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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북촌北村길 걸으며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며 불회사의 가을 풍경이 되는 철새처럼 아내라는 당신 생은 봄비였다 가을 경주에서 북촌北村길 걸으며 백두산 연가 개밥바라기 성북동 연가 거미집 안동 가는 길 길을 달리다 수서행 기차를 타고 홍어 축제장에서 팝콘을 먹다 제2부 금목서 여인 버스 안에서 금목서 여인 늙어가는 길 슬픔의 바다에 영산포역 울돌목을 지나며 나주정미소 나의 시에게 일출과 낮달 사이 이발을 하면서 노을 앞에서 녹우당에서 구월이 간다 서성문에 서서 눈물에 대하여 담쟁이 임진강 연가 능소화 앞에서 제3부 雪江에다 길을 들판에서 시낭송을 하며 백일홍 우수길 화이트 크리스마스 태풍에 대하여 雪江에다 길을 부겐빌리아 부활 토끼등 가고 싶다 다시 시작하며 단풍과 낙엽 사이 왼쪽굽이 더 닳은 이유 군산의 문효치 시인 대흥사 천불전 갑진년을 맞으며 튀김집 아줌마 어떤 귀로歸路 금계국 제4부 왼쪽 굽이 더 닳은 이유 작달비에게 지나간 것은 그립다 가을 태풍 아파트 가을 소나타 영산강은 노랗게 피었다 구름 이야기 비움에 대하여 봉숭아 피던 날 11월 길을 가다가 붉은 장미는 피는데 사랑이란 마법 멀구슬나무 모든 삶은 길을 낸다 직박구리에게 길을 묻는다 천둥번개 치는데 눈물이 나는 사이 제5부 겨울, 영산강에서 겨울, 영산강에서 사랑이여 냉산 집 사랑하고 싶은가 절망에서 살아야 하니까 천문산天門山올라서 영산강에서 창랑정 가는 길 흙을 밟으며 어느 겨울이야기 노을의 노래 날아간 오후 홍어연가 선창가 거닐며 옛 선창에서 보길도를 뒤로하고 작품론 실존적 체험과 삶과 사랑에 대한 사유 / 허형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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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날이면 즐겨 끼던 가죽장갑
기차에 두고 내렸다 오래전 첫 월급을 탄 아들이 사준 것인데 사라져버린 기차를 바라보며 황망했다 역사(驛舍)를 나가면 찬바람에 손 시려운 이런 일이 어찌 한두 번이겠는가 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는 손이 시려 온몸으로 겨울 바람을 맞으며 허허벌판을 걸어가곤 했다 시련 앞에서 더 단련된다고 하지만 두 손 따스하게 잡아주지 못한 그 사람을 기차에 두고 혼자 내린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열차를 바라보며 다시는 잊지 않고 함께 하리라 하는 다짐도 건망증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어서 나는 허벅지를 꼬집으며 두 눈을 부릅뜨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잡아두지 못해 늘 가슴 아파했다 건망증은 어떠한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다 때로는 나를 열차에 놓고 내려온 적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나를 잃어버리고 허우대만 남았다 나의 건망증의 또다른 이름은 사랑이다 그런 까닭에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이다. ---「떠나가는 열차를 바라보며」중에서 말[言]속에 절[寺]이 있는 곳으로 출가한 나는 가을을 타는지 속인과 비자 숲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정연 주지스님께 차 한 잔 대접 받고 묵힌 때 씻는 법언 한 줄 듣기 위해 소란함을 뒤로 한 것이지 대웅전은 새 단청을 하여 석가모니불 낮잠 주무시는데 숙면 줄 수 있겠다는 스침과 정갈한 불사는 세사世事에 때묻은 나 같은 중생도 친해지리 싶다 그러나 정연 주지스님은 떠나고 젊은 새 주지 철인 스님을 뵙고서 엽차 한 잔으로 합장하였다 나는 속세의 고원 한 편 절 속에 사는 것만 같은데 스님들은 왔다 갔다 하는 것인지 어느 절로 갔는지 정연 스님이 그립다 절간의 오후는 그림자 길게 내리는데 철인 주지스님의 목탁소리 진중하기만 하고 나는 부처님께 삼배 올리며 나의 절에 심안거 들었다. *나주시 다도면 마산리에 있는 절 ---「불회사의 가을」중에서 눈 쌓인 영산강 다리를 건너는 일은 지나온 세상사 쌓여 있는 듯 팍팍하고 버겁다 어쩌면 허망하게 가버린 삶의 역사가 고적하게 해도 눈보라가 회한같이 짓눌러도 다 버려야 하는 시간 유구한 영산강에다 퐁당 던지고 가자 꿈, 사랑, 그리움, 서러움, 미움까지도 모두 무엇이 아쉽고 서운할 것이 있으랴 흔적 없이 이대로 저 강물처럼 그렇게 흘러가자 그래서 다시 한 풍경이 되기 위해 찾아온 저 철새처럼 장구한 세월의 강에 물결 같은 시를 쓰고 사랑을 하고 노래 부르자 그러다가 강물 위로 솟구쳐 천천히 날갯짓하며 없는 듯 날아가는 것이다. ---「풍경이 되는 철새처럼」중에서 내가 웃는 것을 최고로 바라는 아내라는 당신 때로는 해결사가 되기도 하고 주는 것이 행복하다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자 어느 날 파란한 삶에 어쩌다 아프기라도 하면 내 일상은 다 무료해지고 