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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왕조실록2
의종(毅宗)~공양왕(恭讓王) 편
홍영의
살림출판사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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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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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의종(毅宗) - 놀이와 환락에 빠진 국왕, 무인에게 제거되다
명종(明宗) - 고려왕조에 태풍이 몰아치다, 무인의 시대
신종(神宗) - 노년에 잠시 스쳐 간 이름뿐인 왕위
희종(熙宗) - 최고 집정자 최충헌의 암살을 시도한 국왕
강종(康宗) - 늙은 태자 생활로 극과 극을 오갔던 일생
고종(高宗) - 고려왕조의 비바람, 고난 속에서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
원종(元宗) - 몽골의 도움으로 왕정복고를 이룩한 국왕
충렬왕(忠烈王) - 팍스 몽골리카의 시대, 고려와 고려 국왕으로 살아남기
충선왕(忠宣王) - 쿠빌라이 황제의 첫 외손 국왕
충숙왕(忠肅王) - 고려왕조의 황혼, 원 세계제국 질서에 순응하다
충혜왕(忠惠王) - 망나니라 불린 국왕, 두 번의 즉위와 폐위
충목왕(忠穆王) - 짧았던 삶, 좌절된 개혁 열망
충정왕(忠定王) - 삼촌 때문에 쫓겨난 어린 국왕
공민왕(恭愍王) - 고려왕조의 마지막 무지개, 나라를 새롭게 하리라
우왕(禑王) - 고려왕조의 몰락. 지킬 것인가, 바꿀 것인가
창왕(昌王) - 망국의 소용돌이, 비운의 왕으로 전락하다
공양왕(恭讓王) -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날의 마지막 군주

저자 소개 1

전북 군산 옥구 출생.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연구원, 국민대 박물관 연구원과 국민대·가톨릭대·한신대·명지대 강사, 한신대, 숙명여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시대를 전공으로 하고, 저서로는『고려말 정치사 연구』『여원대의 농정과 농상집요 연구』『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2)』『고려의 황도 개경』『개경의 생활사』『한국생활사박물관(고려편 7·8)』『역사문화 수첩』『세계사 연대기』『한국사 탐험대(교통·통신)』『안산의 옛 경관』『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글로벌 한국사
전북 군산 옥구 출생.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연구원, 국민대 박물관 연구원과 국민대·가톨릭대·한신대·명지대 강사, 한신대, 숙명여대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려시대를 전공으로 하고, 저서로는『고려말 정치사 연구』『여원대의 농정과 농상집요 연구』『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1·2)』『고려의 황도 개경』『개경의 생활사』『한국생활사박물관(고려편 7·8)』『역사문화 수첩』『세계사 연대기』『한국사 탐험대(교통·통신)』『안산의 옛 경관』『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글로벌 한국사 2』『고전 문학으로 떠나는 역사 여행 2』 등과 고려시대 관련 70여 편의 논문이 있다. 2007년 개성 궁성 만월대 발굴에 참여했으며, 한국중세사학회 회장(2021), 경기도사 편찬위원(2020)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 섬 역사연구소 소장(2015), 한국중세고고학회 부회장(2017), 농업문화유산 자문위원(2022), 경기도문화유산위원(2024), 디지털인문지식유산학회 부회장(2024)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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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120*190*10mm
ISBN13
9788952249517

책 속으로

고종은 고려 역대 국왕 중 46년간이라는 가장 긴 기간 동안 재위한 국왕이다. 이 기간 내내 최충헌을 비롯한 무인정권에게 권력을 빼앗긴 채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거기에다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며 장기간동안 몽골 침략에 시달리기도 했다. 특히 최항 집권기에는 매우 큰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당시 강화도로 도망갔던 최항은 빈번하게 술잔치를 벌여 정작 고종 본인은 왕실 재산이 바닥나는 바람에 점심 식사를 줄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종은 이 일을 지시하기 위해 좌창별감(창고지기) 윤평(尹平)을 두세 번 불렀는데, 3일 만에 나타났다. 고종은 분노하여 윤평의 관직을 박탈하려 했으나 “오늘 내쫒아도 내일이면 다시 복귀할 테니 징계가 무슨 소용이겠냐”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이러한 최씨 무인정권의 수모와 굴욕감은 후에 김준이 마지막 집권자 최의를 죽이고, 이를 아뢰었을 때 공을 치하하며 눈물을 흘렸을 정도였다.

