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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혐오와 매혹 사이
악마의 무늬가 자유의 상징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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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문. 줄무늬의 과거와 현재

제1부. 악마의 줄무늬 (13-16세기)

01 카르멜회의 스캔들
02 인간에게 해로운 존재
03 요셉 성인의 바지
04 줄무늬와 반점 무늬에 대한 불신
05 문장에 새겨지다

제2부. 줄무늬의 과도기 (16-19세기)

01 악마의 옷에서 하인들의 옷으로
02 하인들의 옷에서 낭만적인 옷으로
03 혁명 시대의 줄무늬
04 징벌의 의미

제3부. 현대의 줄무늬 (19-21세기)

01 줄무늬의 위생학
02 머린 스트라이프의 세계
03 어린이와 줄무늬의 연관성
04 위험을 알리다
05 줄무늬에 집약된 인류 문화의 어제와 오늘

참고문헌
색인
도판 크레딧
감사의 말

저자 소개2

미셸 파스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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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 Pastoureau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며, 색채 분야에 관한 한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다.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소르본 대학교와 국립 고문서 학교에서 공부했다. 1968년부터 색의 역사를 학술적 주제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중세의 색에 관한 첫 논문을 1977년에 발표하였다. 1982년에는 고등 연구 실천원(EPHE) 역사·문헌학 분과 연구 책임자로 선출되어 이후 28년 동안 색의 역사와 상징, 중세 동물에 대한 강의를 했다. 로잔 대학과 제네바 대학 등 유럽 명문 대학의 초빙 교수를 지내며 유럽 사회의 상징과 이미지에 대하여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프랑스 학사원의 객원 회원이며, 프랑스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며, 색채 분야에 관한 한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다. 1947년 파리에서 태어났고 소르본 대학교와 국립 고문서 학교에서 공부했다. 1968년부터 색의 역사를 학술적 주제로 연구하기 시작하여, 중세의 색에 관한 첫 논문을 1977년에 발표하였다. 1982년에는 고등 연구 실천원(EPHE) 역사·문헌학 분과 연구 책임자로 선출되어 이후 28년 동안 색의 역사와 상징, 중세 동물에 대한 강의를 했다. 로잔 대학과 제네바 대학 등 유럽 명문 대학의 초빙 교수를 지내며 유럽 사회의 상징과 이미지에 대하여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했다. 프랑스 학사원의 객원 회원이며, 프랑스 문장학 및 인장학 협회 회장이기도 하다. 저서 『파랑의 역사』 (2000)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검정의 역사』, 『초록의 역사』, 『빨강의 역사』, 『노랑의 역사』 등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색의 역사를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풍부한 인문 사회학적 지식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색의 인문학』 , 『우리 기억 속의 색』 등의 저술 활동을 통해 자신의 학술적 성과를 대중에게 쉽고 흥미롭게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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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아랫마을 거창에서 태어났다. 시골 책방에서 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원제: 2년 동안의 휴가)가 있다. 이 책이 나에게 펼쳐 보인 장면들은 어머니가 들려준 호랑이나 귀신 이야기와는 또 다른, 가슴 두근거리는 유혹의 숲이었다. 현실 세계에 눈뜨기 전, 책이 들려주는 저 너머의 세계에 나 자신을 길들이던 꿈 많은 날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라는 주위의 권고와 기대를 저버리고 문학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프랑스 시와 연극에 마음을 빼앗겼고, 거리와 광장보다는 도서관의 후미진 곳과 지하 소
덕유산 아랫마을 거창에서 태어났다. 시골 책방에서 책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쥘 베른의 《15소년 표류기》(원제: 2년 동안의 휴가)가 있다. 이 책이 나에게 펼쳐 보인 장면들은 어머니가 들려준 호랑이나 귀신 이야기와는 또 다른, 가슴 두근거리는 유혹의 숲이었다. 현실 세계에 눈뜨기 전, 책이 들려주는 저 너머의 세계에 나 자신을 길들이던 꿈 많은 날들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을 공부해 출세하라는 주위의 권고와 기대를 저버리고 문학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는 프랑스 시와 연극에 마음을 빼앗겼고, 거리와 광장보다는 도서관의 후미진 곳과 지하 소극장을 전전했다. 마침내 나는 청계천의 작고 허름한 서점 안에서 몽테뉴의 《수상록》, 루소의 《고백》,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 책들을 만나고 타인과 나누면서 새로 세계가 열리고 인간의 고유한 자질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프랑스 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여러 유형의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살아야 함을 알았다.

