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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찾는 긍정적 남성성
성별 분업에 기초한 가부장제는 시효를 다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방향을 잃었다. 이 책은 바람직한 남성이란 어때야 하는가를 신화 분석을 통해 제시한다. 그리스의 여섯 남신을 새로운 각도로 해석해냄으로써 미래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2026.04.03.
손민규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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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들어가는 말: 그림자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아서 1장 제우스: 통합하고 성찰하는 진정한 아버지 신 아버지 이미지의 현주소 | 악랄하고 잔혹한 첫 세대 아버지, 우라노스 | 크로노스의 승리와 새로운 질서의 도래 | 혁명가 크로노스는 왜 독재자가 되는가? | 건강한 성장에는 파괴적 아버지도 필요하다 | 군림하지 않는 새 시대의 통치자 | 신성한 아이, 제우스 | 고대 여신들의 계승자 제우스 | 제우스로 새로운 아버지 상상하기 | ‘아버지 고픔’의 시대에서 2장 헤파이스토스: 상처로 마침내 거룩해진 신 태어남과 동시에 거부당하다 | 절뚝이는 남성성과 어머니를 향한 은밀한 열망 | 렘노스, 소외된 마음 세계에 대한 은유 | 자연을 모방하여 자연처럼 창조하다 | 헤파이스토스는 왜 아프로디테와 결혼했을까? | 원형적 삼각관계와 섹슈얼리티 | 헤파이스토스와 디오니소스 | 현대인의 가장 억압된 세 그림자 | 상처로 신음하는 남성 속의 헤파이스토스 3장 아폴론: 멀리서 빛나는 아름다운 신 섬에서 태어난 아폴론 | 용, 땅, 어머니, 그리고 아폴론 | 아폴론, 오염 없는 신이 아닌 정화하는 신 | 오라클의 성지 델포이 | 영웅의 귀가 비극을 낳는다 | 여성은 왜 찬란한 아폴론을 거부하는가? | 뉴턴의 심장에는 아폴론이 살았다 | 아폴론의 횃불을 들고, 다시 가이아의 품으로 4장 헤르메스: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운 신 천부적 트릭스터, 헤르메스의 탄생 | 언제 어디서든 사랑받는 신 | 기회, 타이밍, 순발력의 신 | 모두를 승자로 만드는 장사꾼 헤르메스 | 어리석음은 죄인가? | 표현의 자유는 헤르메스의 선물이다 | 헤르메스가 지닌 여성적 지성의 힘 | 리미널리티의 순간, 헤르메스가 나타난다 | 한낮에 밤의 신비를 펼쳐 내는 신 5장 디오니소스: 억압을 부수고 환희를 깨우는 신 ‘두 번 태어난 신’ 디오니소스 | 매드, 크레이지, 사이코시스의 차이 | 미치거나, 갈기갈기 찢기거나 | 디오니소스의 선물, 엑스터시 | 야만은 디오니소스 신의 그림자 | 왜 여성은 디오니소스 남성에 끌리는가? | 디오니소스의 미궁도 풀어 낼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 열정으로 불태운 자리는 신으로 충만해진다 6장 하데스: 깊은 그림자로 유배된 구원의 신 하데스의 탄생과 지하 세계의 은유 | 하데스의 징벌, 영원성 | 헤라클레스는 지하에서 광인이 된다 | 영혼의 깊이, 깊이의 부 | 하데스는 우리의 무덤이자 자궁이다 | 삶의 위기는 곧 하데스로의 초대 | 기꺼이 하강하는 사람만이 풍요를 누린다 |
고혜경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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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첫 세대 아버지 원형들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원시적이고 잔혹한 아버지다. 이 원형들은 아버지의 일부로서 일상에 엄연히 실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의 이런 어두운 면을 애써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중략) 잔혹한 아버지 이미지는 과연 우리에게 유용하거나 필요한 것일까?
