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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5
제1부 우리 시의 얼굴들 1 근대 자유시의 두 개성―홍사용과 주요한 13 도시적 감성과 시의 새로움―김경린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16 문학사와 창조적 비평의 예술혼―조연현론 26 기억의 소환과 생명의 리듬―전봉건의 시와 삶 40 탐미와 풍자의 시학―김영태 시의 한 독법 51 이치의 시학과 형이상 시법―박진환론 57 보유 비판적 상상력과 풍시조 70 바다와 삶의 길고 오랜 극들―김명인 시의 한 독법 78 환한, 그리고 드높은―김윤배 시인의 초상 88 제2부 우리 시의 얼굴들 2 자아 성찰, 혹은 ‘춤’의 미학―이숙이론 97 일상의 성찰과 ‘당신’의 호명―정재영의 시 세계 115 일상성과 자아의 성찰―김용구론 127 여성적 삶과 앎의 시학―최병숙 작품론 141 타자 지향, 혹은 ‘너’의 시학―서정임의 시 세계 155 지적 통찰과 서정의 구조화―조승래 작품론 169 가족사, 혹은 사랑의 시학―박인옥론 184 일탈과 회귀, 혹은 ‘찰떡같은’ 삶―이우근의 시와 삶 199 내 ‘안’의 성찰과 정언(定言)의 시법―이원로의 작품 세계 211 제3부 내 시의 밑그림과 시론들 내 시의 이즘 민낯들 223 시와 선, 하나 혹은 둘―나의 시, 나의 부처님 227 앎의 시학과 선의 관법(觀法) 237 연작 마음경(經)과 그 둘레 이야기들 246 시간이 고인 옛 마을과 느림의 미학―시 누가 주인인가의 밑그림들 249 절집 기행, 혹은 어떤 가야산 253 절집과 늙은 고양이―시 내 안의 절집과 관련한 일들 257 바다의 시, 바다의 상상력 260 나의 시 창작법―시 습작에서의 유의 사항 267 시의 반세기, 나그넷길에 서서 272 제4부 여행길의 낙수(落穗)와 지리지(地理志) 능안뜸, 과거로의 짧은 기행―옛 고향 마을을 찾아서 279 화성의 박물지, 혹은 나를 찾는 도정―[화성 소나타]를 읽고 284 삶의 무늬와 방법론적 대화―[한반도 소나타]를 읽고 293 화성문협, 문학의 장(場)을 열다―한국문협 화성지부의 창립과 뒷얘기들 305 노포의 아우라와 옛시조의 한 거봉―해남 기행 312 민어와 튤립, 혹은 작은 낙토―임자도 기행 317 제5부 오류헌 시화, 그리고 단장들 시화(詩話) 세 토막 325 오류헌 시화 329 운보시실(耘甫詩室) 명(銘) 334 약졸(若拙)과 ‘참’ 336 하프를 잃은 시인들 338 봄꽃과 꽃달력 341 하프와 서권기(書卷氣) 345 산골 자연과 보내는 한 시절 348 고졸(古拙)과 인식 350 시업(詩業)과 헛발질 353 귀촌 제1장 제1과 357 자연도 경전이다 360 당음과 폭염 363 시업의 품새와 글 나이―수상 소감 두 편 365 제6부 내가 짓고 만든 인연들 열정과 방황, 그 길고 짧았던 한 시절―나의 등단 전말기 371 술, 혹은 독서와 스포츠―박제천의 젊은 날 초상 377 강직한 기개와 미완의 꿈들―정의홍의 인간적 면모 380 글의 서슬과 은일의 정신―조정권의 삶과 시 384 근본 성찰과 시인의 농사―장옥관 시의 한 독법 391 설국 또는 한 편의 추억―이홍섭과의 만남 393 일상과 기억―김린주의 시를 읽고 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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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모더니즘 시는 주지주의와 아방가르드가 혼재된 것으로 논의돼 왔다. 그리고 이 같은 혼재 현상은 모더니즘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왜곡을 가져오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이내 바로잡히고 정리될 터이다. 김경린은 모더니스트이되 주지주의 경향을 보인 시인이었다. 그는 과격한 형태 실험이나 근대 예술의 합리적 기반을 전복하지는 못했다. 대신 도시 공간에서의 시민적 삶의 애환과 그 정서를 충실하게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코자 노력했다. 그 같은 시 작업에서 도시 문명어와 외래어를 무람없이 사용했다. 그런가 하면 시어의 긴장을 높이기 위한 독특한 시적 조사(措辭)를 구사하기도 했다. 시어들의 돌올하고 폭력적인 결합을 통한 시성(詩性)의 추구가 그것이다. 이는 그가 새로운 시 세계의 추구이자 국제적 동시성을 주장한 사실과 궤를 같이한다.
