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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강물 부처님 오신 날 불타는 칠월 자판기 사랑 성자의 가면 강물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무지갯빛 지게 빗속을 걸어가는 건반 오월의 손등 치어 나무 손가락 눈 달과 허수아비 달력의 성향 보고서 손톱 그리움 수평선처럼 제2부 마르지 않는 애수 지느러미 그 여자 길을 걷다 거시기하당께 시간은 카멜레온 마르지 않는 애수 나주에 물들다 도립반가사유상倒立半跏思惟像 그늘 일기 껍질을 벗고 나온 달빛 이명 엉겅퀴의 치열 수국을 맴도는 바람의 마음을 아니? 대나무 푸른 만원 제3부 천년을 횡재하다 어린 왕자가 묻는다면 네가 고추맛을 알아 누룽지 석산 허기진 골목 미처 몰랐어요 수련 천 년을 횡재하다 충전하다 마트료시카의 봄 낙화분분落花紛紛 성녀를 보다 아나키스트로 스미다 봄 23.5° 제4부 마지막이라는 말 바다에서 온 여자 마지막이라는 말 안개꽃 향기는 몰래 사라진다 가을 막걸리 이제는 떠나야 할 때 바위의 진술서 운주사에 가면 호박꽃 환희 속 깊은 서랍 암호는 젖은 속눈썹 안쪽에서 촉촉하고 아직 사랑이 아니다 전쟁터에 핀 사랑 바통터치 봄비 제5부 계엄령 큰개불알꽃 냉이의 편지 풀밭에 들어서면 철새 바람으로 오는 봄 계엄령 시를 쪼다 눈 덮인 마을 신발 낙엽 작품론 뜨거운 숨결을 통한 사랑과 통찰의 시학 / 강경호 |
정순영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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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모기 한 마리 손등에 내려 앉는다 수지침보다 날카로운 혓바닥을 살 속에 박더니 두 발 바르르 떨고 꽁무니를 치켜든다 이걸 어쩌나 저 굶주린 중생을 불타는 칠월 어슬렁거리던 유기견 바나나 같은 똥을 한 사발 불상처럼 쌓아 올린다 가부좌를 튼 반가사유상 개똥이 철학을 하는데 허기진 똥파리 떼 몰려와 잔치를 벌린다 자판기 사랑 사랑이란 가슴에 꽃 한 송이 피우며 한 생을 건너는 일인데 가슴이 없는, 누르면 설사처럼 쏟는 자판기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을까 성자의 가면 방금 제삿상을 몰래 핥고 두 손으로 용서를 빌고 있는 파리 한 마리 강물 거친 물결을 끌고 가는 고요한 아우성이었으므로 얼음장 밑에서 봄을 데불고 오는 햇살이었으므로 허기진 목마름을 적시는 가없는 성자였으므로 폭염을 끌고 가는 매미의 짧고도 긴 기도였으므로 흐느끼는 것들을 안고 가는 어머니였으므로 나는 네 안에서 흐르는 뜨거운 피 들숨과 날숨 사랑과 미움 밝음과 어둠 내 영혼을 순수로 씻어 주므로 나는 흐렸다가 다시 맑아져서 더욱 속이 깊어지느니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울 아버지 어머니도 저 하늘의 별이 되었지 얼마나 가벼웠으면 하늘까지 올라가셨을까 그 무게를 가늠할 수 없어 가을 들녘을 거닌다 해가 노을로 젖고 어둠이 땅에 내리면 하늘은 가벼워진 별들을 맞이한다 풍성한 알갱이를 다 떠나보낸 들녘이 가볍다 나는 나를 내려놓고 조금 가벼워졌지만 더 가벼워지는 일로 당신에게 다가간다 세상 한 겹 벗어놓고 별을 바라보느니 무지갯빛 지게 어린아이들이 비누거품을 날린다 동글동글한 것들이 무지갯빛으로 하늘에 오르다가 툭, 터져 사라질 때마다 반달처럼 웃는 아버지의 얼굴 가을이면 마당에 짐 부려 쌓인 볏단 노적봉을 바라보며 거품처럼 웃던, 아버지 곁에는 지게가 있었다 개밥바라기별이 서쪽하늘에 떠오를 때 비로소 헛간에서 새우잠을 자던 지게 아버지 산에 드신 후 어쩌다 빈집 헛간의 지게를 보면 하늘에 오르다 툭, 터진 무지갯빛 거품이 떠오른다 하늘이 맑구나, 논에나 갈까, 하시던 고단한 지게를 닮은 무지갯빛 얼굴 빗속을 걸어가는 건반 흑백 건반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면 가지 끝에서 노란 생강도 피어나고 한 음계 올라갈 때마다 붉어진 꽃들이 펼치는 총천연색 하모니 52개의 하얀 건반 36개의 검은 건반이 닿을 듯 말 듯 음의 뼈대를 이룬다 화음이 아름다운 것은 저마다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기 때문이리 서로를 인정할 때 서로가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평화의 하모니 진보와 보수도 러우전쟁과 중동의 포화 남북의 대립도 하모니를 이루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건반이 소리의 빗속을 걸어간다 오월의 손등 오월이면 왜 손등이 푸르게 그을려질까 그 검은 손등으로 씩씩하게 자라던 벼들 그믐달 같은 손톱 밑에 풀멍이 든 소금사막 같은 짜디짠 계절이 지나고 풀숲이 물결치는 것을 보았다 오월이 오면 목울대 부풀어 숨죽여 울던 두견새 아버지의 오월은 가슴까지 부푼 멍울이나 그 검푸른 손등으로 짙어지던 슬하의 눈동자 오월은 맑고 싱그럽기만 한데 아버지의 손등은 어디로 갔을까 치어 나무 홍매화 가지가 금붕어 치어를 낳았다 얼룩덜룩 작은 고기들 봄바람에 노를 저으며 뱃놀이 떠나듯 앞으로 나아간다 산수유 냉이 수선화 개나리도 