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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외
현진건 저
혜원출판사 199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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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월드 베스트

책소개

저자 소개 1

玄鎭健, 빙허(憑虛)

호는 빙허(憑虛). 일제 당시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으로 고발하고 역사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소설가. 1900년 8월 8일 대구에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빙허(憑虛)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912년 일본 세이조중학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혼인했다. 1918년에는 상하이에 있는 둘째 형을 찾아갔고, 그곳의 호강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귀국한다. 일본 도쿄[東京]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들어섰다. 이 작품은 신교육
호는 빙허(憑虛). 일제 당시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으로 고발하고 역사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소설가. 1900년 8월 8일 대구에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빙허(憑虛)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912년 일본 세이조중학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혼인했다. 1918년에는 상하이에 있는 둘째 형을 찾아갔고, 그곳의 호강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귀국한다. 일본 도쿄[東京]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들어섰다. 이 작품은 신교육을 받은 두 남녀의 사랑이 봉건적인 관습 앞에 가로막히는 사연을 그렸다. 문단으로부터 그다지 긍정적인 평을 받지 못했으나 1921년 「빈처」를 발표하면서부터 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현진건이 활동한 시대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이자 일제 강점기였다. 그는 식민 지배 아래 핍박받는 우리 민족의 수난상과 사회 하층민의 빈곤의 참상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현진건은 일제에 대한 끈질긴 저항과 강렬한 민족의식을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로서, 서양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시대의 모순에 비판적인 의식을 유지했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일할 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보도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간 복역했다. 신문사를 떠나 양계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불우한 시기를 보낸다. 그 뒤 동아일보에 『무영탑』을 시작으로 장편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흑치상지』의 연재가 중단되고, 『조선의 얼골』 또한 금서처분을 받는 수난을 당했으며, 1943년 4월 25일 연재 중이던 마지막 작품 『선화공주』를 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술을 아니 마실 수 없게 만들었던 세상을 떠나고 만다.

대표작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과 장편 『적도』, 『무영탑』 등이 있다. 현진건은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적 한국단편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로,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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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현진건
빙허 현진건은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13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세이조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다시 중국 상해에 있는 호강 대학의 독일어 전문부에서 수학하다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20년 개벽지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한 후, 1921년 단편 '빈처'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1922년에는 박종화, 나도향, 홍사용 등과 동인지 '백조'를 창간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재직 당시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올림픽대회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하자, 그 보도사진을 손봐서 게재한 것이 일장기 말살사건에 연루돼 구속되어 약 1년간 복역하였다. 1943년 44세의 나이에 장결핵을 앓다가 타계했다. 단편 '운수 좋은 날' '고향' '불' 등 문학성이 뛰어난 단편소설을 줄기차게 발표하여 한국문학사의 주요소설가로 위치하고 있는 그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사실주의를 개척한 작가이자,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나라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무영탑』『빈처』『운수 좋은 날』『불』『B사감과 러브 레터』『고향』『술 권하는 사회』『적도』『흑치상지』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1997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318g | 150*200*20mm
ISBN13
9788934401162

책 속으로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20원 몸값을 10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60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궐녀도 자기와 같이 10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 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10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다.

--- p.73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 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를 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라 무슨 행세로 적어도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중 사 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꺼정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 죽 한 모금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그의 눈이 번들번들함은 눈물이 쏟아졌음이리라.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 p.38

리뷰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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