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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도 아닌데 잠 못 드는 밤
창작동인 울
김승강 등저
사유악부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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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악부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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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김승강

피뢰침 끝에 앉은 까마귀
내가 가끔 트로트를 듣는 이유
길 끝에는 양계장이 있었다
뱀의 숲
화장실 수건
먼 벤치 위의 죽음
개에게 길을 묻다
수평선 넘어
골목길을 빠져나와
회를 먹던 가족

정남식

어머니 첫 병
저 혼자 이토록
오래도록 비우고
정진혜 거리
생의 한가운데
십리 대숲에서
살아 풀을 베다
꽃불

임성구

화성의 검劍
힘센 과장법의 밤
공명동굴
눈 깜짝할 사이 시가 지나갔다
맑은 사랑의 시간
밤의 원본 대조필
봄, 청연암에서
놋숟가락, 청꽃 피다
아주 평범한 후회
늦가을, 강진만康津灣 대저택 이야기

이주언

배롱나무
초록 새똥이
이명 2
홍시
흑백사진2
오타루와 오타쿠
북두

박은형

식탁 혹은 폭포
시애틀도 아닌데 잠 못 드는 밤
나무의자
늦은 빛
사랑할 차례
백미러
보통의 하루

김명희

새 같은 사람
수국정원
시그널
그리움을 낭비하다
누구나 다 아는, 아무도 못 본
태산목
정상

서연우

너는 풍경이 되어
애견센터라는 배경
2월 이윽고
호르스의 눈*
여행
초롱아귀가 아니다
저녁이 어두워지고

최석균

너의 계절
단감나무 그루터기
재미없는 직진
동백꽃 피는 길
범람
둥근 풍경
날개
휴일의 꽃길
고요한 착점-바둑판
멈춘 리어카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188*20mm
ISBN13
9791198530714

책 속으로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길가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내는 주위를 살피면서 내 몸에서 계분 냄새가 난다고 했다 방금까지 우리는 양계장에 있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계분은 식물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지 그 식물을 우리가 먹고 살지 계분이 키운 식물로 만든 반찬이 나왔다 아내는 반찬에서도 계분 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내와 달리 나는 계분 냄새가 고마웠고 계분냄새가 나는 반찬은 맛있었다 양계장은 길 끝에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거대한 사료 차가 사료를 싣고 산을 힘겹게 올라왔다 닭들은 선 채로 밥을 먹고 선 채로 알을 낳고 선 채로 똥을 쌌다 또 일주일에 한 번 계란 차가 도둑처럼 가볍게 올라와 알을 싣고 무겁게 내려갔다 우리는 양계장에서 나오는 계분을 받아 먼 강가의 우엉밭에 넘겼다 나는 우엉이 깊이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강마을이 좋았지만 아내는 씻은 내 몸 아래 누워서도 내 몸에서 계분 냄새가 난다고 했다
---「김승강, 길 끝에는 양계장이 있었다」중에서

아버지는 한 장 줄기로 뻗어 있다 뼈는 점점 가늘어지는 숨 가쁜 잠투성이였다 뼈의 잠을 일깨우려 입에 풍이 들었다 달각달각 저 혼자 그토록 공기를 저작하였다 허공에 미세한 눈꺼풀을 심었다 잡초의 시선이 구부려졌다 풀린 줄기가 들려 흔들렸고 입가의 바람으로 풀이 죽었다 언제 내려가나 흐릿한 말이 콩팥에서 나와 이슬처럼 흘러내렸다 내려가야 했다 비가 듣고 있었다 나는 계속 듣고 있었다 한 장의 종이처럼 펄럭이는 저 가벼운 가운 같은 기운 깊은 잠을 자지 않기 위해 허공에 눈꺼풀을 자꾸 심는 아버지 마침내 한풀 꺾인 아버지에게서 모든 바람이 풀리고 팔 같은 풀 줄기도 완전히 누웠다 차가운 손목을 잡았을 때 입술에서 말씨가 얼어붙고 덩어리 말을 비어내듯 말똥을 쌌다 유언流言이 가슴을 지나 항문에서 흘러나왔다 살아 있는 것은 소문이 아니라고, 숨에서 꽃이 피었다 꽃이 공기를 떠났다
---「정남식, 저 혼자 이토록」중에서

풀잎처럼 순하디순한 긴 생머리 여자가
청사과 한 입 베 물고 바람결에 흔들린다
만지면 시들 것만 같아 앙가슴만 부풀고

눈에서 눈빛으로 전송하는 이모티콘처럼
하늘거린 풀꽃 향기로 건너가 안고 싶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통기타 노래 들려주며