마비가 되어 소란한 시간만 난무하지 고맙고 사랑스러운 언제나 내 편이 되는 한결같은 당신 오늘도 마술 부리는 것만 같은 사랑의 상자에서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담는다. ---「아내라는 당신」중에서 봄비 내리니 영산강 강변길 동백이나 개나리 유채꽃이 시린 지난날 돌아가게 한다 어쩌지 못한 삶의 벼랑길에 걸어야만 했던 무수한 날들이 굳은살이 되기까지 도시락 싸들고 무등산을 묵언 수행하는 스님처럼 올랐었지 희희낙락하는 세상에서 언제 다 타버릴 줄 모르는 가느다란 촛불 안은 채 절망의 세월을 보냈는데 사반세기 긴 터널 지나 이제 버리고 지나고 싶은 시간 사랑도 꿈도 종심의 길 기화이초 피는 봄이 왔지만 생은 봄비 되어 곡절로 날린다. ---「생은 봄비였다」중에서 화려한 단풍이 꽃피듯 古都 경주는 절정의 추색을 건너고 있다 낙엽 수북이 쌓인 숲 속으로 가 요란한 바스락거림에서 지나 온 생들이 건너오고 신라의 왕을 만나러 온 우쭐한 백제의 사신이 되었다 천년이 넘는 고도는 가는 곳마다 역사가 살아 발자국 밑에서도 꿈틀대고 있다던가 수학여행 왔던 까까머리 어린 청춘은 까마득한데 불국사 대웅전, 다보탑, 석가탑 거룩하게 다가와 감격하니 시간은 거침없었구나 단풍 숲 고적한 천년 고찰도 아픈 역사를 쓸어안는 핏빛 단풍처럼 지났으려나 피지 못하고 떠난 꽃다운 세월호도 노란나비 되어 날리우는 서럽고 아픈 상심이 불타고 있다. ---「가을 경주에서」중에서 항용 서울에 오면 빌딩 숲과 소란함에 바쁘기만 했다 오늘은 느릿느릿 게으르게 북촌 제동길 언덕 오르며 좁다란 길에 오밀조밀한 가게들 엽서 속 풍경 같은 골목길 돌아가며 아담하고 예스러운 한옥들이 고혹적이어서 환호하듯이 추색은 저려온다 구한말 고택 담벼락에 핀 주홍빛 능소화가 농염한 여인만 같아서 돌아서기 싫다 그 꽃 같이 순진한 한 사내의 풋풋한 짝사랑이 오롯하게 생각나게 하고 낯익은 김영사 출판사 간판도 전망 좋은 맹현의 찻집에서 본 익숙한 장안의 풍경도 좋다 삼각산, 인왕산, 북악산 저 산들 탓에 역경의 시대를 견디고 지나왔으려니 애석타 질곡의 역사를 지나며 근대화 한 초석을 놓았던 선각자들의 집터마저 사라진 이 길이 통한의 길 되어 마음이 아리다. 육백 년을 보낸 장엄한 백송의 범접하기 힘든 위용 앞에서 여전히 초라한 식민지고 쌈박질만 해대는 망국의 시대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아 서러운데 능소화 핀 북촌 하늘은 가깝다. ---「북촌北村길 걸으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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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론_ 생의 발원지 영산강에서 삶을 성찰하는 시
허형만 시인. 목포대 교수 1. 김용갑 시인은 영산강이 낳은 시인이다. 영산강가에 있는 냉산 마을에서 태어나 종심의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영산강을 떠나지 않고 영산강을 가슴에 품고 영산강을 사랑하며 영산강과 함께 살고 있다. 시인은 「자서」에서 “저는 이날까지 영산강의 젖먹이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산강은 나에게 어머니의 강이고 사랑의 강이고 나를 찾아가는 구원의 강이기도 합니다.”라고 고백한다. 첫 시집 『초보 농부의 개론』(한림, 2021)에서도 영산강은 시집의 핵심을 이룰 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고향 사랑의 정신을 보여준 바 있다. 영산강은 조선 초 영산포가 크게 번창하여 강 이름도 영산강이라 부르게 되었다. 영산강은 역사문화적, 인문지리적으로 오랫동안 전남 담양군 용면 가막골에 있는 용소(龍沼)를 발원지로 보았으나 정부 발행 『한국 하천 일람』에는 수문학적 관점에서 전남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 북쪽 용흥사 계곡을 공식적인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다. 김용갑 시인은 전남 나주시 삼영동 영산강가에 있는 냉산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평생 영산강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이 영산강은 김용갑 시인의 시적 모태이자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서 모든 시와 삶이 영산강과 함께 숨 쉬고 있다. 화려한 한 생 옹골지게 피어난 극미의 꽃 배고픈 조상들이 기다리던 꽃 국민학교 2학년쯤이었을까 몹시 무덥던 날 고향 집 마루에 앉아 앞산을 물들인 배롱나무에서 선혈이 낭자한 꽃을 보았다 꽃이 세 번 피면 쌀밥 먹게 해 주신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이 그립기만 하다 백일, 여름날을 인고하는 꽃 생의 뒤편을 비추는 꽃 행복과 인연을 생각게 하는 그대의 사랑도 저 꽃 같아라. -「백일홍」 전문 이 시에서 ‘백일홍’은 멕시코가 원산지인 국화과에 딸린 한해살이풀이 아니라 중국이 원산지로 부처꽃과에 딸린 갈잎큰키나무인 ‘배롱나무’를 말한다. 