--- p.42~43 제우스는 인간과 신들의 통치자이지만 자연과 사람과 여성을 지배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신은 아니다. 다른 신들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다름을 수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신 세계의 신 제우스는 훨씬 더 복잡한 남성성을 체현하는 존재다. --- p.60 헤파이스토스 정신의 핵심은 ‘인세스트(incest, 근친상간)’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문자 그대로의 인세스트가 아닌, 융이 강조하는 상징적 의미의 인세스트를 말한다. 헤파이스토스는 심리학적 퇴행으로 어머니 여신의 종이자, 아들이자, 연인이기를 원한다. 이 소망이 헤파이스토스 정신의 토대다. --- p.87 헤파이스토스는 현대식 표현으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열등감을 딛고 성공을 이루어 내었다. 이런 남성은 돈이나 명성, 지위로 자신의 상처를 숨기려 한다. 하지만 상처는 늘 그 자리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 아프로디테가 들어온다. 성공의 광채를 더욱 부각시키는 데에, 수많은 남신들이 탐내는 빼어난 미모의 아내보다 더한 장식품도 없을 것이다. 이런 쌍의 결합을 ‘페르소나 혼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심층에서는 훨씬 더 강력한 무의식적 마력이 작동한다. --- p.103~104 아폴론을 거부한 여인들인 다프네, 카산드라, 시빌라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고대 가이아 전통을 잇는 여인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아폴론의 언어와 문법을 무척 당혹스럽게 느꼈을 것이다. 자연을 배제하고 순수 지성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아폴론의 반자연적 힘은 이들에겐 그 자체로 ‘외계 이데올로기’였다. 구체적이고 확고하며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없는 아폴론의 언어는, 가이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시적이고 상징적인 언어를 쓰던 여인들에게 너무나 생경했을 것이다. --- p.161 통제와 명료함으로도 누를 수 없는 혼란과 불안이 내면에 팽팽히 공존하는 강박의 아폴론이 보인다. 누구나 살면서, 삶의 방향타는 계획이나 예측이 아니라 우연한 만남과 돌발적 사건들이 돌려놓는다는 걸 경험한다. 이럴 때, 오롯이 스스로 불완전한 삶을 예측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적 염원은 고통을 받는다. 신화학자 크리스틴 다우닝(Christine Downing)은, 그리스는 왜 이런 갈등을 대변하는 힘을 남신으로 상상했는지 질문한다. --- p.169 헤르메스는 점성술과 연금술 같은 비전(秘傳)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 세계는 통과 의례를 거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다. 늘 그 자리에 존재하나,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을 따름이다. 확실하고 이성적인 것만을 중시하는 아폴론적인 사람들은 부인하는 세계일지 모르나, 신비란 본래 베일에 싸여 있을 필요가 있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지를 결정하는 것이 헤르메스 영성의 핵심이다. --- p.186 헤르메스는 상인의 신, 여행자의 신, 조정과 중재의 신이다. 장사도 일종의 중재다. 상품이 한 주인에서 다른 주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흥정이 오가고 부가 거래된다. 거래의 성사 여부는 사는 사람이 물건의 값어치를 믿도록 만드는 데 달렸다. 뻔한 거짓과 부드러운 유혹은 거래의 만족감을 높여 주는 양념이다. 상인이 ‘원가에 팔아 밑진다’는 거짓말을 슬쩍 던져 놓으면 구매자는 ‘득이 되는 거래’라며 눈먼 기쁨을 충족한다. 이윤과 도둑질의 차이는 본래부터 애매한 것이다. --- p.188 아테나가 아버지, 아버지가 구축한 법과 체제의 계승자라면 디오니소스는 모계 전통의 계승자다. 디오니소스는 어릴 적 치마 입혀진 채 여아처럼 양육되었으며 님프라는 자연의 정령들이 그의 유모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땅과 자연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여성 혐오가 전혀 없는 신이다. 한마디로 디오니소스는 몸을 통한 영성을 대표한다. 이전 그리스 우주에는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신이 태어났다. --- p.223~224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마치 좀비처럼 살아 있되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많은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그러하고, 억압된 학교에서 나날이 숨 막히는 청소년들이 그러하고, 각종 트라우마로 고통받으며 죽음 같은 외로움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이들에게는 어쩌면 구호의 내용보다는 함성의 강도나 전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훨씬 중요한지도 모른다. 