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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에게
최지은
창비 2024.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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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여름에 만난 아이

자랑 같지만,
그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나아가고요
지침 없이 날아, 휘휘 날아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평화를 주고 싶어서
그리될 거라는 믿음
햇빛 냄새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나의 손으로
단장
그때 생일 추카해요
나는 얌전히
르트루바유
당신의 여름 과일이 궁금합니다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

오틸라, 제가 이룬 것을 보세요
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
세계를 구하고 마음을 지키는 이야기
계수나무 숲
옛날 옛날에
한번 안아줄게
아주 작은 이야기

작가의 말

저자 소개1

崔智恩

2017년 창비 신인시인상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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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90g | 115*188*13mm
ISBN13
9788936439545

책 속으로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물방울이 되어버린 할머니나 오이지라면 목구멍이 아리도록 가슴이 막혀오는 나나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할머니와 나의 사랑이 이렇게 뜨겁고 애달프다고. 그 지독한 사랑을 받은 아이가 나라는 사실, 더없이 귀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라는 분명한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 이야기에 온통 상처만 남아 있지는 않다는 거예요.
--- p.18

누구나 오직 자신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몸으로, 나의 언어로, 나의 세계로, 나의 무게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그럴 때면 ‘없음’의 자리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 하나하나 떠오릅니다. 없음에서 주워 올린 마음. 오직 부재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었던 마음. 없어서 구할 수 있었던 마음. 이런 건 무어라 이름 붙여주어야 할까요. 하필 나와 비슷한 돌멩이를 쥐고, 봄이 가까운 깊은 밤 잠들지 못하는 나를 닮은 사람을 떠올릴 때면 나는 더 솔직해지고 싶어지는 거예요. 더 용기 내고 싶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나의 단어를 찾아가면서요.
--- pp.29-30

그러니까 나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다. 조금 더 운이 좋다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비를 속삭여도 좋겠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어린이를 이야기하기를, 그 아이에게 깊이 사랑받기를. 잘 되어가지 않을 때에도 나는 나의 사랑 이야기를 믿는다. 이제는 아니까. 물동이에 다 담기지 않아도 하늘은 틀림없이 거기 있다는 것을. 물동이에 가둘 수 없는 깊은 하늘을 이제는 믿으니까. 내 사랑은 여기서부터 되어간다. 순전히 나의 사랑만으로. 나의 이야기는 되어간다, 더, 되어간다.
--- p.45

할머니가 내게 준 사랑의 재료를 떠올렸다. 고민 없이 인내의 마음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인내란 그저 참는 마음이 아니라, 믿음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대책 없고 허망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나 혼자 머리를 감는 날이 올 거라는 믿음,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곧 그리될 것이기에 지치지 않고 반복했던 믿음이라고. 바꿔 적은 문장 뒤에 할머니가 좋아하던 비단박하 한알을 그려 넣었다. 어쩐지 할머니의 믿음은 박하사탕처럼 하얗고 까슬거리고 달고 시원한 맛이 날 것 같았다.
--- pp.59-60

슬픔을 슬픔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지나가면,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는 무언가가 오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언가 때문에라도 슬픔은 슬픔으로 두고 싶다. 언제든 슬플 요량으로 이불 끝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날이 밝으면 이 빛을 기억하며 씩씩하게 나가 걷자고 생각하면서. 한번 더 이불을 끌어당겼을 땐 처음 보는 햇빛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 p.63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무거운 손과 발이 가벼워지고. 아버지가 나와 다르지 않고 내가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는 분명하고 깨끗한 마음.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아버지가 되어버리면 앞으로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무서울 것은 없다고,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다 자른 아버지의 손발톱을 모아 버리던 그날, 나는 두려움도 같이 모아 버렸다. 대신 다른 마음을 심기로 했다. ‘마치 내 것을 하듯이.’
--- p.80

