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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양장,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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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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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
자기비판의 시도
음악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 I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반시대적 고찰 II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반시대적 고찰 III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해설 1
해설 2
연보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2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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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음악가, 문학가이다. 1844년 독일 작센주 뢰켄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했고 어릴 적부터 음악과 언어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집안 영향으로 신학을 공부하다가 포이어바흐와 스피노자의 무신론적 사상에 감화되어 신학을 포기했다. 이후 본대학교와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예학을 전공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기 전에 이미 명문대인 스위스 바젤대학교에 초빙될 만큼 뛰어난 학생이었다.

1869년부터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고전문헌학 교수로 일하던 그는 1879년 건강이 악화되면서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편두통과 위통에 시달리는 데다가 우울증까지 앓았지만 10년간 호텔을 전전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따뜻한 이탈리아에서 여름에는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지내며 종교, 도덕 및 당대의 문화, 철학 그리고 과학에 대한 비평을 썼다. 그러던 중 1889년 초부터 정신이상 증세에 시달리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생을 마감했다.

니체는 인간에게 참회, 속죄 등을 요구하는 기독교적 윤리를 거부했다. 본인을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부르며 규범과 사상을 깨려고 했다.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였다”라고 한 그는 인간을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주체와 세계의 지배자인 초인(超人)에 이를 존재로 보았다. 초인은 전통적인 규범과 신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인간을 의미한다. 니체의 이런 철학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집대성됐고 철학은 철학 분야를 넘어 실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영향을 크게 미쳤다.

『비극의 탄생』(1872)에서 생의 환희와 염세, 긍정과 부정 등을 예술적 형이상학으로 고찰했으며, 『반시대적 고찰』(1873~1876)에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를 표명하고, 위대한 창조자인 천재를 문화의 이상으로 하였다. 이 사상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1878~1880)에서 더 한층 명백해져, 새로운 이상에의 가치전환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여명』(1881) 『즐거운 지혜』(1882)에 이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를 펴냈는데 ‘신은 죽었다’라고 함으로써 신의 사망에서 지상의 의의를 말하고, 영원회귀에 의하여 긍정적인 생의 최고 형식을 보임은 물론 초인의 이상을 설파했다. 이 외에 『선악의 피안』(1886) 『도덕의 계보학』(1887)에 이어 『권력에의 의지』를 장기간 준비했으나 정신이상이 일어나 미완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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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총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니체 철학 최고의 권위자로 니체가 그랬듯 인간 실존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다.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한나 렌트의 정치 강의』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의심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고, 『공산당 선언』 『인간의 조건』 『글로벌 위험사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우크스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전임강사,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총장,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니체 철학 최고의 권위자로 니체가 그랬듯 인간 실존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다.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한나 렌트의 정치 강의』 『니체: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의심의 철학』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고, 『공산당 선언』 『인간의 조건』 『글로벌 위험사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철학으로 사유하는 힘을 전하고 있다.

『개인주의를 권하다』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 속에서 개인주의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모든 판단의 중심에 나를 놓는 개인주의자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며, 진리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스스로 자기 삶의 진리가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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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2월 2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844쪽 | 128*188*40mm
ISBN13
9791171311712

책 속으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어떻게 그리스인들에게 비극의 근원이 된 것인가라는 매우 어려운 심리학적 질문에 관해서 아마 더 신중하고 더 적게 말할 것이다. 근본적 물음은 고통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관계, 그들의 감수성의 정도에 관한 것이다 - 이 관계는 여전히 일정하게 유지되었는가? 아니면 바뀌었는가? - 저 물음은 점점 더 강해지는 그리스인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즉 축제, 오락, 새로운 숭배 의식에 대한 욕망이 정말로 결핍, 궁핍, 침울, 고통에서 자라났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다시 말해 바로 이것이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 그리고 페리클레스(혹은 투키디데스)는 위대한 추도사에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 시간상으로 그 이전에 나타났던 정반대의 욕망, 즉 추한 것에 대한 욕망, 염세주의, 비극적 신화, 실존의 밑바탕에 놓여 있는 모든 무서운 것, 악한 것, 불가사의한 것, 파괴적인 것, 운명적인 것의 표상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의 엄격한 의지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인가?

