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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 두근두근 첫 만남
2장 / 말하는 민꽃게 3장 / 우리가 가는 곳 4장 / 숨길의 기운 5장 / 엉망이 된 기분 6장 / 린아의 시 7장 / 민꽃게의 부탁 8장 / 바닷속 학교 9장 / 문어 선생님 10장 / 뒤늦게 알게 된 마음 11장 / 낭독 12장 / 아주 작게 안녕, 아주 크게 안녕 작가의 말 |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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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친구.’ 다디단 단어였어요. 입안에서 몇 번을 굴려 봐도 질리지 않는 단어였지요. 이 기분을 잊지 않고 저장해 두었다가 시로 쓰고 싶었어요.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단어들로 문장들을 만들면서 린아는 신나게 걸었어요. 몸이 절로 들썩거렸지만 손에 든 바가지의 물이 넘칠까 봐 꾹 참으면서요.
--- p.41 “학교에 가기만 한다고 성실한 건 아니거든? 난 딴 거 다 열심히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민꽃게가 이토록 자기 생각을 똑 부러지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언제나 나불거리기 바쁘던 망둥이도 할 말을 잃고 “그, 그래.” 하고 말았지요. “근데 너 언제부터 그렇게 말을 잘했냐? 그 정도면 발표왕 해도 되겠다.” 비꼬는 건지 진심인 건지 모를 망둥이의 말에 민꽃게의 등껍질이 빨개졌어요. “그런 말을 하니까 부담돼서 잘 못하는 거지. 우리 언니도 집에선 말 잘하거든?” 나율이가 느닷없이 끼어들어 옆구리에 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했어요. 그러자 이번엔 윤하의 얼굴이 빨개졌지요. 린아는 혼잣말로 작게 속삭였어요. “나도 그런데.” --- p.59 “그렇다 해도 교실엔 규칙이란 게 있어. 게다가 매번 너희가 같이 있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니. 결국은 혼자 극복해야 하는 거야. 흠흠.” 문어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듯 여덟 개의 다리를 흐느적거렸어요. “그렇지만 처음이 제일 어려운 거잖아요. 그 제일 어려운 순간을 함께해 주고 싶어요.” 윤하가 나직나직 말했어요. 복도에 짧은 침묵이 흘렀죠. --- p.76 기뻐하는 민꽃게를 본 린아랑 윤하는 차마 못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해 보자, 해 봐.” ‘어떻게든 되겠지’는 린아 고모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어요. 린아는 그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윤하의 손을 잡았어요. 윤하가 그 손을 슬쩍 내려다봤어요. “나 혼자선 절대 못 해. 그러니까 같이 하자. 응?” 린아가 부탁했어요. 윤하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가만히 있었어요. 그 모습이 온몸의 용기를 그러모으고 있는 것처럼 보여 린아는 다그치지 않고 기다렸지요. --- p.78 “난 뭐든 좀 오래 걸리거든. 알아서 척척 잘하는 애들 보면 부러운데 나는 그렇게 잘 안 되니까 답답하고. 어느 날 우연히 그런 내 마음이랑 완전 비슷한 시를 읽은 적이 있는데 참 좋더라고. 그때부터 시를 끄적거렸던 것 같아.” 린아의 설명에 윤하의 얼굴이 환해졌어요. 한결 편해진 둘은 나란히 앉은 채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나는 발표하는 게 진짜 싫어. 다 쳐다보잖아. 그 눈빛에 찔리는 기분이야.” “나도. 오늘은 나율이가 읽는다니 정말 다행이야.” 어느새 죽이 맞은 린아와 윤하는 입을 가리고 키득거렸어요. --- p.81 “애들 앞에서 저 시 읽는 거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 린아가 옴츠리고 있는 민꽃게에게 말했어요. 들어오기 전에 먼저 보여 주긴 했지만 굳어 있는 민꽃게를 보자 신경이 쓰였어요. 민꽃게를 위해 쓴 거지만 그게 도리어 민꽃게에게 상처를 주는 거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게 맞을 것 같았어요.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던 고모의 말을 떠올리며, 린아는 나율이에게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손짓을 했어요. “안 싫어. 내 마음 같아서, 좋았어.” 약간 잠긴 목소리로 민꽃게가 대답했어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린아의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어요. 벅찬 것 같기도 하고 쓰라린 것 같기도 했어요. --- p.94 “선생님, 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망둥이를 달래던 민꽃게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어요. 문어 선생님은 선선히 자리를 비켜 줬어요. 민꽃게는 아까 나율이가 서 있던 곳에 서서 반 친구들을 쭉 둘러봤어요. 가까운 사이지만 민꽃게에게 상처를 줬던 바다반 친구들과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온 마음을 다해 애써 준 인간 친구들 앞에서 민꽃게는 다시 한번 용기를 냈어요. “누가 왜 나한테 그랬는지 모르겠어. 근데 나는,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여기 있고 싶어. 앞으론 그, 그러지 마.” 민꽃게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어요. 하지만 귀를 기울이니 작은 목소리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죠. --- p.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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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삶이 예술로 바뀌는 풍경을 보여 주는 동화!
