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청년패스
작은 일기
양장
원제
Diario Minimo
가격
8,500
10 7,650
YES포인트?
43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저자 소개 2

움베르토 에코

관심작가 알림신청
 

Umberto Eco,움베르트 에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및 소설가.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로 건축학, 기호학, 미학 등을 강의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유럽 문명의 역사를 다룬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사이클로미디어Encyclomedia를 기획, 제작했다. 에코의 이름을 알린 소설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에 번역돼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소설로 프랑스 메디치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토리노 대학에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및 소설가.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로 건축학, 기호학, 미학 등을 강의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유럽 문명의 역사를 다룬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사이클로미디어Encyclomedia를 기획, 제작했다.

에코의 이름을 알린 소설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에 번역돼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소설로 프랑스 메디치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토리노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가 되었고, 『일반 기호학 이론』, 『구조의 부재』 등 기호학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을 펴냈다. 소설가이자 학자로서 그는 스스로를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진지한 철학자’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분야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펼쳤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 이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다른 상품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어과 및 같은 대학원을 졸업한 뒤, 비교 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이탈리아 대사관 주관 제1회 번역 문학상과 이탈리아 정부에서 주는 국가 번역상을 수상했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통번역학과 조교수를 지냈어요. 옮긴 책으로 『너에게』 『내가 정말 그렇게 이상한가요?』 『네가 찾아올 때까지』 『행복을 선물해요 : 친절』 외 여러 권이 있어요.

이현경의 다른 상품

관련 분류

카테고리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11월 3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7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2905792

책 속으로

별로 진지하지 않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기능 중의 하나는 바로 지나치게 진지한 것들에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다 ― 바로 이것이 패러디의 중요한 기능이다.

- 〈서론〉, p. 8

만약 심리학적으로 스트립쇼의 관계가 가학-피학적이라면 사회학적으로는 이런 가학-피학성은 현재 수행되고 있는 교육적인 제의에서 기본적 요소이다. 스트립쇼는 좌절을 찾고 또 받아들이는 관객에게 생산 수단은 그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스트립쇼가 사회학적으로 카스트(혹은 계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도를 분명하게 도입한다면, 형이상학적으로는 본질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쾌락과 소유할 수 있는 쾌락을 비교하게 구경꾼을 이끈다. 자신의 현실과 모델을, 자신의 여성들과 여성성을, 자신의 성적 경험과 이상적인 성을, 그가 소유한 알몸들과 결코 소유할 수 없을 이상적인 나체를 비교하게 된다. 스트립쇼는 이런 무의식적인 조합을 통해 플라토닉한 상황을 타율적이며 억압된 사회학적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정치적 지렛대가 그에게 속해 있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이상의 왕국에 의해 자신의 경험 모델이 허가되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 스트립쇼의 관객은, 현존하는 질서의 튼튼하고 견고한 기둥으로 기능하는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시켜 주는 정화 의식을 치른 뒤 일상의 의무 속으로 평화롭게 돌아간다. 그리고 <크레이지 호스>(수행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선불교 출가자들을 위한 수도원)보다 덜 금욕적인 클럽의 관객들은 쇼에서 본 무희의 사진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허락을 받는다. 그들의 헌신과 고독이 권유하는 불경함의 실천을 통해 자신의 인간적인 조건을 위로하도록 말이다.

- '스트립쇼와 이성', pp. 25~26

양적인 현상의 영역에서 보통이란 평균이라는 뜻으로 이용되며 아직 평균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은 표준을 나타낸다. 널리 알려진 명언에 따르면 통계학은, 만일 매일 어떤 사람은 닭 두 마리를 먹는데 또 다른 사람은 한 마리도 먹지 않은 경우, 이 두 사람이 각각 한 마리의 닭을 먹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학문이다. 한 마리도 먹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에 닭 한 마리를 먹는다는 목표는 그가 열망하는 긍정적인 무엇인가가 된다. 하지만 질적 현상의 영역에서 중간으로서의 평준화는 0으로 평준화되는 것과 같다. <평균 수준>의 도덕적 ? 지적 미덕을 모두 소유한 사람은 발전 단계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중용>은 <신중함>이라는 분별력 있는 미덕이 바탕이 되어 자신의 열정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평균 수준으로 열정을 키우고 평균적으로 신중하다는 것은 보잘것없는 인간성의 전형을 의미한다.

- '마이크 본조르노의 현상학', pp. 37~38

마이크 본조르노는 시청자들에게 평범함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생생하면서도 의기양양한 예를 들어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상으로 비춰지지만 열등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그에게 감사하며 그를 사랑하는 것으로 보답한다. 그는 그 누구도 도달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이상을 대표한다. 누구든 이미 그의 수준에 이르러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종교도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렇게 너그러울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서는 이미 존재하는 것과 그렇게 존재되어야 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해소된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신입니다. 그대로 계십시오.

