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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
조선의
시와사람사 2025.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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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초기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운주사 석불좌상
옹이의 독백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
경쟁과 각축
대추 한 알
부석사 목어
이제 나를 누구냐고 묻습니다
벚꽃 외상
회전문
정리해고
무장무장 깨어나는 월출산
공갈빵
무골의 뼈
뺄셈에 능숙한 어머니

제2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창밖의 헤테로토피아
서창 노을
아라비카
삼각형 굴리기
친밀한 나와 막연한 無我
땡감
따로 또 둘이서
배타적 양면성
지문꽃 메밀꽃
우수한 건망증
박과 달
말맛 살구
살얼음
백련사 백일홍
친밀한 항쟁

제3부

생의 회문
선운사 꽃무릇
고공 이사
봄까치꽃
불갑사 꽃무릇
마지막 객지
꽁지발 보리밭
먼 길 가깝게 죽녹원
무각사 홍매화
꼬리를 감추는 사유
내 마음의 간이역
리셋 버튼
목련꽃, 날다
파수꾼
생존전략

제4부

연리지
광풍각
장마전선
양파 싹
좀 성의 있는 딴청
눈싸움
목구멍의 힘
일교차에 걸려든 감기
사라진 얼굴
장바구니
어쩌자고 눈치코치
빗나가는 예감
현타
안전하게 고립되는 마임
천지연폭포
계단 노마드

저자 소개 1

조경섭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기독신춘문예 당선, 미션21신춘문예 당선, 시사불교신춘문예 당선, 송순문학상, 김만중문학상, 거제문학상, 신석정촛불문학상, 백교문학상, 등대문학상, 안정복문학대상, 남명문학 전체대상, 치유문학상 전체대상, 상상인 작품상, 봉황대 마타리문학상 전체대상, 꽃다리문학상 대상 등 수상 시집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 外 9권 저서 『생명의 시 1~6』, 『어디론가 사라진 순간』 등 ·담양문화원 시창작 강사 ·시꽃피다 광주 시창작 강사 ·유심 아카데미 시창작 강사 ·시꽃피다 전북지역 시창작 강사 ·화순문협 시창작아카데미 강사 ·5·18교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기독신춘문예 당선, 미션21신춘문예 당선, 시사불교신춘문예 당선, 송순문학상, 김만중문학상, 거제문학상, 신석정촛불문학상, 백교문학상, 등대문학상, 안정복문학대상, 남명문학 전체대상, 치유문학상 전체대상, 상상인 작품상, 봉황대 마타리문학상 전체대상, 꽃다리문학상 대상 등 수상

시집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 外 9권
저서 『생명의 시 1~6』, 『어디론가 사라진 순간』 등

·담양문화원 시창작 강사
·시꽃피다 광주 시창작 강사
·유심 아카데미 시창작 강사
·시꽃피다 전북지역 시창작 강사
·화순문협 시창작아카데미 강사
·5·18교육관 시창작 교실
·새만금일보, 호남일보, 담양뉴스 시감상 연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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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204g | 125*200*10mm
ISBN13
9788956658087

책 속으로

실시간 일기 예보에 따라 레이더영상이 바뀐다

후드득 떨어지는 장대비에
다급하게 승용차 트렁크를 열어보니
가지런한 두 개의 우산

양손에 크고 작은 우산을 받쳐 들고
지근거리에 있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내 나름, 뜻밖의 기발한 시도였음에도
꼴좋게 몽땅 비를 맞고 말았다

박쥐우산과 비닐우산이 서로 겹치는 틈을 이용해
돌연 주인을 향해 공격자로 돌변한 것

둘 중 하나의 우산을 포기한 후에야
세찬 빗줄기로부터 안전하게 되었다

무기력하게 한발 물러선 나는
재빠르게 권한 남용을 인정하고
주종 간에 납득할 만한 협의사항을 만들었다

우산의 주권은 사용자에게 있고
비 오는 날에는 오직 하나의 우산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다만 부지중에 분실하기 전까지
규정은 바뀌지 않는다는 내용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는 그치고
멋쩍게 피식 실소를 머금은 나는
낭패한 실패를 접어 트렁크에 보관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배경으로
한순간 착각했던 데이터의 오류를 초기화한다
--- 「초기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중에서


이렇게 오래 죽은 듯 붙들려 살았으니
외로움을 들먹일까

저 못생긴 석불은
지긋지긋한 번뇌를 털어내고자
자신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을까

단단한 돌에서 다 꺼내지 못한 표정이 있는 줄 모르고
지질히 못 생겼다는
뻔한 농담이 귓전을 스친다

까칠한 성질머리가 내 성정이었을까요

왜 아직 거기 있느냐고 아무도 묻지 않는 사이
떠나온 적 없는 과거가 발끝에 머문다

공것처럼 살아온 천년 세월이 그저 황홀하기만 해서
찌꺼기 같은
감정쯤은
불경 속에 묻어두었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내가
미래를 제대로 읽어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