새끼를 싣고, 넘치는 햇살에 반짝이는 비늘들 송사리 잡아 오면 엄마는 잘 키우라며 빈 병에 넣어 주셨다 하늘 바다에 한 바작 치어들이 북적대고 있다 바람에 꼬리를 흔드는 푸른 치어들 손가락 눈 어둑한 카페에서 소크라테스를 읽는 소녀 묵상에 잠긴 성자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가 고개 끄덕이며 해맑은 동자승처럼 웃는다 마음의 눈이 어두운 나는 아직 나를 읽는 방법을 몰라 변방을 서성이는데 소녀는 손가락으로 세상을 읽는다 환한 별 같다 달과 허수아비 빈 들녘을 바라보는 허수아비가 달은 안쓰러웠다 달은 마요네트 같은 달빛으로 허리를 감싸고 목을 껴안고 키스를 퍼부었지만 허수아비가 꿈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수아비의 가슴이 없는 줄 알고 슬펐던 달은 서산 너머로 사라졌던 것 구름이 허수아비의 눈을 가린 줄 끝내 모른 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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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숨결을 통한 사랑과 통찰의 시학
- 정순영 시집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강경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프롤로그 ‘무엇을 쓸 것인가?’ 혹은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명제 앞에서 정순영 시인의 시를 읽는다. 위의 명제는 시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과 삶에 대한 질문이다. 결과적으로 정순영 시인의 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대답에 귀착한다. 서정시는 인간의 현실에 놓여진 수많은 결핍과 그늘을 ‘서정’을 통해 회복하여 보다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시를 쓰는 지점이며 삶을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때 시인은 감정과 정신 표정을 드러내기 마련인데, 이는 서정시의 가장 근본적인 문법이다. 정순영 시인의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는 할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 등 웃대 선조들이 하늘의 별이 된 까닭을 묻는 시인의 질문은 “풍성한 알갱이를 다 떠나보낸 들녘”이 함의하는 “나를 내려놓은 가벼움” 즉 ‘비워냄’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이 시집 제목은 정순영 시인의 시집을 읽는 열쇠이며 창작의 원리를 말해준다. 정순영 시인의 시집은 가족애, 사랑, 자연, 생명성을 발현하고 있다. 뜨거운 가족애를 탐구한 시편들에서는 특히, 아버지의 삶을 살피며 삶의 본질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에서는 사랑의 관념을 시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며, 구체적인 사랑을 들여다보며 사랑의 의미와 본질을 새롭게 탐구하고 있다. 자연시편들에서는 그것들이 지닌 생태적 특징을 인간의 삶에 대입시켜 존재의 가치와 생을 이끌어가는 비밀한 원리를 발견하는 통찰력을 보여준다. 생명성을 발현하는 시편들에서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인간과 사물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묘파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첫시집 『허공을 오르는 클라이머』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세계를 바라보며 인식하는 태도가 더욱 깊어지고 시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참으로 반갑다. 2.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 아버지의 동시성 정순영 시인의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적 소재는 아버지이다. 이것은 생전의 아버지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앞에 서 있기 때문인데, 아버지 시편들은 그리움보다도 깨달음으로 새롭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발견한다. 그것은 아버지가 감당했던 시간 앞에 서 있는 까닭에 아버지의 시간과 시인의 시간에서 동시성(同時性)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의 발로이다. 