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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선
[나의 시에 대하여] 시화詩話 세 토막 [신작시] Epitaph 어느 것이 본래 면목인가 거미줄 가을하늘은 가을비 [데뷔작] 희랍인의 피리 [대표작] 합덕장 길에서 해, 늦저녁 해 추석날 부도浮屠 어떤 가야산 오순택 [데뷔 시절]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는 않겠다 [신작시] 등잔 그 산은 바다 연가 [데뷔작] 음악 [대표작] 그 겨울 이후 기차를 타고 가며 치과에서 돌_전봉건 시인 귀 우리나라의 새 민윤기 [나의 시에 대하여] 헐, 이미 반半세기가 지났다 [신작시] 틈 -아이다* 연작시 1 때 -아이다 연작시 3 세종대왕 어전회의 -아이다 연작시 4 [데뷔작] 의지판매점義肢販賣店 [근작시] 시인의 나라 사랑하자 시詩여 간통을 하자 행복 자본주의 치킨 신춘문예 양왕용 [나의 시 나의 언어] 유년기의 체험에서 궁극적 관심으로 [신작시] 보도블록 사이의 민들레 -땅의 노래 4 마음이 청결한 자 -산상 수훈 묵상 6 세상의 소금 -산상수훈 묵상 10 [데뷔작] 갈라지는 바다 3월의 바람 [대표작] 바다 도회都會의 아이들 2 달려가면서 보는 바다 다시 나의 시詩 1 다시 세 개의 못 이상개 [사자성어 하나] 구맹주산狗猛酒酸 [신작시] 단풍 드는 나이 독도가 찾아왔다 내가 가는 길 [데뷔작] 주형제작鑄型製作 소곡小曲 [대표작] 만남을 위하여 함양에서 하나 그림 속의 강물소리 그리움인가 가려움인가 고창수 [나의 삶의 나의 시] 시작 활동은 순조롭지 않았지만 [신작시] 당신이 촛불을 켜면 무더위 시론詩論 우주 여행 [데뷔작] 파편 줍는 노래 [대표작] 인왕산에서 본 새 시간 -미란타왕문경을 읽으며 신화神話 사물들, 그 눈과 귀 한국 마을 정원에서 마차와 바퀴 양채영 [내가 사랑하는 것들] 풀꽃을 사랑하며 [데뷔작] 안테나 풍경 내실內室의 식탁 [대표작] 노새야 개망초 너무 작은 씨 갈대는 흔들리는가 -현자賢者 겨울 낙엽송 숲에 관하여 한 잎새의 깃털 봄의 새소리 화선지에 스민 먹물같이 개화開花 [유족의 글] 나의 아버지 양채영 시인 -양혜령 해제解題 1960년대 월간 ‘시문학’을 통해 데뷔한 7인의 시인 이야기와 그 당시 한국 시단의 분위기 -양왕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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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시(詩)의 나그네였던 한 사람 잠들어 있다.
왼 인생 말 뒤꽁무니만 따라 다녔던 외길 한 가닥의 긴 행로를 접고 뒷날에 묻는 뭇 시편들 남겨두고 세상에서 내려 와 총총히 더 먼 시간 속으로 돌아간 시의 길손 한 사람 여기 쉬고 있다. --- 홍신선 「Epitaph」 중에서 동구가 무너지고 미테랑이 죽고 김일성이 죽었다 살 빠진 목에 밧줄 걸린 세기말의 그 제단에 지난날 우리들이 헌정한 저것은 한때는 길 넘게 몸묶어 집단으로 타오르고 이제는 변두리로 키 낮추며 낮게 기어서 잦는 식은 등걸불 이념의 숯 한 덩어리. --- 홍신선 「해, 늦저녁 해」 중에서 가슴 안에 가득히 울린다. 한 획 한 획 새겨놓은 축소된 일생이 나이 들어 큰 손 속에 덮어둔 꿈들이 보이지 않고 읽혀지지 않을 때 눈 비벼 바라보리라, --- 홍신선 「부도」 중에서 나도 바닷가에 닻을 내린 한 척의 배가 되어 흔들리며 살아간다. --- 오순택 「바다 연가」 중에서 내 비밀을 캐내세요. 당신은 나의 입술을 열었으니까요. 샘물은 퍼내도 퍼내도 청정하지요. 나의 이(齒牙) 사이에 고이는 물을 뱉었더니 향내가 나더군요. 꽃물이었어요. 썩었다고요. 그럼 뽑아야겠네요. 첫사랑 그 향내 나는 백옥(白玉)인데요. 나의 이를 보셨지요. 혀의 삽이 파내는 알몸의 흥건한 살이에요. 그래요 항상 젖어있어요. 아침에 입을 연 꽃잎은 오후에 입을 오므리지요. 당신은 아실 거예요. 