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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관능과 금기, 그리고 상실]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콜레트. 그녀의 대표작 『셰리』가 출간되었다. 터부시되어 온 금기들을 하나씩 깨트려가며, 생의 기쁨을 누리고자 했던 콜레트의 문학을 온전히 담은 소설. 파격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세월이 흐른 뒤 찾아오는 상실감까지 탁월하게 표현했다. -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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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머리에
셰리 옮긴이의 말 |
Sidonie-Gabrielle Col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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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한 시 십오 분 전이야! 어서 가, 이제 우린 절대 다시 만나지 않는 거야!”
“절대?” “절대!” 레아는 애써 다정하게 받아쳤다. 홀로 남은 그녀는 도도한 미소를 지었다. 억누른 욕망으로 숨이 막혔다. 그녀는 헐떡거리며 저택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셰리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철문을 열었다가 도로 닫은 뒤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그가 보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걷던 심부름 나온 소녀 세 명이 그에게 황홀한 시선을 보내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나! 세상에!… 비현실적이야.… 한 번 만져본다고 할까?” 하지만 그런 찬사에 이미 이골이 난 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p.23 셰리는 잠꼬대처럼 선언했다. “여자는 없어! 그러니까… 키스해 줘!” 놀란 레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키스해 달라니까!” 그는 미간에 힘을 주며 명령했다. 말과 동시에 번쩍 뜬 그의 눈이 내쏘는 섬광에 레아는 돌연 전기라도 켜진 듯 당황했다. 그녀는 어깨를 추어올리고는 바로 앞에 있는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는 레아의 목에 양팔을 둘러 그녀를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겼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으나 저항은 그들의 입술이 맞닿기 전까지였다. 이제 그녀는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채로 무언가를 경청하려는 듯 숨을 멈추었다. ---p.43 ‘내가 왜 잠 못 드는 거지?’ 어렴풋한 의문이 솟구쳤다. ‘어깨를 누르는 이 아이의 머리 때문은 아니야. 더 무거운 머리들도 받쳐 봤는걸… 날이 이리 좋을 수가…내일 아침엔 맛있는 죽을 주문해줘야겠어. 이 아이한테서 벌써 바다 냄새가 덜 나는 것 같아. 대체 내가 왜 잠 못 드는 거지? 아! 그래, 생각났다, 복서 파트롱을 여기로 불러 이 아이를 단련시켜야겠어. 시간이 충분하잖아, 한쪽에선 파트롱이 다른 한쪽에선 내가 이 아이를… 플루 부인이 기절초풍하도록….’ ---p.49 셰리가 문틀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가볍고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스라친 그녀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새나왔다. 다정하지도 다변도 아닌 그는 한달음에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가 그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녀는 외마디를 흘렸다. “미친 거야?” 그는 어깨를 추어올리며 영문을 모르는 척했다. 그는 그녀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날 사랑해? 날 벌써 잊은 거야?’ 그는 그녀에게 한달음에 달려왔다. 잠시 후, 그들은 청동으로 세공된 레아의 커다란 침대에 움푹 파묻혀 누워있었다. 셰리는 잠든 척했다. 우울감과 숨죽인 분노에 사로잡혀 보다 편하게 이를 악물고 두 눈을 감기 위해서. 그에게 기대어 누운 그녀는 어쨌든 그의 소리를 들었다, 희열에 들떠서 들었다. 미세한 떨림을, 저 멀리에서 요동치는, 포로처럼 온몸으로 부인하는 공포와 감사와 사랑의 울림을. ---p.58 “누누, 자기야! 자기가 맞구나! 나의 누누! 아, 나의 누누, 당신 어깨, 똑같은 당신 냄새, 당신 목걸이, 자기를 되찾았어, 나의 누누, 아! 좋아…. 그리고 머리칼의 이 희미한 탄내, 아! 너무… 너무 좋아….” 셰리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가슴에서 뿜어내는 마지막 숨결처럼 이 어리석은 말을 내뱉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댄 채로 레아를 부둥켜안으며 그녀에게 머리칼로 그늘진 이마와, 눈물범벅인 떨리는 입술과, 기쁨이 반짝이는 눈물이 되어 흐르는 눈을 바쳤다. 레아는 이 남자 이외의 다른 것은 완벽하게 잊고서 오직 그만을 주시했다. ---p.173 ‘그가 여기 있어’, 레아는 생각했다. 그녀는 무조건적인 안도감에 휩싸였다. ‘그가 영원히 여기 있어’, 그녀는 속으로 외쳤다. 빈틈없는 조심성, 그녀의 삶을 이끌어온 미소를 잃지 않는 상식, 원숙한 그녀 나이의 겸허한 망설임, 그리고 포기, 그 모든 것들이 돌연한 사랑의 오만함 앞에서 물러나며 사라졌다. ‘그가 여기 있어! 어리석고 예쁘장한 어린 아내도 내팽개치고, 집도 내팽개치고서 돌아왔어, 나한테 돌아왔어! 이제 누가 나한테서 그를 뺏어갈 수 있을까? 이제는, 이제는 내가 우리의 삶을 계획해야 해…. ---p.179 |
