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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궁촌기 노래를 잊은 사람 기차와 박 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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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이 쏜 피스톨에 범인인 교회지기가 쓰러지자 관중석에서는 벌써 의자 젖혀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화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신부로 분장한 몽고메리 크리프트가 천천히 걸어가서 쓰러진 범인을 받쳐들고 관중의 시야 속으로 부쩍부쩍 다가올 때는 관중석에서는 어시장 그대로의 혼잡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이회 관중들이 반도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삼회권 가진 사람들이 출입구를 막은 것이다. 빨리 나가라는 듯이 벨이 요란스럽게 울어대고 있다. 십분간이라는 휴식시간도 있고 하니 길을 텄으면 순조로우련만 출입구를 막고는 서로 입심만 세우고들 있다.
"나갈 사람이 다 나가거든 들어오너라!" "길을 틔워라! 바보 같은 자식들아!" "내밀어라, 내밀어!" 「나는 고백한다」라는 영화가 끝날 무렵의 S극장 이층의 광경이었다. 특별 요금까지 받는 영화를 감상하러 온 서울의 지성인들이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뚫고 들어온 사람은 제자리를 찾느라고 또 법석이다. --- “죄와 벌” 중에서 기차와 관련있는 이야기를 쓰라는 편지를 받고 나니 까마득히 잊고 살아온 박 노인 생각이 머리에 붕 떠오른다. 해방 전 일이니까 벌써 20년 가까이 된다. 그때 나는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해서 닿을 수 있는 K역에서도 한 십리 동쪽으로 들어간 ‘궁말’이란 산기슭 두 집 뜸에 살고 있었다. 아내 말을 빌리면 객기였지만 내 딴에는 농민 문학을 하자면 농촌에 들어가서 농민들과 생활을 같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객기’요 ‘패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때만 해도 젊었었다. 레이몬드의 「농민」과 같은 4부작을 써서 일약 문단을 한번 뒤집어놓을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농촌에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첫째 생계가 서지 않았다. 서울이 가까우니 채소를 해보겠다던 것도 꿈이었고, 자리잡고 독서를 해보겠다던 계획도 허사였다. 만 5년간 봉놋방에서 막걸리 타령을 하다가 해방을 맞은 셈이 되고 말았었다. --- “기차와 박 노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