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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가장 아름다운 모험을 떠날 때프롤로그 | 과학적 사고의 탄생1장 어느 해변에서 시작된 혁명2장 자연으로 가는 문3장 제우스의 천둥을 훔치다4장 허공에 떠 있는 지구5장 단 하나의 근원을 찾아서6장 반항으로 갚는 스승의 은혜7장 비밀의 지식을 얻은 대가8장 과학이란 무엇인가9장 순진한 변명을 그만둬야 할 때10장 신이 떠난 세계에 서다11장 그럼에도 아름다운 이곳에서에필로그 | 아낙시만드로스의 유산참고 문헌그림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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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 Rov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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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절대적 진리를 벗어나 불확실성 너머 진실로 향하다고대에는 신화로 세계를 설명했다. 지구가 추락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상상의 동물이 있었고, 하늘의 천둥 번개는 신의 분노였으며,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신에 의해 그 모습과 삶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아낙시만드로스가 처음으로 그 “텅 빈 진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세계를 설명하는 데 신이 필요한가? 자연을 관장하는 법칙은 자연현상에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아낙시만드로스는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지구가 허공에 떠 있는 땅이라고 주장했고, 비를 물이 땅과 하늘을 오가는 과정으로 이해했으며, 최초의 생명체는 물에서 탄생해 환경에 맞게 모습을 바꿔갔으리라고 추측했다.아낙시만드로스는 세상 만물을 불, 추위, 더위, 공기, 흙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현상으로 설명했다. 또한 설명의 대상도 태양, 별, 지구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는 우주를 설명하는 방법을 정확히 제시했다. 그것은 세상의 역사를 오직 자연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려는 시도다.그가 설명하는 세계는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2,60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아낙시만드로스의 관찰과 주장은 오늘날 과학과 크게 모순되지 않는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우주, 다윈의 진화론 모두 과거 아낙시만드로스의 놀라운 통찰력에 기대고 있다.어떻게 이런 혁명이 가능했을까? 아낙시만드로스는 신들과 성직자, 심지어 자신의 스승까지 가리지 않고 의심하고 비판했다. 그는 언제나 확실하고 절대적인 지식을 경계했으며, 무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앎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저자는 아낙시만드로스가 내놓은 이론들의 탁월함을 강조하는 한편, 그가 비판적이고 자연주의적인 과학적 사고의 탄생을 이끌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선대의 지식을 존중하고, 과감히 배반하라.”자유로운 도시와 배은망덕한 수제자의 길과학은 늘 우리에게 최선의 지식을 제공해왔지만, 그것이 곧 완전한 지식이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끝없는 지적 탐구의 동력이 되어준다. 이 책은 과학의 탄생을 쫓는 여정인 동시에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에 보내는 찬사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끝없는 질문 덕분에 “최초의 위대한 과학 혁명”이 일어났다. 이 역사적 사건이 고대 그리스에서 일어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당대 그리스에는 강력한 중앙 권력이 없었고, 여러 도시국가가 함께 질서를 유지하는 특이한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낙시만드로스가 나고 자란 밀레토스는 그리스와 오리엔트 세계를 잇는 활기찬 항구도시였다.다양한 신화와 지식, 문화가 만나면서 ‘더 나은’ 지식을 위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문자는 더 이상 신과 왕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자유로운 비판 정신이 꽃피었다. 그렇게 과학은 그 찬란한 여정의 출발점에 섰다.아낙시만드로스는 그렇게 개방적인 밀레토스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지적 반항아’였다.아낙시만드로스가 내놓은 자연주의는 당시 너무 낯설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땅에서 증발한 물이 빗물로 변했다는 내용만 해도 ‘아낙시만드로스가 그것을 밝혀냈다’라고 쓴 저술가는 아무도 없다. 그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라거나 ‘그에 따르면’이라고 표현한 것이 고작이다. 그들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이 과연 옳은지 확신하지 못했다.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몇몇 인물은 아낙시만드로스가 ‘불확실한’ 자연주의에 집착한다고 생각했다. 신화의 진리에 맞서는 것이 무모하면서도, 그 도전이 세계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못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내놓은 이론까지 의심했다.아낙시만드로스는 여러 분야에서 스승을 반박했다. 그로부터 몇 세기 후의 인물인 키케로조차 그의 태도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으나 아낙시만드로스를 설득하지는 못했다.”공자와 맹자, 모세와 여호수아 등 고대 사상사에는 다양한 사제 관계가 있지만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에 반박하는 일은 보기 드물었다. 아낙시만드로스 이후, 선대의 지식에서 오류를 찾아 보완하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그렇다면 선대의 지식과 후대의 지식은 서로 대립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이론을 깊이 있게 공부했다. 그것이 아낙시만드로스적 반항의 핵심이다. 기존 이론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새로운 발견도 없다.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쳐왔다.이처럼 과학의 계보는 언제나 이전 세대의 지도를 수정하는 과정이었다. 과학적 사고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는 지금의 세계를 잃는 것이 아니라, 다음의 세계를 만날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나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 대화와 화합이 필요한 시대다. 지금이야말로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기원한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에 관해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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