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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첫 시집을 내며
제1부 소로의 오두막 사냥 음악학교 가다 프라하 천년의 미로가 건넨 위로 기분 좋은 저항 피란처 도전은 아름답다 흰 물꽃 피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모래의 집 다시, 버찌가 익을 무렵 만년설에 핀 얼음꽃 꽃을 켜다 기억은 낙엽처럼 바람의 넋 별을 그린 서사시 운중 호수의 가을 언덕 가을, 그 들녘 리크위르의 달의 변주곡 제2부 꽃섬에 닿다 풀리지 않는 함수 산수유 피던 날 수평선에 머문 기억 바람의 전언 툰드라의 휘파람 시간이 멈춘 듯이 캔버스 위의 탱고 버킷리스트 돛배의 행로 요일은 파랑 삶은 늘 흔들린다 시간은 수채화로 번지고 고갱의 푸른 말 칠월이 익어가는 숲 그해 봄, 꿈길을 걷다 해바라기 별 변주곡 백야, 그런 사람 만취 초극 자적 시공을 넘는 미소 호수에 흐르는 연가 달빛 마중 말 없는 철학 비경의 야상곡 온종일 달린 자의 저녁 산속의 매혹 제3부 새벽을 품은 초승달 찰나의 무한 서라벌 봄날의 기억 끝나지 않은 여행 달빛에 묻다 초록 요람 환한 고독 햇빛 풍경 한 장 유월 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회하는 계절 푸른 꿈을 건너는 중 해당화의 저녁 벼랑의 노래 꽃등이 켜진 징검다리 그림 속의 강 당신이 오신 날 산속에 들면 들 밖 양치기의 노래 얼음의 음계 별에도 꽃이 핀다 해설 시간을 그리다 | 이지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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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오두막
조각달 머물다 간 자리 산등성이에 흩뿌려진 삶의 꽃들이여 벚꽃 진달래 곱게 필 때면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가 한 움큼 광휘로 흘러나온다 푸르게 일렁이는 산새 소리 칡덩굴 얽혀 핀 하얀 찔레꽃은 홀로 피다 질 테지만 상큼한 내음 품은 바람과 꽃들의 향연으로 온통 보드레 꽃물 들겠다 애수 어린 저녁 이슥히, 소로의 오두막에 등불 하나 켜진다. 사냥 음악 학교 가다 시인에게 망원경을 준다 표류하는 날들을 응시하던 날 끝도 없는 물음표를 던지며 음악과 귀로, 파랑새의 껍질을 뚫고 새들이 멀리 날 수 있도록 황량한 벌판을 가로질러 그리던 행성, 금빛 시간 속으로 마음 깊이 혁명들이 꿈틀거린다 요정은 사냥 학교 가다 모든 여성들이 왕녀였던 때 모든 아이가 나비였던 때가 와야 하리라 푸른 별은 아름다운 조각이 되어 존재와 미, 사랑과 꿈을 안고 사냥 음악 학교 하프 좌로 달려갈 한 필의 말을 꿈에 사려 하는데. 프라하 천년의 미로가 건넨 위로 미로에서 너를 만난다 시간마저 걸음을 멈춘 곳 볼타바 강물은 푸른 기억을 안고 흐른다 붉은 지붕의 바다 위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중세의 첨탑들 신이 그리다 멈춘 풍경화 속에 나는 홀린 듯 서 있다 카프카가 거닐던 고독한 골목마다 모짜르트의 선율이 바람으로 흐르고, 세월의 이끼 서린 돌길 위로 천년의 숨결이 내려앉는다 기분 좋은 저항 나아가는 방식에도 형식이 있다면 물을 밀며 물과 싸우는 일 처음엔 물 위에서 울뻔했지요 코로 매운 물을 삼킬 때마다 죽은 물개를 만나러 가는 줄만 알았거든요 숨을 색색 몰아쉬는 보름달 속 거기 엄마가 있고 동산만 한 비탈이 있어 심장이 뛰고 가슴은 가야금 줄처럼 팽팽해집니다 나는 물개를 알아요 매끈하고 날렵한 몸짓으로 태평양의 거친 물살, 그 무수한 갈래 길을 쏜살같이 질주하는 뒷모습을 그제야 비로소 보입니다 부드럽게 물을 타는 실루엣 백자 같은 어깨와 허리의 곡선 청자의 기품을 닮은 저 우아함 어때요, 기분 좋은 저항이 느껴지나요 그렇게 나만의 폼으로 바다를 누비며 물개의 수영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피란처 상자 속에 담겨 물살에 던져지다 강물은 깊고 아득해 길 잃은 유랑은 계속되는데 상자가 열리는 찰나의 꿈 그 안의 작은 빛 접혀 있는 우주 갈대숲 우거진 기슭 파피루스 꺾어 얼굴을 묻고 하늘이 닿을 듯 간절하지만 눈부신 윤슬 위로 기도하는 아이 어린 모세처럼. 도전은 아름답다 꽃의 영광 넓고 푸른 세상을 보라 고통과 시련의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만 빛나는 별을 마주하는 법 훨훨 날아서 닿은 곳에 꿈이 살고 있다 새장을 열면 하늘이 가능성으로 열리듯 용기는 절망을 이겼으니 세상을 다 태워도 꿈은 타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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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예자 시인의 『꽃섬에 닿다』
시간을 그리다 이지선 시는 인간과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문학 양식이다. 인간은 시를 통해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다시 바라보고 평범한 자연과 사물 속에 스며 있는 시간과 생명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러한 경험은 존재와 삶을 성찰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방예자 시인의 시 역시 자연과 일상이라는 가까운 세계를 바탕으로 인간의 삶과 기억을 탐색하며, 계절의 변화와 생명의 순환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삶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 방예자 시인의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꽃과 나무, 산길과 들판, 바람과 별, 바다와 숲은 오랜 시간 삶을 지탱해 온 기억의 공간이자 생명의 질서를 드러내는 시적 대상이다. 시인은 자연의 작은 변화와 계절의 흐름을 세심하게 응시하며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을 읽어내고 인간의 삶을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자연은 인간과 분리된 외부가 아니고 삶의 기쁨과 상처, 성장과 치유를 함께 품는 공간으로 확장되며, 독자는 이러한 시적 공간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삶과 기억을 되돌아보게 된다. 방예자 시인의 시 세계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을 다채로운 색채 이미지로 형상화한다는 점이다. 시인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파랑과 녹색, 황금빛, 분홍빛, 무채색과 파스텔 톤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를 뛰어넘어 생명과 희망, 기억과 시간의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괴테는 『색채론』에서 색채를 인간의 감정과 정신을 표현하는 살아 있는 언어로 이해하였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방예자 시인의 시에 나타나는 색채는 자연을 더욱 생동감 있게 드러내는 동시에 삶의 정서와 존재의 의미를 구체화하는 시적 매개가 된다. 