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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10 가시박 12 밤의 귀 14 선자령 16 겨울 산 19 비 오는 집 22 마음 들여다보기 24 면도 26 동지의 아침 28 민달팽이 30 Fall is coming 33 노인의 집 36 눈물점 38 깨어 있는 강 40 성애性愛 제2부 42 그만두기 1 44 그만두기 2 46 그만두기 3 48 그만두기 4 50 그만두기 5 52 그만두기 6 54 그만두기 7 57 그만두기 8 60 아버지 62 지구촌 학교 64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66 소리 저장 69 나루터 70 초등 의대반 72 웨이브 파크 제3부 76 노숙자 78 자전거 82 가을 기도 84 안양천 86 우동집 88 소금방 90 비원秘苑의 아침 92 잔광殘光 95 역逆방향 98 남한강의 봄 100 봄의 나무 102 봄비 104 딸기 106 악惡의 손 제4부 110 봄 소풍 112 애완식물 114 세반고리관 116 독거노인 1 118 독거노인 2 119 귀향장歸鄕葬 122 눈꽃 먹기 125 눈 오는 날 126 출렁 128 비밀 132 MZ 직원 134 맛집 136 비 오는 밤 138 이별 해설 142 항산항심恒山恒心의 시학│전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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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감아 숨통을 끊으려
먹잇감 올라타는 뱀의 비늘처럼 까끌한 덩굴손 뻗어 나무 친친 감아 오르는 가시박 넝쿨을 잡아당긴다 잡힌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는 완강한 저항과 떼어 내려는 힘이 부딪혀 생긴 손바닥 상처에 피가 맺힌다 잠시 무시했다가 갑자기 세를 키워버린 별빛 꽃 왕관을 쓴 귀화식물의 영토 나를 조여온다 긴 줄기의 급소를 찾는다 뿌리 더듬어 푸르게 날 선 가위로 싹둑 몸통을 자른다 목 졸린 짐승 서서히 숨 이 멎어가듯 가시박 시나브로 고사(枯死)된다 --- 「가시박」 중에서 낮은 자세로 풀을 뽑는다 몸을 낮춰야 보이는 것들은 마음 안에도 있다 잔디밭에 풀썩 주저앉아 잡초 찾기에 열중하면 마음의 밭도 훤히 보이고 잠시 들여다보지 않으면 칠월의 풀처럼 무성해지는 마음속 잡념 실은 작은 화 하나 발아되어 분노로 자라고 마침내 으르릉거리는 괴물이 된다 모든 게 무상(無常)하다 무상하다 염불 외우며 퇴마사처럼 주술을 걸어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울화 사제 서품식에서 새 신부(神父)는 몸을 낮춘다 엎드려 순명을 서약하는 신품성사 낮은 자세에서만 선명하게 걸어오는 그이를 만날 수 있다 뜨거운 한낮의 풀뽑기 성찰과 보속의 오체투지다 --- 「마음 들여다보기」 중에서 그만해야 할 때 그만하고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어야 했다 그만해야 할 때 그만하지 않고 그만두어야 할 때 그만두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는 게 얼마나 큰 낭패인지 그러나 그만해야 할 때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고 누군가는 나를 멀리하고 싶어 할 때 그때 내 사랑을 그만두어야 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종일 생각하고 집착하고 다가가는 허업(虛業)이란 그만해야 그만두어야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늦가을이 되어서야 알았다 --- 「그만두기 1」 중에서 애기단풍 하나 스산한 바람 건듯 지나가면 꼭 쥐었던 손 놓아버리고 느리게 하강한다 달려가 두 손으로 받아보지만 이미 추락한 잎새 나를 잊지 못해 병상에서 끝내 놓지 못하시던 어머니의 마른 손 슬그머니 손을 빼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밤 다급하게 걸려 온 전화에 서둘러 달려갔지만 힘없이 떨어뜨렸을 어머니 손 잡아주지 못했다 --- 「그만두기 2」 중에서 분만실을 닫고 수술실을 닫고 야간 당직을 그만두고 주말 당직을 그만둘 때마다 비어가는 공간과 시간 앞에서 작고 부분적인 은퇴식을 홀로 했다 속울음으로 고별하고 돌아서는 문 앞에 전역식의 홀가분함이 놓여 있었다 자발적 은퇴 그때를 알고 그만둔다는 것은 큰 떨림이자 슬픔이기도 했다 그건 실로 30년 넘는 습관을 일시에 단절하는 금연 같은 매정이기도 했다 개업식의 화려한 화환은 은퇴식 어디에도 없다 언젠가는 그만두어야 할 일 그만두지 못하고 추레해지는 하루하루의 남루란 그만둔다(Quitting)는 것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그만두어야 보이는 것들 많다고 오늘은 또 무엇을 그만둘까 찾아야 하는 숙제 가득한 하루 --- 「그만두기 4」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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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렬의 이번 시집 『그만두기』는 생(生)의 이치를 찾아 관찰하는 항심(恒心)의 시편들이 눈길을 끈다. ‘항심’이라 하면 맹자의 항산항심(恒山恒心)에서 유래한 것인데, 항산이 항심을 지킨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물론 이 말은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생업이 있을 때 도덕적 안정과 올바른 마음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항심을 달리 보면, 탈선이 없이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지속적인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준렬 시인은 평생을 의사로 살면서도 마음의 자리에서 변함이 없는 시심(詩心)을 중요히 여기고 있기에, 그의 시편들을 항산항심(恒山恒心)의 시학으로 읽어도 그릇되지 않다. - 전해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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