--- 「도시적 감성과 시의 새로움―김경린의 초기시를 중심으로」 중에서 조연현은 삶의 구체적인 현실을 영위하는 인간의 생리를 중요시하고 강조했다. 결국 문학이 인간의 표현인 한에서 생리는 그 중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이는 일찍이 김동리가 순수문학론에서 강조한, 개성을 축으로 한 구체적인 생의 구경에 닿아 있는 점이기도 하다. 아무튼 평론가 조연현은 이념문학을 거부하고 삶의 구체적인 생리에 기반한 문학을 옹호했다. 비평 역시 이 같은 문학을 대상으로 한 예술적 형상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곧 비평을 예술 창작의 경지로 끌어올리고자 한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우리 문학사에서 누구도 추종키 힘든 창조비평의 선구였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더 지적하자면 이렇다. 조연현은 범박한 의미의 에세이스트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는 본격 비평과는 달리 가장 자기 고백적 성격이 강한 수필 창작으로 나아간 결과였다. 이 역시 개인적 삶의 구체적 표현을 중시한 그의 비평적 자의식의 또 다른 표출이라고 하리라. 실제로 그는 비평이든 수필이든 “내가 인생을 어떻게 체험하고 어떻게 표현했는가”가 문제라고 수필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의 남겨진 저작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수필집들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인 것. --- 「문학사와 창조적 비평의 예술혼―조연현론」 중에서 범박하게 말해 전봉건의 시 세계는 두 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하나는 폭력에 관한 깊은 성찰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리듬’인 에로스의 천착이 그것이다. 전봉건 시의 폭력 성찰은 이미 잘 알려진 그대로다. 그는 6.25 전쟁에 사병으로 참전했다. 전쟁도 폭력의 양상만으로 치자면 집단 폭력이다. 그것도 국가 간의 인적, 물적 자원을 쏟아붓는 폭력 행위다. 이 같은 폭력 앞에 개인은 무참히 침탈될 마련이다. 곧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 참혹하게 깔리고 일방적인 희생물이 되는 것이다. 전봉건은, 그의 회고에 따르자면, 23세 되던 1950년 12월 징집돼 입대했다. 그리고 이듬해 중동부 전선에서 부상을 당하고 제대한다. 이 개인적 체험은 커다란 정신적 외상(外傷)으로 남는다. 그의 시적 역려(逆旅) 40여 년 동안 이 체험은 기억의 소환 형식으로 끊임없이 얘기된다. 말하자면 평생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외상으로 덧나곤 했던 것이다. 후년 돌밭을 헤맬 때에도 이 전쟁 체험은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지 않던가. 그만큼 깊고 어둡게 6.25는 그의 내면에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 「기억의 소환과 생명의 리듬―전봉건의 시와 삶」 중에서 일찍이 김영태는 ‘문화인’이란 말을 즐겨 썼다. 그가 의도한 문화인은 단순히 인문적 교양을 갖춘 사람을 뜻한 것일까. 아니면 예술 각 영역을 두루 꿰뚫고 있는 또 다른 인물형일까. 나로서는 후자에 가까운 뜻으로 이해한다. 그것은 그의 작품 전반을 통독할 때 일련의 시적 대상이 회화나 음악, 그도 아니면 무용, 연극 등의 작품이거나 그로부터 비롯된 교양 체험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다종의 예술 영역을 아우른 예술지상주의자 내지는 명상적 심미주의자라고 할 만하다. 그의 말 그대로는 ‘문화인’이라 할 만하다. 특히 그는 속악한 현실에 대한 좌절과 실망을 경험하면서 그 대척적인 보상을 앞에서 말한 예술 세계에서만 구하고자 했다. 이는 19세기 말 서구의 보헤미안이나 댄디즘에 견줄 만한 김영태의 기품이라 할 만하다. 두루 알려진 대로 보헤미안들은 예술을 고유한 별도의 공간/세계로 이해하고 그 세계에서는 일상적 가치나 삶을 무의미한 속류의 것으로 여겼다. 그런가 하면 부르주아 생활 방식을 거부하며 거기서의 좌절을 예술의 창조 활동을 통해 극복하고 보상받고자 했다. 