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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김영천
시와사람사 2025.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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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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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소문은 바람을 닮았다

너와 팔짱 끼고 걷기
기다릴 줄 아는 힘
자득自得
거저리
코이
진예자기퇴속進銳者其退速
어떤 기도
이런 이력서가 좋겠네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나비잠을 자라
“ㄹ”이란 글자
하루살이
ㄱ시인
종심에 이르다
혀는 말을 이루는 성채입니다
칼을 뺐으면 호박이라도 찔러라
가장 위험한 동물
소문은 바람을 닮았다

지네발란처럼
어떤 사랑의 은유법
포정 해우?丁 解牛
새대가리란 말은 없어져야 한다
돌탑
독설

제2부 내가 지은 집

당랑거철
인문주의자의 열기
지렁이에게 보내는 편지
돈도 없지만
영혼의 무게 21g
간단한 질문들
독을 품은 결기
내 안의 청년이여, 고마워라
입이 하는 말
이 세상을 좀 울어야겠다
그믐달
기도하는 손
공간 속의 새
눈물 없는 세대
나니까, 그래도
어르신
노년의 사랑
하루살이꽃
모딜리아니의 “잔느의 초상”
소금밭
시는 매주다
지두화·2
내가 지은 집
누님, 소원컨대
곡도
비로소 빛이 되고 색이 되어

제3부 사랑이나 희망의 다른 이름

쉽게 쓰는 시가 부끄러워
퀘렌시아
서른세 개의 등뼈
부처나비
살 부러진 우산이라도 되어주랴
사랑이나 희망의 다른 이름
우리 사이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집게벌레의 사랑
칠순에 부치는 시
참숯
무심결
분노라는 이름
숟가락이 하는 이야기
새 소리나 한번 들어보라 이 말이여
슬픔의 주저흔
그런 엄살이 어디 있는가
우화등선
좀 떫거나 시면 또 어떻습니까
우애의 길
거리낄 것 없으면
요익 Joik

작품론
사유의 깊이와 실존의 깊이 / 강경호

저자 소개 1

시집 『슬픔조차도 희망입니다』, 『낮에 하지 못한 말』, 『부끄러운 것 하나 』,『몇 개의 아내』, 『찬란한 침묵』, 『삐딱하게 서서』, 『꽃도 서서 잔다』, 『구겨진 종이가 멀리 날아간다』, 『한 그루 나무를 옮겨 심는 새처럼』등 9권이 있으며, 논문 『서정주 시 연구』(목포대학교 대학원)로 석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문학 관련 수상으로는 전라남도문화상, 목포문화상, 송암예술문화상, 창조문학대상, 전남문학상, 전남시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일반 수상으로는 대통령 표창, 초당약사대상, 목포약사대상 등이 있다. 현재는 목포에서 한일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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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98g | 125*200*10mm
ISBN13
9788956657745

책 속으로

너와 팔짱 끼고 걷기



내가 너보다 높아지지 않겠다
내가 너보다 많이 가지지 않겠다
더불어 앉아 내 마음을 전하고
대답하지 않는 널 섭섭해 하지 않겠다

꽃을 바라보듯 아름다움을 고마워하고
대신에 향기를 받아들이듯
너를 한껏 칭찬하고 대신에
미소를 고마움으로 받아들이겠다

내가 너보다 빠르게 가지 않겠다
내가 너보다 편하게 가지 않겠다
더불어 걸으며 내 노래를 전하고
감동하지 않는 널 서운해 하지 않겠다

물속에 잠기어 평안해짐을 고마워하는 돌멩이처럼,
바람 속에 스미어 시원해짐을 고마워하는 풀잎처럼

나는 너의 팔짱을 끼고
오래 오래 걷겠다




기다릴 줄 아는 힘



껍질을 찢고 나오는

그 지루한 시간이나,

몸집을 키우고

날개를 말리는 순간이나,

빨리 탈피하지 못한다고

애닳아 하지 말아라

기다리지 않고 이루는 것들은

다 생명이 짧다





자득自得



늙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을
자득自得이라 한다

세상은 내가 없어져도
감쪽같이 진행되어 가리라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무얼 위해 그리 애쓰시는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이나
살기 위해 먹는 것이 매 한가지라는 것도
저절로 알았다





