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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굿맨에 대하여
매혹적인 파시즘 토성의 영향 아래 지버베르크의 히틀러 바르트를 추억하며 열정의 정신 아르토에 다가가기 후주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작품 찾아보기 |
Susan Sont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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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에게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는, 세상을 공간화하는 방식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예를 들어 사고와 경험은 폐허로 개념화한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지형을 이해하고, 어떻게 지도로 그릴지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길을 잃을 수 있는지 아는 것이다.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난 인물에게 시간은 제한, 부적절한 것, 반복, 단순한 완료의 수단이다. 시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일 뿐이다. 항상 그대로의 삶. 공간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벤야민은 형편없는 방향감각과 지도를 볼 줄 모르는 능력 덕에 여행을 사랑하게 되고 헤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시간은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 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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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1966)로 뉴욕 지성계에 스타덤에 오른 수전 손택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작가들을 오로지 “광기와 그릇된 소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의 예술을 옹호하기 위해 집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거기에는 우울과 고독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발터 벤야민도 있었으며, 오만하지만 순수한 윤리적 열정의 소유자 폴 굿맨, 치열한 광기로 시대와 불화한 앙토냉 아르토와 병적 아름다움 집착하는 레니 리펜슈탈도 있었다. 이 에세이들은 발표되는 족족 당시의 문화 지형을 상당히 바꿔놓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일곱 명의 인물들은 서구 현대예술사의 다양한 물결에서도 가장 ‘얄궂은’ 유형에 속한다. 그야말로 “학계와 전문가들의 용(龍)”이 지키는 지적 전문 분야에서 “학술적 무단침입자”로 살아온 사람들이자, 뿜어져 나오는 광기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재료 삼아 자유와 예술, 그리고 삶의 진실에 관한 현란한 수완을 발휘한 예술가들이다. 하지만 동시대 대중과 문화예술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워, 아방가르드적 난해함과 그노시스적인 광기로 이해될 뿐인 사람들. 그러한 그들을 손택은 그녀 특유의 냉정하고도 합리적이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들의 언어를 예술의 영역에 포함시키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손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정’이 베인 아방가르드적인 언어의 확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로도 사용된 발터 벤야민에 관한 에세이 「토성의 영향 아래」는 사실 이 책에 시종일관 흐르는 기조이자 주제적인 글로 벤야민의 삶과 글을 작가의 ‘기질’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한 독특한 글이다.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 벤야민이 (심리학적 개념을 경멸하여 쓴) 점성술적 개념으로 동원해 스스로를 규정하듯 자신을 우울한(saturnine) 사람으로 생각했고, 향후 그의 모든 주요 연구와 글쓰기 과제에 그런 그의 기질은 투사된다. 벤야민은 프루스트, 카프카, 칼 크라우스 등과 심지어는 괴테에서도 토성적(우울한, 혹은 음울한) 기질을 발견하게 되는데, 특히 벤야민은 보들레르의 “구체화된 산책자(flneur) 상에 19세기적 감성을 결부시키면서, 자기 자신의 감성도 도시와의 몽환적이고 예민하고 미묘한 관계에서 대부분 이끌어”내게 된다. 초현실주의라는 그릇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울 만큼 버거운 인물 앙토냉 아르토에 관한 글(이 책에서 가장 긴 글인) 「아르토에 다가가기」는 원래 아르토 저작 선집의 소개 글로 쓰인 글로 아르토에 관한한 가장 권위 있는 글로 손꼽힌다. “연극이라는 예술 분야에 아르토가 미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어서, 요즘 서유럽과 미국에서 상연되는 진지한 연극의 줄기를 아르토 전과 아르토 후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다.”