2024년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로 선정된 스트라스부르 국립 대학 도서관에서 읽은 문학과 인류학의 위대한 고전들은 타인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사회란 무엇이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문화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타인의 부름에 어떻게 마음을 열고 응답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다.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몽테뉴, 루소, 레비스트로스, 투르니에의 사상을 새롭게 조명하고 성찰하는 한편 색채와 상징, 중세 문장 등 에 대한 최신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 《역사를 위한 변명》,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식인종에 대하여 외》,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하여》, 《마르탱 게르의 귀향》, 《방드르디, 야생의 삶》, 《색의 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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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38쪽 | 424g | 153*210*16mm
ISBN13
9791185954998

책 속으로

중세 서양의 사료나 문학 작품, 도상 등에는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들이 여럿 등장한다. 실존 인물이든 허구의 인물이든 그들 모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소외되거나 배척된 사람들이었다. 유대인이나 이단자, 어릿광대나 곡예사, 나환자나 망나니, 창녀, 원탁의 기사들 이야기에 나오는 반역자, 구약 성서 시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 유다 등 대부분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사람들이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의가 악마와 관련된 사람들이었다.
--- p.9~10

창녀는 숄이나 어깨끈 장식 또는 드레스에, 망나니는 반바지나 두건에, 곡예사나 어릿광대는 재킷이나 챙 없는 모자에 줄무늬를 넣어 신분을 표시해야만 했다. 이들이 선량한 시민들과 뒤섞여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각적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줄무늬를 강요했던 것이다.
--- p.31

15세기와 16세기의 플랑드르 화가들은 캔버스나 화판의 중심이 되거나 사람들의 관심이나 주의가 집중되는 지점에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을 배치함으로써 관람객의 시선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붙잡아 두려고 했다. 한스 멤링, 히에로니무스 보스, 피터르 브뤼헐 같은 화가들이 특히 이 방식을 노련하게 사용했다.
--- p.52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은 동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털에 줄무늬나 반점이 있는 동물은 사람들이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호랑이, 하이에나, 표범은 살생을 즐기는 잔인한 동물, 송어와 까치는 남의 것을 훔치는 동물, 뱀이나 말벌은 위험하고 교활한 동물, 고양이나 용은 악마 같은 동물로 여겨졌다. 심지어 르네상스 시대의 동물학자들이 즐겨 논하던 얼룩말도 중세 말에는 위험한 동물로 간주될 정도였다.
--- p.54~56

중세 사람들은 줄무늬가 있는 표면이 바탕과 무늬의 구분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보는 사람을 농간한다고 여겼다. 10-11세기에 이미지를 읽는 방식대로 바탕의 면에서 시작해서 관찰자의 눈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 달리 말하면 겹을 구분해서 이미지를 읽어 내는 방식이 줄무늬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층상 구조’에 익숙해 있던 중세 사람들에게 줄무늬는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바탕과 무늬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늬였다. 따라서 그들은 줄무늬를 정상이 아닌 것, 거의 악마적인 것으로 여겼다.
--- p.64

줄무늬는 유럽 사회가 근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고 과거에 지녔던 줄무늬의 특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받았을 뿐이다.
--- p.77

영국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처음 등장한 노랑과 검정의 세로 줄무늬 조끼는 유럽 대륙과 미국까지 빠르게 전파되어 호텔 따위의 객실 담당자나 지배인의 제복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이런 제복을 입은 직원을 볼 수 없지만, 의복이 중요한 상징의 역할을 하는 영화나 캐리커처, 만화 등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세로 줄무늬 조끼가 등장하여 추억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자들은 호텔 지배인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예로 벨기에 출신의 만화가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에 등장하는 일 잘하고 충실한 집사 네스토가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모습이며 노란색과 검은색의 세로 줄무늬 조끼를 입고 있다.
--- p.90~94

줄무늬는 16세기부터 귀족 계급의 사교 모임에서 품위를 지닌 무늬로 유행하였으며, 초기 낭만주의 시대인 18세기 후반에는 당당하게 내세울 만한 무늬로 사랑받았다. 처음에는 의복에서 주로 활용되었다가 점차 다른 분야에도 확대되었는데, 특히 실내 장식용 천에 많이 사용되었다.
--- p.96

