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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몽테뉴로 돌아가다
레비스트로스의 처음과 마지막 강연 반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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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해설|레비스트로스 사상 속의 몽테뉴

첫 번째 강연 ----- 1937년 1월 29일
혁명적 학문으로서의 민족지학

두 번째 강연 ----- 1992년 4월 9일
다시 몽테뉴로 돌아가다

몽테뉴 더 읽어보기
식인종에 대하여
마차들에 대하여

옮긴이의 덧붙임|서구 문명의 오만에 균열을 내다
레비스트로스 연보

저자 소개2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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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Levi-Strauss

1908년 브뤼셀에서 태어나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한 레비-스트로스는 20세기 인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계적 석학으로, 철학을 비판하며 철학에 대항하는 인간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을 정초했다. “수시로 변하는 현상 뒤에 숨은 어떤 근본적인 내적 원리”를 집요하게 탐색한 그의 사유는 ‘구조주의’라는 총체적 현상으로 지칭되었다. 1960~70년대 사람들은 구조주의를 철학과는 또 다른 하나의 사유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해 푸코, 라캉, 바르트 등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했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은 근거 없는 혼합이며 자신의 지적 계보는 벤베니스트와
1908년 브뤼셀에서 태어나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한 레비-스트로스는 20세기 인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세계적 석학으로, 철학을 비판하며 철학에 대항하는 인간과학으로서의 인류학을 정초했다. “수시로 변하는 현상 뒤에 숨은 어떤 근본적인 내적 원리”를 집요하게 탐색한 그의 사유는 ‘구조주의’라는 총체적 현상으로 지칭되었다. 1960~70년대 사람들은 구조주의를 철학과는 또 다른 하나의 사유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레비-스트로스를 비롯해 푸코, 라캉, 바르트 등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했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은 근거 없는 혼합이며 자신의 지적 계보는 벤베니스트와 뒤메질, 베르낭 정도라고 말했다.
1930년 파리 대학 법학부와 문학부에 입학하여 조르주 뒤마의 강의를 듣고 임상심리학, 정신분석학 등에 흥미를 가졌으며, 루소의 저작들도 이때 탐독했다. 이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그는 교육실습에서 메를로-퐁티와 같은 조가 되어 우정을 맺는다. 1933년 로위의 『원시 사회』를 우연히 읽고 인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대학교수를 지내면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 등을 방문조사하며 여러 논문을 발표했고, 194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신사회조사연구원에서 문화인류학을 연구했다. 이때 미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태생의 언어학자 야콥슨을 알게 되어 언어학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그와 공동 연구를 하기도 했다. 야콥슨과 공동으로 『언어학과 인류학에서의 구조적 분석』을 발표하였다.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가 되어 1982년 퇴임할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박사학위논문 『친족 관계의 기본 구조』(1949)가 출판되어 프랑스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산문 기록처럼 쓰인 『슬픈 열대』(1955)는 공쿠르상 후보작이 되기도 했다. 1962년 발표한 『오늘날의 토테미즘』과 『야생의 사고』는 원시인에 대한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사상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날것과 익힌 것』(1964), 『꿀에서 재까지』(1965), 『식사예절의 기원』(1968), 『벌거벗은 인간』(1971) 등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레비-스트로스 신화학의 체계를 완성했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을 지내면서 『먼 시선』(1983), 『보다 듣다 읽다』(1993) 등 굵직한 저서를 다수 내놓았다. 프랑스 지성사에서 루소 이후 가장 박식한 인물로 꼽히며, 2008년에는 생존 인물로는 이례적으로 갈리마르출판사에서 펴내는 '플레야드 총서'에 이름을 올렸다. 2009년 10월 30일 101세로 타계하였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다른 상품

덕유산 아랫마을 거창에서 태어났다. 시골 책방에서 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원제: 2년 동안의 휴가)가 있다. 이 책이 나에게 펼쳐 보인 장면들은 어머니가 들려준 호랑이나 귀신 이야기와는 또 다른, 가슴 두근거리는 유혹의 숲이었다. 현실 세계에 눈뜨기 전, 책이 들려주는 저 너머의 세계에 나 자신을 길들이던 꿈 많은 날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라는 주위의 권고와 기대를 저버리고 문학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프랑스 시와 연극에 마음을 빼앗겼고, 거리와 광장보다는 도서관의 후미진 곳과 지하 소
덕유산 아랫마을 거창에서 태어났다. 시골 책방에서 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원제: 2년 동안의 휴가)가 있다. 이 책이 나에게 펼쳐 보인 장면들은 어머니가 들려준 호랑이나 귀신 이야기와는 또 다른, 가슴 두근거리는 유혹의 숲이었다. 현실 세계에 눈뜨기 전, 책이 들려주는 저 너머의 세계에 나 자신을 길들이던 꿈 많은 날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라는 주위의 권고와 기대를 저버리고 문학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프랑스 시와 연극에 마음을 빼앗겼고, 거리와 광장보다는 도서관의 후미진 곳과 지하 소극장을 전전했다. 마침내 나는 청계천의 작고 허름한 서점 안에서 몽테뉴의 《수상록》, 루소의 《고백》,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 책들을 만나고 타인과 나누면서 새로 세계가 열리고 인간의 고유한 자질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프랑스 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살아야 함을 알았다.