라는 손택의 평가는 아직까지도 연극에서의 아르토의 성과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만큼 유명하게 인용되는 문장이다. 손택은 이글에서 “작품에서나, 삶에서나” 아르토의 “결과로서의” 모든 것들을 실패했다고 규정하지만 “완성된 예술 작품이 아닌 독특한 존재, 모종의 시학, 사고의 미학, 문화의 신학, 수난의 현상”과 같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를 “‘문학적 모더니즘이라는 영웅적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본보기”로 칭송한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아르토를 그에 버금가는 난해한 문체로 해설한 것은 손택 자신이 글에서 주장하고 있듯, 읽을 수 없는, 본질적으로 흡수할 수 없는 작가를 본질은 무시하고 제멋대로 먹기 좋게 요리해 피상적으로 다루는 현대 비평의 경향을 비난하며 아르토가 “문학과 역사에 엄청난 분량의 고통을 남”겼듯 독자들에게도 일정한 분량의 고통을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레니 리펜슈탈에 관한 글인 「매혹적인 파시즘」과 한스?위르겐 지버베르크에 관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한때 우리 사회를 달궜던(그리고 현재까지도 의미 있는) ‘우리 안의 파시즘’의 원형적인 논의로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글들이다. 「매혹적인 파시즘」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주 이질적인 두 개의 제시물, 즉 수단 남부의 마지막 부족에 관한 리펜슈탈의 유명한 사진집 『누바족의 최후』와 “공항 잡지 판매대나 ‘성인’ 서점에서 살 수 있는 값싼” 포르노 사진집 『SS 제복』을 병치해 비교하면서, 이들 제시물이 갖는 공통적 근저에는 “아름다움을 병적으로 추구”한 파시즘적 탐닉이 숨어있다고 분석한다. 손택은 그 증거로 리펜슈탈의 나치시대의 작품(영화 『신념의 승리』나 『올림피아』 등)의 근저에 흐르는 “영웅에 대한 대중의 복종”과 찬양이 전후 누바족에 대한 사진집 근저에 담겨 있는 “육체적 기술과 용기를 드러내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이 공동체 문화의 통합의 상징인 사회, 싸움에서의 승리가 ‘사람의 인생의 주요한 열망’인 사회를 찬양”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더 나아가 『SS 제복』에서 드러나듯이 나치식의 제복과 가죽 채찍에 숨은 “제복에 대한 환상, 즉 공동체, 질서, 정체성, 능력, 정당한 권위, 정당한 폭력”의 상징도 전혀 다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지버베르크의 히틀러」는 “충성을 유고하고 강요하는 고귀한 명작의 범주에 속”하는 1인극 영화 『히틀러, 독일 영화』를 다룬 글이다. “우리가 없었다면 히틀러가 어떻게 있을 수 있었겠는가?”라는 도발적인 내레이터의 반복을 발견되듯이, 지버베르크는 나치즘을 독일의 악마성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는 토마스 만의 관점을 수용한다. 손택에 따르면, 지버베르크는 히틀러가 야기한 수천만 명의 살해가 역사적 괴물의 등장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보며, “히틀러 사후에 여전히 살아있는 일종의 히틀러적 본성, 현대 문화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것, 현재를 가득 채우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변화무쌍한 악의 원칙을 환기”시킨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버베르크의 영화는 결코 이러한 ‘실재’에 기반해 “정보의 표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치유적 이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 및 군중심리를 탐구한 『군중과 권력』의 저자이며 “은둔하는 기인의 상으로서, 20세기의 상상력 속에서의 삶에서나 문학에서나 가장 큰 성취이자 순교자의 모습을 한 진정한 영웅” 카네티에 관한 글 「열정의 정신」도 주목할 만한데, 특히 손택의 이글이 발표(1980)된 바로 다음 해,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머지 짧은 글인 「폴 굿맨에 대하여」와 「바르트를 추억하며」는 고인들의 부고를 접하고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쓴 애정과 애도, 존경이 어우러진 우아한 감상의 표본과도 같은 글들이 포함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손택의 말처럼 “최후의 심판에서, 최후의 지성인, 현대 문화의 토성적 영웅, 잔해, 반항적 시각, 몽상, 억누를 수 없는 우울함, 내리깐 눈을 지닌 인물들로 자기가 여러 ‘위치’를 가졌음을 설명하고 최대한 공정하고 비인간적으로 지성인의 삶을 그 최후까지” 옹호받아 마땅한 우리시대의 지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