갑갑한 가정을 뛰쳐나와 산과 들에서 광란의 춤을 추던 마이나데스처럼, 강요된 순응으로 질식해 가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마이나데스가 된다. 이들에게 ‘디오니소스 해방자’는 곧 살아 있음을 느끼도록 해 주는 마법이다. --- p.239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무방비함과 취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삶을 즐기는데,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소위 ‘나쁜 남자’의 전형일 수 있다. (중략) 아폴론적 남성이 과시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를 수행하며 존재 증명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반면, 디오니소스 남성은 영웅이 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달콤한 연인’이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위험할 수 있는 남성을 여성은 왜 매력적이라 느끼는지, 몇몇 남성들이 종종 궁금해하며 물어 오고는 한다. --- p.243 헤라클레스는 은유적 죽음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무찌르려 든다. 이 점에서, 그는 죽음의 섭리를 거스르려다 영원한 형벌에 갇히고 만 시시포스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죽음 앞에서는 우리 현대인 대다수도 헤라클레스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 p.276~277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끊임없이 성공을 좇으며, 모든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려 드는 ‘나‘를 내세우는 방식에만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이면을 헤아리는 영혼의 관점은 당연히 낯설고 막막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렇지만 하데스 세계는 불교가 말하는 ‘공(空)’의 개념이 그러하듯 ‘무(nothing)’가 아니다. 나를 비움으로, 본성대로의 나라는 존재의 근원이 비로소 드러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데스 세계의 비밀이다. --- p.279~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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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히는 아들들, 상처 입은 남성들:
폭력의 대물림을 끊은 제우스와 결핍을 창조로 승화시킨 헤파이스토스 1장에서는 오랜 시간 ‘가부장적 독재자’로 인식되어 온 제우스 신화를 전복하며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적 아버지상을 발굴한다. 제우스 이전 세대인 우라노스와 크로노스는 자식을 땅에 감금하거나 삼켜 버리는 ‘잡아먹는 아버지’였다. 저자는 이 비극적 이미지에서 기성세대의 억압에 눌려 체념과 무기력, 우울에 빠져 버린 현대 청년들의 초상을 읽어 낸다. 저자는 “제우스를 건강하고 온전한 아버지 모델로 간주하는 데 분명 편치 않은 지점이 있다”(63쪽)고 고백하면서도, 신화적·심리학적 해석을 통해 그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아버지 신임을 보여 준다. 헤라를 두고서도 수많은 다른 여신을 아내로 맞거나 심지어 억지로 범하는 기존의 폭력적인 이미지는, 내면의 여성성(아니마)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다른 12신과의 공존을 이루어 내는 통합적 리더십으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제우스의 유연함은 “‘아버지 고픔’의 시대”(68쪽)를 사는 뭇 남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준다. 2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신체적 결함을 딛고 위대한 장인으로 거듭난 헤파이스토스를 조명한다. 올림포스에서 유일하게 노동하는 절름발이 신인 그는 현대인이 깊이 감추고 싶어 하는 수치심, 열등감, 존재론적 부적절감을 상징한다. 특히 “헤파이스토스 유형의 남성이 일평생 즐겨 부르는 노래는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곡”(102쪽)이라며, 헤파이스토스를 통해 모성을 갈구하면서도 그 결핍을 연인이나 아내에게서 채우려 드는 일그러진 남성성의 단면을 포착해 내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 장은 인셀 문제나 과잉된 남성성 이면에 도사린 깊은 상처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아프로디테를 둘러싼 삼각관계에서 드러난 헤파이스토스의 나약하고 찌질한 면모나, 헤파이스토스의 거울쌍인 아레스가 보여 주는 과장된 허세와 폭력성 모두 ‘근원적 배제와 소외’에서 비롯되었음을 신화는 말해 준다. 