- '마이크 본조르노의 현상학', p. 44

우리가 엔리코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프란티는 너무 많이 웃는다. 그의 웃음은 정상이 아니며 비웃는 듯한 그 미소는 상투적이고 거의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웃는 사람은 분명 즐겁지 않을 것이다. 혹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리라.
'사랑의 학교'라는 우주에서 프란티는 부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지만 ― <부정>은 <웃음>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프란티는 못된 아이이기 때문에 웃지만 ― 엔리코는 이렇게 생각한다 ― 실제로는 웃기 때문에 사악해 보인다. 혹시 웃는 사람의 사악함이 미덕의 한 형태는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해 엔리코는 자문해 보지 않는다. 웃는 모든 것, 프란티의 사악함은 마음이 지배하는 세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엔리코가 번성하고 풍요로워지리라고 생각하는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엔리코는 그 사악함의 위대함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 '프란티에게 바치는 찬사', pp. 53~54

제임스 조이스, '피니건의 경야'

제발, 검토서를 보낼 때에는 좀 더 주의를 기울이라고 편집부에 말해 주십시오. 저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인데 당신들은 다른 언어로 정말 거지같이 쓴 책을 제게 보냈단 말입니다. 책을 소포로 따로 돌려보내 그리겠습니다.

- 애석하지만 출판할 수 없습니다, p. 91

게다가 우리는 조용한 고독이 주는 기쁨을 잊은 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욕구를 이론화하지 않았던가? 이것이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 그리고 다수가 정하는 법을 따르라, 이것이 민주의주의의 계명이다. 자신을 뽑아 줄 사람만 충분히 모을 수 있다면 그가 누구든 어떤 직책이라도 맡을 수 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직책들은 운에 맡겨지게 된다. 우연성이 바로 대중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p. 96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명인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집 『작은 일기』가 이현경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지적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이 책은 이탈리아의 유력한 문학잡지 '일 베리'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기서 에코의 패러디는 단순히 대상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패러디 하나하나가 또 다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계산된 지적 행위로, 독자들에게 익숙했던 것을 전혀 낯선 가치 판단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 글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진부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패러디의 기능 ― 지나치게 진지한 것에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기

에코는 이 책의 서문에서 <별로 진지하지 않은 것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기능 중의 하나는 바로 지나치게 진지한 것들에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별로 진지하지 않은 것>은 물론 패러디를 가리키는 것이다. 자신의 말처럼 에코는 과거와 현재의 정전과 권위들, 심지어 종교적 아이콘들을 패러디의 대상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패러디들은 기존의 이야기 형식과 가치,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 등 모든 것을 전도시키거나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롤리타'가 표현하고 있는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 판타지는 할머니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성욕으로 바뀌고,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에서 선하고 긍정적인 세계를 대변하는 엔리코에 의해 구제불능의 사악한 아이로 묘사되는 프란티는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투사가 된다. 그리고 '성서'와 '오디세이아' 같은 서양 문화와 정신의 근간이 되는 작품들이 출판사 편집자에게 어떤 이유로든 출판하기 곤란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제임스 조이스의 '피니건의 경야'는 <정말 거지같이 쓴 책>이라고 평가받는 수모를 당한다. 플라톤의 대화편과 그리스 시대의 비극 작품들이 이 책에서 대중들을 미혹시키기 위한 대중문화 상품으로 전락한다고 해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높은 곳에 위치한 패러디의 대상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면서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그 목적을 성취하는 일반적인 패러디처럼 에코의 패러디는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에코의 패러디는 대상을 <부정>하거나 풍자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지하고 강건하게 표현하게 될 무엇인가를 예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코는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 속에서 심지어 자신의 흔적마저 지운다. 독자들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진짜 에코의 말인지 아닌지조차 확실히 장담할 수 없다. 여기서 패러디의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그것이 가진 힘을 확인시키고 강화할 수도 있는 일반적인 패러디와의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이야기의 주체인 자신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대상은 <부정>되는 게 아니라 <의혹의 그림자> 속에서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에코의 말이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패러디로 글 읽기는, 패러디에 영향을 준 모델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이해시키는 데도) 이용되어야만 한다. 패러디라는 게 항상 부정적으로 간주되는 모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텍스트를 패러디한다는 것은 그 텍스트에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에코는 대상을 <부정>하거나 <긍정>함으로써 가치에 대한 판단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전혀 반대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게 함으로써, 부정과 긍정이 뒤섞인 긴장의 장 속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독자들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하는 의문을 갖도록 유도한다. 말하자면 에코의 패러디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실을 다시 한 번 관찰하고 생각하도록 대상을 심문하고 그 이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웃음은 악마적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인간적이다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의 한 명인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집 ?작은 일기?가 이현경 씨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지적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 주는 이 책은 이탈리아의 유력한 문학잡지 ?일 베리?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여기서 에코의 패러디는 단순히 대상을 희화화하고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패러디 하나하나가 또 다른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계산된 지적 행위로, 독자들에게 익숙했던 것을 전혀 낯선 가치 판단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는 이 글들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진부한 것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패러디의 기능 ― 지나치게 진지한 것에 의혹의 그림자를 던지기