거저리



나미브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 “거저리”는
해가 뜨기 전 모래 밖으로 나와
300m나 되는 정상을 그 작은 발로 끈기 있게 올라가서
물구나무를 선다하네

등에 있는 돌기에 안개가 붙어
물방울을 이루고
또르륵 굴러 마침내 입으로 마신다 하네

자꾸만 굴러 내리는 모래알을 딛으며
몇 번이나 그만 두고 싶었을까
몇 번이나 그만 내려가고 싶었을까

지표면의 온도가 70도까지도 올라간다는
열사의 사막에서는
아무리 힘들고 마음 아파도
차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살아간다하네





코이



어항 속에선 겨우 10센티도 안되는 코이가
호수나 강에선
1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하듯이

내가 마음을
얼마나 크게 먹었느냐에 따라
바보나 현자가 된다

내가 세상을 얼마나 용서하는가에 따라
시인이 되었다가
무지랭이가 되었다가 한다

그 혜량이 얼마나 넓은지 몰라
내 안의 그 깊은 수심에
작은 물고기 한 마리 풀어놓는다





진예자기퇴속進銳者其退速



나아가는 것이 빠르면 물러감도 빠르다고
맹자가 미리 일렀으되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지금도 종종거리며 발을 구르는 이들이
그 행사를 위해 밤잠을 설친다만
광풍노도의 내일을 누가 알겠는가

타인과의 경쟁보다
내 안의 나와 마주 앉아보는 것이
더 멀리 가는 방법일진데
더딘 꽃이 더 고임도 받고
늦게까지 피는 법

바람에 살랑거리는 잎새들에서
인생을 배우는 게 어떻겠는가


어떤 기도

두 손을 모으고 있다고 해서
다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기 위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붙잡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손이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려는 것인지
그 손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간절히 뻗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그가 눈이라도 감고 있다면
한 마음이 또 한 마음에 뻗어라가려는 간절함을
강력히 붙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제 목숨을 꼬옥 붙들고
남은 세상을 겨우 견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사유의 깊이와 실존의 깊이
- 김영천 시집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명제는 오직 인간에게만 적용된다. 여기에서 ‘생각’은 또 다른 말로 ‘사유思惟’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시詩는 사유의 결과물로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장르이다. 시인마다의 다양한 사유에 의해 자신만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내며 세계와 소통한다. 남도의 김영천 시인은 오래 다져진 튼실한 시의 근력으로 한국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어왔다. 이번 시집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에서 그의 시적 사유를 짐작하게 하는 이른바 메타시 성격의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띤다.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너무 가볍게 시를 쓰는 건 아닌지”(「비로소 빛이 되고 색이 되어」)라고 자성한다. 사물의 겉만 바라보며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통해 보다 내밀한 사유를 강조하고 있다. 시에 대한 이러한 인식태도를 “너무 쉽게 써버리는 내 시가 부끄”럽다(「쉽게 쓰는 시가 부끄러워」)고 한다. 그런 까닭에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마음을 전하고/그 마음 안에 생각을 전하는/노래.”(「요익Joik」) 같은 시를 쓰고자 한다. 요익Joik은 북유럽 사미인들의 전통가요로 가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주지하다시피 언어는 의미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럼에도 사미족은 가락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소통방식은 가장 원시적인 언어체계이면서 더불어 고등한 언어형식이기도 하다. 언어 이전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언어로 시를 쓰고 싶다는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밖에 김영천 시인의 시에 대한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시에서 “내가 세상을 얼마나 용서하는가에 따라/시인이 되었다가/무지랭이가 되었다가 한다”(「코이」), “죽고 나서도 허명으로 세상을 현혹시키지 않고/잊혀지는 이름으로 만족하는 법”(「참숯」), “죽음보다 더 깊은 침잠의 날들을 보내고/마침내 이루어지길/참, 오래고 깊은/맛”(「시는 메주다」) “투우에 지친 소가/잠시 쉬면서/안정을 얻는다는 퀘렌시아”(「퀘렌시아」)에서 보듯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시에 대한 관점으로 쓴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는 실존방식에 대한 질문과 대답, 그리고 노년에 이른 시인의 깨달음의 메시지와 생명성 탐구에 천착하고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명제와 존재의 근원이 생명성임을 깊이 사유하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이다.