- 그렇다면 비극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났단 말인가? 어쩌면 쾌감으로부터, 힘으로부터, 넘쳐나는 건강과 과도한 충만으로부터? 생리학적으로 묻는다면, 희극 예술뿐만 아니라 비극 예술을 만들어낸 저 광기, 즉 디오니소스적 광기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뭐라고? 광기라는 것이 반드시 퇴화, 몰락, 노쇠한 문화의 징후는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 이것은 정신과 의사에게 묻는 질문이다 - 건강의 노이로제가 있지 않은가? 민족의 청년기와 젊음에서 오는 노이로제가 있지 않은가? 신과 산양의 종합으로 여겨지는 사티로스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리스인은 어떤 자기 체험에서 그리고 어떤 충동으로 인해 디오니소스적 열광자와 인간의 원형을 사티로스로 생각해야만 했을까? 그리고 비극 합창단의 근원에 관해 말하자면, 그리스인의 몸이 꽃피고 그리스인의 영혼이 생명으로 넘쳐흐르던 그 수 세기 동안에 혹 풍토성의 황홀경이 있었던가? 공동체 전체와 의식을 위해 몰려든 군중 전체에 번져나간 환영과 환각이 있었는가? 어떠한가?

그리스인들이, 바로 자신들의 청년기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비극적인 것에의 의지를 가졌으며 염세주의자였다면? 플라톤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 땅에 가장 큰 축복을 가져다준 것이 바로 그 광기였다면? 그리고 다른 한편 이와 반대로, 그리스인들이 바로 자신들의 해체와 약화의 시기에 훨씬 더 낙천적이고, 피상적이고, 배우 같고, 논리와 세계의 논리화에 더욱 열렬하고, 그러므로 더 명랑하고 동시에 더 학문적이 되었다고 한다면? 어떠한가? 민주주의적 취향의 모든 ‘근대적 이념들’과 편견들에 대항하여, 낙천주의의 승리, 우세해진 합리성, 실천적이고 이론적인 공리주의, 그리고 공리주의와 함께 동시에 나타난 민주주의 자체가 어쩌면 - 약화되는 힘, 다가오는 노쇠, 생리적 피로의 징후인 것은 아닌가? 그리고 염세주의 자체가 피로의 징후가 아니라고 한다면? 에피쿠로스가 낙천주의자였던 것은 - 바로 고통받는 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 - 사람들은 이 책이 지고 있는 짐이 온통 어려운 문제들의 다발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우리는 여기에다 이 책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덧붙이기로 하자!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도덕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 중에서

다시 한번 말하면, 오늘날 이 책은 나에게 불가능한 책이다 - 나는 이 책이 형편없이 쓰였고, 서투르고, 지나치게 면밀하고, 비유가 난무하고, 감상적이고, 여성적으로 보일 정도로 여기저기서 감미로우며,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논리적 명료성에의 의지가 없고, 너무 확신에 차서 증명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증명의 적절성 자체에 대해서도 의심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입교한 사람들을 위한 책, 즉 음악의 세례를 받고 처음부터 희귀한 공통의 예술 경험을 통해 묶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며, 예술의 혈족 관계를 보여주는 인식표다 - 이 책은 처음부터 “민중”보다 “교양인”이라는 저속한 무리를 더 꺼리는 교만하고 열광적인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끼친 영향이 증명한 바 있고 또 지금도 증명해주는 것처럼, 이 책은 함께 열광할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새로운 샛길과 무도회장으로 유혹하는 법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는 아무튼 - 사람들은 호기심과 혐오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이 점을 시인했다 - 어떤 낯선 목소리가, 즉 아직 ‘알려지지 않은 신’의 사도가 말했다. 사도는 한때 학자의 두건 아래, 독일인의 무거움과 변증법적 무뚝뚝함 아래, 심지어 바그너주의자들의 무례한 태도 속에 자신을 감추었다. 여기에는 아직 이름도 없는 낯선 욕구를 가진 어떤 정신이 있었다.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이 하나의 물음표처럼 붙어 있는 물음들, 경험들, 비밀들로 충만한 기억이 있었다. 여기서는 - 사람들은 의심을 품으며 이렇게 말했다 - 거의 마이나데스 그리스 신화에서 마이나데스의 영혼과 같은 어떤 신비한 것이 말했다. 이 영혼은 힘겹게 제멋대로, 스스로를 알릴 것인가 은폐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거의 결정짓지 못하고, 마치 외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떠듬거린다. 이 새로운 영혼은 노래했어야 했다 - 말하지 말고! 내가 그때 말해야 했던 것을 과감하게 시인으로서 표현하지 못한 것은 얼마나 유감스러운가. 나는 아마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혹은 적어도 문헌학자로서 - 오늘날에도 이 분야에서 문헌학자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발견되고 발굴되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 발견되고 발굴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여기 하나의 문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의 문제, - 즉 우리가 “무엇이 디오니소스적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는 한 그리스인들을 여전히 전혀 인식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 「자기비판의 시도〉」 중에서