2024년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로 선정된 스트라스부르 국립 대학 도서관에서 읽은 문학과 인류학의 위대한 고전들은 타인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사회란 무엇이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문화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타인의 부름에 어떻게 마음을 열고 응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몽테뉴, 루소, 레비스트로스, 투르니에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한편 색채와 상징, 중세 문장 등 에 대한 최신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 《역사를 위한 변명》,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식인종에 대하여 외》,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마르탱 게르의 귀향》, 《방드르디, 야생의 삶》, 《색의 인문학》 등이 있다.

고봉만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05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242g | 130*210*15mm
ISBN13
9791198285041

책 속으로

그들이 원시 그대로인 이유는 인류의 기원에 더 가깝거나 우리와 비교하여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의 본성을 흐리게 하는 그런 종류의 발전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고 있는 이유다.
--- p.21

그러므로 인류를 태어나서 질서 정연하게 성인으로 성장하는 아이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70세까지 알파벳도 모른 채 어린아이처럼 살다가 70세에서 75세 사이에 초등 교육을 받고 75세에서 80세 사이에 중등 교육과 고등 교육을 받은 그런 노인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 p.24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이지만 답사 현장에서는 보수주의자가 된다. …민족지학자가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자신이 연구하는 사회가 지켜지는 것, 적어도 ‘문명’에 의해 최대한 덜 훼손되는 것이다.
--- p.34

제 주변의 보수적인 동료들은 제가 미개 민족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놀리듯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자네 같은 사회주의자가 이런 일을 하는 건 본질적으로 모순이 아닌가? 자네는 우리보다 후진적이거나 훨씬 퇴보적인 문명을 수호하거나 보존하려고 애쓰는데 본질적으로는 반동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 p.54

문제는 왜 인류가 10만 년 동안 투박하기 짝이 없는 그런 유형의 도구에 만족하다가 뒤이어 그보다 더 완벽한 도구를 필요로 했는가입니다.
--- p.71

민족지학은 매우 작고 특별한 사회가 지니는, 어떤 특이한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하지만 민족지학이 아주 단순한 사회들을 연구하면서 찾아낸 그런 특이한 현상은 본질적으로 인류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 p.81

따라서 몽테뉴가 “저 다른 세계에서 10년인지 12년인지 살았던 한 남자를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다”라고 할 때 그 남자는 빌가뇽과 함께 1555년에 신대륙을 향해 출발했던 남자가 아니라 이미 그곳에 살고 있던 남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p.90

제가 앞서 언급한 레리와 테베의 논쟁은 단지 민족학적 입장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서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며 상호 비방하던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였습니다.
--- p.99

우리는 어떤 풍습에 대해 내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지만, 외적으로는 그 풍습에 대해 전적으로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몽테뉴는 바로 이것이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할 규칙 중의 규칙이며 법률 중의 법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p.109

출판사 리뷰

레비스트로스는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지만 인류학으로 방향을 돌렸다. 1935년(27세) 망명하듯 브라질(상파울루대학교 사회학 교수로 부임)로 건너간 것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분야를 바꿔 원시 상태 그대로 사는 불쌍하고 홀대받는 사람들,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 있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왜 민족학은 혁명적인 학문인가

1937년 1월 강연은 바로 레비스트로스의 명저 『슬픈 열대』(1955)에 기록된 카두베오족과 보로로족을 현지 조사한(1935년 11월~1936년 3월) 이후 잠시 파리에 들어와 있던 시기에 열렸다. 원주민 사회를 직접 관찰하고 체험한 젊은 인류학자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듯 민족지학이 무엇이며 그것이 왜 혁명적인 학문인지를 밝힌다. “민족지학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는 진보주의자(혁명주의자)이고 동시에 원시 그대로의 사회에서는 보수주의자가 됩니다”(54쪽). 민족지학자는 자신들이 연구하는 사회가 온전히 지켜지고 문명에 의해 최대한 덜 훼손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또 민족지학적 인식이 발전하면 동시에 그 사회의 혁명적(비판적) 사유도 태동한다고 보았다. 일례로 그리스의 회의주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혀 다른 문화권인 인도를 정복하던 시기에 형성됐고, 몽테뉴가 보여주듯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들의 지적 대변동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타자에 대한 이해는 자기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과 병행된다.

