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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영
현대문학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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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고래 / 9
2부 모텔 카리브 / 41
3부 딩 / 74
4부 폭설 / 107
5부 누에게 / 131
발문 / 154
작가의 말 / 170

저자 소개 1

文眞鍈

2009년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눈 속의 겨울』, 중편소설 『딩』, 짧은 소설집 『햇빛 마중』 등이 있다. 2021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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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50g | 104*182*20mm
ISBN13
9791167901972

책 속으로

아버지가 나한테 잘못한 건 없잖아요. 잘못한 게 없으니 용서할 수도 없는데, 용서가 안 돼요. 그게 미안해요.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어요. (……) 고작 그런 이유로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를 그렇게 평생 혼자, 혼자서 외롭도록 내버려두었다는 게. 지원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상담사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치만, 지원 씨도 외로웠잖아요. (……) ‘고작 그런 이유’라고 하지 않아도 돼요.
--- pp.35~36

입추가 지날 무렵 401호 남자가 왔다. 그가 들고나는 것을 보지 못한 지 사흘쯤 되었을 때, 주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객실 문을 연 순간 주미의 머릿속에는 오래전에 보았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인파 사이로 기둥처럼 솟아 있던, 크레인에 매달려 있던 거대한 주검. 경이로운 동시에 참혹했던.
--- p.60

아까 그 여자 말야, 하고 주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네, 정말 이상한 여자네, 지원이 그렇게 말해주기를 조금은 기대하면서. 하지만 지원은 가만히 주미의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알 것 같아, 하고 지원이 말했다. (……) 그러고 보니 지원의 말이 맞았다. 그 먼 곳에서 아는 이도 하나 없는 이곳에 와서, 그렇게 혼자 씩씩하게 밥을 먹고. 아마도 누군가를, 무언가를 이해해보겠다고 여자는 애쓰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자 자신은 그 무엇에도 그렇게 애써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p.70

필요하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그렇게 적으면서 주미는 생각했다.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기 있는 사람. 누군가 나 왔어, 하고 돌아왔을 때 거기 있는 사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세상에 드물고, 주미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 p.72

어려서는 서핑 선수가 꿈이었지만, 자신이 그 정도로 잘하는 건 아니란 걸 다행히도 일찍 깨달아 그냥 취미로 즐기기로 했다고.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서핑 동아리를 만들기까지 했는데, 동아리 이름은 ‘Ding’이었다. 보드에 뭔가에 부딪혀 상처가 나면 그걸 ‘딩’이라고 부른다고 P가 말해주었다. 왜 하필 동아리 이름을 그렇게 지었느냐고 재인이 묻자 P는 대답했다.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렇게 말하고 P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덧붙였다.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 pp.85~86

영식이 술에 취한 채로 테트라포드 위에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아저씨, 아저씨’ 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돌아보니 주미였다. 일고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주미가 영식에게 어서 이쪽으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영식이 멍하니 반응이 없자, 그 어린 게 영식을 직접 끌고 가기라도 할 셈인지 테트라포드 위로 넘어오려고 자세를 낮추는 거였다. 정신이 번쩍 났다. 안 돼! 오지 마! 영식이 외쳤다. 영식이 비틀거리며 방파제 위로 올라서는 순간, 주미가 영식에게 달려와 덥석 안겼다. 조그맣고 따뜻한 몸이. 그때 영식은 주미에게 안긴 채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주미는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영식은 잊지 않았다. 영식이 술을 끊은 건 그때부터였다.
--- pp.128~129

쑤언에게 운이 좋다는 건 그런 뜻이었다. 내가 아니라 너인 것. 불행의 화살이 내가 아닌 네게 날아가 꽂힌 것. 능력도, 성실함도, 나이도 아무 상관 없었다. 왜 내가 아니라 너인가. 쑤언은 궁금했다. 신만이 그 답을 알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잠시 있었다. 그전까지 쑤언은 신이란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기도하는 마수드를 가만히 지켜보자면 내 믿음 따위와 별개로 신은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 pp.144~145

“서핑을 하면 딩 나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건…… 내가 오늘도 파도에 뛰어들었다는 증거니까.”

글을 다 읽고 나는 ‘딩 났어’라는 말을 자주 중얼거렸다. (……) 그러면 알 수 없는 상처들이, 내 것도 아닌 상처들이, 이상하게 내 것처럼 밀려왔다. (……) 딩, 하고 발음해보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딩─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여러 겹으로 계속 퍼져나간다.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풍경마다 딩 났어, 하고 중얼거리다 보니 나는 이 소설이 딩에 대한 소설이지만 딩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지만 딩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를 말하는 소설도 아니고 상처를 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소설도 아니다. 그저 딩, 하고 가만히 말해보고 그 울림을 적어나가는 소설이다. 그러니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그 울림을 느낄 때 알 수 있지 않을까?

