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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세상의 모든 어미들 세상의 모든 어미들 너만 괜찮다면 님아, 그 날처럼 거울에 비친 시간을 읽다 너에게 물들고 싶다 붉은 흉터 자리 한번쯤 붉어도 된다 당신을 향해 피운 꽃 사람들은 모두 연꽃으로 산다 바다로 가는 꽃 환상 구겨진 왕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시나무 머리 위에서 제2부 밉게 생긴 꽃 밉게 생긴 꽃 둥근 물음표 그 향기로 일어서는 뒤돌아 보아야 피는 팽목항 개나리꽃들 황무지에 휘날리는 깃발 그러므로, 이 한 송이 울타리에 기대어서 붉은눈물로 지는 잔향殘香만리 여신의 이름으로 지워진 노래 할머니 꽃 영원이란 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백년손님 오시다 해탈을 기다리는 돌담 집 배가 열렸다 꽃 지듯 가거라 제3부 도라지꽃이 불경일 때가 있었다 도라지꽃이 불경일 때가 있었다 먼 길을 갈 때 불두화가 피었다 그 곳에서 걸음을 멈쳤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 길에서 만난 비구승 같이 앉아서 멀리 보는 그 동창생 생각이 났다 그녀의 성형 비밀을 알고있다 접시꽃이 피던 날 엽서보다 짧은 편지를 썼다 찔레꽃 하얀꽃 환하고 붉었던 기억 꽃이 피었습니다 거기, 할미꽃이 피었다 시인꽃 제4부 섬 보다 느린 여자 어떤 수행 멍이들다 不法 그리고 佛法 어머니의 공空 절간 진순이네 집 섬보다 느린 여자 섬의 언덕 민낯 푸른학당 실수 비닐하우스 화원 일상들 여사님의 운전면허증 제5부 수평선에서 몸을 섞다 수평선에서 몸을 섞다 참, 철없는 바람 돌하르방 유책사유자 벌거벗은 임금님 피노키오 코에 촛불을 너에게로 가는 길 여우와 두루미의 합창 밤골댁 육남매 해남에 살으라 한 뼘 시詩 농사 도내기 시장에 꽃이 피면 간이역 가는 날 가당키나 하는 일입니까 뱃지 단 사람들 원룸 그, 큰 살림 작품론 서정과 서사 사이에 꽃이 핀다 / 강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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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괜찮다면
너에게 빠져도 될까 너만 괜찮다면 너 따라 가버려도 될까 양지뜸 소나무 숲 언덕배기 툭 트인 들녘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싶다 사랑하는 이여 너만 괜찮다면 명함도 문패도 아무 소용없이 세상에서 가장 순한 얼굴로 흔들리며 서 있고 싶다. ---「너만 괜찮다면 - 들국화」중에서 님아, 그 날처럼 구이저수지에 겁 없이 달빛이 뛰어들까 모악산 이슬 밭에 풀벌레 소리 내던 달맞이꽃 피었을까 달맞이 꽃처럼 바라보던 우리가 모악산 달빛처럼 저물고 있는 시간 이제는 고백해도 될까 님아, 그 날처럼 그리움이 꽃이 된다는 전설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의 고백이 달맞이꽃처럼 주름진 이마를 짚어주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당신 뜰에서 피었다 석양처럼 저물어 가고 모악산 저수지의 달빛이 그리움이 되는 날 우리 달맞이꽃으로 피어 먼 데를 바라볼 수 있을까. ---「님아, 그 날처럼 - 달맞이꽃」중에서 백일기도 입재에든 배롱나무꽃 환하게 불을 켰습니다 사평들녘이 벌겋게 불길에 휩싸이고 아스팔트가 검은 땀을 흘려 내리고 채석장 노역의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주암댐 매운탕 뚝배기가 팔팔 끓어오르는 것도 배롱나무 꽃이 불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배롱나무 꽃에 달궈진 차량 몇 대 숲정이에 멈춰서고 들녘은 꽃잎을 물고 여름을 넘습니다. 몸을 태워 들녘을 익혀온 배롱나무 회향길에 오르고 우리들도 제 시간에 떠나온 날들만큼의 돌아갈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시간을 읽다 - 배롱나무꽃」중에서 우리 서로에게 얼마큼 물들었을까 얼마큼 몸을 섞어야 지워지지 않은 꽃물이 들까 지워지지 않는 지문이 될 수 있을까 첫 눈이 봄 눈의 옷을 갈아입고 난 뒤에야 우수의 비가 내린 밤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봉숭아꽃이 피었어 다음 생에도 너의 첫사랑으로 물들고 싶다. ---「너에게 물들고 싶다 - 봉숭아꽃」중에서 내게도 만나지 못한 사랑하나 있었지 내게도 속절없이 보내야 했던 사람 하나 있었지 주홍글씨로 저물어가는 붉은 흉터 하나 남았지 그리움 노을 진 자리 마음 먼저 타 오르다 기다림으로 새겨진 붉은 흉터자리 하나 남았지. ---「붉은 흉터 자리 - 상사화」중에서 내 생은 사시사철 불을 지펴도 이름 석 자 기억하는 사람 몇 안 된다 다소곳한 우리 언니도 너 만나러 봄바람 따라 산에 오르던 날 입술에 붉은 끼 잔뜩 칠해 놓았지 선비 같은 우리 집 남자 너 만나러 영취산에 가는 날 거울 앞에 은빛 모자가 나와 있었지 내게도 사월이 다녀갔었다 누군가 한 번 쯤 설레었겠지 누군가 그리움에 물들었겠지 바위틈 절벽 생솔가지에도 봄물이 들면 진분홍 진달래 속을 헤매어도 볼 일이다. ---「한번쯤 붉어도 된다 - 진달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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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론