문화전파론자 시절의 레비스트로스

1937년 강연은 당시 인류학계의 뜨거운 이슈였던 문화전파주의 논쟁에 대한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을 드러낸다. 이것은 훗날 친족과 신화를 분석하면서 구조주의로 본격 진입하기 전에, 이른바 문화전파론자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 보류 시기’를 증언한다. 그렇지만 이미 이때도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간파했다(미국 인류학의 창시자 프란츠 보아스의 문화상대주의 편에 있었다). 이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모든 진화론적 사고와 논리를 비판함으로써 자기 사유를 진전시켰다는 말이 된다. 강연에서 그가 말한 ‘원시 그대로’라는 용어는 원시 부족들이 인류의 기원에 더 가깝거나 우리와 비교해서 뒤떨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문명화된 우리 사회만큼 그들 역시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다른 방식으로 진화를 거쳤다는 것이다. 일정한 질서나 규칙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일 같은 건 없다고 보았다.

문화 현상의 불규칙성이 민족학을 가치 있게 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영역’이라는 용어로 어떤 문화적 특질이 생겨난 중심 권역을 정의하고 그것이 지리적 공간상에 퍼지고 거리에 따라 점점 사라지는 식의 정통 전파주의를, 미국 남부에서 발견된 도자기 장식의 고고학적 사례로 설명한다. 즉 중심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풍부하고 복합적인 장식을 수반하고 주변 위치의 문화영역에서는 빈곤하고 희미한 장식의 흔적만 남는다는 것. 하지만 왜 어떤 장식은 외부로 전파되고 외부에서 채택될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하는 어떤 ‘의도성’을 설명할 수 없다.
레비스트로스는 선사시대의 석기 제작술(간석기와 뗀석기) 등을 예로 들며 어떤 문화 현상이 공간적으로 불규칙하게 분포되어 나타나는 문제를 언급했는데, 그 역시 정통 전파주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는 그 불규칙성이야말로 민족지학 자료 체계에서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로서, 민족지학을 가치 있게 할 뿐 아니라 모든 문화는 저마다 내적 밀도를 지니고 외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 레비스트로스는 문화의 차용 여부에 따라 한 사회의 발전과 고립의 문제가 달려 있음을 언급한다. 그 옛날 찬란한 아즈텍 문명이 소수의 스페인 침략자에 의해 붕괴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접촉과 교류가 문명의 물질적?도덕적 진보를 이루지만 전통의 파괴도 초래한다는 역설적 상황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신대륙 발견 500주년, 몽테뉴 서거 400주년 기념 강연

1992년 4월 강연은 신대륙 발견 500주년과 몽테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 그해는 레비스트로스가 평소에 각별히 생각하던 대륙과 작가를 동시에 기리는 의미가 있었다. 특별히 이 강연은 탐험가 장 드 레리(Jean de Lery)를 조명하는 성격도 있다. 그는 몽테뉴와 동시대인으로 ‘남극 프랑스령’(브라질에 세워진 프랑스령 식민지)에 다녀오고 『브라질 영토 여행기』를 기록했다. 그 책은 몽테뉴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강연의 큰 주제는 몽테뉴의 에세이 「식인종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야만’과 ‘미개’에 대한 정의를 검토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신대륙의 사회와 주민을 살펴본 뒤 다음과 같은 소견을 밝힌다. “사람들이 내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그 나라에는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은 전혀 없는 듯하다. 사람들 누구나 자기 풍습에 없는 것을 야만으로 단정하여 부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실제로 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의 사고방식이나 풍습, 우리가 관찰한 사례 말고는 진리나 이성의 척도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신대륙에도 역시 완전한 종교와 완전한 정치가 있고,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하고 비할 바 없는 풍습이 있다.” 몽테뉴의 이 말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게 금언이 되고 따라야 할 길이 되었다.

몽테뉴는 이타주의의 예찬자… 구조주의의 예견자!

레비스트로스의 강연 속에는 몽테뉴의 가장 잘 알려진 면모가 드러나 있다. 즉 그는 이타주의(alterite)의 예찬자이고, 우리와 다른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을 단번에 파악할 줄 알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세계의 원주민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원이고, 그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 덕분에 우리의 세계도 더 풍요로워졌으므로 그들은 우리의 존중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레비스트로스가 요약한 이런 몽테뉴의 시각은 인류의 분할과 분열을 전제로 하며, 이는 한편 고전적인 전파주의 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원시주의에 대한 예찬이든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옹호든, 1937년 강연은 레비스트로스의 사유 속에 몽테뉴의 존재가 은밀히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1992년의 강연은 몽테뉴의 영향에 대해 보다 명료하게 알려준다. 레비스트로스는 몽테뉴가 모든 종류의 개량주의를 경계했음을 상기시킨다. 몽테뉴는 한 사회는 수많은 부분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체를 이루는데, 만약 그 가운데 하나를 바꾸면 그 나머지도 연이어 무너져 내린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몽테뉴는 현대 인류학의 기능주의를, 심지어 구조주의를 내다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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