오월이면 왜 손등이 푸르게 그을려질까 그 검은 손등으로 씩씩하게 자라던 벼들 그믐달 같은 손톱 밑에 풀멍이 든 소금사막 같은 짜디짠 계절이 지나고 풀숲이 물결치는 것을 보았다 오월이 오면 목울대 부풀어 숨죽여 울던 두견새 아버지의 오월은 가슴까지 부푼 멍울이나 그 검푸른 손등으로 짙어지던 슬하의 눈동자 오월은 맑고 싱그럽기만 한데 아버지의 손등은 어디로 갔을까 - 「오월의 손등」 전문 이 작품을 읽는 독자라면 모두가 아버지의 삶을 공감할 것이다. 그만큼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오월이면 왜 손등이 푸르게 그을려질까”라고 묻는다. 그 손등에는 벼들이 씩씩하게 자라고 “그 검푸른 손등으로 짙어지던 슬하의 눈동자”들이 있다. 여기에서 ‘푸르게’, ‘검은’, ‘검푸른’의 색채를 나타내는 형용사들은 모두 벼를 자라게 하는 터전으로 아버지를 꾸미는 시적장치이며, 가장으로서,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를 나타내는 시적 표현들이다. 그런데 “그믐달 같은 손톱 밑”에는 ‘풀멍’, ‘소금사막’으로 은유화한 아버지의 지난한 삶이 시적배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오월이 오면 목울대 부풀어 숨죽여 울던 두견새”는 “슬하의 눈동자”들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눈빛이 놓여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배경이 ‘오월’인 것은 벼들이 들녘에서 한창 자라는 시기, 즉 슬하의 자식들이 성장하는 때이다. 아버지 떠나시고 없는 오월을 맞아 “오월은 맑고 싱그럽기만 한데//아버지의 손등은 어디로 갔을까”라고 묻는다. 아버지의 시간에 이른 시적 화자가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며 육친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아버지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깊은 사유에 이른 까닭이다. 「신발」에서는 신발을 씻다가 고단하게 살다가신 아버지의 삶을 발견하고 사색에 이른다. 노벨라 향수를 푼 비눗물에 묵은 때 한 켜 한 켜 벗겨내니 입을 헤, 벌리고 웃는다 피부가 메꽃처럼 살아난다 그러고 보니 바닥이 번질번질 닳아 있다 바닥으로 가난을 짊어지고 살다 가신 아버지가 보인다 너무 긴 시간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 다시 돌아보니 말끔해진 아버지, 비스듬히 누워 햇살에 몸을 말리고 계신다 - 「신발」 전문 시적 상관물인 ‘신발’을 통해 아버지를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화자는 비눗물에서 때묻은 신발을 닦는다. 이 행위를 통해 “피부가 메꽃처럼 살아난다”. 그런데 “바닥이 번질번질 닳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신발을 닦는 과정에서 신발바닥이 닳아있는 것을 발견함이다. 이로 인해 시적 발화가 이루어진다. 닳은 신발에서 ‘아버지를 발견’하여 오랫동안 잊혀진 아버지의 생을 다시 떠올리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는 “바닥으로/가난을 짊어지고 살다 가신” 분이다. 흔히 ‘신발’이 삶의 길을 의미하는 표지를 나타내는 것처럼, 화자 또한 닳은 신발 바닥이 말해주듯 이 작품에서도 가난을 짊어지고 가장의 길을 걸으셨던 것을 상기시킨다. “노벨라 향수를 푼 비눗물”로 “묵은 때/한 켜 한 켜 벗겨내니/피부가 메꽃처럼 살아난” 말끔하게 세척된 신발의 의미는 신발 닦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정화된 존재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다시 돌아보니/말끔해진 아버지,”는 시적 화자가 새롭게 발견한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 깨끗한 모습으로 “비스듬히 누워/햇살에 몸을 말리고 계신다”고 함으로서 시적 화자는 가난했던 아버지의 삶이 편안해지는 미적 경험에 이르게 된다. 이밖에 아버지의 삶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편에서는 「길을 걷다」, 「무지갯빛 지게」,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 등이 눈에 띤다. 「길을 걷다」에서는 ‘길’의 관념을 아버지가 살았던 생의 길로 대입시켜 “사금파리 날 선 길에 발이 베이기도 했을” 생애로 치환시켜 아버지를 형상화시켰다. 그리고 화자는 “상처 많은 한 사내가 어둑한 서쪽 하늘에서 샛별로 반짝이며 걸어온다”고 하여 ‘별’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아버지의 생을 되살린다. 「무지갯빛 지게」에서는 아이들의 비누거품 놀이에서 하늘에 오르는 동그란 비누거품의 무지갯빛에서 “반달처럼 웃는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한다. 마당에 짐 부려 쌓인 볏단을 보며 마음이 풍요로워져 웃던 아버지의 얼굴이 비누거품에서 빛나던 무지갯빛과 오버랩 되는데, 그럴 때마다 “하늘이 밝구나, 논에나 갈까, 하시던/고단한 지게를 닮은/무지갯빛 얼굴”의 아버지를 만난다. 