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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오래 아프다
08 “살자”라는 경고 10 공정 거래의 무게 12 쓸쓸하게 아름다운 14 고향의 봄, 그 막막하고도 생생하던 16 瓦탑 18 할머니의 코드블루 20 갈고리달 22 속수무책을 읽다 24 엄마는 변신 중 25 재스민 26 밥벌이 28 행복한 날 30 오! 지랄퍼 32 쉿, 대치 중 34 낙장불입 36 빈집 38 지풍기미 40 참을 수 없는 萬 풍선 42 톳재비의 주문 44 쥐 쫓는 법 46 철들이기 48 화순이의 봄 제2부 액정 깨진 핸드폰같이 52 기도 53 꽃의 숨 54 쇠기러기 56 봉선화 뉴스 58 공포 60 집게 핀 62 빛의 유기 64 깨꽃 66 동심 68 돌아가는 중 70 깡그리 72 천둥벌거숭이의 그림일기 74 정구지꽃 피다 76 애기똥풀꽃들의 대화 78 천국의 계단 80 체크무늬 집 82 흔들리는 그루터기 84 나비의 소풍 86 엿 같은 날 88 명자 유혹 90 달그림자 해설 92 마이너리티 보고서│박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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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안고 온
산국 한 다발 거실 창가에 앉혀놓고 볼 때마다 미안하다 줄 게 물밖에 없어 물만 갈아주는데 낯가림도 않고 유리잔 속 발 담근 꽃 새소리 바람소리 들려주지 않아도 달뜬 숨 몰아쉬며 파르르르 꽃 이파리 흔들며 향기 깝친다 몇 날 며칠 노랑 꽃등 밝히며 풀었다 머금는 넌 작은 몸 다 풀어 온 생, 향기로 몰아간다 --- 「꽃의 숨」 중에서 통유리 바깥에서 나는 그녀를 본다 반쯤 눈을 감고 반쯤 고개 숙인 가만히 오른쪽 뺨에 갖다 대는 엄지와 검지는 업의 무게를 모두 덜어낸 듯 날렵하다 몇 세기 동안 그렇게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걸치고 앉아 있어도 척추는 유연하고 사유思惟는 자유롭다, 아니 그녀의 혼은 자유롭다 출구가 없는 통유리 안에서 시간에 갇힌 나를 그녀가 본다 --- 「천국의 계단」 중에서 또 속았다 잘살고 싶어 지문 닳도록 일했다, 우리는 닳으면 갈아 신는 신발이 아니다 아이 젖 물리던 엄마고 한 집안 가장이다 공장 지킨 사람 헌신짝 버리듯 하는 닛토덴코 인적자원 소중히 여긴다는 달콤한 구라, 믿었다 희망퇴직 강요하고 사람 버리고 돈만 챙겨가는 백 년 전, 일제강점기 때 하던 방식 그대로 신 수탈방식 닛토 호구 정부 나서서 그들에겐 특혜 주고 먹튀 눈감아주는 이상한 나라, 아 대한민국 참담한 하루가 충만한지 갑진년 이월 하늘, 푸르고 너그럽다 붙잡을 오라기 하나 없는 허공에 사람들 던져 놓고 아슬아슬 고공농성 개 닭 보듯 구경하시는 평안한 눈들 칼바람에 밥그릇 잡고 쿨럭거리는 목숨 하찮은가 나는 살고 싶다 살아서 저 계단 내려가고 싶다 --- 「그 여자는 생각이 많다」 중에서 명명하기를 고등어 무조림이지 무 고등어조림이라곤 하지 않는다 시원한 맛 무가 고등어 아래 깔려 그 무게를 견디며 숨 다 꺼질 때까지 자기의 향을 풀어놓는다 무가 고등어에 스며든다 고등어조림 무는 불러주지 않고 그냥 고등어조림이라 한다 사람살이도 그와 같아 생에 한번 고등어가 되지 못해도 그 무엇의 완성을 위해 기꺼이 무가 되는 사람이 있다 문장을 이룰 때 주어를 꾸며주는 없어도 짜다리 아쉽지 않은 부사 같은데 냄비 맨 밑바닥에서 물커덩 제 몸 으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뜨겁게 끓어오른다 --- 「쓸쓸하게 아름다운」 중에서 고마 콱 죽어뿌라 시월 칡덩쿨 같이 거친 말이 도로 남편에게 감긴다 정신 줄 놓치고 잔걸음으로 걷는 머리 하얗게 센 아내 뒤를 따라가며 넘어질까 봐 그 걸음 살피며 내뱉듯 하는, 억장 무너지는 말 제발 내 먼저 죽어뿌라 --- 「기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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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시 앞에서 늘 속수무책, 하다. 쉽게 뽑히는 풀뿌리처럼 정처 없다가 다시 시 앞에 머문다. 시인은 시가 전부라야 하는데 밥이 먼저다. 반거충이 시인이다. 2025년 가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