서정과 서사 사이에 꽃이 핀다- 이경은 시집 『꽃들에게 길을 묻다』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이경은 시인의 시는 서정과 서사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첫 시집 『둥근 초록을 쓰다』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 시집 『꽃들에게 길을 묻다』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주지하다시피 서정시는 감정을 형상화시키는 ‘서정성’을 통해 노래하는 문학형식이다. 그런데 이경은 시인의 시집은 유독 서사구조를 지녔다. 인간에게 서사敍事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어 마침내 죽어서야 그것을 완성한다. 이경은 시인의 시집은 시인의 시적 자아를 통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풀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꽃들에게 길을 묻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꽃’이라는 기표를 통해 꽃이 지닌 사물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앞에서 밝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서사를 이입시키고 해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이경은 시인의 시는 생명성 탐구 시편에서 환호작약하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통해 생명성을 고양시키고, 사랑 시편에서는 꽃이 지닌 의미를 애틋함과 그리움의 감각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불교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시편에서는 시적 대상들에게 불교적 세계관을 묘파하고, 현실을 내밀하게 반영한 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지닌 그늘, 즉 모순과 부조리함을 비판과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2. 생명성은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 대상인 자연과 인간 존재의 존재성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흔히 고금의 많은 시인들은 자연의 생태적인 특징을 시 속에 끌어들여 자연의 아름다움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인간 또한 자연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시련에서도 이를 극복하며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한다. 더불어 생태학적 상상력의 시편들은 주로 ‘꽃’을 시적 제재로 삼아 꽃이 지닌 생명성을 인간의 삶에 대입시켜 시인만의 상상력을 발현하고 있다. 이때 시인은 주로 전자의 경우보다 후자의 시세계를 형상화시키고 있다. 형이상학적 시세계를 드러내는데 주력하고 있어 높은 지경의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교문을 나서던 그날처럼 줄지어서 피었다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 기지개를 켜는 산기슭 돌담 집 울타리 밑 집에 가는 길가에 노랗게 피었다 가다보면 피어있고 고개 들면 보이는 꽃 꽃을 달았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서울사람도 땅 끝 사람도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삼백네 그루 돌아오너라! 돌아오너라! 해마다 개나리꽃 피듯이 잊지 않고 기다릴게 개나리꽃 피어라 팽목항 개나리꽃들 언제까지 피어라. - 「팽목항 개나리꽃들 - 개나리꽃」 전문 서정시는 기표 이면에 기의를 숨겨놓는다. 이 작품에서 내세운 기표는 ‘개나리꽃’이다. 