이러한 그들의 삶의 태도와 김영태의 정신적 지향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그는 선배 시인 가운데 우리 시대의 보헤미안이라고 불린 김종삼이나 박용래에게서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근친성을 느꼈다고 한다. 김종삼에게서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박용래로부터는 ‘나이 50에 날 샌’ 동류의식을 품었던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서 공공연히 읽히는 이 같은 사실은 실은 그가 이들에게서 정신적 친연성 내지 동류의식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발견한 행위이기도 하다. --- 「탐미와 풍자의 시학―김영태 시의 한 독법」 중에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바다의 심상(心象)들을 수시로 만나게 된다. 초기 시로부터 최근 시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줄곧 작품의 밑그림 노릇을 해 오고 있다. 가령 해거름 녘에 책을 읽다 문득 바닷속에 든 것 같다는 착란만 해도 그렇다. 이 같은 착란은 단적으로 그가 평소 얼마나 심층 무의식 속에 바다 체험을 가득 쟁여 두고 있는가를 증거하는 것. 굳이 말을 덧붙이자면 저 1930년대 이상(李箱)이 자연물/현상도 도시적 풍물을 매개로 그려 냈던 사실과 닮았다고나 할지. 그는 뭍의 일들을 물을 매개로 묘사한다. 당대 일급의 시 비평가 이숭원이 말하는 탁월한 표현미학은 그렇게 출발했다. 시적 정황을 세밀하게 묘사하되 독특한 비유를 구사한 그의 작품 스타일은 이숭원의 말처럼 가히 독보적인 것이다. --- 「바다와 삶의 길고 오랜 극들―김명인 시의 한 독법」 중에서 시인 김윤배의 작품엔 힘과 서슬이 서 있다. 과연 그 강렬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품들을 통독하며 나는 그걸 생각했다. 우선 그의 시 문장은 짧으면서 정언(定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교복은 소녀의 보이지 않는 몸이었다”, “거미는 언제나 단문이다” 등등. 그 문장 예들은 텍스트들 도처에 있다. 짧은 문장엔 부가적인 요소들이 없을 마련이다. 그래서 그 정언 형식의 문장은 종종 숨 가쁜 육성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정언 형식의 단문들은 은유, 그것도 컨시트의 틀을 대부분 갖췄다. 여기서 우리는 말의 폭력적 결합에 따른 서슬/텐션을 맛본다. 뿐만인가. 이런저런 전문용어, 이국의 지명, 인명 등등도 자주 읽힌다. 이런 비일상적 언어의 구사 역시 힘과 서슬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 「환한, 그리고 드높은―김윤배 시인의 초상」 중에서 개나 고양이, 푸나무들과 몇 해 어울려 지내며 깨달은 게 있다. 바로 인간이 얼마나 자기 위주의 편향된 독선에 함몰된 존재인가 하는 점이다. 예나 이제나 인간은 도구적 이성을 앞세워 다른 자연물들을 끊임없이 착취하고 수탈해 왔다. 동식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알아 갈수록 이 같은 내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저들도 알고 보면 그 나름 얼마나 고되고 힘든 삶을 사는 목숨들인가. 크게 잘난 것도 없는 인간―호모사피엔스들은 이들을 수탈과 억압의 대상으로만 대해 왔다. 이제 나는 또 인식의 표지판을 옮겨야 할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로 기록해야 할 마련이기에. --- 「내 시의 이즘 민낯들」 중에서 나는 선사들의 가르침인 분별과 집착을 끊어 낸 마음자리는 어떤 것일까 생각한다. 솔직한 말로 나로서는 상상도 못 미치는 경지의 마음일 터이다. 다만, 시에 관한 지식을 모탕 삼아 가늠하자면 그 마음은 대략 ‘오브제’와 비슷한 무엇 아닐까. 이를테면 여느 사물에서 기존 관념, 곧 통념의 뜻이나 값, 기능 같은 걸 벗겨 내면 거기 순수 물상이 드러난다고 한다. 그 순수 물상을 오브제라고 할 때 선사들의 가르침인 분별과 집착을 끊은 관점에서의 사상(事象)도 그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그래 이때의 사상을 본디의 사상, 곧 참 사물이나 현상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참 사물’, ‘참 현상’을 범박하게 불교식 언술로는 불성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흔히 같은 대상도 깨침 전과 후가 각각 다르게 보인다고 한 일이 이러한 까닭이리라. --- 「시와 선, 하나 혹은 둘?