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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종 초 반역과 모반의 정치사
2. 조광조의 등장 3. 조광조의 알성시 대책문 4. 폐비 신씨의 복위문제에 대한 논쟁과 조광조 5. 단종의 어머니 권씨 왕후 소릉의 복권 6. 정몽주와 김굉필의 문묘 배향 7. 소격서 폐지 논쟁에 나타난 조광조와 중종의 대립 8. 돌아올 수 없는 길 9. 중종 13년 5월의 대지진과 군자.소인 논쟁 10. 현량과 : 이념과 현실의 갈등 11. 기묘사화와 조광조 12. 요약과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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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가 펼친 개혁 운동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소격서를 폐지한 것이다. 소격서는 어떤 의미로 보아도 중요한 관청이 아니었다. 소격서는 나라에 천재지변이 있을 대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 제사를 드리는 곳인데, 조선 왕조에는 이 소격서말고도 각종의 유교적인 제례가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이끌어 왔던 불교적 제의의 전통이 조선 초기에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산천과 성황당에 관련된 토속적 샤머니즘적인 제의도 여전히 그 영향이 컸다. 그런 속에서 소격서는 이들 어느 것을 능가할 만큼 큰 중요성을 지닌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광조가 관직에 진출한 중종 10년 이후 이 소격서 논쟁이 격화되었던 중종 13년 8, 9월에 이르기까지 조광조는 많은 일에 관여하였지만, 이 소격서 폐지 주장처럼 강력하고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노력을 한 것은 없다. 그의 생애나 중종대의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소격서 폐지 논쟁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소격서 폐지 논쟁을 기점으로 조광조는 더욱더 정치적인 문제에 깊이 관여하였다. 이 소격서 폐지 논쟁이 끝남과 더불어 바로 과거 제도를 개혁하여 현량과를 실시하자는 문제가 당시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뒤를 이어 정국공신들의 삭훈 문제가 벌어졌다. 말하자면 소격서 폐지 논쟁은 조광조가 정치적 개혁을 더욱 가속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 pp.151-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