2.
서정시의 가장 큰 핵심은 인간의 삶에 대한 살핌이다. 그리고 살핌의 과정에서 시인 자신의 삶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삶을 성찰하고 통찰할 경우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고자 할 것이며, 현실사회를 들여다볼 경우 모순과 결핍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다. 김영천 시인의 경우,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인간다움을 지향한다. 때로는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의 그늘을 함께 투시하며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개인과 사회를 향해 나가고자 한다.

수상 경력이나
업적 같은 것을 쓰지 않고
좋아하는 꽃 이름이나
새 이름을 적게 하는 이력서가 있으면 좋겠네

무슨 모임에서 일했는지
어떤 자리에 앉았었는지 이런 것 쓰지 않고
키우던 강아지는 이름이 뭐였는가
산은 어떤 산을 가보았는가
이런 것을 묻는 이력서가 있으면 좋겠네

혹시 별자리 이름 아는 것 있으면 써보라든지
꿈을 꾸던 도시의 이름은 무언지
생각해보라든지
학력이나 학위 같은 것 대신
저서의 목록 대신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곳은 없을까

이력서 뒷장에
자기 소개서를 쓰되
첫 사랑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써 보라든지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한 편 적어 보라든지
어디 이런 이력서 내라는 곳은 없을까

내 삶 다 정리하고
다시 이력서 한 장 써보고 싶네
- 「이런 이력서가 좋겠네」 전문

이 작품은 시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소망한다. 흔히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명함이나 이력서가 있다. 문학인의 경우 저서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온갖 것들을 기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것은 결핍과 열등의식을 감추고자 하는 의도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흔히 이력서의 형식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들을 요구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사회적 관행에 대한 비판의식이 투사되어 있다. “수상 경력이나/업적” “무슨 모임에서 일했는지/어떤 자리에 앉았었는지” “학력이나 학위” “저서나 목록”은 지식과 기능중심적인 자본주의의 폐해를 유발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문주의에 충실한 인간상人間像을 그리워한다.

“좋아하는 꽃 이름” “새 이름” “강아지의 이름” “별자리 이름”은 자연친화적인 시적 화자의 면모를 말해준다. 그리고 “첫 사랑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쓰기, “좋아하는 시” 쓰기 “꿈을 꾸던 도시의 이름”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배어 있다. 이력서에 기능적이고 서열을 매기지 않는 원초적 본성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서 때묻지 않은,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시적 화자는 “내 삶 다 정리하고/다시 이력서 한 장 써보고 싶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시적 화자도 세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이력서를 써 왔음을 암시하고, “다시” 그가 바라는 새 이력서를 쓰겠다고 성찰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김영천 시인의 이번 시집이 지향하는 세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살펴보았듯 「이런 이력서가 좋겠네」에서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인간상을 형상화하였다. 다음의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거창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에 침잠한, 그러나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드러내는 삶을 지향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태극기를 들고 고함을 지르고
촛불을 켜고 목청을 높일 때에도

장미꽃 한 다발을 사들고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신나게 걸어가는 가장이 있다는 것

세상 사람들이 온통
아이돌의 노래 소리에 흥분을 하고
축구 응원하느라 밤새 고함을 지를 때도

작은 화분 하나 사들고
남편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가 있다는 것

아파트가 어쩌고 재건축이 어쩌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시퍼렇게 돈독이 올라도
종부세가 어떻고 보유세가 어떻고
온 나라가 세금 잔치로 왁자지껄 할 때도