이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는 존재가 지향하는 방향성이기도 한 ‘가벼워짐’에 대한 통찰을 묘파한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울아버지 어머니도/저 하늘의 별이” 된 것은 “풍성한 알갱이를 다 떠나보낸 들녘”처럼 ‘나를 내려놓은 가벼움’ 때문이다. 시적 화자가 ‘들녘’으로 기표화한 ‘가을 들녘’을 거닐며 ‘빈 들판’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마음들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이며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는 표지인 것이다. 3. 아직 사랑이 아니다 - 완전한 사랑을 향해 ‘사랑’은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그러나 ‘사랑’은 관념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구체성을 띨 때 사랑의 표정이 쉽게 다가와 감각될 수 있다. 또한 사랑은 그 외연이 넓고 깊어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사랑은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어 많은 시인들이 사랑을 노래해 왔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목소리로 사랑을 노래한다. 정순영 시인의 ‘사랑’을 형상화시킨 시편들은 ‘완성된 사랑’, ‘충만된 사랑’이 아니다. ‘결핍을 극복하고자 부르는 노래’이다. 온전히 대상과 하나가 될 때 사랑이 완성된다고 할 때, 시인의 사랑노래는 동일성에 이르지 못한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하나가 되고자 하는 힘이 그의 사랑을 이끌어가고 있다. 사랑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문득 껍질이 껍질로 보일 때 벗겨지고 또 벗겨진 사랑의 껍질 눈앞을 가렸던 콩깍지마저 벗겨지고 당신이 초라하게 보일 때 이제는 떠나야 할 때 얼마나 다행인가 사랑하다 버림받은 영광 이별을 말하다가 통화음이 길어질 때면 당신은 과일을 껍질째 씹으며 오던 그 길을 다시 걸어야 할 것입니다 - 「이제는 떠나야 할 때」 전문 “사랑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라고 사랑을 ‘껍질째 먹는 과일’로 전제한다. 흔히 과일은 껍질을 벗기거나 깎아서 알맹이를 먹으므로 껍질을 벗겨먹어야 할 과일을 껍질까지 먹는 일은 보편적이지 않다. 이 작품은 사랑은 대상을 온전하게 껴안고 이해할 때 가능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낳는다. 그런데 “문득/껍질이 껍질로 보일 때/벗겨지고 또 벗겨진/사랑의 껍질”이 되었을 때 온전한 사랑이 되지 못함은 “눈앞을 가렸던/콩깍지”가 벗겨져 “당신이 초라하게 보”여지게 된다. 이러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시적 화자는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다 버려지는 것을 ‘다행’이거나 ‘영광’이라고 자조적이거나 역설적으로 감정을 토로한다. 이러할 때 대상과 “이별을 말하다가/통화음이 길어질 때면” “당신은/과일을 껍질째 씹으며/오던 그 길을/다시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껍질째’와 ‘껍질을 벗긴 상태’를 ‘사랑’과 ‘콩깍지’로 비유하며, 온전한 사랑을 대상의 모든 것, 즉 허물까지도 사랑할 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기에 ‘이제는 떠나야 할 때’라고 하여 아직은 ‘결핍된 사랑’의 상황이어서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아직 사랑이 아니다」에서도 “나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라고 사랑의 결핍을 역설로 온전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대 떠난 마음자리에 피어난 둥근 멍울은 아직 꽃이 아니다 꽃병에서 시든 장미 같은 고독은 아직 고독이 아니다 단물 빠진 껌처럼, 책상 모서리에 찍혀 올라오는 멍울도 아직 멍울이 아니다 그대 떠난 자리, 나는 그대 눈빛으로 꽃을 짓는다 밤을 하얗게 내 붉은 그리움으로 피우는 꽃 눈물이 기름으로 타오르는 꽃 그대 떠난 어둔 마음자리에 장미 한 송이 걸어놓는다 나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 - 「아직 사랑이 아니다」 전문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자신에게 생긴 여러 감정을 하나씩 바라보는 시선으로 전개된다. 처음에는 “둥근 멍울”이 나타난다. 꽁봉오리를 연상시키지만 멍이나 종기처럼 아픔이 응결되었기 때문에 곧바로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 떠난 마음자리에 피어난 둥근 멍울은 아직 꽃이 아니다”라고 “둥근 멍울”을 “아직 꽃이 아니다”라고 한다. 