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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고을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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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5시인의 말
6축하의 글 | 조현민 _“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재를 축하하며
9축하의 글 | 신경희

제1장 사계의 향연
18오월
19해바라기
20눈 오는 날
21달맞이꽃
22단풍나무
23봄비
24여명
25폭우
26한여름의 정겨움
27봄 맞을 채비
28저녁 노을
29보슬비
30봄비에 젖다
31춘삼월 꽃샘추위
32변함없는 사랑
33봄의 향연
34오솔길
35목련화
36가을 노래
37비 오는 날의 수채화
38정화되다
39할미꽃
40낙화
41아침
42앵두꽃
43해무
44가뭄에 단비 기다림
45초록을 머금다
46봄이 오는 길
47바람 부는 날
48라일락 너의 향기 보랏빛이다
49봄볕에 담기다
50지고지순 동백꽃
51사월을 지나 오월의 문턱
52이팝나무 꽃
53산딸기
54진종일 비 내리다
55보리수
56밤비 아우성
57오래도록 머물다
58봄볕
59여름 소묘
60유월의 여정
61유월
62일년 삼백 예순 다섯날
63여름
64삼복더위
66장마
67만추를 꿈꾸다
68능소화
69입추 사랑으로 온다
70가을이 오는 소리 수놓다
71가을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제2장 사무친 그리움 사라진 내 고향
74그리움
75고향의 봄
76추억
77내 고향
78어머니
79협궤 열차
80찹쌀떡 메밀묵
81장독대
82해루질
83세월에 장사 없네
84꽃물
85먼지 구르는 신작로
86어린 시절 수평선은
88추억의 이삭을 줍다
90기찻길 옆 맨드라미
91달고나
92수인선 협궤열차
94홍어 애탕국
96라떼는 말이야 먼 곳의 어둠이었어
98호수 공원 여름 갈대밭
9960년대 추억 고향
100어머니의 등
102사부곡

제3장 존재의 이유 그것만으로도
106삶
10799°C
108하고자 함이 있다
109시작
110흐름의 미
111깨달음
112시인
113일터
114존재의 이유
115돌아가는 길
116정
118삶의 치유
119둥지
120둥글다 마음은
121삶의 애증
122부초
123망설임
124소리를 잃다
125행복
126몇 개월이에요
127달빛 사랑
128사랑
129파꽃
130화단엔 언제나 꽃
131질경이
132도라지꽃
133감자꽃
134함축의 미
135어둠이 하얗게 사위어가는 새벽
136매미 사랑으로 울다
137우산
138사랑의 미로
140자화상
142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
144모래톱과 파도의 밀어
145종이배
146포구의 일상
148비빔밥
149인생
150섬섬옥수
151무궁 무진
152홍수
153그렇게 아름답게 걷고 싶다
154식사하셔야죠
156이례적인 휴가
157덤이라는 건 이음 어울림
158사랑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160상사화 넌 아린 상처 애쓰지 마
162당신의 아침은 눈부시다
163인견 모시 삼베 무명
164그리움
165새벽 연가

해설
168체화된 기억의 시학 그리고 존재 | 이지선

저자 소개 1

1960 경기 안산 출생 요식업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수상 문학고을 등단 시 부문 글벗 지기 자문위원 공저 문학고을 시선집 다수 문학고을 우수작가상 수상 현) 문학고을 경기지부 지부장 첫 시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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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181쪽 | 288g | 130*210*11mm
ISBN13
9791192635439

책 속으로

오월

초여름의 들녘엔
녹색으로 꽉 채워진 느낌이다
나란히 나란히 줄지어 선
못자리도 풍년을 약속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속살거리고
햇살은 고운 미소로 해실 거린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꽃내음
솔솔바람 타고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싱그러운 자태로 푸르른데

알 수 없는 열기가 훅 스쳐간다
벌레들의 합창도 기다려지는
초여름의 무대다

해바라기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뜨거운 햇살에 익어가고
바람에 흔들리며 춤추고
때론 아침 이슬에 젖어
가을로 걸어간다

눈 오는 날

잿빛 하늘 을씨년스럽다
한데 포근하다
드디어 하늘하늘 나풀나풀
하얀 눈발이 내린다

지표에 닿자 사르르 녹아버린다
그러다 어느새 쌓인다
나는 하늘하늘 나풀나풀 내리는
눈을 맞으며 잿빛 하늘을 본다

어느새 나는 무희가 되어
한삼을 흔들고 있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 살포시
눈을 맞으며 춤을 춘다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내리는 눈을 맞고 있노라면
나는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다