꽃이 100일 동안이나 오래 피는 것은 한해살이풀인 ‘백일홍’과 같아 호칭 상 혼동하기 쉬워 배롱나무를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꽃은 7~9월에 피며 품종에 따라 흰색 꽃과 자주색 꽃도 있지만 주로 분홍빛 꽃이 많다. 김용갑 시인은 “백일, 여름날을 인고하는 꽃/ 생의 뒤편을 비추는 꽃”인 목백일홍을 “화려한 한 생/ 옹골지게 피어난 극미의 꽃”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또한 이 꽃은 “배고픈 조상들이/ 기다리던 꽃”이다. 왜냐하면, 할아버지 말씀처럼 “저 꽃이 세 번 피면” 추수 때가 되어 마침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고향 집 마루에 앉아/ 앞산을 물들인 배롱나무에서/ 선혈이 낭자한 꽃”을 보고 있던 “국민학교 2학년쯤”의 추억이다. 김용갑 시인의 고향인 「냉산 우리 집」은 “뒤꼍에 대나무 숲은 새소리도” 청아했고, 대가족으로 소란했으나 정겨웠으며 “본채와 사랑채에 웃음꽃이 가득했”던 곳이다. 지금은 “한 집안 생의 역사 족적만 남아” “공허의 터”가 되었고, “애틋한 그리움만 살강에 놓여 있”지만, 유년 시절 “새겨진 사랑의 시간”을 이제 손주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고향 집이다. 고향 냉산을 생각하면 “골짜기에 가득 눈 쌓인 고향/ 강냉이 산에서/ 토끼몰이했던”(「雪江에다 길을」) 추억이 떠오르고, “소꿉동무의 어린 손/ 고향 뒷산의 늙은 소나무/ 할머니의 땀 내음/ 개울가에 잡았던/ 노랗던 대짜 장어”(「지나간 것은 그립다」)도 그리워진다. 그러기에 시인은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립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 만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그립다고 한다. 그래서 김 종 시인은 첫 시집 해설에서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고향을 지키고 살아가는 김용갑 시인에게 고향은 특별한 의미가 되기에 충분하며 피붙이처럼 분리할래야 분리해낼 수 없는 그 자신의 우주이기도 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건강한 삶을 희원하며 광야처럼 깊은 설원이 된 강가를 걸었습니다 사라진 날들은 뒤뚱뒤뚱거리고 아쉬워지기도 해서 서러움도 견뎌내야 했습니다 돌아보면 어떤 무형의 대가 같은 것을 치르고 지나온 생 같기만 합니다 무수한 인연과 세상사는 그만큼의 회오리바람 불었습니다 이제 내리는 눈이 강물에 하나 되듯 지나고 싶습니다 버리고 관용하고 이해하는 시간 하얀 눈 내린 강 언덕의 한 초록 삶이 고맙기만 하고 꿋꿋하기도 합니다 하롱하롱 날리는 눈은 강물에 떨어져 자꾸만 흔적 없이 어디로 사라져 가는지. -「어느 겨울 이야기」 전문 김용갑 시인은 영산강가를 즐겨 걷는다. “건강한 삶을 희원하며” 걷노라면 사라진 날들을 돌아보게 되고, “돌아보면 어떤 무형의 대가 같은 것을/ 치르고 지나온 생 같기만” 함을 느낀다. 때는 겨울이라 강가를 걷다가 “하얀 눈 내린/ 강 언덕의 한 초록 삶”을 발견하고 그 생명성에 “고맙기만” 한 시인의 시적 인식은 “내리는 눈이/ 강물에 하나 되듯”, 하롱하롱 날리는 눈이 “강물에 떨어져/ 자꾸만/ 흔적 없이 어디로 사라져” 가듯, 그렇게 무심無心으로 살고자 한다. 이처럼 눈 내린 겨울 강가를 거닐며 “왼발이 자꾸만 빠지는 듯”(「왼쪽 굽이 더 닳은 이유」)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지만, 이는 자신의 흔들렸던 삶 때문이라고 내면 의식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이른 아침, 영산강 따라 걸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양귀비꽃”(「영산강에서」)을 만나고, 강가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에서는 “꽃도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같아서/ 꽃이 스스로 핀 것이/ 참으로 고맙”(「영산강은 노랗게 피었다」)게 생각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영산강 동섬으로 가는 산책길에 “영산강 가로지르는 고압선에/ 철새 떼가 앉아”(「어떤 귀로歸路」) 있는 것을 보고 결코 녹녹치 않는 긴 여정일 것을 상상하며 한세상 살아가는 우리 삶과 똑같다는 상념에 젖기도 한다. 또한 “삶이 박살 날 것 같은/ 절망을 만나/ 겨울 강가에”(「절망에서」) 가기도 하고, “고맙고 사랑스러운/ 언제나 내 편이 되는/ 한결같은”(「아내라는 당신」) 아내와 함께 “영산강 둔치에서/ 맨발 걷기 운동”(「개밥바라기」)도 한다. 비 내린 선창가에서 어느 무명 가수의 노래가 막혀버린 영산강을 울린다 각설이는 한밑천 잡겠다고 한껏 폼 잡고 사는 것이 뭔지 쥐어지지 않는 돈을 위해 타령이 구슬프다 흑산 홍어 아르헨티나 칠레 세계 홍어가 진을 치는 천막에서 채비 다 되었는데 하필 비는 세차게 내리고 비 맞은 선창이 빠르게 파장으로 가는 지친 오후 축제 속에서 핑크피쉬는 파란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아우성대는지 축제 때마다 비 온다고 홍어 파는 아줌마 오늘도 홍어같이 붉게 피었다. -「홍어 축제」 전문 매년 나주 영산포 둔치에서는 영산포 홍어 축제가 열린다. 