한 사람의 부재는 세계를 전에 없던 방식으로 뒤흔든다. 한 사람이 스스로 사라진 구멍은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자살은 남은 사람의 세계를 틀림없이 파괴하고 영영 복구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만다. 녹지 않는 눈송이가 허공에 멈춰 있는 ‘겨울’ 속에 한참을 가두어두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 사라지지 않는 누군가의 숨결이 내 안에서 흐르는 것을 느낀다. 가끔 그가 내게 말한다. 창을 열자. 그래, 바람을 들이자.
--- p.105

그러니 매일 아침 현관문을 나서며 상상합니다. 저 방에서 할머니가 나와 오늘 나에게 하나의 심부름을 준다면 무얼까.
-기쁘렴.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
한번 해보는 거죠. 시작은 매번 어렵지만. 마음껏 기쁘고 기쁘게 돌아오기로. 문득 그렇게 시를 쓰고 싶고요. 돌아온 그 자리에는 처음 문을 열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쁨이 기다릴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나의 첫 여름 과일 이야기입니다. 당신의 여름 과일은 무엇인가요? 한번은 꼭 묻고 싶었어요.
--- p.118

온갖 어둠과 검은 개와 졸피뎀과 시와 바다가 뒤섞인 여기가 나의 삶이다. 파도처럼 온갖 것이 오고 또 가는 곳이 나의 삶이다. 나는 이런 삶을 사랑해버린다. 그래서 오틸라의 이야기는 처음과 다르게 읽힌다. 어둠으로부터 도망친 소녀의 탈출기가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해골에게로 힘껏 달려간 용감한 소녀의 이야기로. 어쩌면 오틸라와 해골, 이 둘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현재의 나와 상상 속의 나와 같이 한 사람의 내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또 어떨까. 용기를 잃지 않고 서로가 힘을 모은다면 커다란 두려움 앞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무엇보다 나는 이 용기를 자기 자신을 향한 사랑이라고 기록해두고 싶다. 스스로를 사랑했기에 둘은 어둠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었고, 친절과 배려를 잃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 pp.126-127

비가 차오르는 집, 다 젖어 굽어버린 책, 망가진 세간을 바라보고만 있던 순간도 기억하지만, 울고 난 뒤 걸레를 빨고, 책을 펴 말리고, 흙탕물을 닦아내고 다시 닦아냈던 순간도 기억합니다. 수없이 걸레를 빨고 다시 비틀어 물기를 짜낼 수 있었던 건 나를 붙들어 매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할머니의 노란 달걀찜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없지만 ‘있었던’ 순간만으로도 젖은 것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젖지 않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두 발에 차오르던 빗물의 감각을 꿈에서도 잊을 수 없지만, 신기한 일이에요. 나를 붙들어 매는 순간들은 여전히 내 곁에서 숨쉬고 있으니까요. 꿀설기는 많이 달지 않고 참 맛있었습니다.

--- pp.178-179

출판사 리뷰

안녕, 나의 어린이
여기가 나의 기쁨이야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3부로 나아가며 한 사람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삶을 통과하여 새로운 시작 앞에 서는 여정에 함께하게 만든다.

1부 ‘여름에 만난 아이’에서 작가는 자신 안의 어린이가 혼란하고 뜨거운 날들을 보내며 무엇을 느꼈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를 복기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할머니가 있다. 조손 가정의 어린이로 자란 작가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었던 사랑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양분이 되어주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언제나 ‘주는’ 쪽으로, 가난한 형편에도 가난하지 않은 마음을 물려주려 애쓰던 모습으로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손녀에게 먹일 오이지를 절이기 위해 눅눅한 여름 새벽 물을 끓이다가 화상을 입은 할머니, 열두살까지 품에 안아 머리를 감겨주던 할머니, 그렇게 “나의 몸, 나의 말, 때때로 나의 밤이 되어 내내 나와 함께할 사랑의 재료들”이 되어준 기억들. 마침내 “그러니까 나는 하나의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라 말하며 풀어놓는 이야기는 마음의 온도를 올리고, 우리를 지탱해온 사랑을 돌아보게 한다.

