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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꿈 목욕 맴맴 모나카 산책하는 귀신들 모래가 되는 꿈 밤비 울음의 형식 사인 의자의 활용 도둑 출생 꿈에서 꿈으로 지금의 날씨 나무 아래 악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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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을 떠다니며 나의 죽은 친구도 만나고 사라진 친구도 만났다. 태어나지 못한, 태어난, 죽은, 죽어가는, 죽지않은, 살아남은, 사라지는, 사라져가는 모든 것이 차가운 물속에 있었다. 내가 잊고 잃었던 시간들, 가보지 못한 시간들도 마구마구 뒤섞여 있었다. 나는 폭포수를 몇 모금이나 벌컥벌컥 들이켜고 다시 또 토해내며 물속의 시간을 만끽했다.
---「p.17, 꿈 목욕」 중에서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다섯째 날 아침이었다. 역시나 아침 산책길에 나선 개를 구경하다가 그저 비슷한 패턴으로 산책하는 수준의 동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어제의 그 개였다. 남자는 어제의 그 남자였고. 관리인이 내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것도 내가 어떤 하루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p.35, 맴맴」 중에서 “내가 없으면 어쩔 뻔했어?” 수경은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니까. 네가 있어 정말 다행이야.” ---「p.67, 산책하는 귀신들」 중에서 수민은 탕비실을 수차례 오가면서 한 번도 화분에 시선을 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수민은 자신의 작은 탄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내일은 꼭……’ 생각했지만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른다. 수민에게는 지키지 못한 맹세가 많이 남아 있었다. ---「p.105, 밤비」 중에서 “선생님은 지금 회복이 필요한 상태십니다. 정신상태가 아주 그냥 너덜너덜해요. 그게 아니었으면 이런 상호에 홀려서 들어왔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 정신상태면 당연히 몸도 영향을 받고요. 몸과 정신이 따로따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정신도 몸에 담겨 있습니다. 정신이 흔들리면 몸이 그걸 지탱하느라 속수무책이 되고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 정신도 멍텅구리가 되고 맙니다.” ---「p.112, 울음의 형식」 중에서 “근데, 나는 그런 거 없어. 죽을 이유 같은 건 없어.” 단호히 말하는 복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미진은 생각했다.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구나. 비단길도 꽃길도 아니고 가시밭길이구나. 마냥 행복하지도 않구나. 인생은 그런 것. 그러나 죽을 이유 같은 것은 없고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p.130, 사인」 중에서 도둑이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가고 모든 것을 다 부쉈어. 그럼 혜주는 납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체념할 것이고 없어진 것이 뭣 뭣인지를 헤아려볼 것이다. 그중 몇 개는 없어졌는지 눈치채지도 못할 것이다. 결국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게 될 것이고, 그건 실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낫지 않나. ---「pp.151-152, 도둑」 중에서 아내는 내 간곡한 호소에 사과를 씹는 일을 멈추더니 한참 웃었다. 치과에 갈지 말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배꼽이 두 개인 일은 그만 잊고 말았다. 배꼽이 두 개인 것은 아무래도 이를 가는 일에 비하면 한가한 소리에 불과했다. ---「p.163, 출생」 중에서 우리는 모두 악어가 되어간다. ---「p.200, 나무 아래 악어」 중에서 인류 최후의 책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인류가 더 이상 전통적 방식의 책을 만들지 않게 된 건 누구도 책을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이상 책을 만들 나무가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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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잊고 잃었던 시간들,
가보지 못한 시간들도 마구마구 뒤섞여 있었다” 또 다른 현실로 존재하는 꿈, 죽음을 통해 되비추는 삶 김지연은 실제 꾼 꿈을 모티프로 한 표제작 「꿈 목욕」을 시작으로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이야기들을 펼쳐놓는다. 작품들 속에서는 길을 잃은 골목에서 꿈이 스며든 폭포를 맞고(「꿈 목욕」), 휴식차 방문한 호텔에서 반복되는 하루에 갇히며(「맴맴」), 인간이 점차 악어로 변해가는(「나무 아래 악어」) 기이한 사건들이 태연하게 일어난다. 한편 외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막내이모의 출신이 입방아에 오르거나(「모나카」), 죽고 난 뒤 과거의 연인을 따라 산책하며(「산책하는 귀신들」), 빚 문제 때문에 타인의 사인을 멋대로 단정하는(「사인」) 장면들도 이어진다. 등장인물들은 현실에 머물면서 어느 순간 꿈으로 이동했다 되돌아오고, 환상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현실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이 뒤섞이는 세계에서 그들은 현재의 자신과 관계를 새로이 인식하게 된다. 이처럼 『꿈 목욕』에서 꿈은 비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마주 보고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않는 관계의 미묘한 간극 이번 짧은 소설에서는 특히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층 섬세해졌다. 인물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지만 각기 다른 감정의 속도와 기억의 온도를 유지하고, 그 미묘한 어긋남이 관계의 리듬을 형성한다. 작가는 「지금의 날씨」에서 친구들이 SNS 계정주를 자신으로 오해하자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 불가해한 인물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그래? 너였으면 좋았을걸. 마음껏 부정하고 난 다음에 돌아온 대답이 조금 의외여서 그 말은 계속 한솔의 뇌리에 남았다. 한솔은 어째서일까 곰곰 생각하다가 그 말에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점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이 있다니. _「지금의 날씨」에서 나아가 반복되는 꿈을 매개로 현실의 관계를 재감각하는 인물들도 그려진다. 그들은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워하는 친구와 거리를 두려 하거나(「모래가 되는 꿈」),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으나 현실의 벽 앞에 망연함을 느낀다(「꿈에서 꿈으로」). 여기서 꿈은 관계의 미묘한 틈과 심리적 긴장을 암시하고, 작가는 이를 통해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층위를 그려낸다. 독자는 『꿈 목욕』을 편편이 읽어나가며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점차 확장됨을 실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