예전에는 흑산도에서 홍어를 실은 배가 영산강 물길 따라 5일 이상 걸려 이곳 영산포까지 오는 동안 홍어가 숙성되어 홍어 특유의 알싸한 맛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숙성 홍어의 본고장, 영산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인은 지금 그 홍어 축제장의 상황을 TV 실황 중계하듯 묘사하고 있다. 하필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있다. 어느 무명 가수는 “막혀버린 영산강을” 울리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고, 각설이는 “한밑천 잡겠다고/ 한껏 폼 잡고” 타령하는데, 그 노래마저 구슬프다. 비 내리는 날 가수의 노래도, 각설이의 타령도, 빗소리와 함께 구슬퍼 축제 잔치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분위기다. 물론 비가 “세차게 내리”니 홍어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도 적고, 홍어 장사도 안될 수밖에. 홍어 장사가 안되니 홍어 파는 아줌마는 “축제 때마다 비 온다고” 투덜거리며 얼굴이 “홍어같이 붉게” 필 수밖에. 아주 실감 나는 축제장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영산포 홍어는 시인에게 오묘한 마력의 힘과 애틋함이 있다. 그래서 “삭힌 홍어 한 점 잘근잘근 씹으며/ 시린 삶도 삼킨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영산포 장날/ 선창에 홍어 사러 따라나서던 촐랑대던 일도/ 모내기, 보리타작할 때/ 옹기 속 홍어를 부뚜막 식초로 버무르시던/ 할머니의 맛깔난 손맛”(「홍어 연가」)을 떠올리며 홍어 연가를 부른다. 2. 김용갑 시인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조곤조곤 들려준다. 그러면서 그 삶에서 터득한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독자로 하여금 함께 묵상하게 한다. 강가에서 흙을 밟는다 맨발의 촉감은 깊은데 지나온 나의 종심從心의 생애가 서러워서 미안해서 발을 뗄 수가 없다 점철된 회한의 역사 폭풍처럼 가버린 생의 곡절과 가슴앓이했던 설움도 밟는 것인지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 끝이 될 수 없는 길을 밟고 부서졌던 꿈도 사랑도 밟는 것 어느 막다른 길에 서서 되돌아갈 수 없는 生에 서럽게 통석痛惜하는 것인지도 환한 인연들에도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위하여 흙과 친해져야 하는 그 길을 밟고 또 밟는다 절절한 그리움들 묵언의 발걸음 되어 빨간 햇살이 뜬다. -「흙을 밟으며」 전문 김용갑 시인이 영산강가를 걷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맨발에서 전해오는 흙의 촉감이 신을 신고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 언젠가 세상을 하직하면 육체는 곧 흙이 되므로 인간의 육체는 흙과 하나이다. 그러기에 “맨발의 촉감”은 깊을 수밖에 없다. 특히 종심의 나이에 맨발로 걷는 느낌은 생을 돌아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은 지나온 종심의 생애가 서러워서 “미안해서 발을 뗄 수가 없”게 한다. 특히 시인은 맨발로 흙을 밟으며 지나온 종심의 세월을 떠올린다. “점철된 회한의 역사/ 폭풍처럼 가버린 생의 곡절과/ 가슴앓이했던 설움”을 떠올리며 흙을 밟는다. 되돌아본 자신의 칠십 생애는 한마디로 “회한의 역사”이다. “나는 지금 어디쯤 가는 길이어서/ 잘 건너고 있는지”(「11월」), 성찰하며 걷는 길은 삶의 역사 속 한순간에 불과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 끝이 될 수 없는 길”임을 깨달으며 “부서졌던 꿈도 사랑도” 밟는 길임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과거의 시간이 지금 이 길 위에서 장차 다가올 시간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러기에 “되돌아갈 수 없는” “어느 막다른 길”에 서게 되기 전 “환한 인연들에도 감사하며/ 주어진 시간을 위하여” 흙과 친해져야 함을 알고 지금 바로 이 순간 흙을 밟는다. 흙을 밟으면서 J. P. 리샤르의 말처럼 ‘모든 진정한 감각의 새로워짐’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감각은 본래의 상태로 바뀌어지는 신선함을 창조할 것이다. 