시적 배경은 2014년 4월 18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해양사고이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다가 희생된 안산고등학교 학생들과 승객 299명이 목숨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승객은 안산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이 작품은 세월호 침몰사건이 발생한지 오랜 세월이 흐른 시점에 써졌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교문을 나서던 그날처럼/줄지어서 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집에 가는 길가에 노랗게 피었다”고도 한다. 꽃피움의 대상은 ‘개나리꽃’이다. ‘개나리꽃’의 기표는 세월호에 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을 함의한다. 죽은 학생들의 기표이면서도, 그들을 위로하는 시적 대상인 ‘개나리꽃’을 온 나라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원통한 죽음을 기리고 잊지 않기 위해 “꽃을 달았다” 온 나라 사람들에게 충격과 슬픔, 그리고 공분을 일으킨 이 참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어린 학생들은 떠나갔지만,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잘 알면서도 “돌아오너라!”고 시적 화자는 외친다. 그리고 “잊지 않고 기다릴게/개나리꽃 피어라”라고 절규한다. 며칠째 개가 짖어 댄다 울먹이는 매화꽃을 보았나보다 초경 같은 꽃망울이 맺혔다 어머니 치마폭 같은 매화향이 현덕사 범종소리 따라 새인봉을 넘어가고 동적골 도랑물이 꽃잎 띄운 수반으로 변했다 이른 봄날, 동적골에는 매화꽃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 「잔향殘香만리 - 동적골 매화」 전문 「잔향殘香만리」는 광주의 무등산 계곡에 있는 동적골에 핀 매화꽃을 시인의 해석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첫 연은 매우 함축적이다. “며칠째 개가 짖어댄다”고 하는 서술은 어떤 사건을 암시한다. 이 작품에서는 “울먹이는 매화꽃을 보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시인은 의인화법을 통해 개가 ‘울먹이는 매화꽃을 보았나보다’라고 짐작하게 한다. 하필 인간이 아닌 개짖음으로 매화꽃의 존재를 알리는 것일까. 이는 매화꽃이 피고, 매화꽃 향기로움으로 가득한 동적골을 형상화시키기 위함이다. “이른 봄날, 동적골에는/매화꽃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시인의 상상력은 매화꽃의 향기로움으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것이 화자의 주된 메시지이다. “초경 같은 꽃망울” “매화향이” “현덕사 범종소리 따라 새인봉을 넘어가고” “동적골 도랑물”에 “꽃잎 띄”워져 있는 것 등은 매화꽃 향기 분분한 동적골의 봄날을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그려낸 것이다. 봄날의 환희와 생명의 환호작약을 짧은 형식으로 잘 보여준다. 앞의 두 작품은 세월호의 비극성과 봄을 알리는 표지로서의 매화꽃을 통해 생명성을 상반되게 그려냈다. 즉 ‘개나리꽃’과 ‘매화꽃’이라는 봄에 일찍 꽃을 피우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전혀 다른 해석으로 ‘꽃’이라는 기표 이면에 투사된 서사를 형상화하였다. 「접시꽃이 피던 날」은 ‘접시꽃’ 뿌리와 장닭을 고와 주었더니 “손 귀한 집 마당 앞에/사내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함으로써 ‘접시꽃’이 생명의 근원이 되었음을 아낌없이 그려냈다. 특히 이 작품은 “손 귀한 집 마당 앞에” “접시꽃이” 핀 형상을 통해 ‘접시꽃’과 ‘사내아이’를 동일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나 「황무지에 휘날리는 깃발」에서는 ‘개망초꽃’을 ‘노동자’ ‘청년’으로 은유화시키고, 더불어 ‘짓밟혀도 일어서’는 민초의 모습으로 의미화 하였다. 뿐만 아니라 “풍년을 희망하는 개망초꽃” “황무지를 지키”는 존재로 나타냄으로써 저항과 극복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배가 열렸다」에서는 시적 소재를 ‘배꽃’으로 취하였는데, “십년 난임 부부도/배꽃밭에서 돌아와//둥그런/배가 열렸다.”고 한다. 즉 ‘배’는 과일의 열매이면서도 난임 부부가 아이를 잉태한 것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각적으로 ‘배’와 ‘임산부의 배’가 지닌 시각적 이미지 ‘둥그럼’이 생명의 표상이 되고 있다. 3. AI는 감정이 없다. 