나의 입술을 열었으니까요. --- 오순택 「치과에서」 중에서 분노 한 움큼쯤은 감추고 살자 우리는 별을 가리켰고 당신은 꽃을 주었다 별똥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로소 세차게 흐르는 강으로 뛰어들 수 있다 깊은 바다에는 가까이 가지 말자 축축하게 젖은 성냥개비로도 불을 붙일 수 있다 빈틈 없는 사람 되려고 하지 말자 단추 꼭꼭 채우고 얼른 지퍼 올리려고 고생하지 않는다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 빈틈이 있으면 어떠랴 가로세로 아귀 딱 맞추고 방풍 방음 직각 네모 편견의 칸 만들지 않는다 --- 민윤기 「틈」 중에서 꽃이 필 때 지는 꽃이 있다 꽃이 질 때 피는 꽃도 있다 어떤 꽃은 뜨거운 태양으로 자라고 어떤 꽃은 태양을 피해 눅눅한 응달에서 핀다 퇴직할 나이에 취직하는 사람이 있다 취직할 나이에 퇴직하는 사람도 있다 때가 되지 않아도 귀는 순해지고 눈은 어두워진다 --- 민윤기 「때」 중에서 시에도 세금이 붙습니다 시에도 헌법이 생겼습니다 시를 쓰기 위해 밤을 새는 시인에게는 과태료를 받습니다 시를 낭비하지 마세요 가중처벌을 받습니다 어둡다,는 말에서 어둠이 무섭다,는 말에서 무서움이 괴롭다,에서 괴로움이 되는 간단명료한 수사법으로만 시를 가지세요 우리들의 한글자모로도 다 말하지 못하는 눈뜸의 소리, 기다림의 몸짓도 있답니다 시인의 마을 어귀에는 “이곳은 사치스러운 말을 많이 쓰는 특별지구입니다”라는 팻말을 붙이세요 이제 시인들은 시를 청소하러 나가세요 쓰레기는 우리 몫, 시는 하느님의 몫이지요? --- 민윤기 「시인의 나라」 전문 이 세상 가장 먼 곳으로 여행 떠나는 날 희미한 시야 속에 내 모습 바라보며 식어가는 내 가슴 위 손을 얹고 눈물 흘릴 사람 그대여, 사랑하자 미움도 양념처럼 실망도 조미료처럼 우리 인생 서로 간 맞추고 요리해가며 --- 민윤기 「사랑하자」 중에서 세상은 온통 시멘트로 덥혀가고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 단단한 보도블록으로 그대 압박하는데 나는 문득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온 민들레 발견한다. 고맙다 그대. 얼마나 민들레 홑씨 사랑해 끝내 싹 트게 하고 여자들의 산고보다 더 아픈 아픔으로 땅 위로 내보냈을까? --- 양왕용 「보도블록 사이에 민들레」 중에서 우리를 그냥 소금이 아니고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당신의 뜻 생각합니다. 서해 바다물이 당신과 우리 모두의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햇볕으로 만들어진 그 소금 포대에 담겨져 우리 집에도 배달되어 갖가지 요리에 맛 낼 날만 기다리는 그 소금이 아니라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하신 당신의 뜻 생각합니다. --- 양왕용 「세상의 소금」 중에서 판문점도 사라지고 휴전선도 사라지고 그러고도 한참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우리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여러 밤을 뜬눈으로 지새고도 끝내 풀 수 없는 그러한 문제는 무엇일까? 돌아오지 않는 다리 다시 이어진 대동강 다리 모두 손잡고 건널 때에도 우리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늘도 나의 시는 이 물음의 해답을 찾아 광복동 거리나 태평로 한복판을 서성거린다. --- 양왕용 「다시 나의 시」 중에서 지난 가을 단풍 들 때 함께 익은 새소리 올 봄 먼저 온 꽃들이 무더기무더기 피었다 양지 바른 언덕배기 햇살도 잘잘 끓었다 귀속에서 돋아나는 새싹파도 파도소리 빛과 소리 가꾸다가 어느 새 어느 새 내 나이 단풍 들었네 --- 이상개 「단풍 드는 나이」 중에서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 만나서는 별이 되는 하나의 이름으로 반짝이면서 그대와 내가 만난 최초의 아픔과 최초의 굶주림을 뼈 속 깊이 깊이 새기면서 이 세상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 하나 이루리라 이루리라 다짐하면서,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내, 그대를 만나야 한다. 