사랑은 봄날 멍 때리며 목련 터지듯 시작되는 것일까 그래 사랑은 피는지 모르게 피었다가 목련꽃 지듯 떨어지는 사랑은 언제나 그 깊이만큼의 아픔을 주어 불확실하고 불가항력적으로 오고 가던가 삶이란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 생이 존재하는 시간 함께 가야 할 것이기에 후회하지 않는 거라지 그렇게 우리 生은 결국 그놈의 사랑 때문에 살고 구천을 떠돈다지 -「사랑하고 싶은가」 전문 김용갑 시인의 삶의 성찰은 매우 진지하면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시인만의 깊은 사유의 폭을 보여준다. “삶이란 굽이굽이마다/ 곡예사의 서커스 같지만”(「살아야 하니까」), “흘러간 시간은 빈 거미줄 같은/ 허상의 무지개”(「거미집」)지만, “굽이친 회한의 역사가/ 부끄러워서 미안”(「일출과 낮달 사이」)하지만, “희희낙락하는 세상에서/ 언제 다 타버릴 줄 모르는/ 가느다란 촛불 안은 채/ 절망의 생을 보냈”(「생은 봄비였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어느새 바뀌는 계절 속에/ 삶도 가는지 모르게 가”(「안동 가는 길」)는데 “삶이란/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 생이 존재하는 시간/ 함께 가야 할 것이기에/ 후회하지 않는 거”라는 걸 마음에 새긴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일까? 시인은 말한다. 오래전 아들이 첫 월급 선물로 사준 장갑을 지하철역에서 잃어버리고 나서 “사람의 한 생도/ 이렇게 떠나갈 수 있겠다”(「잃어버린 시간」) 싶고, “사람의 생이란/ 태어남은 죽음을 뒤쫓고/ 죽음은 태어남을 쫓아가는 거”(「현수와 달리다」)라지만 “연민이거나 사랑이거나/ 그런 뜨거움으로 사는 것”(「버스 안에서」)이라고. 그래서 “해와 달 지나듯이/ 주어진 일상 따라가느니/ 어느새 삶은 우듬지에 앉아있다/ 그러니 다 떨구고 기쁘게 살아야 하리”(「갑진년을 맞으며」) 다짐한다. 그렇게 다짐하면서 “아침이 열리는 기적과/ 마주”하며 “한낮의 일상에 감사하고/ 저녁의 그윽함에 젖”(「살아야 하니까」)는다. 이만큼 살아오면서 무엇이 아쉽고 서운할 것이 있겠는가? “꿈, 사랑, 그리움, 서러움,/ 미움까지도 모두”(「풍경이 되는 철새처럼」) 영산강에다 퐁당 던지고 가자고 자신에게 이른다. 이제 종심의 길에서 다 비워내는 것이다. “비워내는 일은 절대적이라/ 어떤 헛된 집착들도/ 다 비우지 못한 탐욕인즉/ 세월이 지날수록 비우는 일은/ 경건한 수행 같기만”(「비움에 대하여」) 하다. 3. 김용갑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여행 시를 몇 편 보여주고 있다. 여행은 한 공간의 단순한 경과가 아니다. 여행은 그 공간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체험을 하는 의미가 있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구스타프 융에 의하면 여행은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열망, 결코 충족되지 않는 그리움으로 정의된다. 첫 시집 『초보 농부의 개론』에는 국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 국외로는 필리핀 보라카이, 태국 여행의 시가 있지만, 이번 두 번째 시집에는 국내로는 서울 성북동, 북촌, 그리고 경주, 임진강을 다녀왔고, 백두산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도 다녀왔다. 시인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영산강이 흐르는 전남 나주시이다. 이곳에서 서울을 갈 때는 물론 고속버스도 있지만 주로 나주역에서 기차를 탄다.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가려면 KTX를 타고, 수서역으로 가려면 SRT를 탄다. 시인은 수서행 SRT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느끼는 소회를 시로 썼다. 기차를 탔다 쉼 없이 지나온 회한의 세월은 바람 한 자락이었고 삶은 차창 밖 들판처럼 날린다 열정으로 다독이며 보낸 生 조심스럽기만 하였으리 기차는 너무 빨랐고 창밖의 풍경은 거침없이 뒷걸음친다 모내기를 끝낸 초록의 들판이 덥다 말없이 가는 것들이 두려워지는 나의 기차는 어디만큼 가는지 절감되는 생의 촉수가 무섭다 심중의 고적함은 천둥 치듯 하고 정해진 궤적처럼 치닫는 삶이지만 어쩌다 간이역에 불시착할지라도 결코, 통절하거나 서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레일 위 나는 듯 절박함은 크고 자꾸만 뒤돌아가려는데 기차는 별이 쏟아지는 한 컷의 이야기도 시 같은 서러운 곡절도 나른다. -「수서행 기차를 타고」 전문 김용갑 시인은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차창 밖의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기차가 달리는 속도감 속에서 사유의 폭을 확장한다. 기차의 빠른 속도만큼이나 “쉼 없이 지나온 회한의 세월”을 떠올리고 “열정으로 다독이며 보낸 生”을 들여다본다. 종심의 나이에 이르기까지 돌이켜보니 기차가 너무 빠르듯 살아온 삶의 여정도 너무 빨랐고, “차창 밖 들판처럼” 삶이 날리는 감정에 젖는다.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은 “모내기를 끝낸 초록의 들판”이다. 엊그제 모심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벼들이 솟아올라 초록의 들판으로 변했다. 