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Annie ERNAUX,アニ- エルノ-,아니 뒤셴느Annie Duchesne
아니 에르노의 다른 상품
이재룡의 다른 상품
|
현실을 추적하는 대신 현실을 생산하고자 하는 옛날 이야기는 꾸며내지 말 것. 추억 속의 이미지를 거론하여 번역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 이미지를 다양한 접근 방식을 통해 스스로 속살을 드러내는 자료로 취급할 것, 한 마디로 나 자신의 인류학자가 될 것이다.'
--- p.27 |
|
오른쪽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이 다락방에는 어머니와 내가 사용하는 요강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밤에만 그것을 사용했다(낮 동안에는 손님들이 쓰는 소변기를 이용했다. 마당에 판장을 쳐서 만든 소변기였다.
--- p.중간 |
|
식품점과 식당을 겸한 우리 가게는 레퓌블리크 거리와 클로데파르 거리 사이이 평지에 있었다. 황갈색 나무기둥이 있는 나지막한 낡은 구옥들 중 하나인데, 양쪽으로는 신축된 벽돌집들이 있었다. 우리는 거리 쪽의 집에서 살았고 우리와 함께 사는 늙은 정원사는우리 앞마당을 지나갈 권리를 갖고 있었다. 위층에 단칸방이 딸린 식품점은 신축된 벽돌 건물에 있었다. 입구와 진열장은 클로데파르 거리 쪽으로 나 있고, 두 번째 진열장은 구옥의 식당에 가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정원 쪽으로 나 있다. 식품점부터 네 개의 방이 이어져 있었다.
주방, 식당의 홀, 지하 창고, 그리고 방들과 서로 연결되면서 마당 쪽을 향한 '안채'라 불린 내실이 있었다(식품점과 식당 사이에 낀 주방과는 통하지 않았다). 주방 조차도 식품점과 식당을 오가는 손님들이 통로로 사용했으니 1층에 있는 어떤 방에도 개인적 공간이라곤 없었다. 식당과 주방 사이에 문이 없었던 터라 부모님은 언제라도 손님들과 수다를 떨 수 있었고 손님들은 주방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다. 주방 계단을 따라 낮은 지붕 밑 통로를 돌아 올라가면 왼쪽에는 방, 오른쪽에는 다락방이 있었다. 이 다락방에는 어머니와 내가 사용하는 요강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밤에만 그것을 사용했다(낮 동안에는 손님들이 쓰는 소변기를 이용했다. 마당에 판장을 쳐서 만든 소변기였다). 정원에 있는 화장실은 손님이 쓰지만 여름 동안만은 우리 가족도 사용한다. 날씨가 좋아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를 제외하면 나는 백열 전구 하나 달랑 달려 있는 주방 계단 위에서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었다. 거기에서는 창문 틈으로 내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밖을 엿볼 수 있었다. --- p.35 |
|
아니 에르노는 현대 사회의 자잘하고 사소한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고, 일상생활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작가이다. 그녀는 우연한 만남에서도 자신을 절대적인 사랑의 열정으로 몰아넣으며, 글쓰기를 통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사물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의 치매, 연인과의 이별 등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만을 다룬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움≫ 역시 자신의 열두 살 때의 기억을 좇아서 쓴 글이다. 자신의 전작들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덮고 또 덮어둔 이야기,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결정적인 사건을 이 작품에서 비로소 드러내고 있다.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넘었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열두 살 때의 일이다. 작가의 머릿속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이 장면이 그녀에게 글쓰기를 종용하고, 이 일이 일어난 "일요일이 내 자아와 내가 이전에 살았던 것 사이를 가르는 어떤 장막처럼 놓이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해 아니 에르노는 그 당시 "나를 가두었던 환경, 학교, 가족의 의미를 규정"해 본다. 그녀의 가족은 사투리를 쓰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삶을 철저히 감춰야만 하는 세계에 살고 있었고, 자녀들은 잠옷이나 가운을 사치품으로 여기며 부모님과 한 방에서 잠을 자야 하는 계층에 속했다. 딸은 "싸움하지 않고, 시내에 갈 때마다 정장을 하는" 계층으로 편입시키고자 사립학교에 보내지만, "보지 말아야 할 어느 일요일의 사건으로" 인해 그곳에서도 결국 그녀는 '부끄러움'에 편입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의 근본은 품위, 완벽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계층이라는 자각과 그 계층의 규범과 법칙을 재확인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적인 계층이 있고, 지배 계층에 대한 선망과 소외로 모멸감을 느끼는 계층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은 두 계층 간의 단절과 이질감, 사회에서의 수직 상승에 대한 욕망을 가족 내에서의 대립관계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소외 계층에 머무르는 부모님과, 그들의 바람대로 지배 계층에 소속된 딸과의 간격을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하고 있다. 짧은 글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앙상한 문체, 생각에 잠기게 하는 문장, 자기 연민과는 거리가 먼 어투들이 오히려 자연스레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