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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발간사 한동수
1. 원불교 원남교당 2. 제5회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선정 과정 김기주 3. 심사평. 측정할 수 없는 가치들 이치훈 4. 수상자의 글. 원불교 원남교당의 이질성과 공동성 조민석 5. 크리틱1. 두터운 다이어그램 박정현 6. 크리틱2. 하이퍼-파라미터(hyper-parameter), 하이퍼-레퍼런스(hyper-reference) 현명석 7. 건축의 향연 김인성 8. 한국건축역사학회 작품상 운영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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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의 최종 후보에 오른 세 작품은 모두 건축 외부가 구축해 놓은 상투적 언어와 지침의 그물망에 포획되지 않으려는 개별자들의 노력으로 이해된다. 그것이 장소이든, 기술이든, 풍토이든 누군가가 이미 정해 놓은 표준을 넘어 측정할 수 없는 가치를 성취하기 위한 비판적 관점을 내재한 과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p.51, 「이치훈, 「측정할 수 없는 가치들」」중에서 직관적인 미학화도, 거부의 서사도 아닌 대안적인 무언가에 관한 희망의 바탕은 비판적 긍정이라 생각하며, 통제된 그럴싸한 풍경보다 특정 방식으로 정의되기를 기다리는 혼돈을 새로운 서사의 장으로 삼았다. 여기서 대안적인 태도를 통한 또 다른 건축적 가능성은 다음에 언급할 이 종교 공동체가 가진 세상과 이웃을 향한 건물의 용도, 이용 면에서의 태도와도 맞물린다. --- p.62, 「조민석, 「원불교 원남교당의 이질성과 공동성」」중에서 원남교당은 불투명하고, 다이어그램은 두껍다. 원남동에서 우리는 강남역이나 제주에서처럼 체계를 읽을 수 없다. 체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쉽게 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소와 프로그램의 복잡성은 단일한 매스 속에서 녹아들고 불투명해진다. 이 차이가 대지에서 비롯하는 것인지 형태를 만드는 방법의 변화에서 도출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이어그램의 투명성을 좇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민석의 표현대로 “반작용이 작용이 될 때” 그러니까 작용 안에서 반작용이 사라지는 순간, 체계와 이질성이 용해되는 지점, 여기에 내기를 걸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 p.72, 「박정현, 「두터운 다이어그램」」중에서 조민석의 건축이 드러내는 초-참조성(hyper-referentiality)은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 외부 참조가 아닌 자기 참조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조민석과 매스스터디스의 작업 목록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다시 말해 그 방대함(massiveness)이 더해질수록, 그의 건축은 끊임없는 자기 참조의 루프가 반복되는 결과값으로 귀속한다. 원불교 원남교당에는 온갖 힘들을 부드러운 곡면성으로 포섭하는 잠재태와, 온갖 변수들에 대한 반응으로 건축을 생성하는 파라메트리시즘과, 소요와 길의 역사와 경험을 천착하는 앞 세대 한국 현대건축의 노스탤지어와, 그리고 아마도 무수히 많은 매스스터디스의 리서치와 프로젝트가 한데 버무려져 있을 것이다. --- p.78, 「현명석, 「하이퍼-파라미터(hyper-parameter), 하이퍼-레퍼런스(hyper-reference)」」중에서 고립-건축가는 원남교당을 문어에 비유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문어가 아니라 땅에 외로이 던져진 문어에 가깝다. 그렇다고 낯선 대지가 문어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어 놓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지는 문어가 장소나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모색과 탐험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제 문어는 대지 위 한 층의 받침대 위에 놓인 조각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멈춤 없이 꿈틀대며 받침대 위 자신의 골격을 타고 돌아다니는 형상이다. 그는 스스로를 뻗어 자신을 둘러싼 물질적 구조, 낯선 건물과 골목길들을 탐색하고 말을 건넨다. 진정한 소통이란 고립을 통해 스스로를 온전히 세운 뒤에라야 가능한 일이다. --- p.82, 「김인성, 「건축의 향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