줄무늬의 역사는 미국에서 독립 혁명이 시작된 1775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전쟁이 지속되던 10여 년 동안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그리 흔하지 않았고 이국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줄무늬가 의복은 물론이고 직물, 엠블럼, 실내 장식의 세계로까지 물밀 듯 파고들었다. 그리고 낭만과 혁명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었다.
--- p.107

엄밀히 따지면 18세기 말의 줄무늬는 프랑스 혁명의 창조물이나 독점물이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낭만과 혁명의 줄무늬는 미국에서 건너온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스트라이프’는 ‘미국적인 것’을 암시한다.
--- p.114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에게서 특정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나 줄 사이의 간격이 넓고 뚜렷한 대비를 이루는 줄무늬 옷을 볼 때는 대부분 죄수를 떠올린다.
--- p.130

사실 모든 뱃사람이 줄무늬 셔츠를 입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래 수부, 즉 항해사나 갑판장, 부사관 등의 지휘 아래 허드렛일을 하는 하급 선원들이 입었다. 18세기 회화에서 줄무늬 셔츠는 수부를 표상하는 의복 역할을 했던 듯하다. 그리고 이 역할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입는 것으로 줄무늬 셔츠가 사용되었으므로 그 옷은 때때로 경멸의 뜻을 나타냈다.
--- p.161

아이에게 줄무늬 옷을 입히는 것은, 좀 더 즐겁고 편하게 놀 수 있게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린이의 줄무늬가 우리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줄무늬 세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레저와 바캉스, 바닷가의 줄무늬이고, 다른 하나는 곡예사, 어릿광대 등 어떤 형태로든 ‘노는’ 것과 연관된 사람들의 줄무늬다.
--- p. 178

이탈리아 토리노를 연고로 한 명문 축구 클럽 유벤투스는 흰색과 검은색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유럽의 축구장을 누비고 있다. 이 유명한 줄무늬 유니폼에 대해서도 역사학적으로 파헤쳐 보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다.
--- p.189

화가들이 줄무늬 표면이나 천에 끌렸던 이유는 줄무늬가 시선을 끌고, 일탈을 꿈꾸게 하며, 그림에 리듬감과 생동감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앞서 우리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와 피터르 브뤼헐의 사례에서 보았듯 화가들은 일찍부터 줄무늬를 그림에 도입했을 뿐 아니라 고딕 시대의 종교화부터 현대의 추상 예술까지 오랜 세월 동안 줄무늬를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몇몇 화가들은 거기서 좀 더 나아가 줄무늬 옷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거나 파격 변신의 도구로 이용했다. 대표적인 예로 파블로 피카소는 ‘괴짜 얼룩말’답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아래로 줄무늬 옷을 착용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자신의 엉덩이에 줄무늬를 그어야 한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 p.196

현대의 줄무늬는 중세 때처럼 악마를 상징하거나 사회 질서의 위반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주로 위험을 알리는 수단으로 쓰인다. 이제는 배척의 표지가 아니라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알리는 신호로 작동하는 것이다. 위험을 알리는 줄무늬가 지나칠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곳은 교통안전 표지다. 주의를 요하는 곳이면 어디서나 빨간색과 흰색의 줄무늬가 등장해 위험을 알리고 접근을 금지한다.
--- p.202

줄무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이고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어디가 비어 있고 어디가 채워진 것일까? 열린 부분은 어디이고 닫힌 부분은 어디일까? 안쪽 면은 어디이고 앞쪽 면은 어디일까? 윗면은 어디이고 아랫면은 어디일까? 얼룩말은 유럽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검은색 줄무늬를 가진 흰색 말일까, 아니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흰색 줄무늬를 가진 검은색 말일까?

--- p.220

출판사 리뷰

악마의 상징이자 배척의 대상이었던 줄무늬가
자유를 상징하면서 보편적인 무늬로 유행하기까지

“변화무쌍한 줄무늬의 문화사”

다양한 도상과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줄무늬의 역사와 그에 얽힌 상징체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스트라이프, 과거에는 악마의 무늬였다?

성경에는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네 몸에 걸치지 말라”라는 구절이 있고, 종교 회의에서 성직자들에게 보낸 명령서를 보면 줄무늬 옷의 착용을 금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처럼 중세 유럽에서 줄무늬는 혼란을 야기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13세기 프랑스 루이 9세와 함께 귀국한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이를 어기고 줄무늬 망토를 걸치면서 스캔들이 일어났다. 당시 이교도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던 중세 사람들에게 카르멜회 수도사들이 입은 줄무늬 망토는 이슬람교도들이 입는 줄무늬 젤라바의 일종으로 간주되어 큰 소동이 빚어진 것이다.

