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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전 초
만보 노인 누이의 집 B녀의 소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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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 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이란 말이다. 이 문벌도 없고 무식한 소작인 집에 국장 영감이 났으니 그가 용이 된 세음이다. 옛날부터 ‘숭어부’라 하여 자식이 아비보다 뛰어났다면 아비도 기뻐했다니까 그의 아버지는 지하에서 기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믿지를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이십 년이나 된지라 지하에서 기뻐하는지 어쩌는지 낯빛은 볼길도 없거니와 만일 지금 살아 있다 치고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자식이 아비보다 나아야 집안이 되는 거지." --- “농부전 초” 중에서 "아무래도 할멈 말이 옳을까부다" 만보 영감은 간신히 몸을 모로 세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았을 때는 꼬리를 밟힌 독사처럼 악만 바락바락 쓰던 할멈이었지마는 그래도 할멈밖에 자기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없는가 했다. 저승에 가서까지 영감 걱정을 했으니까 그 혼백이 자기를 찾아온 게거니 했다. 먹고살기에 쪼들려서 화풀이할 곳이 없으니까 자기에게 그렇게 억척으로 군 것을 모르는 영감은 아니면서도 아침 저녁으로 갖은 포악을 다 듣고 어떤 때는 대추씨만큼밖에 안 남은 꼭뒤상투까지 꺼들리는데 진저리가 나서 시원스레 잘 죽었다고 진정으로 생각한 일까지 있던 자기 자신이 새삼스레 돌아다보이었다. 홧김에 한 말이지만서도 거꾸러지지도 않는다고 갖은 악담을 한 것이 새삼스레 후회가 났다. 할멈이 죽은 지는 보름도 채 나지 않았는데 영감은 오늘까지 할멈의 꿈을 세 번이나 꾸었다. 여덟 달 동안이나 바깥 출입을 못하고 골골하던 할멈이니만큼 두 번은 다 몽달귀신 같은 화상을 하고 영감한테로 나타났다. 눈은 퐁 들어가고 광대뼈가 톡 튕겨진 것이 물귀신처럼 머리를 풀어 헤뜨린 그 화상은 죽기 전 석 달 동안 보아온 병석의 할멈 바로 그대로였다.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앙상한 해골에다 벽지를 발라놓은 것 같았다. --- “만보 노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