기차의 속도처럼 빠른 시간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후안 라몬 히메네스는 “시간과 기억은 지름길로 오지 않고 빛과 바람 타고 온다”라고 노래했다. 지금 시인의 느낌도 이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하이데거의 말처럼 “존재하는 것이란 시간과 시간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라서 지금 시인의 존재는 “말없이 가는 것들이 두려워지는” 의식 속에서 “절감되는 生의 촉수”를 느낀다. 이 느낌을 시인은 “심중의 고적함”이라 표현한다. 지금 시인이 타고 가는 SRT 기차는 목포에서 수서까지, 그러니까 출발역인 목포에서 종착역인 수서라는 “정해진 궤적”이듯 우리네 삶도 태어나는 순간 생의 출발역을 떠나와 오직 신만이 아는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생이라는 “나의 기차는 어디만큼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마냥 “치닫는 삶”이기에 “生의 촉수가” 무서울 따름이다. 자신의 정해진 생의 종착역까지 다 못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무서움은 두려움을 수반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때 “어쩌다 간이역에 불시착할지라도/ 결코,/ 통절하거나 서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바로 이 점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탐색이라는 김용갑 시인만의 깊은 사유이다. 이제 시인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는 뜻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즉 “종심從心”에 들었지 않은가. 윤동주도 올랐던 북악산에서 서울의 풍경이 여울진다 인왕산 깎아 자른 듯 바위산이 범할 수 없는 지고한 정신의 포상 같은데 길상사에 격정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야와 백석의 애틋한 시가 가을 단풍으로 현현하여 뜨겁다 끊어질지언정 꺾인 삶 살지 않았던 심우장 만해의 소는 지금쯤 어디메를 가는가 이태준의 기영세가 수연산방은 그의 문장처럼 정취 그윽한데 윤동주의 서정을 안겨준 인왕산, 북악산 도성 길에 서시가 하늘을 우러러 바람에 스치운다 격랑의 한 시대를 선구자로 살아온 시인들의 생은 뜨겁게 서글펐고 차갑게 고달팠으리라 성북동에 내리는 작달비가 총총거리게 하는 만추의 한양 도성 길이 게을러진 나의 영혼을 추스르게 한다 -「성북동 연가」 전문 서울에 온 시인은 길상사에서 수연산방까지의 성북동 고택 북촌길을 걷는다. 만추에 작달비가 내리는 날이지만 시인은 한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간 문인들의 흔적을 찾아 “게을러진 나의 영혼을 추스르게” 하는 여행을 한 것이다. 이 시에 등장한 문인은 윤동주, 백석, 한용운, 이태준이다. 먼저 북악산의 한양 도성에 오른 시인은 한때 이곳을 올랐을 저항시인 윤동주를 떠올리고, 윤동주의 그 민족정신, 절개와 맞물려 “인왕산 깎아 자른 듯 바위산이/ 범할 수 없는 지고한 정신의 포상 같은” 상념에 젖으며 여울지는 “서울 풍경”에 심취한다. 산에서 내려와 길상사에 들러 뜨거운 “가을 단풍”에서 “자야와 백석의 애틋한” 사랑이 불타는 걸 느낀다. 잘 알려져 있듯 길상사는 김영한이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을 법정 스님께 시주하여 1997년 12월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으로 개원한 곳이다. 이때 법정 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 보살’이란 법명을 주었다. 백석 시인이 김영한을 사랑하여 자야子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야를 위하여 유명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썼다고 알려진다. 자야, 곧 김영한은 대원각의 재산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는 말로 백석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깊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어 『님의 침묵』의 시인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을 찾아간다. 심우장은 한용운 시인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며 살았던 집이다. ‘심우장’이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와 집의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이곳에서 시인은 만해가 찾는 소가 “지금쯤 어디메를 가는가” 사유한다. 