달맞이꽃

오매불망
달님 기다리다
달빛에 반가워 활짝 웃는다
바람에 기대어 춤추고
구름과 술래잡기 하고
밤이슬에 젖어들고
벌레소리 흥겨워
밤이 새도록 행복한 달맞이꽃
햇님이 새벽문을
살짝이 열어 오시면
이별이 아쉬워 풀죽은 모습

단풍나무

고사리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햇빛 바람을 맞으며 손짓 한다
수줍어 볼 빨간 모습으로
손사레치며 도리질 한다
바람은 스쳐가며 속삭이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볕 때문에
수줍어 어쩔줄 모르고
붉게 달아오른다
햇빛과 바람과 동무삼아 노닐던
작은새도 평온한 날갯짓으로
수줍은 단풍나무를 톡톡 건드리며
더 더욱 홍조에 물들게 한다

봄비

가슴시린 동면에서 깨어
길게 기지개 켜며
연두빛으로 물오른
들녁의 초목들
봄비 소리없이 다가와
살갑게 적신다
이름모를 새들도
행복한 날갯짓 하고
흥겨운 목소리로 지저귄다
봄비 촉촉히 젖어들어
봄의 영혼을 깨운다
꽁꽁 얼어 붙었던
긴 여정을 끝내고
만물이 소생한다는 이 봄날
노란 개나리 분홍 진달래
꽃봉우리 만개하고
내리는 봄비에 실개천 흐르고
실개천에 노니는 물고기는
꼬리치며 봄의 리듬을 즐긴다

여명

밤과 낮의 이별을
살짝이 열어오는
그 절묘함은 은은하고
고요함으로 밝아옵니다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소란스럽지도 않으면서
밤의 어둠을 걷어내고
새벽의 이슬 걷어내고
아주 조금씩 밝아옵니다
능선 따라 구름 비켜가며
새벽안개 밀어내고
희망찬 하루를 밝히려
살짝이 열어 오십니다

봄비에 젖다

가슴 벅차오르도록 반가운 님
젖어드는 애틋함에 쉬어지는 숨결
포근히 안겨드는 행복감에 주루룩
꽃비 되어 내린다
여린 새싹 취한 듯 파르르 떨고
먼지와 함께 바싹 마른땅 젖어든다
아사 직전일듯한 목마름에
단비 되어 내린다
머잖아 온기에 취하고
훈풍에 노래하고 춤추고
애틋한 사랑에 젖어
함박 꽃비 되어 내리겠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김희숙 시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화된 기억의 시학 그리고 존재

이지선

김희숙 시인의 시집은 기억을 회상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 시집에서 기억은 과거를 떠올리는 심리적 작용이 아니라 현재의 몸속에 남아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감각의 층위로 나타난다. 기억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의 조건이며 몸이 세계를 통과하며 축적해 온 흔적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기억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기억이 언어를 낳는 토대로 작동하게 한다.

이 시집에서 드러나는 기억의 형식은 체화된 기억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체화된 기억은 의식의 저장고에 보관된 이미지가 아니라 몸의 자세와 감각과 반복된 행위 속에 스며들어 현재의 삶을 구성하는 힘이다. 음식의 온기 손의 노동 냄새와 맛의 잔존은 과거를 호출하는 장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존재 방식을 형성하는 감각적 기반이다. 김희숙의 시는 기억을 재현하지 않고 기억이 스스로 현재를 발화하도록 허용한다.

이러한 시적 감각은 모리스 메를로퐁티가 말한 몸과 주체의 개념과 깊이 연결된다. 메를로퐁티에게 몸은 의식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닌 세계와 이미 얽혀 있는 존재의 양식이다. 세계는 사유 이전에 몸을 통해 먼저 살아진 것이며 지각은 인식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김희숙의 시에서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 또한 이와 유사한 궤적을 따른다. 기억은 머릿속에 저장된 과거가 아니라 몸이 세계를 살아낸 결과로 남아 현재의 감각을 통해 다시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드러난 언어는 관념적 설명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기억을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된 일상과 노동과 관계의 감각을 통해 기억이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떠오르게 한다. 이는 기억을 정리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태도이며 삶의 깊숙한 층위에서 기억을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감정의 과잉이나 서사의 비극성보다 감각의 지속성과 존재의 밀도를 강조한다.