콜레트는 빅토르 위고가 이전 시대에 그러했듯이, 자신의 시대와 그 문학을 상징하는 대작가로 여겨진다. 아카데미 공쿠르의 두 번째 여성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에 첫 여성 회장이 되었다. 또한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이기도 했고, 여러 신문과 잡지에 기고한 기자였으며, ‘콜레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에 직접 출연하여 인물이 타이틀이 되는 다큐멘터리 장르의 포문을 열었다. 다양한 활동 중에도 집필 활동을 쉬지 않아 20편의 장편소설과 5편의 단편집, 30편 이상의 수필과 서간문을 남겼다. 눈을 감았을 땐 프랑스 정부가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콜레트 문학은 감각적이고 혁신적인 문체, 대담한 주제, 주체적인 여성상, 복합적인 인물 묘사 등이 특징으로, 우리나라에 보다 잘 알려진 마르그리트 뒤라스, 프랑수아즈 사강, 시몬 드 보부아르를 위시하여 숱한 후대 여성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현대 여성문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욕망과 고독을 내포한 사랑, 감각적인 문체, 감정을 자연에 투사하여 풍경과 기후 등으로 내면의 고통을 변주하는 방식(뒤라스),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젊은 여성 주인공, 일견 가볍게 느껴지는 문체로 묘파하는 사랑의 딜레마와 깊은 감정의 통찰, 개인적 행복 추구와 사회 통념 위반,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유로운 삶의 의지(사강), 성적 자유와 여성의 독립성 주장. 사랑의 권력 관계 탐구(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그러하다. 『셰리』는 이러한 콜레트 문학의 특성이 집결된 콜레트 예술의 정수로 평가된다. 주요 주제는 셰리와 레아의 복합적인 관계를 통한 사랑과 열정 탐구, 그리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 노화가 셰리와의 관계에 미치는 파장을 깨닫는 레아를 통한 노화와 상실, 상실에 대한 수긍, 자유에 대한 갈망, 흐르는 시간과 노스탤지어 등이다. 현대에도 여전한 울림을 주는 보편적 주제들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마지막 장에 있다. 콜레트가 셰리와 레아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 나가며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마도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한 것이 아닐까. 비단 연인 간의 헤어짐이 아니라 해도, 우리는 살면서 소중한 것을 원치 않게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그것이 젊음이건, 야망이건, 소중한 사람이건…. 떠나보낸 자리에 남겨진 상실감은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 삶이다. 『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떠나보내 본 적 있는 사람의 가슴에 유리 파편처럼 박혀 있던 기억을 소환하는 소설이다. |
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질료의 작가’, 우리는 그런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 - J. M. G. 르 클레지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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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의 작품은 순수한 관능이다. 그의 유일한 주제는 감각의 개화요, 본능의 발휘다. - 귀스타브 랑송 (프랑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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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는 멋진 주제를 지적이면서도 완벽하게 다루어냈고, 육체에 관한 비밀들을 이해하고 있다. - 앙드레 지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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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는 내가 아는 한 천재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작가이다. - 앙리 드 몽테를랑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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