저자는 “‘아레스’가 발붙일 곳을 아예 없애 버린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108쪽)라고 물으며, 이들을 단순히 사회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자신의 결함을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당당히 올림포스에 입성한 헤파이스토스의 궤적을 통해 상처와 소외 속에서 길 잃은 남성들과 현대인에게 자기 삶을 되찾을 눈부신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리를 지배해 온 신, 우리가 잃어버린 신: 이성에 갇힌 아폴론과 경계를 유영하는 헤르메스 3장에서는 찬란한 이성과 합리를 상징하는 아폴론을 통해 인류 문명의 눈부신 성취와 그 이면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동시에 조명한다. 저자는 “아폴론은 현재의 우리를 이해하는 데 특히 중요한 신”(131쪽)이며, 무질서를 몰아내고 인류에게 이성과 추상이라는 진일보한 개념을 선사한 신임을 말해 준다. 하지만 아폴론의 ‘맹목적인 빛(이성)’은 오히려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귀를 멀게 했다. 애매모호한 신탁의 숨은 뜻을 곱씹지 않아 파국을 맞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처럼, 현대인 역시 오직 명료함만을 좇느라 삶의 복잡성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또한 올림포스 최고의 미남이자, 주로 긍정적 이미지로 인식되어 온 아폴론이 정작 구애한 여성들에게는 번번이 거부당하는 아이러니와 그 이유에도 주목한다. 아폴론은 신화에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여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탐하려 들다 끝내 파멸로 몰아넣는다. 저자는 이를 통해 땅(여신)의 에너지, 감정적 언어, 무의식을 억압한 극단적 이성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충동으로 돌변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4장에서는 이승과 저승,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헤르메스를 살펴본다. 자주 도둑이나 사기꾼으로 오해받곤 하지만, 형 아폴론의 소를 훔친 뒤 수금을 내어 주어 모두를 승자로 만든 일화(179~181쪽)에서 알 수 있듯 헤르메스는 재기 넘치는 교환과 협상의 신이다. 특히 헤르메스가 ‘경계의 신’으로서 우리를 내면 깊은 곳으로 안전하게 이끄는 영혼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은, 삶의 전환기나 위기 앞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 줄 만하다. 현대 사회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만, 안개처럼 모호한 삶의 전환기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폴론적 명료함이 아니라 헤르메스의 유연한 지혜다. 저자는 이 장의 마지막에서 “지금껏 우연이라 여긴 일들이 헤르메스의 설계”(210쪽)가 아닐까를 스스로 물으며, 삶에 등장한 숱한 우연을 혼란이나 혼돈이 아닌 헤르메스가 건넨 선물로 받아들인다. 세상과 현상을 논리적 언어로 통제하고 설명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강박적 현대인들에게, 우연이야말로 신이 열어 주는 기회이자 풍요라는 저자의 신비로운 통찰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현대 문명이 철저히 추방한 신들: 광기와 환희의 디오니소스와 존재를 거듭나게 하는 미지의 신 하데스 5장에서는 야성과 억압된 감정을 해방하는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의 진정한 의미를 복원한다. “현대인은 디오니소스 신을 망각했다.”(216쪽) 디오니소스는 오랜 세월 알코올 중독이나 파괴적 광란의 대명사로 폄하되어 인류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성 중심 문명이 거세해 버린 생명력과 몸의 영성을 대변하는 신이다. 저자는 ‘미치다(mad)’ ‘제정신이 아니다(crazy)’ ‘광증(psychosis)’이 혼용되곤 하지만 엄연히 다른 뜻임을 짚으며(226쪽), 디오니소스를 오해해 온 우리에게 그가 이끄는 ‘환희와 황홀경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특히 저자가 직접 겪거나 들은 엑스터시 체험을 진술하는 대목에서는 좀처럼 닿을 수 없는 이성 저 너머의 신비가 엿보인다. 흔히 ‘묻지 마 범죄’나 각종 중독, 전체주의적 광기 등 현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디오니소스적 광기로 치부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 에너지를 억압하고 배척한 데서 비롯된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다. 이성에 얽매인 현대인에게 디오니소스는 두렵고 막연할 수밖에 없지만, “신화는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수록 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한다.”