아스팔트 틈새기 그 지난한 곳에서
풀꽃 한 송이 피어나는 것을
휴대폰 꺼내 사진을 찍는 어린 학생이 있다는 것

아, 그래서 하늘엔 별이 빛나고
사람들은 더욱 아름답다는 것
-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 전문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크지 않지만 내면에 깃든 소박하면서도 작지 않은 인간을 향한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사회적 현상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따스한 인간애를 발현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태극기를 들고 고함을 지르고/촛불을 켜고 목청을 높”인다. 나라가 분열되어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에 절망을 한다. 더불어 “세상 사람들이 온통/아이돌의 노래 소리에 흥분을 하고/축구 응원하느라 밤새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세속적 즐거움에 빠져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특히 “아파트가 어쩌고 재건축이 어쩌고/세상 사람들이 모두 시퍼렇게 돈독이 올라”있다. 뿐만 아니라 “종부세가 어떻고 보유세가 어떻고/온 나라가 세금 잔치로 왁자지껄”하고 있음에 시적 화자는 자본의 논리로 작동하는 현실에 대해 참다운 인간의 길이 무엇인지를 탐색하고 있다. 즉 “장미꽃 한 다발을 사들고/아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신나게 걸어가는 가장” “작은 화분 하나 사들고/남편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하는 뜨거운 마음이 깃들어 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치고 있는 이 작품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인간중심적인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모색하고 있다. 즉 “아스팔트 틈새기 그 지난한 곳에서/풀꽃 한 송이 피어나는 것을” 사진 찍는 어린 학생의 마음이 그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아스팔트 벌어진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생명의 의지를 지닌 풀꽃에 관심을 갖는 어린 학생의 정서적 사건을 놓치지 않는 시적 화자는 “아, 그래서 하늘엔 별이 빛나고/사람들은 더욱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앞의 두 작품은 김영천 시인의 시가 지향하는 지점이 삶의 본질을 모색하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에 반해 다음 작품 「입이 하는 말」은 ‘입’이라는 인체의 특정 부위를 통해 실존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빗물을 3.5리터 정도 가둘 수 있다는
키나발루에서 피는 통 큰 식충화
네펜데스를 닮았습니다

제 몸보다 더 길고 짙푸른 집게발을 가진 새우
우당갈라를 닮았습니다

아무 것이나 잡아먹기 좋게 통 큰 입을 벌리고
무엇이든 쉽게 잡아채게
길다란 집게발을 벌리고

호시탐탐,
당신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계해도,
말씀을 삼가하셔도
참 큰일입니다.
말은 몸을 규제하고
몸은 정신을 정형합니다

단호하게 입을 막고 서서는
보세요.
나는 온몸이 입입니다
- 「입이 하는 말」 전문

‘입’은 음식을 먹거나 말을 하는 고유의 기능을 가졌다. 특히 소통의 수단인 말을 할 때도 입을 통해서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입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말은 존재를 규명하는 수단이며 존재 그 자체이다. 네펜데스라는 식충화는 벌레를 잡아 먹는 꽃으로 3.5리터의 물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입을 가지고 있다. “아무 것이나 잡아먹기 좋게 통 큰 입을 벌리고/무엇이든 쉽게 잡아채게/길다란 집게발을 벌리고” 먹이를 노린다. 시적 화자가 주목하는 것은 입으로 “호시탐탐,/당신들을 노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네펜데스라는 식충화가 자신의 몸보다 큰 입을 벌리고 먹이를 잡아먹는다는 데서 시적 발화를 한다. ‘설화舌禍’를 일으켜 자신을 망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며, 말을 잘못 뱉는 행위를 식충화에 비유하고 있다. 식충화를 입으로 환치시켜 말을 삼가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경계해도,/말씀을 삼가셔도/참 큰일입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입’이 1인칭 시점으로 작품을 이끌어가고 있는 형식으로 함부로 하는 말이 어떤 결과에 이르게 하는지를 잘 묘파하고 있다. 그러므로 “말은 몸을 규제하고/몸은 정신을 정형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몸의 일부인 입이 말을 통해 정신을 규제할 때 몸이 정신을 바로잡을 수 있음을 사유한다. 존재의 실존방식에 대한 김영천 시인의 탐구는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내가 지은 집」에서는 집의 본래 기능인 거주의 개념이 왜곡되어 재화적 가치로 크게 욕망하는 것에 대해 시적 화자는 성찰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사람들만 집 때문에/눈물로 한 세월을 보내고/집 때문에 목숨을 담보”하는 우리의 현실을 질타한다. “무슨 영화를 맛보겠다고/무슨 평안을 취하겠다고/나를 다 내어주어/집 한 채를 이루려 하는가”가 바로 그 대목이다. 이 작품에서 ‘집’의 기의記意는 다의성多義性을 띤다. 재화적 가치로 바라보는 탐욕의 대상으로써의 ‘집’과 “사람만이 제가 지은 아집에 갇혀/꼼짝하지 못한다”에서의 ‘아집’이라는 불통의 ‘집’이다. 여기에서 “제가 지은 아집”은 객관성을 상실한 자신만을 내세우는 좁은 생각을 말한다. 아집은 소통을 차단하는 사려깊은 사유가 아닌 독선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김영천 시인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사이’를 제시한다. 「우리 사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적당한 거리’의 중요성을 말한다. ‘사이’는 “너와 나를 잇는 이음줄”이며 “서로 업어주는 은근한 뜻”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너무 멀지도 않고/너무 가깝지도 않는” 거리가 우리 사이의 적당한 거리임을 밝힌다.