만나야 한다. --- 이상개 「만남을 위하여」 중에서 당신이 촛불을 켜면 내 마음이 밝아져요 온 지구가 밝아져요 수억 개 내 세포가 눈을 떠요 당신이 나를 부르면 온 지구가 귀 기울여요 수억 개 내 세포가 귀를 쫑긋해요 당신은 나의 친구 당신은 나의 우주 당신이 촛불을 켜면 온 세상이 밝아져요 온 지구가 기를 펴고 내 우주에 금강초롱이 켜져요 당신이 나를 부르면 산과 들이 수런거려요 내 안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어요 당신은 나의 희망 당신은 나의 구원 --- 고창수 「당신이 촛불을 켜면」 중에서 바퀴를 잃고 호수를 건너간 마차에는 몇 사람이 타서 몇 개의 바퀴를 보았는가? 말은 하늘로 가고 마차는 산 너머 사라지고 바퀴는 허공을 떠돈다면 마차와 바퀴와 말은 모두 몇인가? --- 고창수 「마차와 바퀴」 중에서 새의 몸은 모두 바람으로 짜여졌다 날아가는 깃털마다 봄이 왔다 찌찌찌 찌찌찌 쯔비쯔비쯔비 쯔비쯔비쯔비 새가 하늘을 떠돌면 새만한 영혼의 꽃 한 송이가 붉고 푸르게 이 지상에 핀다 가늘고 고운 뼈마디 마다 꽃물이 든 새는 내 이마에 닿을 듯 말 듯 하늘로 날아오르고 지상과 하늘엔 새와 꽃과….. --- 양채영 「봄의 새소리」 전문 꽃망울 부풀면 걱정 된다 꽃 피면 며칠 있지 않아 꽃이 질 텐데 그래도 꽃이 피고 세상은 환하게 꽃 속에 파묻힌다 며칠 있지 않으면 꽃이 질 텐데 바람이 불고 낙화가 분분하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 양채영 「개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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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만에 함께 뭉친 7인의 시집
평생 시를 쓴 [시문학]의 고아들 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들 일곱 명이 동인지 성격의 공동시집을 펴냈다. 그것도 등단한 지 55년만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등단한 그 일곱 명의 시인들은 등단 후 평생 동안 시를 써 왔고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인들이다. 이런 일은 한국 현대시문학사 최초의 일이다. 1965-1966년 꼭 20개월 동안 발행되었던 월간 [시문학]으로 일곱 명의 시인이 등단하였다. 등단순으로 호명하자면 홍신선, 양채영, 오순택, 민윤기, 양왕용, 이상개, 고창수 시인이다. 그들은 등단 후 반(半)세기 만에 ‘동인지’ 성격의 시집을 내기로 뜻을 모아 이번에 『평생 시를 쓰고 말았다』는 공동시집을 펴내게 된 것이다. 이 7인 공동 시집을 낸 시인들의 면면을 보면 올해 86세를 맞이한 고창수 시인을 비롯해서, 85세의 양채영 시인(작고), 79세의 이상개 시인, 78세의 오순택 시인, 77세의 양왕용 시인, 76세의 홍신선 시인, 그리고 막내인 민윤기 시인도 73세의 ‘할아버지’들이다. 이들의 나이를 합하면 총 554살, 1965-66년 등단했으니 시력(詩歷) 함께 385년이다. 그야말로 기네스북 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시작 활동을 멈추지 않고 ‘평생 시를 쓰고 있다’는 점에서, 요즈음 대세가 되고 있는 ‘실버문학’에 비견할 만하다. 하지만 ‘실버문학’이란 용어는 은퇴자들이 젊은 시절 꿈꾸었던 문학을 생의 말년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가리키므로 ‘실버문학’과는 전혀 다르고 ‘평생문학’이라고 하는 게 맞다. 등단 55년, 70-80대 시인들이 펴낸 공동시집 『평생 시를 쓰고 말았다』가 여느 노령의 시인들 시집에 실린 작품들과는 상당히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시집에서 ‘꼰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노령의 시인들 시집에서 많이 발견되는 노년의 허무, 노년의 병색, 퇴행적이고 회한에 빠져 있는 소재보다는 삶의 근원적 사유가 녹아 있는 시 속에서 젊은 시인들 못지않은 시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목과 편집 등 시집의 만듦새 또한 낡고 전형적인 형식을 탈피하고 있다. 