―나의 시, 나의 부처님」 중에서 고정관념이든 도구적 의미든 통상적 의미를 깨고 새로운 참 의미를 발견하려는 일체의 노력은 그대로 선불교의 인식 방법에 연결된다. 잘 알려진 대로 선불교는 분별과 집착을 버리도록 가르친다. 여기서 분별이란 너와 나, 중심과 변두리, 정신과 물질, 삶과 죽음 등등 서구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이항 대립이나 짝패 같은 구분을 뜻한다. 선불교는 이러한 분별을 지양하고 통합적, 직관적 인식을 하도록 가르친다. 그런가 하면 어느 일변을 취하지 말고 중관(中觀)을 지향하도록 일러 주기도 한다. 곧 모든 사물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뭇 사물이 절대적이며 고정적인 의미/존재일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일 터이다. 이 중관적 사유는 결국 모든 것이 서로 상관관계로 얽혀 있음을 인식토록 한다. 한쪽이 다른 쪽과 상즉상자(相則相資)하는 의타적 관계에 있다는 말도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 「앎의 시학과 선의 관법(觀法)」 중에서 욕망은 그것이 소유론적 욕망이든 존재론적 욕망이든 사람을 짓누른다. 나는 그 욕망을 내려놓거나 벗어 버리는 정신적 해방과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자 했다. 일찍이 조주 스님은 일갈하지 않았던가. ‘네가 들고 있는 걸 내려놓으라고 아니면 여전 들고 있으라고.’ 마음의 자유를 누리는 일이 어찌 나만의 바람일까. 인간들 누구나 희망하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아마도 이 일은 더 나아가 내 삶의 내부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는 본래면목을 찾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범박하게 말해 이들 탐색의 기록이 곧 내 시이기도 하리라. 그리고 이 탐색의 행로를 걷다 보니 심경(心經)은 불전(佛典)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유학(儒學) 쪽에도 있음을 알았다. [심경부주(心經附注)]를 읽은 일 - 이는 작품 쓰는 일 밖의 내 망외(望外) 소득이랄 수 있겠다. --- 「연작 『마음경(經)』과 그 둘레 이야기들」 중에서 무릇 예술가는 자기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것, 자신의 일체가 담긴 예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예술가에게 있어 삶이란 그 같은 자신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시인 역시 예술가인 한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시류에 편승하거나 남들을 기웃거려서는 안 된다. 대신 자신이 짙게 묻어난 시 세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한갓 에피고넨일 수만은 없는 탓이다. 그런가 하면 일련의 이 당위적 자기 만들기는 오로지 자신과 일대일로 맞짱 뜨는 것. 누구누구 이거다 저거다 떼거리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한 시인이 만든 그 세계가 크고 작은 것은 그다음 문제일 따름이다. --- 「오류헌 시화」 중에서 뭇 푸나무들도 가꾸고 돌보다 보면 이들도 읽어야 할 경전이란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도 인간 못지않은 삶의 원리나 정연한 도리가 쟁여 있는 탓이다. 그 도리를 엿보고 터득하는 일―거기서 나는 문자 경전 아닌 또 다른 경전을 읽게 된 것이다. 그렇다. 푸나무들도 나 못잖은 내면세계들을 갖추고 있다. 한동안 나는 이 경전 읽기에 골몰할 것 같다. 아마도 그게 얼마 동안의 내 시업(詩業)일 터이다. --- 「운보시실(耘甫詩室) 명(銘)」 중에서 상식이란 뭇 경험들이 덧쌓이고 그 축적된 경험들을 두루 꿰뚫고 있는 어떤 ‘참’을 뜻한다. 그것도 한 공동체의 온축된 경험을 횡단하는 보편성을 띤 앎의 체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참이라고 인식되고 신봉되는 이 상식도 때로는 참이 아닐 수 있다. 