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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ve Staples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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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무조건적 헌신을 인간적 사랑에 바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은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며, 그 자신 또한 파멸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의 자리를 허용받은 인간적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24쪽)
필요의 사랑은 우리의 빈곤에 대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선물의 사랑은 하나님을 섬기려 하고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고난도 감수하려 합니다. 그런데 감상의 사랑은 하나님께 “당신의 크신 영광에 대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합니다. (38쪽) 애정은 우리의 삶에 살금살금 기어들어와 서서히 퍼집니다. 그러고는 수수하고 편한 옷들, 온갖 개인적인 것들과 더불어 삽니다. 부드러운 실내화, 낡은 옷가지, 오래된 농담, 부엌 바닥에서 졸고 있는 개의 꼬리를 밟는 일, 재봉틀 소리, 잔디밭에 뒹굴고 있는 도깨비 인형 따위와 말입니다. (68쪽)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네댓 명이 함께 방에 모일 때, 실내화를 신고 벽난로 불꽃을 향해 다리를 뻗은 채 마실 것을 팔꿈치에 놓아 두고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전 세계와 세계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우리 마음에 밝히 드러날 때, 삶에서 이 이상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자격이 있어서 이런 선물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127쪽) 위험의 씨앗이 숨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에로스의 그 숭고성입니다. 에로스는 마치 신처럼 말합니다. 완전히 헌신하고, 행복을 깡그리 무시하고, 이기심을 초월하는 것이 마치 영원한 세계로부터 오는 메시지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음성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에로스의 그러한 숭고성과 자기 초월성으로 선뿐 아니라 악을 향해서도 돌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84쪽)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심지어 동물에게도―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얽히는 관계를 피하십시오.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 그러나 그 작은 상자 안에서도 그것은 변하고 말 것입니다. 부서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깨뜨릴 수 없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207쪽) 우리는 모든 사랑에 내재해 있는 고통을 피하려고 애씀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분께 바침으로써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208쪽) 우리는 사랑했던 이들에게서 등을 돌려 어떤 낯선 존재에게 가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날, 결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지상에서 만났던 모든 순수한 사랑의 경험 속에 이미 함께 계셨고, 그 경험을 만들어 내고 뒷받침해 주셨으며, 그 속에서 매순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234쪽)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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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편집했던 지난 5개월의 긴긴 시간동안은 하고픈 말이 참 많았었는데 그 긴 시간을 지나면서 그토록 되새김질하면서 깨달았던 내 속의 많은 말들이 어느덧 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잦아들어 용해된 것이라고 믿고 싶기는 하지만.
《네 가지 사랑》 이 책을 편집하면서 나는 편집자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아무리 책이 좋다고 해도, 연거푸 두세 번을 내리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열 번을 읽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나는 편집이라는 과정 속에서, 원고 전체를 열 번도 더 읽었다. 매 문장을 다듬으며 씨름했던 순간까지 치자면, 수백 번을 읽은 셈이다. 다른 책들의 경우, 편집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고 초기에 받았던 감흥이나 좋은 점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점점 모자란 부분과 약점만 가시처럼 눈에 거슬리게 된다. 그러다 더 시간이 지나 최종적으로 책의 형상을 이룰 즈음이 되면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저 내가 낳은 새끼인 양, 부족한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게 안쓰럽기만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책 《네 가지 사랑》은 그렇게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마치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는 것처럼' 매번 새롭고도?놀라운 통찰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애정 편에서, 그 다음엔 우정 편에서, 그 다음엔 에로스 편에서 마지막으로는 자비 편에서 나는 그야말로 압도당했다. 한동안 원고가 내 손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마치 성경 한 구절을 묵상하듯, 어느새 책 내용 속으로 들어가 몇몇 문장이나, 내용에 푹 파묻혀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성경을 이렇게 깊이 묵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반성을 할 정도로. 이제껏 루이스의 저작들이 그러했듯이 이 책 역시, 읽기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네 번째에 가서야 저자가 의도한 바에 좀더 가깝게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수십 번을 읽을 수 있었던 편집자의 위치가 책을 제대로 씹어 소화하기엔 참 좋은 자리인 것 같다. 《네 가지 사랑》은 8월 26일에 초판이 나왔는데, 선주문이 많았던 관계로 지금 벌써 2쇄 제작 중이다. 그만큼 이 책을 기다리는 독자가 많다는 것에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다만, 이 책을 펼쳐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갈 독자들에게 무언의 부탁을 하고 싶다. 꼭꼭 씹어 먹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 주시길. 편집자처럼 열 번씩 읽을 수는 없겠지만, 또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겠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두 번이나 세 번은 반복해서 읽으시길. 그런다면, 그 독자들 중에서 최소한 몇몇은 편집자가 ‘변증’이라는 말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실천적’이라는 단어를 써서 ‘C. S. 루이스의 실천적 사랑 변증법!’이라는 광고 문구를 만들게 된 저의를 알아주고, 동감해 주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