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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책
남진우
문학과지성사 200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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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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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제1부
저녁빛/모래 사나이/11월의 마지막 날/기다림/타오르는 책/책 읽는 남자/공포소설을 읽는 밤/비행접시/랩소디 인 블루/겨울 저녁의 시/도서관에서의 기도/겨울 저녁의 방문객/무한 속으로/영원의 풍경/환

2. 제2부
달은 계속 둥글어지고/족장의 가을 1/족장의 가을 2/초록 달팽이의 길/비단길/모래구름 아래서/항이라 속의 시인/항아리에 대한 단상/앵무새에 관한 명상/기침/솔라리스/유리병에 담긴 소식/저 짐승/먼지 속의 속삭임/주사위 놀이/새

3. 제3부
정오/장님 행렬/불면/나무 뿌리는 힘이 세다/정육점의 시인/은빛 달팽이의 추적/유적지/화려한 유적/겨울 저녁의 예감/지구 최후의 날/피를 부르는 청동 불꽃/머리 둘 곳을 찾아/자정/차가운 눈/멀리 먼 곳에서/저무는 거리에서/깊은밤 깊은 곳에/단식/사라지는 책/나그네는 길에서 쉬기도 한다

저자 소개 1

南眞祐

시인. 문학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1960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사랑의 어두운 저편』, 평론집 『신성한 숲』, 『바벨탑의 언어』, 『숲으로 된 성벽』,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산문집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작업은 시라고 하였다』 등이 있고, 『문학 그 높고 깊은_박범신 문학연구』를 함께 썼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달진문
시인. 문학평론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1960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사랑의 어두운 저편』, 평론집 『신성한 숲』, 『바벨탑의 언어』, 『숲으로 된 성벽』,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산문집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작업은 시라고 하였다』 등이 있고, 『문학 그 높고 깊은_박범신 문학연구』를 함께 썼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재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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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3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11783

책 속으로

유리창에 가늘게 금이 가 있다
새 한 마리 흰 눈 덮인 숲을 가로질러 나는 동안
집은 짙어오는 땅거미에 점점 지워져가고
나는 식탁 옆에 앉아 거실 저편
텅 빈 풍경을 바라본다

저녁 여섯시 반
마을이 어둠의 깃 안에 몸을 눕히는 시간
저문 하늘을 담은 유리창에 그어진 금
목이 마른 나는 손을 뻗어 식탁 위 유리잔을 잡지만
이미 그곳엔 희미한 공기의 떨림뿐

새는 유리창을 파고들어 내 귓속에
금속성 몇 방울을 떨어뜨리고 미세하게
번져가는 유리창의 균열을 타고
전화선을 오가던 목소리들이 섞여든다

누군가의 눈빛이 유리창에 머물러 있다
흔들리는 창 흔들리는 방 흔들리는 집
싸늘히 식은 몸 속을 가로지르는 물의 흐름이
의식 속에서 가물거리다 멀어질 때
다시 천천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

손을 뻗어 방 전체로 번져가는 외침을 부여잡지만
이미 그곳엔 뚜 … 뚜 … 거리는 통화 정지 신호뿐
유리창에 그어진 금을 타고 밀려오는 어둠에
서서히 지워지는 거실 안 풍경들

내 귓속 이명처럼 울리는
겨울 저녁, 먼 고장의 눈사태 소리

--- pp.86-87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뿌리부터 줄기까지 잘 가꿔진 책
페이지를 넘기면 잎사귀들이 푸르게 반짝이며
제 속에 숨어 있는 나이테를 알아달라고 손짓한다

나는 매일 한 그루씩 책을 베어 넘긴다
피도 흘리지 않고서 책들은 고요히 쓰러진다
아니면 한 장씩 찢어 입에 넣고 오래 우물거린다
이 나무의 성분을 나는 짐작하지도 못하겠다

글자들의 푸른 잎맥을 따라가다가
간혹 벌레가 파먹는 자리를 발견할 때도 있다.
비록 이 나무는 꽃도 열매도 맺지 못했지만
나르대로 시원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여기 한 그루 책이 있다
책이 덩굴을 내밀어 내 몸을 휘감아오른다
무수한 문장들이 내 몸에 알 수 없는 무늬를 새기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아무리 베어내도
무성하게 자라오르는 책나무

책나무 속에 들어가 눕는다
내 속에 뿌리 뻗은 나무에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저 눈부신 새떼

--- pp.20-21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부릴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 p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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