작품에서 자연과 색채는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시적 질서를 이루며 방예자 시인의 시 세계의 미학적 특징을 형성한다. 또한 방예자 시인의 시에는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응시하는 태도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계절의 순환과 생명의 성장, 오래된 공간에 켜켜이 쌓인 흔적은 인간의 기억과 결합하면서 삶의 지속성을 환기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며, 자연 속에서 발견되는 작은 생명과 변화하는 색채는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시적 장치가 된다. 이러한 특징은 방예자 시인이 구축한 서정시 세계의 중요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자연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과 풍부한 색채 이미지를 통해 생명의 가치와 시간의 깊이를 형상화하고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새로운 의미의 공간으로 확장한다. 자연과 색채가 어우러진 그의 시는 존재의 아름다움과 삶의 지속성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인간과 자연, 시간과 기억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1. 자연을 품은 시간 - 「소로의 오두막」의 자연 시집에서 「소로의 오두막」은 단순히 한 장소를 노래하는 작품이 아니다. 이 시는 인간이 어떠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조용히 질문하는 작품으로 제목에서부터 떠오르는 ‘소로’는 자연 속에서의 자발적인 고독과 사유를 실천한 인물이다. 조각달 머물다 간 자리 산등성이에 흩뿌려진 삶의 꽃들이여 벚꽃 진달래 곱게 필 때면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가 한 움큼 광휘로 흘러나온다 푸르게 일렁이는 산새 소리 칡덩굴 얽혀 핀 하얀 찔레꽃은 홀로 피다 질 테지만 상큼한 내음 품은 바람과 꽃들의 향연으로 온통 보드레 꽃물 들겠다 애수 어린 저녁 이슥히, 소로의 오두막에 등불 하나 켜진다. ― 소로의 오두막 방예자 시인이 소로를 불러오는 이유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성찰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시 속의 오두막은 역사적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화자가 마음속에 마련하고자 하는 정신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오두막이라는 작은 공간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차분하게 풀어낸다. 높은 산이나 거대한 숲을 강조하지 않고 사람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거처를 통해 삶의 본질을 바라본다. 이러한 공간은 자연의 일부로 머무르는 장소이며,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쉼의 공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공간은 생산성과 효율을 기준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넓고 화려한 공간일수록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현실 속에서 시인이 선택한 오두막은 전혀 다른 삶의 기준을 제시한다. 작고 소박한 공간은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충만한 장소로 그려진다. 이러한 시선은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월든』에서 보여 준 삶의 태도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소로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삶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숲속 오두막에서 생활하였다. 그의 관심은 자연을 찬양하는 데 있지 않았으며, 인간이 삶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에 있었다. 방예자 시인의 시 역시 자연을 이상적인 공간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에서 「소로의 오두막」은 자연 예찬의 시라기보다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시집에서 작가가 보는 자연은 끊임없이 인간과 호흡을 맞추는 존재로 나타난다. 바람과 나무, 빛과 계절은 화자의 감정을 대신 설명하지 않는다. 각각의 존재는 저마다의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삶과 나란히 놓인다. 이러한 배치는 자연을 인간의 감정을 비추는 배경이 아니다. 하나의 독립적인 생명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시인은 자연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자연을 향한 시선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성찰로 이어지며,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환경보다는 함께 시간을 살아가는 이웃으로 형상화된다. 시인이 작은 나무와 꽃, 바람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시선은 생명의 크기를 구분하지 않으며, 작은 존재 하나에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한다. 또한 「소로의 오두막」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머무름’의 가치를 환기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더 많은 성과를 위해 자신을 재촉한다. 빠른 변화는 일상이 되었고 멈추어 자신의 삶을 바라볼 여유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오두막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작은 공간에서 자연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특별한 사건이 없더라도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시인은 그 경험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풀어내며, 독자가 스스로 그 의미를 발견하도록 여백을 남긴다. 이러한 절제는 방예자 시인의 중요한 미학 가운데 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