그리스 비극의 생성 역사는 그리스인의 비극적 예술 작품이 음악 정신에서 탄생했음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이러한 생각으로 우리는 처음으로 합창의 원초적이고 놀라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앞서 제시한 비극적 신화의 의미를 그리스 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 시인들도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통찰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해야만 한다. 그들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어느 정도는 행동보다 더 피상적이다. 신화는 내뱉은 말속에서는 적절하게 객관화되지 못한다. 장면의 구조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시인이 말과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지혜를 드러낸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햄릿의 대사는 행동보다 더 피상적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햄릿 학설은 그의 말로부터가 아니라 극 전체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개관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단지 언어 연극으로서만 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암시했듯이 신화와 말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 실제보다 더 단순하고 무의미하다고 잘못 생각하기 쉬우며, 고대인의 증언에 따라 가졌어야 하는 것보다 더 피상적인 효과를 전제하기 쉽다. 언어의 시인이 달성할 수 없었던 일, 즉 신화를 최고의 정신과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창조적인 음악가는 어느 순간에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진정한 비극의 고유한 특징임이 분명한 저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위안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음악적 효과의 강한 힘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인일 경우에만 이 강력한 음악의 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는 그리스 음악을 듣고는 -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그래서 훨씬 더 풍부한 음악에 비해 - 청년 시절 소심한 힘과 감정으로 부르는 음악적 천재의 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사제들이 말했듯이 그리스인은 영원한 아이이고, 비극적 예술에서도 아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떤 숭고한 장난감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파괴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 「음악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중에서

다비드 슈트라우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저 속물 교양에 관해 고백한다. 말과 행동을 통해, 즉 고백자의 말과 저술가의 행동을 통해. 『옛 신앙과 새로운 신앙』이라는 제목이 붙은 그의 책은 우선 내용에서 그리고 책으로서, 저술가의 작품으로서 중단 없는 고백이다. 그가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공공연한 고백을 하기로 작정했다는 점에 이미 고백이 들어 있다. - 40세가 넘으면 누구나 자서전을 쓸 권리를 갖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장 열등한 사람일지라도 사상가에게 가치 있고 그의 주목을 끌 만한 일을 경험했고 또 매우 가까운 곳에서 보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에 관한 고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까다로운 일로 간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백자가 생존 중에 체험하고 탐구하고 관찰한 것뿐만 아니라 그가 믿었던 것에도 가치를 둔다는 사실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슈트라우스적 기질의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신앙으로 받아들였는지, 직접 알고 있는 사람만이 말할 권리가 있는 그런 사물들에 관해 그들이 “마음속으로 반쯤 꿈꾸듯이 그렸던”(10쪽)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사상가는 가장 나중에 알기를 원할 것이다. 누가 랑케나 몸젠과 같은 사람의 신앙고백을 알고 싶어 하겠는가. 이들은 아무튼 다비드 슈트라우스와는 전혀 다른 학자이며 역사가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만약 자신들의 학문적 인식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앙에 대해서 우리와 얘기를 나누고자 한다면, 그들은 불쾌해하며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런데 슈트라우스는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이렇게 한다. 슈트라우스적 인식에 대한 몇몇의 고루한 반대자 외에는 아마 어느 누구도 그것에 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자들은 슈트라우스적 인식의 배후에서 정말 악마적인 신조의 냄새를 맡고, 슈트라우스가 이런 악마적 배후 사상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학자적 주장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를 바랄 게 분명하다.