그러나 미래에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지 모른다. AI는 인간이 만든 기계일 뿐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감정을 소통의 방식으로도 쓰인다. 그러므로 감정 또한 하나의 언어이다. 인간의 감정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표출하는 애틋함과 살가움, 그리고 분노와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나타낸다. 그 중에서도 사랑의 감정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따스한 감각이다. 사랑은 온유, 연민, 때로는 슬픔의 감정을 지닌다. 그리고 그리움의 정서로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공동체는 질서와 생명의식으로 더욱 끈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인류의 문학사에서 ‘사랑’을 노래한 수많은 작품들이 쓰여졌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따스한 마음을 드러내는데 ‘사랑’이 기제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꽃’을 소재로 한 사랑의 시편을 많이 노래하는 까닭은 ‘꽃’이 부드럽고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꽃을 소재로 한 시편이 많은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 특유의 상상력을 통해 시적 감각과 메시지를 드러낸다. 우리 서로에게 얼마큼 물들었을까 얼마큼 몸을 섞어야 지워지지 않은 꽃물이 들까 지워지지 않는 지문이 될 수 있을까 첫 눈이 봄 눈의 옷을 갈아입고 난 뒤에야 우수의 비가 내린 밤이 지나가고 난 뒤에야 봉숭아꽃이 피었어 다음 생에도 너의 첫사랑으로 물들고 싶다. - 「너에게 물들고 싶다 - 봉숭아꽃」 전문 이 작품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시인 자신의 목소리로 상상력을 발현하고 있다. 담장 아래에 핀 봉숭아꽃잎을 찧어 열 손톱에 싸매어서 물들이면 첫사랑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내 누님들도 그랬다. 그러므로 봉숭아꽃을 바라보는 처녀들의 시선은 애틋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 “얼마큼 몸을 섞어야/지워지지 않은 꽃물이 들까”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살펴본다. “첫 눈이 봄 눈의 옷을 갈아입고/난 뒤에야//우수의 비가 내린 밤이 지나가고/난 뒤에야//봉숭아꽃이 피었”다. 즉 봉숭아꽃이 아무런 시련없이 쉽게 피운 것이 아니라 춥고 눈 내린 겨울을 견디고, 비가 내린 밤이 지난 후에야 꽃을 피울 수 있었음을 상기한다. 이 작품은 시련을 극복한 후에야 만나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다음 생에도/너의 첫사랑”이 되고 싶다고 한다. 더불어 “우리 서로에게 얼마큼 물들었을까”라는 물음은 시적 화자와 봉숭아꽃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일이 가치있고 의미있는 참된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님아, 그 날처럼 구이저수지에 겁 없이 달빛이 뛰어들까 모악산 이슬 밭에 풀벌레 소리 내던 달맞이꽃 피었을까 달맞이 꽃처럼 바라보던 우리가 모악산 달빛처럼 저물고 있는 시간 이제는 고백해도 될까 님아, 그 날처럼 그리움이 꽃이 된다는 전설을 지킬 수 있을까 우리의 고백이 달맞이꽃처럼 주름진 이마를 짚어주는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당신 뜰에서 피었다 석양처럼 저물어 가고 모악산 저수지의 달빛이 그리움이 되는 날 우리 달맞이꽃으로 피어 먼 데를 바라볼 수 있을까. - 「님아, 그 날처럼 - 달맞이꽃」 전문 ‘달맞이꽃’을 시적 소재와 더불어 시적 대상으로 삼은 이 작품은 달맞이꽃이 지닌 의미를 시 속에 차용하여 변용하고 있다. ‘님’은 시적 화자가 바라보는 대상으로, 화자는 시적 대상에게 “ ~을까”라는 어미가 말해주듯 시종 물음을 던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 날”은 “구이저수지에 겁 없이 달빛이 뛰어들”었던 일이다. 즉 달빛이 저수지를 비추는 밤이다. 달맞이꽃은 이름이 말해주듯 달만 바라본다. 그러므로 달을 사모하는 꽃이 달맞이꽃이다. 달빛이 내리는 모악산에 이슬이 내리고 풀벌레가 우는 밤, 달맞이꽃이 피었을 것이다. 