생에 대한 남다른 自覺이 내게 있을까

무엇이 석불의 안면을 심하게 훑고 갔는지
군데군데 윤곽이 뜯기고 껍질만 남은 얼굴이다

두문불출 작심하고 주저앉아
현세와 내세를 무시로 드나들 때
폴짝 건널 수 있는 피안을 잊었을까

생각조차 사치라며 무뇌아의 형상만으로 해탈해버린


영원히
산 자의 무념무상이여
--- 「운주사 석불좌상」 중에서


묵은 계절이 환상돌기를 하면
나무는 가장 높게 우듬지를 치켜세운다

쭉쭉 뻗은 수종들이 순풍을 타는 중에도
병목 지점에서 예기치 못할 변고가 발생했다

태풍에 맞서다 탈골된 가지들이
재개발 플래카드를 휘감고 매미 울음에 너덜거렸다

나이 한 살 더할수록 더 멀리 돌아와야 생기는 나이테

한낮의 폭염은 이스트처럼 부풀고, 발효되는 그림자마다
두근거리는 심장 속으로 표정을 감추었다

은밀한 날들을 밑동으로 흘려보내고
가혹한 자유를 위해 수직의 불안을 견뎠다

뿌리는 물줄기를 찾아 땅속을 헤집어도
한때 생시의 창이었던 옹이는 제자리를 버티고 있다

전력을 다해 몸속으로 자신을 숨기는데 60여 년
살아온 길 어디쯤에서 속앓이의 흔적인 듯 생겨난 옹이

한 걸음도 떼지 못하는 나는 자주 파문을 앓아야 했다
무릎을 꼿꼿하게 펼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났다

머뭇거리며 나를 체념했던 심박수가 아우성쳤다
우지끈 가지가 잘려 나가면, 중심은 늘 아픈 쪽으로 기울었다

임계점을 넘지 못한 내가 망연자실
정신줄을 놓을 때 손 없는 달이 뜨곤 했다

천둥도 어쩌지 못하는 인생길에서
산 옹이에 파고드는 빛이, 차가운 골수에 사무친다
--- 「옹이의 독백」 중에서


파릇한 봄비 그치고
골프장을 감싼 운무도 물러난다

눈으로 짚어보는 숨은 비거리飛距離
충분히 방황했던 기울기와 방향에 집중한다

오늘은 나를 기필코 성공시키세요

타수의
오차를 좁히려고
지금까지 낭비한 스윙을 교정한 후
저 너머 하얀 깃대를 향해 공을 날린다

일말의 가능성도 없이
하고 많은 욕심 중에 내 무모함이 앞섰다

속도가 멈출 때까지 순간을 탕진하는 기대

막다른 곳에서 조급해하는 내 사소한 습관
덜어내려고 남겨둔 여분의 아쉬움은 오래간다

잔디의 마찰계수를 최소화한
둥근 공에는 비딱한 각도가 숨어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너를 놓친 지점까지 날아가고 싶은 나

슬로프의 기운 착시를 건너뛰고
도착할 곳은 여기뿐이라는 듯
누군가 두고 간 애매한 위치에서 간신히 골인된다

이제 좀 설렁설렁 살아도 될 나이인데

한결같이 홀컵으로 빠져들 공이
다 잃고 돌아올 타수를 셈하고 있다
---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 중에서


햇빛이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믿겠습니까

깽깽이풀 위로 댕댕이덩굴이, 꾸지뽕나무 위로 새박덩굴이
전나무 위로 칡넝쿨이 칭칭 감아 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밀리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

치켜세우는 뿔

식물이 동물의 행동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보이지만 수상합니다
이들에게 무슨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을까요
그 흔한 결말조차 보이지 않는데 말입니다

배려하고 양보하고, 조금은 손해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색합니다
누군가 쇠사슬보다 더 강한 덩굴이 되라고 윽박지릅니다

야금야금 허공을 뜯어먹으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찍어 오르는 공중
그야말로 생의 각축장입니다

빛을 찾아 헤매는 촉수들이 도처에 번뜩입니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 막다른 시대를 빠져나오듯
더 높이 솟구쳐
이 세상을 자신의 발 아래 앉히고 싶었을 동물성 식물들

돌이킬 수 없는 맹목과 불신이 내게도 있습니다
인생의 막후였던 자리에
누구라도 받아버릴 것 같은 뿔이 자라났습니다

각자도생했던 생의 페이지를 펼쳐보면
더 오를 수 없는 나는 판판이 깨졌습니다

생존을 위한 전쟁에서 위로 치솟지 못하면 죽고 마는데
경쟁에서 이긴 것만 살리는 햇빛은
이 구역 강자들의 특혜 같습니다

식물도감이 설명하는 나무의 뿔은 승자의 표상입니다
--- 「경쟁과 각축」 중에서


장대로 후리는 대로 털리면 내가 아니지

잡도리 당한 듯한 일방적인 족침

그럴수록 심장은 부글부글 끓고

까무룩 눈이 뒤집혔다

내 비명은 돌이킬 수 없는 자책이 되고 말았다

냉혹하기만 한 현실에서 낭창낭창 달라붙어 있는 대추 한 알

풋풋했던 살과 피를 말리며

무슨 꼴 보려고 지독하게 매달려 있는지

더할 수 없는 극한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가장 아찔하고 위태롭게 바닥으로 떨구는 시선

유독 절망은 나에게 지나치게 친절했다

무작정 가지 끝으로 올라간 자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두들겨 맞을수록 강해지는 맷집

더 맑아지는 고통에, 없는 오기도 생기는 법

몇 번이고 돌풍에 자물치다 살아날 때면 쭈글쭈글 고민만 깊어졌다

오랜 저항으로 단련된 나처럼

서슬 퍼런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긴다

--- 「대추 한 알」 중에서

추천평

진정한 관계의 복원을 위해 자아와 자아, 사물과 사물이 서로 연대하여 서정의 영역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언어에 감성의 최대치를 덧입힌다. 시인은 계속해서 존재의 불안정성을 짊어지고 살아가며 생의 고투를 노래한다. 조선의 시인은 성찰과 발견을 통해 시상을 섬세하게 불러온다. 지속적인 물음에 답하며 자신의 고독한 실존을 끊임없이 명증하려 한다. 조선의 시인의 10번째 시집,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는 이색적인 제목이다. 그 대상이 자신일 수도 있는 정중한 물음이 그것이다. 선험하고 인식했던 존재들은 자유의 공간으로 풀어주겠다는 선언이 아니겠는가. - 강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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