---「윤성희_발문」중에서

출판사 리뷰

“보드에 딩이 나는 건 오늘도 내가 서핑에 나섰다는 증거,
마음에 상처가 나는 건 오늘도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2020년 1월호 『현대문학』은 신년특집으로 〈내가 기대하는 작가〉를 내보냈다. 여러 이유로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그러나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작가를 소개하는 특집이었다. 그 특집호에 여섯 명의 소설가가 호명되었고, 문진영은 선배 작가 김경욱에 의해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다른 소설가들은 어떤지 몰라도 문진영이라면 언제나 100퍼센트 소설가였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힘주어 말할 수 있다. (……) 오늘의 소설가 목록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아도, 등단한 뒤 10년 동안 발표작이라곤 단편 하나뿐이어도,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어제도 아니었고 오늘도 아니지만 내일이든 모레든 다시 10년 뒤든 무언가를 툭 꺼내놓을 것이며, 그것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조율되어온 목소리같이 너무나 자연스레 우리의 귀를 사로잡게 될 것이 분명한.” (김경욱)

문진영은 『담배 한 개비의 시간』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지만, 그 이후 10년 넘게 지독한 무명 시절을 보내다 2020년 1월호 『현대문학』 특집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소설집 『눈 속의 겨울』을 발표하고, 〈김승옥문학상〉까지 수상하며 그 기대치를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다. 『딩』은 그런 문진영이 발표한 첫 중편소설로, 각기 다른 사연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위무가 잔잔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딩』에는 총 다섯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엄마가 죽은 뒤 아빠와 단둘이 살던 ‘지원’은 어떠한 사건 이후 서울로 홀로 올라간다. 서먹하게 지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고향 마을로 잠시 내려온 지원은 그곳에는 어릴 적 단짝이었던 주미를 만난다. ‘주미’는 절친도, 남동생도, 아버지도 모두 떠난 고향에서 엄마를 도와 모텔과 호프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주미가 운영하는 모텔에 장기 투숙 중인 ‘재인’은 모텔에서 죽은 401호 남자, P의 애인이다. P의 마지막 흔적을 쫓기 위해 한국으로 와 서핑 샵에서 일하고 있다. ‘영식’은 자신의 잘못으로 아이를 잃고 이혼을 한 후 무기력한 삶을 살다 주미의 모텔 앞에 포장마차를 열고 그곳에서 살아갈 의미를 되찾고 있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화재로 죽고 홀로 남겨진 ‘쑤언’은 영식의 도움으로 그 집에 기거하며 타지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소설 속 등장하는 다섯 인물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상처를 알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곁을 내준다. “남겨진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기 있는 사람. 누군가 나 왔어, 하고 돌아왔을 때 거기 있는 사람. 아무 때나 연락해도 늘 있는 사람” 그들은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집에서 잠든 밤 지원의 곁에 주미가, 주미 곁에 지원과 영식이, 재인 곁에 영식과 주미가, 영식의 곁에 주미와 쑤언이. 쑤언의 곁에 영식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서로 온기를 주고받는다. 쑤언의 귤이 지원에게 환한 마음을 선물해주고, 지원의 환한 마음은 주미에게 폭죽처럼 터지는 기쁨을 선물해준 것처럼. 그리하여 주미는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여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고, 주미가 여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영식의 마음으로 옮겨 가고, 그래서 영식은 재인과 쑤언에게 따뜻한 밥을 차려준다. 그래서 재인은 불가해한 기쁨을 느끼게 되고, 쑤언은 너그러워진 바닷바람을 느낀다. 이 흐름이 소설 전체에 부드럽게 녹아 있다. 호수에 귤 하나를 던지고 그걸 바라보는 기쁨. 혹은 호수에 어린 주미의 포옹을 던지고 그 포옹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느끼는 기쁨. 그게 이 소설을 읽는 행복이다.” (윤성희)

“추운 날씨 탓에 얼어버린 눈을 치우느라 고생한 다음 날, 날이 제법 풀리며 쌓여 있던 눈들은 다 녹았다. 애써도 안 되는 것,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 인생은 다 그런 것이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소설, 각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그곳에 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월간 『현대문학』이 펴내는 「핀 소설」, 그 마흔여섯 번째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당대 한국 문학의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첨예한 작가들을 선정, 월간 『현대문학』 지면에 선보이고 이것을 다시 단행본 출간으로 이어가는 프로젝트이다. 여기에 선보이는 단행본들은 개별 작품임과 동시에 여섯 명이 ‘한 시리즈’로 큐레이션된 것이다. 현대문학은 이 시리즈의 진지함이 ‘핀’이라는 단어의 섬세한 경쾌함과 아이러니하게 결합되기를 바란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은 월간 『현대문학』이 격월 25일 출간하는 것으로, 내로라하는 국내 최고 작가들의 신작을 정해진 날짜에 만나볼 수 있게 기획되어 있다. 한국 출판 사상 최초로 도입되는 일종의 ‘샐러리북’ 개념이다.

현대문학 × 아티스트 이연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재구성된 독창적인 소설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소설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소설과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이연미
국민대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도쿄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 현대, 서울시립미술관, 상하이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자신만의 정원을 구축하고,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시키며 거칠게 날이 선 나무와 신비롭고 낯선 형상의 동식물이 뒤섞인 서정적 조형세계를 구축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폭설의 기억을 데리고 이후로도 동해안에 자주 갔다. 한번은 고성부터 속초까지, 한번은 동해부터 강릉까지 걸었다. 그 사이의 구간은 점을 찍듯 여러 번 다녀왔다. 그 모든 여정에서 받은 인상들을 켜켜이 포개자 K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그 마을을 조금 다른 시간 속에 데려다놓고 싶었다. 선형이 아닌, 폭설을 중심으로 모호하게 순환하는 시간을 상상했다. (……) 그렇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구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단번에 일어나는 구원은 신의 일이겠지만, 인간들은 서로를 시도 때도 없이, 볼품없이 구해줄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2023년 봄, 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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