‘우리 사이’가 적당한 거리로 이어질 때면 ‘너와 팔짱 끼고 걷기’를 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준다. 「너와 팔짱 끼고 걷기」에서 “내가 너보다 높아지지 않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너를 바라보는 시선은 늘 고마움이고, 칭찬과 미소를 짓겠다고 한다. 김영천 시인의 실존방식은 자신은 물론 타자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진다.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러나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를 경계하면서 시적 화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3.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가 피할 수 없는 것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이다. 인간 역시 태어나서 살다가 청춘을 지나 늙기 마련이고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 서정시는 이 시간의 흐름 속에 놓여있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시킨 것으로 나이에 알맞은 정서적 변화를 시인마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시작詩作한다. 이번 김영천 시인의 시집에서는 노년의 정서에 반응하는 소회가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자신의 삶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태도가 매우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때로는 깨달음을 때로는 성찰과 통찰의 메시지를 통해 삶의 본질을 모색하고 있다.

나이 드는 것은 젊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제 안에 감추는 것이네
조금씩 조금씩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감추어 두는 것이네

그러나 젊음은 약동하는 것
잘 갈무리해두었어도
갑자기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이 내 안에 숨어 있던
젊음을 눈치 채고 감격하기도 하네

꼭 어느 일정한 때나 어느 시절이 아니라
더 어릴 때도 있고
좀 의젓해진 나이일 때도 있고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젊음은 재빨리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고
낯선 노인이 나를 바라보네

하지만,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그 젊음 때문에
오늘도 새롭게, 힘차게
다시 시작하네

그의 이름은 희망인지 모르겠네
- 「내 안의 청년이여, 고마워라」 전문

“나이 드는 것은 젊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제 안에 감추는 것”이라는 첫 소절이 말해주듯 시적 화자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젊음을 버리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다시 말해 노년이어도 내면 깊숙이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음이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자기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다른 이들이 내 안에 숨어 있던/젊음을 눈치 채고 감격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에 감추어 둔 젊음 때문에 생기발양하게 살아갈 수 있다. 김영천 시인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젊음은 시인의 기질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견고한 정신성精神性의 바탕이 된다. 정신이 몸을 이끌어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강을 흘러온 시적 화자는 “거울 속의 나를 보면/젊음은 재빨리 깊은 곳으로 숨어버리고/낯선 노인이 나를 바라”본다고 고백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젊음이 시적 화자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생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실재와 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기제를 통해 낯설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시적 화자를 되비쳐준다. 거울 속의 ‘낯선 노인’을 통해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낯선 노인을 이끌고 가는 힘이 “언제라도 다시 나타날 그 젊음 때문에/오늘도 새롭게, 힘차게/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을 시적 화자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 즉 늙어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젊음을 생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다음의 작품 「노년의 사랑」은 육신의 노화로 인한 질병에 대한 시인의 마음을 되비친다.

누구나 어딘가에
크고 작은 상흔 하나쯤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묵은 질병 하나씩을 품에 끼고 사는
나이가 되었다

욕심이 많아서
더러는 그 놈의 질병과 열애라도 하는 듯
조금씩 연민을 갖는다

보라,
삶이나 죽음이 나를 모두 해탈한 듯
껄껄껄 웃으면서도 돌아 앉아 껄꾹껄꾹
허무를 삼키는 나이가 아닌가

미움과 사랑은 벽지 한 장 차이라 하던 것,
오늘도 묵은 병을 움켜쥐고 간절하다

언제나 까마득하게만 보이던 곳에 이르러서야
마음을 추스리는 법
하고 많은 이들 중에 못명한 나를 찾아 주셨는가
놓아도 놓아지지 않는 꿈속의 질긴 연줄처럼
어처구니 없이도 깊은
내 연애
- 「노년의 사랑」 전문