이 무례한 친구들은 어쩌면 이 새로운 책들이 자신들의 계산과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악마적 배후 사상의 냄새를 맡을 이유가 없었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또 설령 약간 악마적인 것이 있었다 할지라도 불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사악한 정신도 분명히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새로운 신앙에 관하여 말하는 것처럼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신은, 더군다나 진정한 천재는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슈트라우스가 “우리”로 소개하는 사람들만이 그렇게 말할 뿐이다.
--- 「반시대적 고찰 I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중에서

이 고찰이 반시대적인 것은, 시대가 자랑스러워하는 역사적 교양을 내가 여기서 시대의 폐해로, 질병과 결함으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며, 또 심지어 나는 우리 모두가 소모적인 역사적 열병에 고통을 받고 있으며 적어도 우리가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덕을 키울 때 우리의 결점도 동시에 키운다고 괴테가 말했다면, 또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덕의 과잉은 - 우리 시대의 역사적 의미가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 악덕의 과잉 못지않게 한 민족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옳은 말을 그가 했다면, 내게도 그런 기회를 한 번 줘야 할 것이다. 나에게 고통스러운 느낌을 불러일으켰던 경험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서 왔으며, 단지 비교를 위해 다른 이들로부터 일부 얻었다는 점을, 그리고 부담을 덜기 위해 현대의 자식인 내가 자신에 대해 그토록 반시대적인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내가 옛 시대의, 특히 그리스 시대의 자식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 문헌학자라는 직업을 위해 그 정도의 고백은 허용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고전 문헌학이 반시대적으로 - 다시 말해 시대와 대립함으로써 시대에 맞게 그리고 바라건대 앞으로 도래할 시대를 위해 - 활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 「반시대적 고찰 II 삶에 대한 역사의 공과〉」 중에서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처음 접한 것이 내게 어떤 사건이었는지를 서술하려면, 청년 시절 어떤 다른 것보다 더 자주, 더 절박하게 내게 떠올랐던 생각에 잠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내가 과거 정말 마음껏 소망을 그렸을 때, 나는 나 자신을 교육해야 할 끔찍한 노고와 의무가 운명에 의하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적당한 때가 되면 나를 교육할 철학자를, 자기 자신보다 더 신뢰하기에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복종할 수 있는 진정한 철학자를 발견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 다음 나는 ‘그가 너를 교육할 원칙은 무엇일까’라고 자문해본다. 그리고 나는 우리 시대에 유행하고 있는 교육의 두 원칙에 관해 그가 뭐라고 말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그 한 원칙은 교육자는 학생의 고유한 장점을 재빨리 인식하고 모든 힘과 수액과 햇빛을 쏟아부어 이 장점이 참된 성숙과 결실을 얻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다른 원칙은 존재하는 모든 힘을 끌어내 가꾸고 서로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세공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강압적으로 음악 공부를 시켜야 하는가? 자신에게는 자기에게는 “사랑스러운 호른”이라고 해서 아들은 “저주스러운 피리”라 부르는 것을 아들에게 연주하도록 계속해서 강요했던 벤베누토 첼리니의 아버지를 옳다고 해야 하나? 그토록 강하고 분명하게 표출될 재능의 경우에는 옳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조화로운 교육이라는 저 원칙은 약한 천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이런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욕구와 성향이 모두 잠재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리고 하나하나 따로 볼 때 별로 대단치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하나의 천성 속에 전체가 조화를 이루고 여러 음이 섞여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경우를 어디서 발견하는가? 첼리니와 같은 사람들, 즉 인식, 욕망, 사랑과 증오가 하나의 중심, 하나의 근원적 힘을 지향하며 이 생동적인 중심의 강압적, 지배적인 힘 때문에 상, 하 또는 좌, 우의 운동이 조화로운 체계를 이루는 그런 사람 이외에 어디에서 조화를 감탄할 수 있는가? 그래서 아마 이 두 원칙은 전혀 상반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마 한 원칙은 단지 인간은 중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원칙은 인간이 또 변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동경했던 저 교육하는 철학자는 중심적인 힘을 발견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힘이 다른 힘들을 파괴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 「반시대적 고찰 III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중에서