그런 밤 사랑하는 이와 한때를 보낸 화자는 “이제는 고백해도 될까” 하고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은 “내가 당신 뜰에서 피었다 석양처럼 저물어” 가기를 바라고, “우리 달맞이꽃으로 피어 먼 데를 바라볼 수 있”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즉 달맞이꽃과 달이 서로 바라보는 것처럼 서로를 그리워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작품에서의 사랑은 그리운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사랑을 노래한 시편으로는 「붉은 흉터 자리」가 있다. 이 작품은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만나지 못하는 사랑을 파헤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만나지 못하는 사랑 하나 있었지”라고 고백한다. 꽃과 이파리가 함께 자라지 못해 꽃피운 후 이파리가 자라는 상사화의 생태를 ‘붉은 흉터’로 표현하고 있는데, 서로를 그리워했던 화자의 지나간 사랑을 형상화하고 있다. 튤립꽃을 소재로 한 「환상」은 튤립꽃의 이미지를 “황진이 치마폭”으로 비유하고 있다. 치마폭을 펼치자 “사내들이 몰려왔다” “그녀의 입술이” “바닷가에서 술렁거린다” “끈 풀린 속적삼” 등에서 알 수 있듯 에로티시즘적 감각으로 그렸다. 그러자 “십 년을 면벽수행한 지족 선사도/마침내 선방에서 뛰쳐나왔다”며 다소 과장된 화법을 구사하였지만 ‘황진이 치마폭’ ‘끈 풀린 속적삼’으로 표현하여 작품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구현하고 있다. 「당신을 향해 피운 꽃」은 “생을 바쳐 이룬 작은 연못에” “오욕에 물들지” 않은 것의 상징인 연꽃의 향기로움을 통해 품격 있는 꽃으로 형상화시켰다. 4. 조선시대에 억불숭유정책으로 사찰들은 대부분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부처를 영험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많은 전설에서도 시주 온 스님을 박대하여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불교를 탄압하던 시대에도 불교를 구원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민간에서는 불교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경은 시인 또한 산중의 절간에 출입하는 사람으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유난하다.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 총체성은 그 사람의 삶에서 연유하기 마련이다. 불교적 사상이 이경은 시인의 총체성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사고思考와 행동에는 불교적 상상력이 작용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그의 시에서도 불교적 세계관이 투사되어 있다. 이런 까닭에 그의 작품은 시적 배경이 사찰이거나 불교와 관련된 것이 많다. 돌담은 왜 그리 높은가 지붕은 왜 그리 넓은가 범종은 왜 그리도 무거운가 산문 밖 그리움 막으려 했구나 마디마디 옹이진 사연 돌아 앉으려 했구나 이고 지고 온 짐들 벗어 놓고 오라 했구나 세상만사 번뇌를 버리라고 했는가 얽히고설킨 인연 끊으라고 했는가 세상과 한 발 멀어 조용하고 싶어 했는가 세상보다 한 뼘 깊어 보이려 했는가 눈빛 휘둥그런 소녀의 합장도 술 젖은 설법으로 침을 튀기는 처사도 고춧가루 삼킨 삿대질을 일삼는 보살도 마른침 삼켜 침묵을 달래는 공양주도 업장의 성적표 부처님 앞에 올려놓고 절간에 와서 고하라고 했는가 뜬구름 고인 마당 안에 들라 하였는가. - 「절간」 전문 서정시에서 장소성 및 공간성은 그것이 지닌 고유함을 나타낸다. 이 작품에서의 공간성은 절간이 함의하는 여러 가지 질문이 배태되어 있다. 즉 “돌담은 왜 그리 높은가/지붕은 왜 그리 넓은가/범종은 왜 그리도 무거운가”라고 의문형 질문을 이끈다. 이러한 질문은 “산문 밖 그리움도 막으려 했구나/마디마디 옹이진 사연 돌아 앉으려 했구나/이고 지고 온 짐들 벗어 놓고 오라 했구나”라고 대답을 하게 된다. 대구형對句形으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이다. 불교라는 종교가 무엇인지를 묻고 스스로 답을 구하는 형식의 이 작품은 불교의 형식을 나타내는 ‘절간’이 지닌 공간성에 대한 구체적인 의미를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절간’으로 형상화시킨 불교라는 종교의 정체성을 묘파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산중에 많이 있는 불교사찰은 세속적 번뇌를 버리는 곳, 세상과는 지리를 둔 공간이면서도 “세상보다 한 뼘 깊은 곳”이다. 