2부 ‘기쁘게 집으로 돌아오렴’에는 상실과 그 이후의 시간이 담겨 있다. 사랑과 기쁨이 있다면 상실과 아픔 또한 피할 수 없다. 작가는 할머니, 아버지와의 이별을 경험한다. 삶의 순간마다 안고 가야 할 무거움을 남긴 이 경험은 극복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온몸으로 아파하며 상실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시간의 곁에 아름다운 기억들을 덧대어보기로 다짐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너지고 부서진 조각들과 반짝이는 기억을 함께 모아둔, “내가 아니면 열릴 일이 없는 상자”를 열며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시 살아내기로 다짐하는 작가의 용기는 은은한 빛이 되어 독자에게 스며든다.

3부 ‘나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한 꼭지의 제목처럼 ‘그러고도 혹여 네게 힘이 남아 있다면’에 대한 대답이다.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로부터 고개를 들면 지금의 나를 지키는 존재들이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과 두마리의 개, 시 쓰는 날들을 응원하는 다정한 동료들은 다시 한번 용기 내어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다. 그렇게 작가는 결핍을 껴안고 충만함 쪽으로 나아간다. 불안과 상처가 얽혀 있는 그물을 통해서도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은 타자를 향해 뻗어갈 때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럴 때 우리의 사랑은 조금 더 나아”간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목소리는 어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인 문장보다도 단단하게 삶을 보호한다.

매일매일 조금 더 환한 쪽으로

작가는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을 꺼내어놓는 순간의 힘을 믿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쁨과 슬픔이 얼룩진 시간 속으로 먼저 들어가 어려운 고백의 무게를 감당하면서도, 그 고백을 마주하는 우리에게는 “당신의 여름 과일은 무엇인가요?” 물으며 느리고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몸은 얼고 숨은 가빠지고 온몸이 깨질 것 같은 두려움”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두려움이 지나간 자리에 기쁨의 기억을 덧대어보는 이 아름다운 시도는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삶의 한복판을 향해 한발자국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줄 것이다. “내가 또다른 누군가를 아프게 할까봐. 이파리 하나라도 상하게 만들까봐. 나는 얌전히 조심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진심은 조금 더 다정한 마음으로 오래전 감춰두었던 말들을 털어놓아도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 우리의 여름 한복판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설렘으로, 이제 이 기분 좋은 흔들림을 마주할 시간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첫 산문집입니다.
기억을 되살피며 소중했던 시간을 한번 더 누릴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쓰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할 때도 어느새 제 마음은 이 이야기들에 붙들려 늘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마침내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 변화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고요. 오직 내가 쓴 문장을 통해서만 닿을 수 있는 낯선 곳이 있다는 것이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더 정교하게 또다른 변화들을 기록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다음은 어떤 모습일까요. 의연해지고 싶습니다.
(…)
또다른 여름입니다.
이 책을 품에 안고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반가운 안부를 나누고 싶습니다.
빛과 바람, 돌멩이와 언덕에게
마음이 닿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2024년 5월
검은 개 흰 개와 함께 최지은

추천평

이건 반칙 아닌가. 최지은의 에세이를 읽다가 질투심이 솟았다. ‘자랑 같지만,’이라며 운을 떼는 첫 글을 읽고 눈물 그득 사랑의 마음이 충만해진 것으로 시작해 『우리의 여름에게』가 여상하게 부려놓는 비밀들에 중독되는 기분으로 읽어나갔다. 삶에서 있었다가 없게 된 사람들, 순간들에 대하여 이 책이 말을 전할 때마다 가서 손을 잡고 싶었다. ‘최지은 시인님, 제가 시인님의 시를 참 좋아하는데 산문도 좋아하게 되어버려서요’ 하고 고백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시간이 지나도 허물어질 줄 모르는 온전한 슬픔과, 때 이르게 어른이 된 줄 알았는데 한참을 가라앉고 있을 뿐이었던 어린이가 있다. 누구든 정말, 완전히, 진짜 나를 떠나버린 세계를 기억해내게 되리라. 『우리의 여름에게』는 축복처럼 저주처럼, 마음에 달라붙을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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