1. 몸에 각인된 감각의 원형

제1장 「사계의 향연」은 김희숙 시집 전체의 감각적 기초를 형성하는 장으로서 계절을 자연 현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이 장에서 사계는 시간의 구분 단위가 아니라 몸이 세계를 인식하는 기본 리듬으로 작동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순환하는 배경이 아니라 감각이 세계와 접속하는 방식이며 삶이 자신을 갱신하는 리듬이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사계절이 무지개다

계절이 소리 없이 바뀌고
바람이 느낌이 다르고
볕이 다른 향기로 온다

봄은 연두로 다가와
꽃비로 형형색색
여름은 초록을 품고
꽃다지 알알이 피어나고
가을은 서풍 데려와
오색찬란 단풍 즐기고
겨울은 북풍한설
하얗게 하얗게 소복소복
아름다운 우리 강산
사계절이 무지개다
- 일년 삼백 예순 다섯날

「일년 삼백 예순 다섯날」은 이 장의 시적 태도를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사계는 색채와 온도와 바람과 향기의 변화로 제시되며 추상화되지 않는다. 계절은 의미로 환원되지 않고 감각으로 남는다. 봄은 연두로 다가오고 여름은 초록을 품으며 가을은 서풍을 데려오고 겨울은 북풍한설로 세계를 덮는다. 이러한 전개는 계절을 설명하지 않고 계절이 몸에 남긴 지각의 흔적을 따라간다.

이 장에서 중요한 것은 계절이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조건이라는 점이다. 김희숙의 시에서 사계는 이미 몸에 새겨진 감각의 저장소이며 시는 그 저장소를 호출하는 언어적 장치로 기능한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동일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매번 다른 감각의 강도로 몸에 스며들며 그 차이가 삶의 깊이를 형성한다.

이러한 시적 구조는 메를로퐁티가 말한 시간의 체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시간은 외부에서 측정되는 연속이 아니라 몸을 통해 살아지는 지속이다. 제1장의 사계는 달력의 시간이 아니라 몸의 시간이다. 햇살의 농도 바람의 결 결빙과 해빙의 촉감은 모두 몸이 시간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김희숙의 시는 이 체험을 개념화하지 않고 감각의 배열로 제시한다.

따라서 제1장은 자연을 노래하는 장이 아니라 세계와 몸이 처음 접속하는 방식에 대한 시적 탐구라 할 수 있다. 사계는 삶을 장식하는 배경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리듬이며 김희숙 시인의 시는 그 리듬을 언어 이전의 감각 상태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포착한다. 이 장에서 시는 기억을 불러오지 않는다. 시는 기억이 형성되기 이전의 감각적 토대를 드러낸다.

2. 사라지지 않는 공간의 지속

제2장은 제1장에서 형성된 감각의 리듬이 공간으로 이행하는 장이다. 여기서 공간은 좌표와 거리로 측정되는 외부적 대상이 아니다. 고향은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지만, 몸에 남아 지속적으로 반응하는 감각의 구조로 제시된다. 장소는 사라졌으나 장소를 살아냈던 몸의 기억은 현재의 감각 속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장에서 공간은 상실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지속 방식으로 전환된다.

내 고향 사리포구는
갯벌이 놀이터였고 표본실이었다
싸죽이 백사장처럼 깔고 앉았고
고둥은 줄지어 어디론가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짱뚱어 날아다니고
게들은 술래잡기하고
조개들은 물푸레질을 했다
싸죽조개 삶은 국물에 수제비 떠서
싸죽 조갯살을 빼서 함께 먹었었지
해풍은 찝질하고 끈적했지만
싫지 않았다
노을이 아름답다며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땅거미 지고 칠흑 같은 바다는
때론 자장가인 듯 잔잔한 소리로
때론 성난 듯 큰 소리로 외쳐대던 파도
내 고향 사리포구는
애잔한 추억과 그리움을 남겨두고
호수 공원에 잠들었다
- 내 고향

「내 고향」에서 사리포구는 복원되지 않는다. 갯벌의 생물들 해풍의 끈적한 질감 놀이의 소리와 파도의 리듬은 하나의 풍경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시는 고향을 설명하지 않으며 고향을 재현하려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감각의 파편들이 나열되며 공간이 몸에 남긴 흔적이 드러난다. 고향은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몸속에 스며들어 삶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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