이곳에는 소녀, 처사, 보살, 공양주 등 세속의 사람들이 자신의 업장業障을 부처님 앞에 올리기 위해 절간을 찾게 한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절간을 찾는 일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휴머니즘적인 관점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진순이네 집」은 신앙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절간의 짐승인 개가 되고 있어 이채롭다. 모시적삼에서 매미 날개 펴는 소리가 났다 누구도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없다 묵언수행 중임을 짐작할 뿐이다 표고버섯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우산을 펼쳐 놓은 모습이라고도 생각하는 적단풍나무 아래 그녀가 산다 범종소리가 새벽안개를 일으키는 도량을 씻겨내는 목탁소리 위에 이슬이 내리는 반송나무 살결이 매끄러운 뜰이 넓은 집 능소화가 까치발로 그리움 삭혀내는 후원보살도 시자보살도 지혜보살도 목소리 낮아지는 무심한 눈빛에 부처님도 빗장을 푸는 묵언보살 진순이가 사는 집 삼시세끼 반야심경 공양을 삼아 세상 업보 풀어내어 회향을 기다리는 집. - 「진순이네 집」 전문 절간에 스님들이 키우는 개 한 마리, 이름이 진순인 것을 보면 암컷인 것 같다. 개는 짓는 것 말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묵언수행한다고 짐작한다. ‘진순이네 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시적 화자가 개를 스님들과 동격으로 보는 시선을 알 수 있다. 새벽 안개 속에 스님들의 예불에 목탁소리가 청아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진순이는 하루 종일 말이 없다. 이러한 진순이를 지켜본 시적 화자는 진순이를 묵언보살이라고 부른다. 진순이네 집은 “세상업보를 풀어내어 회향을 기다리는 집”이다. 지금껏 쌓은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서 구호를 기다리는 집, 진순이네 집은 구원의 집이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을 “세상 업보 풀어내어/회향을 기다리는 집.” 절간을 한낱 무심한 짐승의 집이라고 하는 시적 화자의 마음을 통해 스님들과 짐승인 개가 동일성을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개를 개라고 하지 않고 묵언보살로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깊은 불심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밖에 불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품 「도라지꽃이 불경일 때가 있다」에서는 가야산 능선에 핀 도라지꽃밭에서 스님이 경을 외우고 시적 화자는 도라지꽃을 꺾어 극락전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처님이 좋아할 것 같은 마음을 읽는 시적 화자에게, 그러므로 도라지꽃은 경전으로 보인다 하고 있다. 「그 향기로 일어서는」은 그저 청류암 풍경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길게 뻗은 은행나무가지, 새벽에 일어난 새들의 지저귐, 대웅전 가득한 옥잠화 향기, 세수하는 청설모, 이슬을 털고 암자에 오른 보살은 아침밥을 짓는다. 그리고 옥잠화 튀김이 밥상에 올라오자, 옥잠화를 먹은 입안이 향기롭다. 이렇듯 시인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이 작품은 온갖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통해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불교신앙이 바라보는 지점이 바로 이러한 풍경일 것이다. 「不法 그리고 佛法」은 ‘不法’과 ‘佛法’의 동음이어 사이의 의미를 묘파한 작품이다. “내가 알기는 불법不法인데/당신은 자꾸 불법佛法이라” 한다고 전제하고, ‘不法’과 ‘佛法’을 논함으로써 결국 부처님의 말씀을 이야기한다. 5. 광주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에 송수권 시인은 필자에게 “오늘처럼 금남로에 최루탄 냄새가 질퍽한 날 길거리에 나가야 하는가? 아니면 밀실에 들어가 서정시를 써야 하는가?”라고 물은 일이 있다. 그 무렵 그는 현실참여 시집 『아도』를 쓰고 있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시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를 리 없는 송수권의 이른바 “시인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사례는 시인의 현실참여를 말한다. 