멍울은 언젠가 꽃이 될 수도 있기에 상처, 또는 상실의 고통이 다른 감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음을 말해준다. 이어서 계속되는 “시든 장미 같은 고독은 아직 고독이 아니다”, “책상 모서리에 찍혀 올라오는 멍울도 아직 멍울이 아니다”라고 사랑을 부정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중반부터 변화가 일어난다. “그대 떠난 자리, 나는 그대 눈빛으로 꽃을 짓는다”라고 한다. 멍울이 “아직 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화자는 스스로 꽃을 만들기 시작한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대 눈빛”으로 꽃을 짓는다. 대상은 사라졌지만 사랑의 기억이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밤을 하얗게 내 붉은 그리움으로 피우는 꽃/눈물이 기름으로 타오르는 꽃”의 역설은 스스로를 연소시키면서 계속 살아나는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대 떠난 어둔 마음자리에 장미 한 송이 걸어놓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장미는 아름다운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기 보다, 떠난 사람을 마음 속에 간직하기 위해 화자가 만들어낸 사랑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사랑이 아니다”며 사랑을 감정이나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로 전환시켜놓는다. 이 작품은 사랑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하기도 하면서, 사랑의 고백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상과의 사랑이 지속되고 있지 않음이다. 그런 까닭에 사랑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밖에 「마르지 않는 애수」 또한 완성되지 않은 사랑을 슬픔의 감각으로 읽는다. 사내가 며칠째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말라가는 것은 “3층 양옥집 무남독녀 대학물 먹은 그 여자” 때문이다. 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해 사회 통념상 신분의 차이와 가난 때문에 “모딜리아니의 목이 긴 그 여자”, “으아리꽃처럼 눈망울이 맑은 그 여자”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지만, “숨 쉬듯 오십 년” 동안 “으아리꽃을 향해” 사랑을 접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은 그 사내의 사랑을 “마르지 않는 애수”라고 인식함으로서 슬픔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쟁터에 핀 사랑」은 “유리창은 방패/햇살은 창”이라고 함으로서 유리창에 햇살이 내리는 것을 ‘전쟁’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햇살이 유리창을 바라보았을 때/번쩍, 유리창이 자신을 낭랑공주처럼 품었으리라는 울렁임”이라고 묘사하여 전쟁터를 사랑의 무대로 변화시킨다. “그래서/유리창은 햇살에 번쩍이고/햇살은 유리창에 빛나는 것”이라고 ‘창과 방패’의 관계를 사랑의 대상으로 전환하면서, 한편으로는 ‘전쟁터’를 ‘사랑의 무대’로 만들어 버린다. 「전쟁터에 핀 사랑」을 통해 ‘결핍과 미완성의 사랑’에서 전쟁터의 창과 방패를 “유리창에 빛나는” 햇살 같은 사랑을 제시하여, 사랑의 완성을 지향하고 있다. 4. 수국을 맴도는 수국의 마음 - 자연을 통한 정신성 예로부터 자연은 인간과 친화력을 가지며 모든 예술의 제재가 되어왔다. 사군자를 비롯한 나무, 꽃, 풀 등의 식물과 강, 바다, 그리고 달, 별 등 우주적 대상까지 인간의 삶에 끌어와 대비시키며 존재에 대한 인식과 성찰, 그리고 통찰의 기제로 삼아왔다. 특히 시문학에서는 자연을 더욱 인간과 가까이 하며 완상하며 풍류를 즐겼다. 풍류는 멋스럽게 노는 일만 아니어서 도덕과 윤리성을 기저에 두고 유교적 관념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자연은 자본의 논리에 무차별적으로 훼손되고 있으며 그 폐해는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다. 그러므로 많은 시민들이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을 상생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앞에서 밝혔듯이 자연의 생태적 특징을 통해 생명성 탐구와 함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윤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정순영 시인의 시 또한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의인화법을 통해 윤리적 감각과 자신만의 목소리로 성찰과 통찰을 모색하고 있다. 