슬픔이 천둥 같아 두려움에 떠는 날이면
더 세게 고함쳐서 당신으로 태어나리
별처럼 떠도는 시간 속에 피워올린 연꽃처럼
---「임성구, 맑은 사랑의 시간」중에서

하얀 식탁보를 깔고 잔을 놓았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고 있다 물보라에 놀란 새들, 날아올라 물고기 대신 술병 주위를 날아다닌다 노을이 조각조각 빛나는 물결, 그 가려움을 바라본다 박박 긁지 못하는 생은 그래서 더욱 가렵다 피부에 옴을 꽃피우던 사람처럼 허벅지 가려울 때 비로소, 거기 허벅지가 있음을 알아챈다 서천에 놓인 술병, 자잘한 꽃무늬 원피스의 여자가 병마개를 열었다 크고 작은 날개들 날아오른다 술잔 하나가 날개를 펴고 식탁에서 떨어진다 박살난 하루를 쓸어 담는 여자, 붉다
---「이주언, 배롱나무」중에서

청할수록 명료해지는 잠의 뒤를 쫓는다 문틈까지 건너와 따르는 낮은 음역의 풀벌레 입김도 불면과 한 편이다 도심의 8층 창 아래 옛 시절의 파수병같이 선 참나무 한 그루 갈참 굴참 졸참 떡갈 신갈 상수리 넓적한 바람소리 곧잘 올려 보내는 녀석의 진짜 이름과 도토리묵같이 슴슴하고도 느슨한 떫은맛에까지 마실 가 보는 캄캄한 뜬 눈의 밤은 한 허리 베어다 니불 아래 묻을 까닭도 없는 기나긴 밤이다 역무원 처자는 겨우 갓, 빛나는 갓, 스물여덟을 살아내는 중이었다는데 퍼렇게 벼린 치뜬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주검이 되었단다 人面의 한 種 세상에 퍼뜨리는 자여 제발, 오리발도 아니고 불발도 아니고 씨발도 아닌, 우발偶發이라는 역한 발 내밀지 마라 댕강 부러뜨려 불구덩이 쑤셔 넣어라 섬뜩한 미행에 너절한 사랑 타령도 입히지 마라 허락받지 못했다면 몇 수레 미사여구를 바쳐도 칼잡이에 지나지 않는다 스물여덟을 사는 딸아이, 굴참이거나 졸참이거나 제가 열매인 한 그루 참나무로 산다 뒤뚱뒤뚱 모래알 집처럼 버석거리는 발바닥을 견딘 지 몇 달째, 주삿바늘이 발꿈치에 박힐 때마다 내 몸속 모든 숨, 비상벨처럼 뭉쳐서 붉게 정지한다 시애틀도 아닌데 시와 愛와 틀린 것들의 세상 번갈아 잠 못 드는 밤 돌아눕지 못하는 심정까지 풀벌레 흘러들어 울다 말다 하는 밤 한 번도 간 적 없는 시애틀*도 아닌데 구뷔구뷔 잠 못 드는 밤을 홀로 펴는 쓰라린 격발의 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차용
---「박은형, 시애틀도 아닌데 잠 못 드는 밤」중에서

섬망의 나무에서 새 같은 사람이 추락하자 새가 울었다. 미리 저승을 한 바퀴 돌고 온 검은 울음. 그녀는 짐짓 모른 척 국화 속에서 웃고 있다. 삶을 적출한 미소는 무심의 영원 같아서 혼절한 꽃잎 위에 하얗게 새의 형상이 피어났다. 열나흘 달빛 끌고 온 새 같은 사람이 울고. 그 울음은 새 같은 사람에게만 전염이 됐다. 슬픔의 소주잔이 너무 작아서 그새 울음이 울음을 딛고 올랐다. 새 다리 젓가락 다리 울음의 오지를 돼지비계로 틀어막았다. 오지 없는 생 모퉁이 없는 생은 저승 밖의 일. 인간이란 탄원서를 울음으로 디밀어도 연기되는 울음뿐. 어깻죽지 다 젖도록 새 같은 사람이 새의 형상으로 울고 있다.
---「김명희, 새 같은 사람」중에서