전통서정시를 쓰는 시인일지라도 현실의 폭력이나 사회적 사건 앞에서는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인은 낮고,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물론,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다양한 사건에도 특유의 촉수를 들이내밀고 인간의 위의를 옹호하는데 힘써야 한다. 그것이 시인의 운명이며 책무이기 때문이다. 이경은 시인의 이번 시집의 한편에는 불편한 현실을 풍자하여 비판하는 시편들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정의로움과 인간다움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대부분 서사구조의 형식을 통해 비유의 수사로 진실에 다가가고자 하는 욕망이 엿보인다. 바짝 마른 여자와 코가 붉고 배가 불룩 나온 남자가 이혼을 했다 언젠가는 죽일 놈의 사랑도 했겠지 함께 돌탑도 쌓았을 것 냄새나는 돈만도 못했던 사랑 오포세대 칠포세대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를 포기하고 사랑도 포기한 젊은이들의 현실 앞에서 뉴스는 이들의 이혼을 자랑질한다 무엇을 포기해야 했을까 그러니까 거액의 위자료............... 이 부부가 우리들에겐 유책사유자다. - 「유책사유자」 전문 시인은 사회적 현상을 촉수를 통하여 재빨리 발견하는 사람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혼했거나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자녀를 포기하고, 사랑마저 포기하는 일이 갈수록 빈번해지는 현상을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힘든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들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현실이 개인의 삶을 좌지우지 지배하는 세상이 된 것에 대해 시인은 그 원인이 개인에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사회로 방치한 우리 사회의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진단하고 있다. 가령, 한때는 사랑을 하여 결혼하였지만, “냄새나는 돈만도 못했던 사랑”이라는 시행처럼 결국은 가난한 현실 때문에 사랑이 파국에 이르는 모습을 근원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청년들도 돈 때문에 자신의 삶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러한 현실을 야기시킨 국가를 유책사유자임을 규명한다. 다음의 「여우와 두루미의 합창」은 국가의 최고 권력자 부부를 우화寓話 형식을 빌어 풍자하고 있다. 여우는 두루미의 날개 위에 올라탔다 저 아랫것들을 몽땅 요리해 보리라 무당의 푸닥거리 밥상에 길들여진 여우는 노동자의 눈물과 버림받은 노인과 배고픈 청년과 장애인의 고통과 예술가의 붓을 꺾어 성형과 개명과 조작과 위조와 뇌물로 사들인 식재료를 두루미에게 주었다 두루미는 강한 부리로 큰 식탐을 위한 한상 차림을 꿈꾸었다 오백원짜리 동전 앞에 새겨진 명성과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위세와 큰 덩치의 위협으로 위엄도 세워보지만 겅중겅중 뚜루루루 겅중겅중 뚜루루루 소화가 어렵다 여우와 두루미는 칼 잘 쓰는 요리사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못하는 요리가 없다 뒤집고 지지고 볶고 굽고 삶고 다지고 주무르고 튀기고 썰고 자르고 데쳐서 내팽개치기도 한다 피식피식 후루루루 피식피식 후루루루 헛방귀가 잦다 한강의 물고기들을 다 잡아 가려고 한다. - 「여우와 두루미의 합창」 전문 흔히 ‘여자’를 빗대어 말할 때 ‘여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특하다’ ‘꾀가 많다’는 의미로 쓰여지는데, 이 작품에서는 ‘간사하고 잔재주가 많다’는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우는 두루미의 날개 위에 올라탔다”에서 여우가 두루미의 등에 올라탔으니 날지 못하는 여우에게 날개를 붙여준 셈이다. “저 아랫것들을 몽땅 요리해 보리라”는 여우의 잔꾀는 “노동자의 눈물과 버림받은 노인과 배고픈 청년과 장애인의 고통과 예술가의 붓을 꺾”는 요사스러운 짓을 한다. “무당의 푸닥거리 밥상에 길들여진 여우” “성형과 개명과 조작과 위조와 뇌물”이 암시하는 것은 온 나라를 들썩이는 일련의 국정농단을 연상시킨다. 두루미는 “강한 부리로 큰 식탐을 위한 한상 차림을 꿈꾸”는 존재로 “큰 덩치의 위협으로 위엄도 세워보지만” “소화가 어렵다”. 