하늘에 닿고 싶어 사다리를 놓았나 매듭을 발판 삼아 한 발 더 높이 올라가라고 바람을 부르나 사다리 없이는 하늘에 오를 수 없지 한 발이 없으면 다른 발을 내 걸을 수 없지 위를 바라보는 일은 내가 사는 이유 벽을 뚫고 나를 밀어 올리는 일 나를 밟고 다시 오르라고 주저앉고 싶은 마음을 부르나 멀리서 오는 여명도 산봉우리 타고 오르는 별도 손짓하며 부르나 - 「대나무 -푸른 사다리」 전문 한자문화권에서 대나무는 고결한 인격을 지닌 군자의 표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화가와 시인들에 의해 완전한 인격체로 형상화되어 왔다. 정순영 시인은 대나무를 ‘하늘에 오르는 길’로 바라보기 때문에 ‘푸른 사다리’라는 부제를 달았다. “하늘에 닿고 싶어/사다리를 놓았나”라고 질문을 던지며 “매듭을 발판 삼아/한 발 더 높이 올라가”는 하늘과 지상을 잇는 가교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사다리 없이는/하늘에 오를 수 없”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위를 바라보는 일은/내가 사는 이유”가 말해주듯 상승을 꿈꾸는 일, 하늘에 오르는 일이 “벽을 뚫고/나를 밀어 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벽은 가로막는 불통의 의미가 내재해 있다. 그런데 하늘에 오르는 일은 벽을 극복하는 일이어서 궁극적으로 이 작품은 자신의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여주는 시적 화자의 지향을 드러낸다. 대나무가 고결한 인격을 지닌 군자라는 전통적인 관념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은 대나무를 보이지 않는 세계로 길을 내는 상승, 또는 비상의 의미와 하늘과 지상을 잇는 시적 상관물화 시키고 있어 신선하다. 다음의 「수평선처럼」은 ‘꽃’을 어느 누구도 살펴보지 않는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고 있다. 꽃은 가리지 않는다 눈비와 바람 나비와 소년 노인 돌풍까지도 저울질하지 않는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으로 달팽이 기어가는 풀빛 하늘과 호수 같은 평정심으로 가얏고 둥근 여울물 소리를 낸다 기울지 않은 수평선처럼 아침햇살에 벙글어진다 - 「수평선처럼」 전문 흔히 ‘꽃’은 미적 대상으로 인식해 색채와 형상이 지닌 아름다움만이 꽃에 대한 인상으로 작용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세계와 꽃의 관계가 균형을 잃지 않고 평정심으로 수평적인 관계맺기를 지향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인식이 엿보인다. 꽃의 모습을 “꽃은 가리지 않는다”라고 시의 도입부 첫행에서 발언하는 것은 이러한 전제로 시를 이끌어가며 꽃이 지향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눈비와 바람 나비와 소년 노인//돌풍” 등 서로 이질적이고 개별적인 것들 중 “눈비와 바람” “돌풍”은 ‘꽃’에게는 생육환경에 부정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나비와 소년 노인”은 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친근한 것들이다. 이렇듯 부정적인 것과 친근한 것들을 가리지 않는 꽃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으로, “ 풀빛 하늘”, “호수” 같은 평정심으로 마주하며 “아침햇살에 벙글어진다”.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꽃이 벙글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눈비와 바람”, “돌풍” 등 흔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자연 조건 등이 작용하여 꽃을 피워낸 것을 알 수가 있다. 꽃을 찾는 “나비와 소년 노인” 역시 꽃을 반기며 완상하는 존재들이므로 당연히 꽃이 피어야 할 이유이다. 이러한 꽃의 모습을 시적 화자는 평정심, 또는 균형 때문에 “가얏고 둥근 여울물 소리를 낸다”고 하여 가리지 않는 꽃의 마음이 왜 아름다운지를 말해준다. 자연을 내밀하게 관조하며 내면에 깃든 비의를 상상력에 의해 직조된 시편에서 「낙화분분」은 “달빛이 쌓입니다”,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달빛들”, “모래알처럼 흘러내”린다고 시각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달빛을 물질화하는 것이 놀랍다. 이 작품은 ‘낙화분분’이라는 시제가 말해주듯 달빛만을 노래하지 않는다. “꽃이라 불리었던 사람들은/지상에 닿기 전 몇 번이나 방향을 바꾸며/낙화분분”한다고 하여 예정할 수 없는 인간의 삶으로 전환하여 시적 깊이를 얻는다. 「강물」에서는 “고요한 아우성”, “봄을 데불고 오는 햇살”, “목마름을 적시는 가없는 성자”, “폭염을 끌고가는 매미의 짧고도 긴 기도”, “흐느끼는 것들을 안고 가는 어머니”라고 형상화시켰다. 