건강한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에 질병이 있기 마련이다. 시적 화자인 시인도 자신이 “묵은 질병 하나씩을 품에 끼고 사는/나이가 되었다”고 토로한다. “더러는 그 놈의 질병과 열애라도 하는 듯/조금씩 연민을 갖는다”고 하는데, 전제되는 것은 “욕심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누가 질병을 좋아하겠는가? 그럼에도 “조금씩 연민을 갖는다”는 인식이 남다르다. 그것은 “삶이나 죽음이 나를 모두 해탈한 듯/껄껄껄 웃으면서도 돌아 앉아 껄꾹껄꾹/허무를 삼키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해탈한 듯한 시적 화자의 범상하지 않은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태도를 보여준다. 특히 ‘허무’마저도 삼키는 나이에 이르른 화자이기 때문에 질병의 위협에 대한 불안의식을 초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노년의 ‘묵은 질병’에 대한 체관諦觀적 관조에서 오는 태도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미움과 사랑은 벽지 한 장 차이”라는 말을 바탕으로 미움의 대상인 질병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함께 가겠다고 함으로써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히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을 찾아준 질병을 마치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처럼 연민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상황을 “어처구니 없이도 깊은/내 연애”라고 하고 있다.

다음의 작품들도 노년의 정서와 깨달음을 시로 형상화하였다. 「그런 엄살이 어디에 있는가」에서 “누구는 서른에 잔치가 끝났다 하고/누구는 쉰 나이를/화려한 뷔페 상에 가장 손이 안 가는 콩떡이라”고 하였다 한다. ‘서른’이나 ‘쉰’ 나이에 젊음이 다 가버렸거나 외면받는 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미 그 나이를 지나와 일흔 살 나이가 된 시적 화자는 “귀신도 모올래 돌아서 가고/그림자도 제가 먼저 납작 엎드”리는 삶을 많이 살아 젊은 시절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는 깨달음에 이른 세월이 되어 젊은 시절은 물론 오늘 세상을 살면서 엄살을 떠는 것을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게 상수”라는 깨달음을 설파하는 것이다.

「칠순에 부치는 시」에서도 ‘칠순’이라는 나이가 의미하는 ‘노년’에 관한 시인의 인식태도를 드러낸다. 시적 화자에게 칠십의 나이는 “사무친 세월”이지만, “아흔 그 어르신은/칠십이란 한참 좋을 때”여서 꽃이라도 피울 수 있는 젊음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몸도 마음도 삼가”고, “흠 잡히어도/용서해 주세요”라고 삶의 매무새를 정갈하게 가다듬는 태도를 취한다. 인생, 어느 때든지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어르신」에서는 “너무 느리다고/재촉하지 말아라”고 한다. 인생은 강물 같은 것이어서 “하구 쯤에 가선/발길이 더딘 것”이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말씀이기도 하고, 어르신이 된 시인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어르신’이라는 시적 화자를 통해 삶의 이치를 묘파하는 이 작품은 바삐 서두르는 젊음에게 들려주는 충고이기도 하지만, “이젠 다 왔다”라고 말하는 시적 화자의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늙어서 저절로 알게 된 것을/자득自得이라”(「자득(自得)」)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4.
환경위기에 대한 인류의 다양한 대응은 생명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인류를 포함한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멸종할지도 모르는 위협에 대한 반응이며 생명성 탐구로 근대 이전, 즉 산업화 이전의 생태학적 상상력과는 결이 다른 직접적인 위기의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생명운동이다. 김영천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특별히 공을 들여온 생명성 탐구의 시편들은 지구의 생명성 위기는 물론 생명의 본질을 관통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의 생명성을 모색하는 작품들은 단순하게 생명성을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실존방식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다의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노출되지 않은 어떤 근원을 탐색하고 있어 시적 깊이와 사유의 깊이를 함께 하고 있어 노년에 이른 완숙함이 삶의 본질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대답을 구하고 있다.

지난 봄에는 나비를 본 적이 있었던가
벌들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만큼 내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방 안 깊숙이 틀어박혀만 있었던가
그 때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쇠퇴했는가
나비가, 벌이 활동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닌가
추운 겨울을 이겨내지 못해 깨어나지 못한 건 아닌가
생태계의 교란으로 그 종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가
환경의 파괴로 그들의 터전이 사라진 때문인가
꽃들은 벌과 나비를 찾지 않으신가
하염없이 기다리기는 하시는가
혹시 꽃들이 기다림에 지쳐 다 져버린 것은 아닌가
꽃들도 꽃 피우기를, 수정되기를 애초부터
다시 시작해야하지 않는가
충매화들도 서서히 풍매화가 되거나
자가수정으로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는가
해외여행이라도, 참여프로그램이라도 따라 나서야
그들을 만날 수 있는가
마침내 교과서나 박물관에 가서야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가
아, 꽃이 없어도 벌나비가 없어도 봄은 봄인가
봄은 오고 가는가
- 「간단한 질문」 전문