심우장에서 나온 시인은 『문장』지의 주간이자 『문장강화』의 저자인 상허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을 방문한다. 탐스런 정원을 품은 수연산방은 9인회의 사랑방이었으며 김기림과 정지용과 이상이 담소를 나누던 누마루이다. 시인은 성북동 일대를 돌아다니며 “격랑의 한 시대를 선구자로 살아온/ 시인들의 생은 뜨겁게 서글펐고/ 차갑게 고달팠”을 것을 떠올리며 내리는 작달비에 총총거리면서도 “게을러진 나의 영혼을 추스르게” 함을 느낀다. 이처럼 길상사에서 수연산방에 이르는 성북동 고택 북촌 산책길에서 “이 질곡의 역사를 지나며 근대화/ 한 초석을 놓았던 선각자들의/ 집터마저 사라진 이 길이/ 통한의 길 되어 마음이 아리다/ 육백 년을 보낸 장엄한 백송의/ 범접하기 힘든 위용 앞에서 지금도/ 초라한 식민지고 쌈박질만 해대는/ 망국의 시대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아”(「북촌北村 길 걸으며」) 서러워하며 동시에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시인의 이 시대정신은 임진강에서 “만나지 못한 사연 둥둥 떠가는,/ 철책 부숴 북으로 남으로/ 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들릴지”(「임진강 연가」) 안타까움으로, 백두산을 오르내리면서는 “백두산 북파 천지는 운무에 잠겨/ 장군봉 아래 격동된 마음들 가득하여라/ 대국의 침탈로 빼앗긴 땅/ 고구려의 역사 살아 숨 쉬는 요동반도를 횡단하는/ 끝없이 펼쳐지는 대평원의 서사/ 선인들이 꿈의 나래를 펴고 웅비한 땅인데/ 강냉이밭으로 뒤덮인 땅이/ 아쉬워서”(「백두산 연가」) 한스러움으로 각각 드러낸다. 4. 김용갑 시인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적 사유의 끈을 놓지 않는다. 프랑스 나탕사에서 출간한 4권의 문학 용어사전 중 제2권에 해당하는 상징, 주제 사전에 의하면 신화는 계절을 의인화하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으며, 우리의 환상과 더 나아가 우리 행위에서의 용이한 투영에 근거를 마련해주는 문학, 화집, 음악에 계절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한다. 즉, 봄의 알레그로에서부터 겨울의 아다지오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우리의 미래, 죽음과 소생의 내면화가 묘사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세상사 변화무쌍하고 예측불허한지 가끔 기적 같은 설렘을 준다 生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고독해지며 아무도 모르는 세계를 향해 흔들리듯 가는 시간 우리 집 가게 한 편에 놓여 봄부터 가을까지 빨갛게 오가는 사람들 사랑 듬뿍 날리던 열정의 꽃 부겐빌리아! 지난겨울 혹한 북풍 바람에 얼어 봄이 다 지나도록 새순도 나지 않고 하얗게 말라 죽어가나 서운했다 아내는 버리기 아쉬웠는지 집 밖 담벼락에 놔두고 계란껍데기 화분에 주고 쌀뜨물을 받아 주기도 하며 지극정성 다한 뒤 이제 화분을 정리해야겠다 하던 오월 하순, 아침 살아났다고 환호를 한다 여린 녹색 새순 터지고 있어, 다 버려둔 나무라서 격동되어 보고 또 보느니 생명이란 겉은 죽어도 혼은 최후의 보루까지 사는지 저 꽃나무 다시 살아났는데 인간은 왜 이리 고적하고 연약하기만 한지 육신이 노후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한낱 슬픈 존재 꼭짓점을 향한 우리 부부에게 부겐빌리아가 격정주니 삶은 살만하다고 사랑하라 한다 -「부겐빌리아 부활」 전문 봄은 소생, 부활, 쇄신의 계절이다. 시인이 길렀던 부겐빌리아Bougainvillea가 그것을 증명한다. 진홍색 포엽으로 열정적인 이 꽃의 꽃말은 ‘열정’이다. 시인의 “가게 한 편에 놓여 봄부터 가을까지/ 빨갛게 오가는 사람들 사랑 듬뿍 날리던” 이 꽃이 “지난겨울 혹한 북풍 바람에 얼어/ 봄이 다 지나도록 새순도 나지 않고/ 하얗게 말라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시인의 아내는 차마 이대로 버리기 아까워 그래도 소생시킬 마음으로 “계란껍데기”를 가루로 만들어 화분에 뿌려주고 “쌀뜨물을 받아 주기도 하며/지극정성”을 다 한다. 그래도 소생하지 않으면 “화분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던 “오월 하순, 아침 살아 났”음을 보고 “환호를” 한다. 마침내 “여린 녹색 새순”이 터진 것이다. 아내의 지극정성이 헛되지 않아 “저 꽃나무 다시 살아” 난 것을 본 시인은 인간의 생명에 대해, 그리고 “生의 갈림길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이란 “육신이 노후 되면 흔적 없이 사라지는/ 한낱 슬픈 존재”임에 비해 저 나무의 생명은 얼마나 위대한가. 이 위대한 나무의 생명력, 부활은 “꼭짓점을 향한 부부에게” “삶은 살만하다고 사랑하라” 가르쳐주는 것 같다. 한겨울 죽은 듯, 다시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던 나무가 “여린 녹색 새순을 터뜨리는” 희열의 폭발로 시인은 감격한다. 