더욱이 상식이 굳어져 고정관념이 되고 상투적인 생각이 되면 그것은 ‘참’은커녕 되레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기제가 된다. 이 억압의 기제를 깨고 새로운 참을 발견하는 일 - 그러기 위해서는 통념을 뒤엎는 반전(反轉)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존의 상식적 의미와 정반대 뜻을 그 대상에서 발견해 내야 한다. 이처럼 고정관념이 된 상식을 깨트리고 정작 참을 과감히 발견하는 것을 가로대 반상합도(反常合道)라고 일컫는다. 부처나 조사까지도 죽이라고 과거 선승들은 가르쳤다. ‘참’을 발견하는 길에 억압 기제 혹은 고착된 관념들이 있거든 그게 무엇이든 가차 없이 깨트려 없애야 한다는 소리였다. --- 「약졸(若拙)과 ‘참’」 중에서 오늘날 시인이 만드는 시/노래는 과연 어떤 노래인가. 나는 그 노래는 두 충동을 내부에 함장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나는 새로움이란 충동이다. 따지자면 예술치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충동을 지니지 않은 예술이 어디 있겠는가. 실제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모험이 현대시에 있어 왔는가. 누구는 생금처럼 거친 이미지들이 매장된 울창한 삼림인 무의식 세계를 두루 탐험했고 누구는 시의 기존 경계 표지판을 열심히 옮기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또 다른 하나는 당대 정신의 정점(頂點)을 오르려는 욕구이다. 이는 세계와 사람에 대한 해석을 당대 누구보다도 가장 현저하게 해내려는 충동일 것이다. 오늘에 와서 이 두 가지 충동이 결핍된 시인의 노래란 기실 얼마나 공허한 것이랴. --- 「하프를 잃은 시인들」 중에서 고답과 전위는 시의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의 새로움, 예술의 고고함을 기획한다는 점에서는 동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탓에 여느 대중과의 소통은 날로 거리가 멀어질 터이다. 시는 이제 고작 시인 자신과 시 마니아들 간의 고답한 소통밖에 없지 않을 마련이다. 과연 우리 시의 오늘은 속기 없는 격조 높은 것일까. 우리 머릿속 전두엽 무대에 선 시인들에게 하프는 영영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문자 제국의 장엄한 몰락기에 접어든 오늘날 우리 시의 운명은 자못 암연히 수수롭다. --- 「하프와 서권기(書卷氣)」 중에서 이즘 나는 인식이 도저한 시들을 선호한다. 시를 읽고 이건 하나 마나 한 얘기다 싶으면 잊고 만다. 기지(wit)가 넘치는 작품들이 좋다. 하지만 그 기지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로 젊은 시인들에게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날카로운 감성의 시도 좋지만 웅숭깊은 사고가 안받침된 시들도 좋다. 특히 나이 들어가며 그에 걸맞은 도저한 인식을 보여 주는 시들이 좋다. 그러다 보니 남다른 인식, 깊이 있는 사고를 시에 담고자 애쓰게 된다. 이는 내 나름 선불교에 침잠한 탓에 얻은 후과이기도 하다. 그러면 시에서의 깊이 있는 사고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 속에 직수입된 생경한 철학이나 종교적 담론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시인 개인에게 육화되어 드러난 시적 담론이라야 한다. 말이 쉬워 육화지 그게 그렇게 간단히 되겠는가. 내 나름 풀고 있는 난해한 숙제의 한 토막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과 함께 최근 나는 고졸(古拙)이란 말을 마음에 두고 되새긴다. 그동안 고쳐쓰기 되풀이에서 하던 ‘말의 세공’에도 회의가 온 것이다. 그래서 투박하되 간결 명확한 조사(措辭)를 선호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미래파처럼 나체명사만으로 시를 만들 수는 없을 터이다. 이제 장황한 수사, 세공된 언술들은 도리어 성에 차지 않는다. 고졸한 언술의 시―한동안 여기에 빠져 있을 것 같다. 