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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도 이면지의 맨 안래쪽에 한 줄 정도가 남았다. 나는 그곳에 이렇게 써 넣었다.
11. 진딧물은 무당벌레에게. 왜? 진딧물의 천적은 무당벌레니까. 점심시간이다. 나는 습관처럼 콧구멍을 벌름 거리며 사무실 안의 냄새를 맡는다. 희미하게 락스냄새가 떠돈다. 냄새 사이로 소장의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클래식이 나오고 있다. 흥분한 소장은 라디오를 끄고 나가는 것도 잊어 버리고 나갔다. 사무실에는 나 혼자다.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 온다. 자꾸만 무릎이 꺾인다. ---p. 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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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 사무소 여직원인 나는,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이다. 청소부나 잡역 일을 하던 어머니와,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언니를 부양해야 하는 나는 이 지긋지긋하고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암울하다. 근무 시간이 지나고 혼자서 홀짝이곤 했던 소주 한 병만이 나를 달래줄 뿐이다. 과학 학원 김 선생의 생물 진열장에서 몰래 햄스터 한 마리씩을 꺼내 죽이는 것은,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시기, 질투 때문만은 아니다.
아파트 잡역부인 남자는 매일 관리 사무소에 들러 쓰레기봉투 하나씩을 받아간다. 청소부 아줌마도 꺼리는 음식물 쓰레기통 청소, 들고양이 시체 치우기, 들고양이에게 물려 죽은 비둘기 치우기, 이런 일 모두 남자의 몫이다. 나는 남자의 바보스런 행동을 관찰하다 연민을 느낀다. 아이는 어려서 어머니가 자기 앞에서 차에 치인 사건을 목격하고 이후 말문을 닫아버렸다. 아이는 사슴벌레와 토끼를 기르지만, 둘마저 아이를 떠나간다. 고양이를 먹는 것 외에는 온갖 관절염 치료를 다 받았던 나는, 누군가에게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룹알할리 사막에 가면 관절염이 낫는다는 얘기를 듣는다. 나는 ‘내 몸 안의 습기를 모두 말리기 위해’ 룹알할리 사막에 가려고 3년 만기의 적금을 붓는다. 3년 만기가 차면,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막에 가려 한다. 아이는 엄마가 살고 있다는 안드로메다에 가고 싶어 한다. 바보스런 남자는 그런 아이를 동정해 아이에게 우주선을 만들어주려 한다. 판자로 몸체를 만들고, 빗자루로 날개를 다는. 남자는 아이가 ‘나’를 마법사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의 일기장을 우연히 훔쳐보고는, 아이에게 “너는 왜 그렇게 먼 별에서 왔니?”라고 물었을 뿐이다. 나는, 어머니가 덜컥 사버린 옥매트 때문에, 나의 일 년 치 월급의 1/3이 넘는 옥매트 값에 몰린다. 그 돈은, 내가 사막에 가기 위해 자그마치 3년간 넣었던 적금을 깨야 물릴 수 있다. 관리 사무소까지 찾아온 남자들은 나에게 돈을 빨리 갚으라며 윽박지른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후, 소주 한 병을 꺼내 마시고, 과학 학원 김 선생의 햄스터를 꺼내 들고양이의 먹이로 던져주고, 단지 안내 방송을 통해 아파트 주민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이와 남자는 드디어 우주선을 완성하였고, 그 우주선을 날게 해줄 마법사 ‘나’를 초대한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실종 상태다. 아파트 단지 부근의 남자의 집에서 우주선을 완성시킨 채 ‘마법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룹알할리 사막으로 떠나기 위한 기대가 무너진 채, 암울한 현실에 또다시 묻혀버린 나는, 남자의 집에 찾아온다. 아이와 남자는 ‘나’를 반기지만, 나는 경찰에 미행당한 채였다. 나, 아이, 남자는 숲 속으로, 바위산으로 도망친다. 플래시 불빛들이 뒤쫓는다. 룹알할리, 룹알할리…… 나는 룹알할리에 갈 것이다. 제발 날 그곳으로 보내줘. 나는 쉬지 않고 주문을 외운다. 플래시 불빛이 바위 위의 우리를 덮친다. 우리는 꼼짝없이 그 불빛에 갇힌다. “내가 정말 날 수 있다는 걸……. 날 믿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불빛에서 걸어 나와 바위 가장자리로 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날아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밤이다. 나는 오직 내 몸을 짓누르고 있는 하늘 위 수 킬로미터의 구름층을 뚫고 날아오르고 싶을 뿐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서서히 내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룹알할리, 나는 지금 그곳으로 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