희망을 이끌고, 결핍을 극복하며, 사랑을 전하는 구원적 존재로 ‘강물’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내 영혼을 씻어주”는 정신성을 나타내는 기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수국을 맴도는 바람의 마음」은 ‘바람’이 ‘수국’의 주변을 맴도는 상황을 전제로 하여 그 마음이 지닌 순정함을 노래하고 있다. 바람은 “수천 송이 수국이 내뱉는 날숨”이기도 한다. 즉 바람은 다름 아닌 수국 그 자체로 읽어낸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헤어지는 것”이어서 “수천 송이 찬란한 수국도 시름시름 앓다가 누울 것이고” 바람도 “주위를 맴돌았던 빈 마음 하나만 간직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하여 수국과 바람의 관계성, 수국과 바람의 생성과 소멸 등을 통해 이 작품에서는 구체적으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태어나고 누군가를 만나며 삶을 살아가다가 생을 마치는 삶의 본질과 태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슬픔을 말해주기도 한다. 5. 바람에 꼬리 흔드는 푸른 치어들 - 생명성 탐구 앞에서 살펴보았듯 정순영 시인의 자연을 심미적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마치 표현주의 회화처럼 시인 내면만의 감각으로 시를 형상화하였다. 자연을 시적 대상으로 삼았지만, 자연, 특히 생명성에 천착한 작품들은 또다른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시적 배경은 주로 ‘봄’으로 시인의 내면에 깃든 원초적인 생명성을 일깨우는 작품 경향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욕망이 발호하는 자본문명시대의 풍조인 생명 경시에 대해 경각심을 주고,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적절하다. 홍매화 가지가 금붕어 치어를 낳았다 얼룩덜룩 작은 고기들 봄바람에 노를 저으며 뱃놀이 떠나듯 앞으로 나아간다 산수유 냉이 수선화 개나리도 새끼를 싣고, 넘치는 햇살에 반짝이는 비늘들 송사리 잡아 오면 엄마는 잘 키우라며 빈 병에 넣어 주셨다 하늘 바다에 한 바작 치어들이 북적대고 있다 바람에 꼬리를 흔드는 푸른 치어들 - 「치어나무」 전문 이 작품은 봄날 환호작약하며 꽃을 피운 홍매화를 매우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홍매화꽃을 금붕어로 비유한 것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생명의 동세를 보여줌으로써 생기발양한 생명성으로 홍매화를 전화시켜버린다. “얼룩덜룩 작은 고기들”, “봄바람에 노를 저으며” , “넘치는 햇살”, “반짝이는 비늘들”은 생명의 역동성을 더욱 강조하는데 일조한다. 이렇듯 이 작품 전반에 적용되고 있는 의인법과 활유법은 살아있음을 강조하며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산수유 냉이 수선화 개나리도 새끼를 싣고,” 햇살에 비늘이 반짝이고 있다고 함으로서 어린 것들을 통해 계절의 순환, 생명의 순환법칙을 일깨운다. 여기에서 시적 화자는 어린 시절 “송사리 잡아 오면 엄마는/잘 키우라며 빈 병에 넣어 주셨”음을 상기시켜 유년의 추억을 환기시키며 생명의 가치를 강조한다. 더불어 홍매화 가지가 꽃을 피운 모습을 어린 물고기로 비유한 것과 ‘유년의 송사리’를 조응시킴으로서 봄날 되살라오는 생명들의 의미를 다시금 환기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 바다에 한 바작/치어들이 북적대고 있다”고 시각적 이미지로 봄의 환희와 생명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다음의 「큰개불알꽃」은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생명성을 형상화시킨 작품이다. 납작 엎드려 얼어붙은 불알을 알밤 품듯 끌어안고 깊은 잠에 들었지요 우수雨水 지나 고드름 뚝뚝 떨어지는 날 사내는 햇살 훤히 드는 언덕배기에 네 다리를 벌리고, 소문은 바람 같아서 아랫동네 윗동네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와 무더기로 봄풀처럼 드러누웠지요 햇살은 윗니를 드러내며 웃고 바람은 깃털처럼 간질이며 지나갔지요 그때 번쩍, 섬광처럼 환한 꽃이 피어나더니 봄이 낭창하게 터졌지요 - 「큰개불알꽃」 전문 이 작품의 시적 장치는 ‘큰개불알꽃’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사내’, 즉 ‘남성성’으로 환치하여 ‘바람’과 통정함으로서 꽃이 피어난다는 에로티즘을 바탕으로 하여 전개하고 있다. 겨울 내내 “납작 엎드려/얼어붙은 불알을” 끌어안고 깊은 잠에 들었다가 우수가 지난 날 ‘불알’을 암시하는 ‘사내’가 “햇살 훤히 드는 언덕빼기에/네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햇살은 윗니를 드러내며 웃고/바람은 깃털처럼 간질이며 지나”감으로서 봄꽃들이 피어났다는 상황전개로 개화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시켰다. 