(252쪽) 경직을 풀고 내면의 열정을 뜨겁게 연소할 때 진정한 자유와 황홀경을 누릴 수 있다는 디오니소스의 매혹적인 초대는, 무채색의 일상을 견뎌 내는 현대인들에게 벅찬 해방감을 선사한다. 6장은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심연, 하데스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정이다. 이 장은 『아버지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이끄는 내면 탐색의 도착지이자 모두가 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다. 하데스 역시 디오니소스만큼이나 크게 오해받고 있는 신이다. 그는 흔히 죽음의 신으로 여겨지지만, 그가 상징하는 특질은 ‘무(無)’나 ‘공허’가 아닌 ‘비가시성’ 그 자체다. 저자는 지상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조차 지하 세계에서는 그저 환영에 불과한 피상을 향해 헛방망이질을 해대는 ‘까막눈’에 불과했음을 꼬집는다. 자기 내면세계 깊이로는 몸을 던지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세상의 표피에만 몰두하며 얄팍한 자아의 힘만으로 모든 문제를 다루고 돌파해 내려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돌아보게 한다. 이와 대비되는 오디세우스 여정에 대한 해석은 단연 이 책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오랫동안 바다 위를 떠돌다 마침내 하데스 세계에서 만난 현자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을 통해 ‘방황의 의미’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게 된 오디세우스, 낡은 자아를 허물고 기꺼이 어둠 속으로 하강한 사람이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은 독자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스 세계관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숭배하고 다른 한쪽은 외면하는 태도를 ‘불경’이라 여겼다. 오늘날 남성들이 겪는 균열과 방황,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채 떠도는 삶은 결국 이 불경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고정적 의미, 박제된 언어로 세계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는 착각 역시 마찬가지다. “본래 정신의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이미지”(11쪽)라는 저자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은 그간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그리스의 여섯 남신을 새롭게 읽게 하며, 경이롭고도 무한한 은유의 향연 속으로 독자를 이끌 것이다. 이성과 논리로는 좀처럼 가닿을 수 없는 세계 그 너머의 숨결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신화가 지닌 힘이다.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남신들의 모습과 신비로운 신화의 언어는 새로운 남성성, 나아가 아름답고 새로운 인간상을 상상하게 하는 장미창이 되어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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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만큼 ‘남성성의 카오스(대혼란)’를 겪는 시대가 있었을까. 이 책은 현대 남성성의 위기를 흥미로운 관점에서 접근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그리스 신화의 케케묵은 남성성이 고혜경 박사의 능수능란한 붓끝을 거치자 경이롭고 매혹적인 새 시대의 남성성으로 거듭난다. 이 책을 읽어 가는 과정은 오디세우스의 장쾌한 모험 같기도 하고, 사랑을 찾아 모든 것을 던질 줄 아는 프시케의 눈물겨운 모험 같기도 하다. 신화와 심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 살아 있는 우리 인간들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사랑으로 가득한 고혜경 박사의 붓끝은 끝내 우리의 잠든 무의식을 일깨워,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나도 모르는 영웅’을 깨워 낼 것이다. 이 험난한 사회에서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부모는 물론, ‘요즘 남자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답답해하는 모든 세대들, 그리고 끝내 ‘내 인생의 나침반을 과연 어디에 둘 것인가’를 끈질기게 질문하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날카로운 이성의 칼끝과 한없이 따스한 감성의 날개를 동시에 간직한 아름다운 책이다. -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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