이와 함께 고려 조정 내에서도 몽골과의 강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었다. 한편 몽골에서도 꾸준히 요구해오던 국왕의 친조 대신에 태자를 보내올 것을 강화의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미 나이 60살을 훌쩍 넘긴 국왕 고종을 대신해서 태자가 대신 입조하라는 것이었다. 이 논의는 결국 1259년(고종 46) 4월, 마침내 태자가 화친을 청하는 표문을 가지고 몽골로 출발했다.
--- p.47~48

공민왕은 1374년(공민왕 23)에 시해당하기까지 23년간 재위했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 대외적으로 원 제국의 쇠퇴가 시작되고 주원장(朱元璋)이 세운 명이 중국 대륙을 장악해갔다. 대내적으로는 100여 년 이상 지속되었던 몽골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고려의 정치 · 사회적 갈등과 혼란, 원에 의한 왕위계승 개입 등 국왕의 위상이 약화되어 가는 한편으로 이를 개혁하고자 하는 요구들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몽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대내적 정치 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공민왕의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발생한 고려 내부의 정치 · 사회적 문제들은 해결되지 못했다.

공민왕은 글과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 대표적인 작품으로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가 전해지며, 그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염제신의 초상화인 「전공민왕필염제신상(傳恭愍王筆廉悌臣像)」은 국가유산 보물 1097호로 지정되어 있다.
--- p.118

치열한 정쟁 속에서 공양왕은 정몽주와 함께 반격을 시도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던 윤소종을 유배 보내고, 1391년(공양왕 3) 9월에는 정도전마저 축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색, 이숭인 등이 소환되어 고위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반대파의 중심에는 정몽주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의 마지막 해인 1392년(공양왕 4) 3월에는 이성계가 해주(海州)에서 사냥하다가 말에서 떨어져 위독하다는 것을 계기로 4월에 조준 · 정도전을 먼 지방으로 유배 보내고, 남은(南誾) · 윤소종 · 남재(南在) · 조박(趙璞) 등의 관직을 삭탈해 역시 먼 지방으로 유배 보냈다.

최후의 반격이 성공시키는 듯 했다. 그러나 결국 이방원(李芳遠)이 정몽주를 암살함으로써 고려왕조를 지켜내려던 마지막 사람마저도 사라지게 되었고, 이로써 고려의 운명도 다하게 되었다.

--- p.150~151

출판사 리뷰

강렬한 개방성과 역동성의 국가,
태조~공명왕대까지 476년간의 고려왕조 역사가 펼쳐지다!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반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단일 민족 국가로서의 문화 전통을 이어 왔다. 이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 부모에 대한 효도, 공동체 조직이 발달하는 등 우리 민족의 특수성이 나타났다. 이러한 특수성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양성과 다원성에 기반한 다원주의를 마주하고 있다. 특히 고려왕조는 개방성과 역동성이 어느 역대 국가보다 강렬했다. 자율과 경쟁을 통해 융화와 통합, 이를 토대로 한 공존은 동일성을 지향했다.

이 책에서는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룩하고 ‘해동천자국(海東天子國)’을 지향한 476년간의 고려왕조 역사가 한 눈에 펼쳐진다. 저자는 제1대 태조부터 제 34대 공명왕대까지 국왕의 삶과 행적, 정치 행위를 시대별로 이해하기 쉽게 기록해 놓았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고려왕조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시각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역사와 문화의 다양성과 다원성의 근원을 이해하고, 나아가 우리가 민족과 문화에 대한 역사적 자존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여러 요소가 공존하는 다원성의 확장,
실리 외교정책과 고려의 자존의식으로 외압을 이겨내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출발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 차원을 넘어 중세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고려가 500년을 이어오는 동안 세계는 여러 변화가 일어났다. 중앙아시아는 이슬람제국의 융성과 당의 번영과 함께 당 중심 문화권이 동아시아를 지배하면서 우리는 남북국 시대로, 신라와 발해가 쇠퇴하면서 고려에 통합되었다. 중국 대륙은 5대 10국으로 나누어져 있다가 송, 요, 금, 원, 명으로 이어졌다. 고려왕조는 이들과의 문화 교섭을 통해 다양성과 다원성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또한 정치·사상·문화·사회·신분 등에서 여러 요소가 대립하지 않고 공존하는 형태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거란과 몽골, 그리고 홍건적의 침입도 있었으나 대외 실리 외교정책과 함께 고려민의 저력으로 끝내 이겨내어 고려의 자존의식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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