니체라는 이름을 이 세상에 알린 저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의 첫 작품인 『비극의 탄생』이다. 1872년 초 『음악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이라는 신비한 제목을 단 이 책이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을 때 이미 사상가로서의 니체의 운명은 결정된 것처럼 보인다. 교수 자격은커녕 박사 학위도 없이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바젤대학교 고전 문헌학 교수가 된 니체는 학문의 길을 걷자마자 고전학에서 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동시에 철학자 니체의 탄생을 말해준다.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비극의 탄생』은 1886년 니체가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라는 제목으로 낸 개정판이다. 초판본이 발표된 지 14년 후에 출간한 개정판에서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을 빼버리고, 그 대신에 “자기비판의 시도”를 추가했다. 책 제목은 『비극의 탄생』으로 줄었지만, 그 내용은 초판과 같았다. 한편으로 그는 미숙한 청년 시절의 혈기,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적 부적절함, 그리고 한때 그를 지배했던 권위자들인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로부터 거리를 둔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 책이 많은 결함을 갖고 있지만 이미 새로운 사상을 향한 근본적인 직관적 통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 「〈해설1〉」 중에서

모든 철학은 자기 시대의 아들이다. 디오니소스, 초인, 영원회귀, 권력에의 의지와 같은 개념을 들으면 니체가 시대를 초월한 초역사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의 사상 역시 자기 시대와의 치열한 대화와 대결, 아니 불화를 통해 탄생했다. (…) 니체는 자기 시대의 어떤 점을 괴물 같은 것으로 파악했는가?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들여다본 인간 실존의 비극적 본성이 한편으로 우리를 경악시키는 괴물 같은 것이었다면,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에서 시대의 괴물을 직시하고자 했다. 그가 실존의 비극적 특성을 견뎌내기 위해 음악을 통한 비극적 세계감정의 복원을 바라고 과학 대신 디오니소스적 지혜를 원했던 것처럼 니체는 괴물 같은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한다. 그가 마주한 시대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과학이 엄청난 승리를 축하하는 시대이다. “실증주의, 경험주의, 경제주의가 지나친 공리주의적 사고와 결합하여 시대정신을 결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낙관적이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낙관주의를 경멸할 뿐만 아니라 합리주의와 공리주의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19세기의 자본주의적 낙관주의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라는 제목을 단 『반시대적 고찰 III』에서 니체는 무엇보다 독일 제국의 건립이 “모든 비관주의 철학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고 분노한다. 니체는 사실이 지배하는 실증주의가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실존에 관한 비관주의적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사실에 의해 반박당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 「〈해설2〉」 중에서

출판사 리뷰

“삶과 예술, 가치와 자유를 묻는 니체의 초기 사상!”
『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프리드리히 니체의 초기 저작,『비극의 탄생』과『반시대적 고찰』은 현대인에게 여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철학적 성찰의 보고다.『비극의 탄생』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을 분석하며, 인간 존재의 근본적 긴장과 모순을 예술을 통해 승화시키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그는 ‘아폴로적 질서’와 ‘디오니소스적 열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질서와 혼돈, 이성과 본능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임을 보여주며, 예술과 인간 삶의 본질적 관계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이 작품은 현대 예술철학과 문화비평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인간이 예술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한편,『반시대적 고찰』에서는 당시 사회와 문화, 도덕적 관습을 비판하며, 기존 가치와 권위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을 담았다. 니체는 인간이 스스로 삶의 기준을 세우고, 사회적·역사적 관습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기 존재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현대인의 자기성찰과 주체적 삶의 가능성을 사상적으로 확립했다.

두 작품은 니체 철학의 핵심 주제인 예술, 인간 존재, 자기 극복, 가치 창조를 조명하며, 그의 후속 사상과 작품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구축했다. 오늘날 독자들에게는 삶과 문화, 도덕과 자유를 재조명하고 성찰하도록 안내하는 철학적 지침서로,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깊이 있는 사유를 경험하도록 이끄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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