부겐빌리아의 소생을 위해 “우주는 봄을 담금질”(「우수 길」)한 것이다. 새로운 희망을 안고 설원에 서 있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은 너무 많이 날아갔습니다 많은 것이 아쉽게 지나갔고 아픔도 치러내야 했습니다 이제는 홀가분하게 눈밭을 걸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놔두는 시간입니다 눈발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나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너를 관용하고 이해하는 출발 선상에 다시 서 있습니다 무척 고맙기만 한 生 다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웃는 듯 함박눈이 내립니다 저리 강물에 내리는 눈은 어디로 떠내려가는 건지. -「다시 시작하며」 전문 겨울이다. “설원에 서”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나온 시간들은/ 너무 많이 날아갔”고, “많은 것이 아쉽게 지나갔고/ 아픔도 치러내야” 했다. 눈 내린 겨울은 이처럼 조용히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계절이다. “설원”은 순결함의 상징이며 순수 그 자체의 빛을 발한다. 그러기에“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으로/ 놔두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홀가분하게” 눈밭을 걸을 수 있다. 물론 겨울이 이처럼 정결함과 순수한 지성만으로 가득 찬 계절은 아니다. 지난가을 모진 태풍 때 “도시의 거리에 드러누운 노숙자, 폐지 주워 하루를 사는 할머니”(「가을 태풍」)의 처절함과 생존 문제에 대한 시인의 염려는 이 겨울에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J. 리쉬펭이 「걸인의 노래」에서 “여기,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자, 겨울이 온다”라고 외치고 있듯 말이다. 다만, 시인은 지난가을 그 모진 태풍 때처럼 겨울에도 가난하고 힘든 자들을 겨울의 시적 공간으로 불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 대신 시인은 백색의 설원에 시인 자신을 불러 세워 순수의 지성으로 자신을 성찰한다. “눈발이 강물에 떠내려가듯/ 나를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너를 관용하고 이해하는/ 출발 선상에 다시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미 지난 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대로 놔둬야 새로이 출발할 수 있다.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시인의 달관은 종심의 나이에 가능한 실존의 한 양식이자 자기동일성이다. 그래 시인은 조용히 말한다. “무척 고맙기만 한 生/ 다 사랑스럽기만 합니다”라고. “종심 언덕을 가파르게 오르는 나날/ 그동안 선물처럼 내게 내린 눈들이”(「화이트 크리스마스」) 오늘 “함박눈”으로 설원과 시인 위로 내리니 분명 김용갑 시인의 칠순과 이 시집 출간을 축하하는 눈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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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갑 시인은 영산강이 낳은 시인이다. 영산강가에 있는 냉산 마을에서 태어나 종심의 나이에 이른 지금까지 영산강을 떠나지 않고 영산강을 가슴에 품고 영산강을 사랑하며 영산강과 함께 살고 있다. 시인은 「자서」에서 “저는 이날까지 영산강의 젖먹이로 살아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산강은 나에게 어머니의 강이고 사랑의 강이고 나를 찾아가는 구원의 강이기도 합니다.”라고 고백한다. 첫 시집 『초보 농부의 개론』(한림, 2021)에서도 영산강은 시집의 핵심을 이룰 만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고향 사랑의 정신을 보여준 바 있다.
김용갑 시인은 전남 나주시 삼영동 영산강가에 있는 냉산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며 평생 영산강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러기에 이 영산강은 김용갑 시인의 시적 모태이자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서 모든 시와 삶이 영산강과 함께 숨 쉬고 있다. 시인은 조용히 말한다. “무척 고맙기만 한 生/ 다 사랑스럽기만 합니다”라고. “종심 언덕을 가파르게 오르는 나날/ 그동안 선물처럼 내게 내린 눈들이”(「화이트 크리스마스」) 오늘 “함박눈”으로 설원과 시인 위로 내리니 분명 김용갑 시인의 칠순과 이 시집 출간을 축하하는 눈꽃이리라. - 허형만 (시인, 목포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