『작은 일기』는 비교적 작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글을 담고 있다(일본어판은 이러한 점을 고려한 듯 <움베르토 에코의 문체 연습>이라고 제목을 달고 있다). '노니타'와 '누보 고양이 스케치'처럼 고전적인 지위에 오른 현대 문학의 문체를 그대로 흉내 낸 것에서부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처럼 아도르노의 문화 비평적 관점을 흉내 낸 글과 심지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대한 신비평의 비평문을 모방하여 그러한 비평문의 난해성을 풍자하고 있는 글까지 있다. 여기에는 또한 '아메리카의 발견'처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는 역사적 순간을 희곡적으로 재구성한 작품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글들 속에서 이 책 전체가 지향하는 방향을 규정하면서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글들이 있다. '스트립쇼와 이성', '마이크 본조르노의 현상학', '프란티에게 바치는 찬사'가 그런 경우이다.
'스트립쇼와 이성'에서 에코는 스트립쇼와 관객의 관계에서 현대 사회에서의 소유와 지배 관계를 읽어 낸다. 여기서 스트립쇼의 관객은 한 사회 안에서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상상할 수는 있는, 그리고 단지 그렇게 상상하는 것만을 허락받은 무력한 개인들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단지 보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마이크 본조르노의 현상학'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가 인기를 얻은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에코는 그의 인기 비결은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그의 사고력과 행동 방식에 있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평범하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한 사회 전체가 가진 의식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온다. <그대로 계십시오. 당신들이 신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그 어떤 글보다 도발적인 내용을 담은 글은 '프란티에게 바치는 찬사'이다. <웃음은 악마적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인간적이다>라는 말로 끝나는 보들레르의 글을 제사(題詞)로 인용하고 있는 이 글은 아동 문학의 걸작 '사랑의 학교'의 텍스트를 분석하면서 선과 악을 전도시키고 있다(심장, 가슴, 마음, 애정, 양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쿠오레Cuore>가 원제인 이 책은 초등학교 4학년생인 엔리코의 일기를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9편의 이야기 속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헌신, 부모 이웃 친구에 대한 사랑과 자기희생 등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프란티는 여기서 엔리코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선한 사회의 구성원들 밖에 놓여 있다. 말하자면 선한 사회의 훼방꾼, 즉 악당이다. 그러나 이 글은 이러한 상황에 조금씩 의혹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우선 이 글은 국가에 대한 충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엔리코의 아버지에게서 신분에 따른 차별을 주장하고 파시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전쟁 옹호론자의 모습을 본다. 이어서 프란티의 어머니가 등장하여 교장에게 문제아 아들인 프란티를 용서해 달라고 애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란티는 굴욕감을 느끼지 않으려 미소를 짓는다. 엔리코는 일기에 이렇게 쓴다. <그러자 그 악당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여기서 웃음은 제사로 인용했던 보들레르의 글과 연결되면서 중대한 함의를 드러낸다(여기서 장미의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모티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엔리코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면 프란티는 너무 많이 웃는다. 그의 웃음은 정상이 아니며 비웃는 듯한 그 미소는 상투적이고 거의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웃는 사람은 분명 즐겁지 않을 것이다. 혹은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웃는 것이리라.> 여기서 에코는 프란티는 못된 아이이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사악해 보인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희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프란티)가 엔리코의 옷을 입고 직접 '사랑의 학교'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서문>에서 학교에서 읽히기 위해 수정되었다고 밝히고 있는 이 글은 선과 악을 극적으로 뒤바꾼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선과 악의 경계를 나누는 주체와 그 주체의 실체에 의혹을 가지게 만든다. 하지만 그 경계는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엔리코의 선은 옳고 그름의 기준 없이 단지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의 편에 서는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다면 프란티는 위선을 비웃는 위대한 반항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키는 프란티의 행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전개되는 에코의 도발적 발언들은 나의 도덕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빠져 들게 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어디까지가 에코의 진심일까?

리뷰/한줄평5

리뷰

8.0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