물론 줄무늬의 문제는 단순히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시각적 인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성직자가 줄무늬 옷을 입었을 때만 일탈이나 추문으로 여겨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세 사람들은 바탕과 무늬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표면 구조에 혐오감을 느꼈다. 그들은 물체를 한 면 한 면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데 익숙했기에 바탕과 무늬가 분간되지 않는 줄무늬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줄무늬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었고, 이때부터 사회 하층민들에게 줄무늬 옷을 강제로 입히기 시작했다. 중세 서양의 사료나 문학 작품, 도상 등을 살펴보면 줄무늬 옷을 입은 인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소외되거나 배척된 사람들이었다. 즉 줄무늬는 창녀, 망나니, 집시, 나환자, 반역자, 죄수 등 아웃사이더를 대표하는 무늬였다.

새로운 차원을 맞이한 스트라이프,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를 함께 지니다.

무질서와 범법, 경멸의 대상이었던 줄무늬는 유럽 사회가 근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받는다. 줄무늬 역사에서 이미지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과거 대세를 이루었던 가로 줄무늬의 사용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그동안 사용되지 않던 세로 줄무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의복에서 줄무늬가 다채롭게 사용되면서 사회 계층을 구분하던 과거의 기능이 희미해진다. 축제나 일상생활에서 줄무늬 옷을 입은 사람이 늘어났으며, 이국풍의 줄무늬 옷과 하인들의 줄무늬 옷도 자주 눈에 띄었다. 줄무늬 직물은 대표적으로 쓰이던 의복과 문장 외에도 실내나 가구 장식, 항해, 위생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 구체제하에서는 ‘좋은’ 줄무늬가 등장하였으며,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는 줄무늬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면서 과거의 경멸적 의미를 거의 지우게 된다. 이제 줄무늬는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종교 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발흥으로 줄무늬가 선호되었고, 이때부터 줄무늬는 혁명의 상징 무늬로 자리하며 미국의 성조기와 더불어 여러 국기에 등장하게 된다.

긍정적이고 멋들어진 의미로 받들어진 현대의 스트라이프

1800년대 프랑스 해군은 스트라이프 군복을 채택하였는데, 선원들이 바다에 빠졌을 때 쉽게 찾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하급 선원들이 주로 입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줄무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면서 더 많은 선원들이 스트라이프 군복을 입기 시작하였고 대중들에게 바다를 연상케 하는 시원함과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마린룩으로 사랑받기 시작한다. 이처럼 뱃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머린 스트라이프는 수영복, 파라솔, 덱 체어 등에 사용되며 해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유명 디자이너들의 패션쇼에도 스트라이프가 등장하였으며 스타일 아이콘으로 불리던 오드리 헵번 역시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즐겨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가들 사이에서도 스트라이프가 특유의 미적 감각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피카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아래로 스트라이프 옷을 착용하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스트라이프를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자연의 기호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

저자는 책의 말미에 줄무늬가 자연의 기호가 아니라 문화의 의해 만들어진 기호임을 강조한다. 줄무늬는 인간이 주위에 흔적을 내거나 사물에 새겨 넣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로 요구한 것이라는 말이다. 쟁기의 날로 시작하여 갈퀴의 날카로운 발,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이 철도의 레일이 되고 전봇대나 전신, 전화선으로 발전하였으며 고속도로로 완성되기도 했다. 이처럼 인간이 지나가거나 행동한 흔적들은 도처에 줄무늬의 형태로 남아 있다.

인간이 사물에 만들어 낸 줄무늬는 구별의 표지이자 관리와 통제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상품들에 부착된 바코드가 대표적인 예다. 상품의 가격을 숫자로 적어 놓은 가격표는 이제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검고 흰 세로 방향의 수평 줄무늬 띠가 대신한다. 사람의 몸에 그려지는 줄무늬도 동일한 기능을 한다. 즉 무엇인가를 표시하거나 분류하고 통제하면서 서열을 매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일부 부족들이 몸에 선을 그려 넣거나 원주민들이 줄무늬 천을 몸에 걸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도상과 흥미로운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줄무늬의 역사와 그에 얽힌 상징체계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서양인들이 기나긴 세월 동안 무질서와 관련된 온갖 것들에 줄무늬 표시를 남긴 이유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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