이 작품의 형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행마다 의문형, 또는 질문형식을 취하고 있다. 질문을 통해 시적 화자가 자신은 물론 독자들에게 스스로 답을 구하는 형식이다.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생태현장의 문제를 강조하기 위한 시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지난 봄에는 나비를 본 적이 있었던가” “벌들을 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들은 나비와 벌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바깥출입 자제’ ‘기억력 쇠퇴’는 나비와 벌을 보지 못한 이유가 되지 못함을 시적 화자가 모르는 바가 아니다. 인간 중심적 근대문명으로 온난화나 기후변화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멸종해 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안다. “생태계의 교란으로 그 종이 사라질 위기에 있”으며, “환경의 파괴로 그들의 터전이 사라진 때문”이라고 질문을 통해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시적 화자의 생명의 위기를 “혹시 꽃들이 기다림에 지쳐 다 져버린 것은 아닌가/꽃들도 꽃 피우기를, 수정되기를 애초부터/다시 시작해야하지 않는가/충매화들도 서서히 풍매화가 되거나/자가수정으로 방식을 바꾸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마침내 교과서나 박물관에 가서야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가/아, 꽃이 없어도 벌나비가 없어도 봄은 봄인가/봄은 오고 가는가”라고 나비와 벌이 사라져버린 끔찍한 지구의 봄을 상상하고 있다. 아니 ‘나비와 벌이 날아다니는 봄이 오고 있기나 하는가’라고 비탄에 빠진 어조로 절망하고 있다.

시인은 시제를 ‘간단한 질문들’이라고 하였다. 시제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그것은 자연을 재화적 가치로 인식하여 무분별하게 훼손한 근대를 지양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세계를 꿈꾸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하면 생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생명의 연속성을 통해 생명체들이 진화하여 오늘의 생명체계를 이루었다. 생명의 연속성은 그 근간에 ‘사랑’이 전제된다. 상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것에 대한 사랑이 가장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이다.

나비 두 마리가
꼼짝하지 않고
마주 보고 앉았네

맞수끼리 앉아
초읽기 바둑을 두는 듯
벌써 몇 시간째 그러고 있네

사랑은 전광석화처럼 오는 것
그러나 사랑은 천천히 천천히 다가서야
오래 가는 것
저들은 이미 꿰뚫어 아는 것 같네
목숨처럼 간절한 저들의 사랑 앞에
천방지축 날뛰기나 하는 세속의 눈을
삼가 감아야 하리니

햇살이 호올로 눈부시네
- 「부처나비」 전문

시적 화자는 부처나비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꼼짝하지 않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맞수끼리 앉아/초읽기 바둑을 두는 듯” 하다. 암수 두 마리가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사랑은 전광석화처럼 오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천천히 천천히 다가서야/오래 가는 것”이라는 사랑의 원리로 “저들은 이미 꿰뚫어 아는 것 같”다고 여긴다. “천방지축 날뛰기나 하는 세속”적인 사랑은 쉽게 식기 마련이어서 천천히 다가가기 위해, 그래야만 진정한 사랑이고 오래 가는 것이라는 사랑의 본질을 한갓 미물들에게서 발견한다. 쉽게 만난 사랑이 쉽게 등돌리고 마는 요즘 인간의 사랑법에 대한 성찰을 “목숨처럼 간절한 저들의 사랑”에서 깨닫는다.

이렇듯 일회용으로 소비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을 시인은 「칼을 뺐으면 호박이라도 찔러라」에서 밤새 우는 풀벌레 소리에서 발견한다. “시를 써도 저리 열심히 써야/절편이 나올 것이”라며 “사랑을 해도 저리 끈질겨야/마음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시인은 “찌르르르/찌르르르” 밤새 우는 풀벌레들의 구애소리를 간절하고 진실된 사랑의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위대한 생명성의 발현은 모성성에서 볼 수 있다. 그것을 노래한 「독을 품은 결기」에서 탐구하고 있다.

