 강낭콩을 넣어 밥을 짓는다. 이들 장면은 직접적으로는 결핍된 삶의 보충이지만 동시에 빈곤에의 관용과 미학적 표출이기도 하다. “박박 씻어 안친 쌀보리들, 볼수록 착하다”는 표현에서 임해원이 요량한 ‘가난’이란 낭만적인 일방 먹을거리를 마주한 생의 애착과 노동의 진정성에 새삼 실감을 더하고 있다.
“사는 일은 이렇게 밥상 차리는 일”이라는 문장에 오면 이 시집이 의도한 생활의 질서가 생은 위대한 사건이나 영웅적 결단이기보다 누군가를 먹이고 살리는 돌봄의 지속이라는 것. “두레 밥상”과 “성찬례”의 결합은 그런 의미에서 반복해서 읽을 수 있다. 이리 보면 가난한 식탁은 종교적 숭고가 노동으로 내려오고 결핍에의 상징이 나누어 먹는 일을 발생시킨 지상적 성스러움이 되는 것이다.
연작 「울컥, 똬리」는 어머니의 삶을 큰언니와 작은언니의 되살린 기억으로 언어적 오지랖을 확장해 간다. 「울컥, 똬리 2」에서의 큰언니와 「울컥, 똬리 3」에서의 작은언니는 일찍부터 물동이와 노동의 무게를 감당해 온 존재들이다. 특히나 “숨을 곳이 없는 것처럼 참담했으리”라는 진술 또한 가난 앞에서 어린아이의 놀이나 노동이 얼마나 크나큰 생의 심호흡인가를 읽어가게 한다. 이때의 똬리는 단순한 민속적 의미를 넘어 여성의 몸 위에 전가된 생존과 그 중력을 견뎌 낸 몸의 기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들 여성을 피해자로 놓고 작품을 평면화하지는 않는다. 엄마의 밥상은 이내 에덴이 되고 언니들의 비틀거림은 생의 결기를 드러내는 일이며 동시에 이들의 얼굴에서 사라진 바람과 꽃, 우물과 골목의 감각을 읽게 한다. 임해원의 시는 이렇듯 그들을 박제된 과거로 묶어두지 않고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이 노래한 여성사는 계보학이라기보단 감각과 인식의 유전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임해원의 시에서 눈여겨 살핀 애도의 정서 또한 죽은 이를 향한 일방적 추모가 아니었음이다. ‘애도’는 죽은 이가 자연의 다른 얼굴로 드러나는 말이며 이를 돕는 산 자가 그 이행의 흔적을 수습하고 감각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옛 1」에 등장하는 ‘상여’는 “한 마리 새가 되어 흔적 없이 산으로 스며”든다고 했다. 그리되면 망자는 사라지지만 새의 비상과 산의 깊이는 제3의 장소로 옮겨 간다는 설정이다. 이럴 때 상엿소리와 상여꽃은 공동체가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 만든 감각적 언어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꽃 핀 나무 지나 꽃 진 나무에게로/꽃 진 나무 지나 죽은 나무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죽음에의 길이면서 계절의 질서 안에 놓인 연초록 삶의 길이기도 하다.
「그미」 연작은 이러한 애도의 방식을 언어미학을 전제한 꽃의 이름으로 빚은 작품이다. 어리연, 애기동백, 달개비 등은 특정한 꽃이면서 동시에 호명되지 못한 타자의 이름으로 작용한다. “그미”는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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