사내의 소문을 들은 “아랫동네 윗동네 사내들이/우르르 몰려와/무더기로 봄풀처럼 드러누웠”다고 함으로서 더욱 생기발양한 생명성을 구가시킨다. 이 작품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햇살과 바람이 사내들을 간질이고 지나가자, “그때 번쩍,/섬광처럼 환한 꽃이 피어나더니/봄이/낭창하게 터졌지요”라는 진술이다. 순전히 시각적 이미지로만 형상화시킨 이 대목은 ‘개불알꽃’이 꽃을 피우는 모습을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묘사되어 ‘개화’의 순간을 극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개불알꽃’이라는 식물의 이름에서 시적 발화를 하여 시인의 상상력으로 생명의 아름다움을 형상화시켰다. 이밖에 생명성을 강조하여 경외심을 노래한 시편으로는, 「풀밭에 들어서면」에서는 시적 다의성(多義性)을 보여준다. 화자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 바람에 푸릇한 풀냄새가 코에 스친다. 그것은 “차가운 눈보라를 이겨내고 책장에 밑줄 긋는 소리. 학원문턱을 밟지 못한 가난에도 제 빛깔로 피어나는 꽃잎들,”이 풍기는 생명의 향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봄이 와서 풀들이 자라며 날리는 풀향기로 읽히지만, 이 시의 내적의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학생들을 생명어린 대상으로 그려냈다. 물론 “철따라 무성하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겨울잠 자는 것은/원시의 늑골 같은/수천 년의 불문율이다”에서처럼 오랜 세월 봄이 오면 꽃을 피우고 겨울이 되면 잠을 자는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순환을 노래한 시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좋은 시는 이처럼 중의적이고 다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을 말한다. 「냉이의 편지」, 「봄비」, 「바통터치」, 「호박꽃 환희」, 「아나키스트로 스미다」, 「봄」, 「바람으로 오는 봄」 등의 시편들은 공통적으로 봄이 되어 다시 깨어나 푸르른 생명성을 찬미하며 노래한 매우 세련된 감각으로 읽힌다. 6. 에필로그 정순영 시인의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서 있는 시간을 헤아리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묻고, 꽃과 나무와 강물과 바람에서 삶의 이치와 정신성을 발견한다. 또한 봄마다 되살아나는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존재가 지닌 경이와 환희를 노래한다. 이러한 시선은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듯하지만 결국 생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사랑하려는 한마음으로 모인다. 특히 이 시집의 제목인 『별은 가벼워서 하늘에 떠 있고』가 암시하듯 정순영 시인의 시적 사유는 ‘가벼워짐’에 이른다. 여기에서 가벼움은 삶의 무게를 외면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비워낸 뒤에 도달하는 정신의 자리이다. 풍성한 알갱이를 다 떠나보낸 들녘처럼,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생을 내어준 아버지처럼, 꽃과 강물과 바람처럼 스스로를 내어주면서 다른 존재와 이어지는 것이 이 시집에서 발견되는 삶의 한 방식이다. 그런 점에서 정순영 시인의 시는 거창한 관념보다 일상의 작은 사물과 자연현상에서 삶의 비의를 발견하는 데 강점이 있다. 닳은 신발 한 켤레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수국 곁을 맴도는 바람에서 관계와 소멸을 생각하며, 봄날 피어나는 꽃에서 생명의 힘을 감각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이러한 시선이 시인의 상상력과 만나면서 일상의 풍경은 사랑과 성찰의 자리로 바뀐다. 시는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정순영 시인의 시 또한 그러하다. 사랑하고 헤어지고, 피어나고 스러지며,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마침내 가벼워지는 존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뜨거운 숨결은 결국 살아 있는 것들을 향한 사랑이며, 삶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이다. 이번 시집이 우리에게 건네는 따뜻한 통찰 또한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