이는 의도적으로 짧은 시를 구호화하는 시 동네 트렌드와는 상관없는 일임도 끝으로 밝혀 두자. --- 「고졸(古拙)과 인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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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를 잃은 시인들]엔 비평도 실려 있고, 시집 해설도 실려 있고, 단평도 실려 있다. 그런가 하면 시인이 자신의 시를 담담히 읽은 단문도 실려 있고, 시 창작법을 간략히 제시한 글도 실려 있고, 이런저런 다정한 회고담들도 실려 있으며, 수상 소감도 두 편 실려 있다. 그러니 [하프를 잃은 시인들]은 증증한 비평집도 아니고 순일한 에세이집도 아니다. 그렇다고 비평에세이집이라고 적는 일이 온전히 마땅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세속의 갈래들은 단지 갈래들이 아닌가. 이 책은 그러한 갈래들을 넘나들며 아니 더 온당하게 말하자면 여하한 유형과 분량과는 상관없이 시랍(詩臘, 홍신선 시인이 불가에서 쓰는 ‘법랍(法臘)’에 기대어 빚은 용어) 60년을 맞이한 시인의 일생이 어떤 순정한 정신 하나로 집결되는 장면을 거룩하게 보여 준다. 어느 글이나 어느 지면이나 어느 행간이나 시의 길에서 어긋남이 없고 벼리지 않은 문장이 없다. 그러니 [하프를 잃은 시인들]은 통째로 시학이다. [하프를 잃은 시인들] 곳곳에 적힌 바대로 그 시론을 꿰뚫는 두 가지는 ‘고졸(古拙)과 앎’이다. 홍신선 시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고졸이란 말은 작품에 기교가 없는 듯 서툴러 보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아한 맛이 거기 있을 마련이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솜씨는 거칠지만 그 나름의 격(格)을 온존시켰다는 의미다. 짐짓 거칠지만 그 가운데 세련미를 갖춘다.” 그리고 ‘앎’이란 “삶이나 세계의 실상을 짚어 낸다는” 맥락이다. “여기서 앎이란 정보나 단순 지식도, 체계적 담론도 아니다. 시 속에 직수입된 생경한 철학이나 종교적 담론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시인 개인에게 육화되어 제시된 시적 담론이라야 한다. 그 같은 육화된 담론이 내가 뜻하는 앎이다. 최근 시는 나를 그런 앎의 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다. 암튼 도저한 인식이 작품 심층에 뿌리박고 있는 시―나는 그걸 곰곰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고졸과 앎’의 시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도야하는 일이다. 책에 적힌 바를 또한 그대로 옮기자면 “무릇 예술가는 자기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것, 자신의 일체가 담긴 예술을 만들어 가야 한다. 예술가에게 있어 삶이란 그 같은 자신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다.” 요컨대 시란 영원히 지양되는 과정으로서의 자기를 구현하는 이행이다. 홍신선 시인이 자호(自號)로 삼은 ‘운보(耘甫)’는 따라서 다만 ‘터앝을 김매는 사람(농부)’에 그치지 않는다. 이 겸양 어법 속엔 등단한 지 한 갑자를 이룬 시인이 부단히 스스로를 갱신하고자 한 여무진 결기가 서려 있고 더불어 문자를 넘어 이 세계 전체를 경전으로 삼은 자의 그윽하고 서늘한 눈매가 맺혀 있다. 가히 장엄하다. 꼭 다시 십 년 만의 일이다. 지난번 [장광설과 후박나무]를 문세(問世)한 뒤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쉬엄쉬엄 산문들을 써 왔다. 줄곧 주문생산에 의한 것이지만 매번 딴에는 된 힘들을 들였다. 그런데 단행본으로 묶으려 다시 읽어 보니 어설픈 대목이 많다. 특히 같은 내용, 동일 어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처음부터 일관된 주제로 기획한 글들이 아닌 탓이 크다. 부디 읽어 주시는 분들의 혜량(惠諒)이 있으시기 바란다. 이 자릴 빌어 개인적인 변명 한 토막도 해 두자. 벌써 내 나이도 노질(老?)에 들었다. 비록 변변한 글들은 아니나 차제에 모아 두지 않으면 산일(散逸)을 걱정할 처지가 됐다. 독자들 앞에 나서기 전 우선 그런 염려가 앞섰음도 밝혀 둬야 하겠다. - '책머리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