이 작품에서 여우와 두루미는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는 권력을 남용하는 자들의 모습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헛되고 부질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칼 잘 쓰는 요리사를 고용”했다. 이솝의 우화를 보는 듯한 이 작품은 ‘한강’으로 상징되는 ‘나라’의 “물고기들을 다 잡아 가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여우와 두루미가 누구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것들의 기표 뒤에 숨은 기의의 의미를 잘 떠오를 수 있게 하여, 권력자의 어리석은 욕망을 비판적인 목소리로 풍자하고 있다. 현실의 이면을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 중에 「벌거벗은 임금님」은 옛 이야기의 형식을 가져와 권력자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시적 화자는 “정신이 돌아오거든/한 말씀만 해 주시라/임금님은 거울도 안 보고 사느냐고,” 묻는다. 권력자인 임금님은 제 정신이 아니어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추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기를 충고하고 있다. 「피노키오 코에 촛불을」 또한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여우와 고양이’가 시적 대상이다. 그들은 “자유와 공정을 훔쳐/인형의 콧대 위에서 놀며/발광”을 한다. “자유와 공정”을 훼손한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면서, “컨닝으로 차지한 학위” “무당을 불러들”인 행위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올바르지 못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을 시적 화자는 ‘피노키오’로 나타내는데, 주지하다시피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에 빗댄 것은 거짓말을 일삼고 있어 진실하지 못함을 비판하고 있다. 「가당키나 하는 일입니까」는 시제에서부터 시적 화자의 격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딩크족, 욜로족, 서울집값, 아이 대신 개 입양, 개판이 함의하는 것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 결혼했어도 아이를 낳지 않는 세태, 서울에서 집을 사는 사람만이 능력자라는 우리 사회가 매긴 인간의 가치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왜곡된 현상들이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 시적 화자는 “가당키나 하는 일입니까” 하며 비판적인 목소리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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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는 감정을 형상화시키는 ‘서정성’을 통해 노래하는 문학형식이다. 그런데 이경은 시인의 시집은 유독 서사구조를 지녔다. 인간에게 서사敍事는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어 마침내 죽어서야 그것을 완성한다. 시인의 시적 자아를 통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해석하며 풀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꽃들에게 길을 묻다』의 또 하나의 특징은 ‘꽃’이라는 기표를 통해 꽃이 지닌 사물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앞에서 밝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서사를 이입시키고 해석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러한 이경은 시인의 시는 생명성 탐구 시편에서 환호작약하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을 통해 생명성을 고양시키고, 사랑 시편에서는 꽃이 지닌 의미를 애틋함과 그리움의 감각으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불교적 상상력을 드러내는 시편에서는 시적 대상들에게 불교적 세계관을 묘파하고, 현실을 내밀하게 반영한 시편에서는 우리 사회가 지닌 그늘, 즉 모순과 부조리함을 비판과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 강경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