젊음이 살아 있는 감각과 시적 사유 [시문학]의 낭인들은 지금도 시를 쓴다 70대의 수록 시인들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각과 시적 사유가 젊게 느껴지는 점이 놀랍다. 1965년 4월호로 창간한 월간 시전문지 [시문학]은 당시 국내 단 하나밖에 없는 월간 시 잡지였는데 1966년 12월까지 20호를 발행하고 종간되고 말았다. 따라서 20호밖에 발행되지 못한 [시문학] 출신 시인들은 ‘문단 고아’나 다름없었다. 출신 문예지에 따라 야박한 인심의 문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히려 더 열심히 시를 쓰고 작품으로 도전했을 것이다. 시집을 펼치면 시인들마다 맨 앞에 ‘시작노트’ 성격의 산문을 통해 시인은 어떤 생각으로 작품을 쓰고 있는지, 등단하기까지의 문학수업과 등단 과정의 비화를 만날 수 있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고 있다. 작품은 ‘신작 시’ ‘데뷔작’ ‘대표 시’ ‘근작 시’ 순으로 수록했다.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들 1966년 통권 20호로 종간된 월간 [시문학]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홍보를 했다. 전국의 종합대학 신문에 실은 5단통 창간호 광고를 통해, 신인 육성의 방법으로 기존 문예지와 달리 ‘연구작품’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연구작품’ 2회를 1회 추천으로 간주하며, 이를 ‘추천작품’과 병행하는 새로운 등단 제도였다. ‘연구작품’에 대한 문학청년들의 관심은 대단하여 경향 각지의 대학생들과 젊은 시인 지망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다. 시인이 되는 길이라야 신춘문예 아니면 종합문예지 [현대문학] [문학춘추]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홍신선 시인의 경우, 1965년 연구작품 「희랍인의 피리」 추천작품 「이미지 연습」으로 첫 번째 [시문학] 추천완료 시인이 되었다. 양채영 시인은 「가구점」 「내실의 식탁」이 추천을 받아 두 번째 [시문학]으로 데뷔하는 시인이 되었고, 세 번째 [시문학] 추천완료 시인은 1965년 연구작품 「무제」,추천작품 「손」 「음악」 등으로 추천을 완료한 오순택 시인이었다. 민윤기 시인은 「수인囚人 017 씨」 「비둘기와 병사」 등으로 1965년에 4편이 잇달아 ‘연구작품’으로 선정되더니 1966년 5월호 「의지판매점(義肢枝販賣店)」으로 네 번째 [시문학] 등단 시인이 되었다. 양왕용 시인은 1965년 7월호에 추천작품 「갈라지는 바다」, 1966년 1월호 「아침에」 7월호 「3월의 바람」으로 추천이 완료되어 다섯 번째로 60년대 [시문학] 출신으로 데뷔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66년 12월호 통권 20호로 [시문학]이 갑자기 종간되는 사정 때문에 미처 추천완료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그 뒤 다른 문예지 등을 통해 등단한 시인들도 월간 [시문학] 출신이라는 경력으로 시인이 되었다. 이상개 시인은, 1965년 연구작품 「주형제작鑄型製作」 「소곡小曲」 등 네 편이 한꺼번에 뽑혀 단숨에 2회 추천이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갑자기 종간되는 통에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고창수 시인은 1965년 11월호에 추천작품 「파편 줍는 노래」, 1966년 10,11월호 합병호에 추천작품「도시의 밤」, 종간호 12월호에 「화포환상畵布幻想」이 연구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고창수 시인은 ‘연구작품’이 한 번만 더 선정되면 추천완료가 될 수 있었다. -양왕용 ‘해제’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