권력자의 눈을 보다 신문을 덮고
귀가하는 길

공평보다 불공평이 더 좋다는 말을 오늘은 주워 들었다

눈알의 왼쪽 부분: 2분의 1
눈썹 부분: 8분의 1

여기서, 세상의 다른 곳에서 분수가 시작되고

누군가에 의해 다친 눈만큼
누군가의 눈을 똑같이 다치게 할 수 있을까

지폐에 새긴 거대 피라미드 꼭대기의 외눈 말이야
이 외눈에서 튀어 나가는 신세계 질서

벽은 촉각을 상징한다
부엌은 미각을 상징한다
창문은 생각을 상징한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고 결정했는데

창을 열고 밤 우주를 올려다보면

완벽한 전체를 얻긴 어렵다

경사면을 부수며 기우는 달의 눈

눈의 흉터는 볼 수 없다

*호루스의 눈: 고대 이집트의 신격화된 파라오가 가진 왕권의 보호를 상징하는 문양
---「서연우, 호루스의 눈*」중에서

신비의 계절이 하나 있지
오래 다가가도 당도할 수 없는

벌레들 다급히 우는 소리로 가을이 오고
호박잎 고구마 순 순순히 주저앉는 빛깔로 가을이 가는데

네 소리와 빛깔, 네 냄새를 보존한 채
나를 맴돌며 떠나질 않는

계절 밖의 계절이 하나 있지
너를 감금한 채 오지도 가지도 않는

알곡 같은 농부들 땀 냄새로 가을이 와서
한로 상강 이름으로 쳐내야 할 것들 쳐내며 가을이 가는데

한평생 안고 뒹굴어야 하는
내가 못내 궁금한 계절이 하나 있지

쌀쌀맞은 바람으로 오지 못하고
쓰러져 누운 들판의 얼굴로 가지 못하는

---「최석균, 너의 계절」중에서

출판사 리뷰

창원과 중앙문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중진시인 8명이 창작동인 ‘울’을 결성하고 첫 동인시집을 사유악부에서 펴냈다. 김승강 정남식 임성구 이주언 박은형 김명희 서연우 최석균 시인은 『시애틀도 아닌데 잠 못 드는 밤』을 첫 동인시집으로 펴내고 각자 ‘혼자 쓰기’에서 ‘같이 쓰기’의 출발을 알렸다. 창작동인 ‘울’은 이번 동인시집에 대해 서문에서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해 왔습니다. 그러나 근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말은 시의 위의를 혹은 시인의 권위를 전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뀐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어디 그런 시대입니까.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전제하면서 저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습니다.

‘시는 혼자 하는 놀이’란 말은 사실 적지 않은 시인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쩌면 이 말은 참 슬픈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말 속에는 노신의 정신 승리와 비슷한 것과 더불어 이 시대의 시의 위상 같은 것을 짚어볼 수 있는 것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경남의 동인 활동은 90년대를 정점으로 활동이 뜸하다가, 최근 창원 지역을 중심으로 각자의 고유한 시 세계를 가진 8명의 시인이 모여 동인을 결성한 일은 침체된 지역문학에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이들은 또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는 시대에도 시인은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그때는 아마 ‘시의 위의’ 혹은 ‘시인의 권위’를 여럿 모아 더 큰 위의 더 큰 권위를 만들어 그것을 의도한 곳에 사용하고자 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시는 혼자 쓰는 것’이라는 시대에도 모임이 있었는데 ‘시는 혼자 하는 놀이’라는 시대에 모임이 없을 수 없다고 토로하고 그러한 모임은 더 많아지고 더 다양해진 것 같다고 보고 있다. 시의 위의와 시인의 권위를 대신해 시의 파편화와 시인의 평범성(banality)이 시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시는 혼자 쓰는 것’이든 ‘시는 혼자 하는 놀이‘이든 ’우리’를 형성하는 데는 ‘그때’처럼 어떤 특별한 의도 같은 건 없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어떤 선언을 위한 포디엄(podium)은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글로 간단한 인사말을 대신할 뿐입니다. ‘우리’는 오래 서로를 지켜보다 “함께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라는 데 생각을 같이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오랜 만큼 ‘우리’ 자신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라고 이 동인 모임을 설명했다.

창작동인 ’울‘ 1집은 창원의 중진시인들이 오랫동안 각자의 ’시 쓰기‘에서 이제 동인을 결성하고 시적 힘을 모은데서 그 출발의 새로움이 보인다. 언어가 언어 너머로 가려는 신선한 시도와 함께 각자의 실험을 통한 시 쓰기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창조하면서 동인시집을 풍성하고 다채롭게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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