세상과 싸우는 가장 ‘품위 있는’ 방법 ‘글쓰기’로 아이들의 일상은 시가 되고, 시는 일상이 되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과 고통에 대한 사유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한 단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야 제대로 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글쓰기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그 말이 생각으로 조직되고 그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자의 자기 재현은 글쓰기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글쓰기이다. 약자의 억울함과 부당함은 잘 드러내기 어렵다. 자기 연민의 덫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은은한 린아와 윤하는 잘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이다. 모두가 드러나기를 욕망하는 사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취급을 받게 된다. 주인공 린아는 게다가 시 쓰기를 좋아했다. 시? 시 쓰기를 좋아한다고? 친구들은 그런 린아를 이상하게 보고 린아가 쓴 시를 돌려보며 놀려 댔다. 친구들의 행동은 린아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고 그때부터 린아는 시 쓰는 걸 꼭꼭 숨긴다. 윤하는 학기 초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쳐 한 달이 넘도록 학교에 가지 못한다. 원래도 친구 사귀는 게 쉽지 않은 내향적인 윤하는 아는 친구가 한 명도 없는 교실로 돌아가는 게 그저 두렵기만 하다. 그런 두 아이는 서로를 만나 변화한다. 세상과 싸우는 가장 ‘품위 있는’ 방법, ‘글쓰기’로. 가만한 아이 린아와 윤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두 아이는 온몸의 용기를 그러모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낸다. 다른 이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말이다. 비록 소심해서 나의 문제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나보다 더 아픈 친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렇게 「거꾸로」라는 시가, 「자라」라는 시가, 「닮은 물고기」라는 시가, 「찰흙」이라는 시가 탄생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감추고 싶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자 보이지 않던 빛이 상처를 통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꽃에게 인사하는 걸 좋아하는 것과 꽃을 좋아하는 건 차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본문 106쪽) 작가는 조용하고 은은해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렇게나 조용하고 소심한 나를 고쳐야 하는지 묻는 아이들에게 작가는 ‘뚝뚝 멋대로 끊어지는 말을 린아는 단번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똑바로 말해 보라고 다그치는 대신 차분히 기다려 주었죠(본문 19쪽)’ 또는 ‘민꽃게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았어요. 하지만 귀를 기울이니 작은 목소리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죠(본문 99쪽)’라는 작품 속 문장으로 그건 병이 아니니 고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 큰 위로가 되어 주는 메시지이다. 이로써 아이들은 이상한 아이로 여겨지던 세상에서 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유와 안식을 느껴 본다. 그렇게 아이들의 일상은 시가 되고, 시는 일상이 된다. 용기란, 삶이란, 성장이란, 변화란, 글쓰기의 모범이란 이런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삶이 예술로 바뀌는 풍경을 이 동화는 보여 주고 있다. 환상의 공간, 바닷속 학교로 통하는 ‘숨길’과 그 숨길을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 ‘용기’에 대하여 아이들을 환상의 공간, 바닷속 학교로 이끄는 건 ‘숨길’이다. 숨길은 눈에 보이는 통로가 아니다. 자연의 근원적인 기운을 빌려서 일시적으로 여는 통로이다. 숨길을 통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가 길을 잃은 민꽃게와 망둥이는 말한다. “자연이 지금처럼 이렇게 망가지기 전까진 그 기운이 넘쳐흘렀어. 우린 어디서든 숨길을 열어 마음대로 바깥세상을 오갈 수 있었지. 근데 여기저기 저런 게 생기면서…….”라고. 넘쳐흐르던 그 기운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우리가 잃어버렸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사라져 버린 기운은 무엇일까? 린아와 윤하는 숨길 덕분에 환상의 공간 바닷속 학교에 가게 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두 아이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아이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있게 만든 숨길을 열 수 있었던 열쇠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용기’이다.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도와줘도 될까?”라고 묻는 용기, 꼭꼭 숨기기만 했던 나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는 용기, 조금만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친구에게 기꺼이 나의 마음과 시간을 내어 주는 용기! 용기를 내는 건 늘 어렵지만 한 발짝씩 내딛다 보면 여러분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질 거예요. 또 모르죠.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여러분만의 ‘숨길’을 발견하게 될지도요. (작가의 말 중에서) 어렵게 용기를 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이 선하고 치열하면 결과도 그러하다. 삶은 완성될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이라는 진실을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는 동화는 드물 것이다. 읽고 나서 글쓴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에는 작가가 직접 쓴 네 편의 시가 들어 있다. 「거꾸로」, 「자라」, 「닮은 물고기」, 「찰흙」 이 네 편의 시를 읽은 독자들은 윤슬빛이라는 작가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