그 순한 감자가
보관만 잘 하면 겨울을 넘어
봄까지도 만만한 반찬거리나 요깃거리가
되어주는 감자가

오, 조심하여야 하느니
싹이 돋으면 그 눈에 독을 품는다

푸르게 일어서는 산처럼
시퍼렇게 독이 오른 것들을 보라

제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리는 어미처럼
새로운 생명,
싹을 돋우어내려는 그 결기에
그만한 마음 품지 않겠는가

새로운 시작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빨 악물고 결연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이미 감자는 알고 있었느니

오늘은 감자가 선생이다
- 「독을 품은 결기」 전문

감자는 예로부터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 먹었던 구황작물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생명력이 끈질기다. 이러한 감자의 생태적 특징을 간파한 시인은 “싹이 돋으면 그 눈에 독을 품는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푸르게 일어서는 산처럼/시퍼렇게 독이 오른 것들을 보라”고도 한다. 감자는 햇빛에 노출되면 멍든 것처럼 파랗게 변한다. 그리고 싹이 돋을 때 푸르다. 시적 화자는 ‘독이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 독은 “제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리는 어미”가 “새로운 생명,/싹을 돋우어내려는 그 결기에/그만한 마음 품”는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새로운 시작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이빨 악물고 결연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이미 감자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생명을 지키려는 어미의 모성성을 노래한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감자로부터 생명성을 깨달았다며 “감자가 선생”이라고 말하기에 이른다.

모성성을 간파한 작품 「새 대가리란 말은 없어져야 한다」에서 “물떼새 어미가 뙤약볕에서 놀던 새끼들에게/양 날개를 활짝 펼쳐 그늘을 만들어 주는” 사진을 통해 포식자들로부터 새끼를 지키려는 어미의 지극한 모성성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집게벌레의 사랑」에서는 부화한 새끼들에게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놓는 지독한 자식사랑을, 「가장 위험한 동물」에서는 “가장 위험한 동물”은 “새끼 있는 어미”라고 말함으로써 생명성을 옹호하려는 시적 화자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생명성을 노래한 작품으로는 「지네발란처럼」이 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이 계속되어도/뿌리를 뻗고 꽃을 피우는 지네발란이/바위 위를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서야” 사랑의 방법을 알았다는 시적 화자의 고백은 생명성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거저리」에서는 나미브 사막에서 살다가는 딱정벌레가, 300m 높이의 정상에 올라가 물구나무를 하는데, 몸에 안개가 붙게 하여 물을 얻는 방식이다. 건조하고 물이 없는 뜨거운 사막에서 살아가는 딱정벌레는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마음 아파도/차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묘파함으로써 끈질긴 생명에의 의지를 드러낸다.

「기다릴 줄 아는 힘」에서는 탈피동물의 생태를 통해 성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껍질을 찢고 나오는” 시간, “날개를 말리는 순간” 등이 지루하고 위험하기도 하지만 “빨리 탈피하지 못한다고/애닳아 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기다리지 않고 이루는 것들은//다 생명이 짧”기 때문이라고 한다. 완전한 생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위험하지만 시간과 인내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5.
김영천 시인의 시집 『아직도 사람을 믿는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존방식을 시인 자신의 일상에서 깊은 사유로 길어올리고 있다.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 등의 그늘을 비판과 성찰을 하면서도 건강한 삶을 모색하는 그의 시편들은 궁극적으로 유토피아를 지향한다. 주지하다시피 유토피아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 그럼에도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것은 보다 나은 세계를 바라보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힘이 시인의 책무인 까닭이다. 시집의 한편에서는 노년에 이른 소회를 다양하게 변주한다. 자신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고 인식하는 태도가 매우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깨달음은 물론 성찰과 통찰의 메시지를 통해 삶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특히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생로병사의 한 과정으로 인식함으로서 ‘병’에게조차 연민을 갖는 태도는 진중한 해학은 물론 영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김영천 시인의 주목되는 시적 경향인 생명성 탐구의 시편들은 지구환경의 위기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생명의 본질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불어 그의 생명시학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은 실존방식에 대한 진중한 사유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값져 보인다. 남도의 항구도시 목포에서 한국시의 지형을 확장시키는데 공을 들여온 김영천 시인의 시편들은 형식에 있어서도 독자친화적이다. 최근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우리 시들이 지나친 난삽과 굴절우회로 서정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를 지양하고 독자들에게 쉽게 접근하면서도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어 참으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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