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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무섭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하여
2장 언제나 이야기보다 무서운 세상에 대하여 3장 처녀귀신의 진부함에 대하여 4장 발 루튼의 테크닉에 대하여 5장 큐브릭의 특정 영화에 대한 스티븐 킹의 원한에 대하여 6장 귀신 들린 집들에 대하여 7장 수상쩍은 잡지에 실린 수상쩍은 소문들에 대하여 8장 아무래도 무서운 거 같은 이상한 우주에 대하여 9장 진짜로 확실하게 무서운 괴물들에 대하여 10장 호러 장르를 지탱하는 선동과 날조에 대하여 11장 끝까지 살아남는 여자들에 대하여 12장 이야기꾼의 다양성에 대하여 13장 우리의 호러물들에 대하여 14장 남은 것들에 대하여 15장 잡다한 여러 호러물에 대하여 작가의 말 용어 설명 |
Dj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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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이 주는 공포는 늘 수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작품이라도 두 번째는 대부분 처음보다 덜하죠. 대부분이라고 하는 건, 꼼꼼한 재감상을 통해 전엔 감지하지 못한 숨은 공포를 잡아내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작품의 진정한 공포를 이해할 만한 경험을 쌓았을 수도 있고요.
---「1장 무섭지 않을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하여」중에서 우리는 현실 세계의 공포를 거부하지만, 그 공포가 응축되어 있으면서도 안전하게 허구화된 버전을 갈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현실 세계의 재료에서 일부분만 떼어내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들만 추려내는 과정이죠. 우리가 아는 고전 걸작들은 이 과정의 초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취사선택과 의미 부여는 예술에서 필수적이니까요. 이 증류와 압축의 작업이 반복되면 그 이야기들은 특수성을 갖게 됩니다. 장르물이 되는 것이죠. ---「2장 언제나 이야기보다 무서운 세상에 대하여」중에서 스티븐 킹이 자신의 소설에 부여한 공포는 그 익숙한 것들에서 나옵니다. 그건 이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죠. 킹은 사람들에 대한 책을 씁니다. 실제로 존재하고 현실 세계의 문제점을 안고 있고 현실 세계의 악과 마주하는 사람들요. (…) 그런데 큐브릭은 정반대의 공포를 추구합니다. 영화 속 오버룩 호텔은 이해가 불가능한 곳이거나 아예 의미가 없는 곳입니다. 그곳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가 토런스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것 자체가 없습니다. ---「5장 큐브릭의 특정 영화에 대한 스티븐 킹의 원한에 대하여」중에서 〈13일의 금요일〉에서 제이슨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에겐 굳이 캐릭터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귀신 들린 집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 집에 실제로 귀신이 있건 없건, 그 현상은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인가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6장 귀신 들린 집들에 대하여」중에서 많은 호러 이야기에서 여성 귀신들은 피해자로 그려집니다. 그들이 원한을 품은 귀신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이 올바르게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악역은 따로 있을 것입니다. (…) 누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 연민을 느끼지 않겠습니까. 인디언 묘지가 무례하고 납작하고 어처구니없는 도구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 이야기에는 침략자 후손들의 죄책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죄책감은 혐오만큼이나 호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0장 호러 장르를 지탱하는 선동과 날조에 대하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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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르소설의 개척자 듀나,
마침내 공포를 이야기하다 기이함으로 가득한 설명할 수 없는 매혹, 호러 장르의 핵심을 꿰뚫는 15가지 이야기 한국 장르소설의 개척자라고 평가받는 작가 듀나는 한국에서 공포소설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좀비와 뱀파이어 등 다양한 호러 소재를 작품에 도입해왔다. 또한 한국 공포영화가 할리우드를 어설프게 흉내 내던 시절부터 다리오 아르젠토와 발 루튼 같은 공포영화의 거장들을 비평하기도 했고, 2000년대 초반 〈링〉의 사다코를 따라 한 영화들이 범람하자 누구보다 강력하게 한국영화계의 게으름을 비판하기도 했다. 포크호러의 전설을 새로 쓴 〈미드소마〉, 유튜브 콘텐츠를 극장판으로 각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킨 〈백룸〉, 한국문학 코너를 공포로 물들인 《인비인》과 《흉담》 등 어느 때보다 호러물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지금, 듀나는 신간 《공포의 문법》에서 호러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장르의 핵심을 꿰뚫는 15가지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스티븐 킹과 에드거 앨런 포 같은 작가들이 어떤 테크닉을 사용했는지에서부터 괴물, 귀신 들린 집, UFO 같은 소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 그리고 ‘고통’을 오락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호러가 과연 윤리적인 장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까지, 장르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담아낸 이 책은 호러 팬과 창작자를 위한 풍성한 선물이 될 것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과 스티븐 킹의 《샤이닝》, 두 작품의 공포는 어떻게 다른가? 두려움, 불길함, 섬뜩함을 자극하는 거장들의 기술 흔히 공포 효과라고 하면 관객을 깜짝 놀라게 만들거나 잔혹한 장면으로 불쾌함을 자아내는 일차원적 테크닉을 떠올린다. 그러나 듀나는 사실 공포에는 다양한 얼굴이 있으며, 장르의 역사에 남은 위대한 거장들은 공포의 그 다층적인 면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고 이야기한다. 고전영화 〈캣피플〉을 만든 전설적인 B급 영화 제작자 발 루튼은 괴물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보다 어둠을 활용하여 불안을 자극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저예산이라는 한계 때문에 선택한 연출이었지만,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공포를 증폭하는 테크닉은 후대의 영화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듀나는 더 나아가 배경을 현대로 설정하여 친숙한 공간을 공포의 무대로 삼는 것도, 인물과 사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충격을 주는 ‘점프 스케어’ 기법도 모두 이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며 현대 관객에게 익숙한 연출이 실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또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과 원작 소설을 쓴 스티븐 킹이 어떻게 같은 스토리를 기반으로 다른 스타일의 공포를 보여주는지 이야기하며, 창작자들은 작품을 위해 선명한 노선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스티븐 킹은 소설에서 고통과 광기로 가득한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가족의 붕괴와 자기혐오 등 현실의 인물들에게 닥칠 수 있는 공포를 보여줬다. 반면 스탠리 큐브릭은 점점 인간의 마음을 잃어가며 공허해지는 인물을 보여줬고, 악의 실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음으로써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을 묘사했다. 듀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주는 공포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주는 공포”라고 말하며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킹의 작품은 서로 다른 선택의 결과를 잘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불길함과 섬뜩함 등 보다 은밀한 공포를 자극하는 테크닉은 당대의 관객들이 기대했던 단순한 쇼크 효과는 아니었을지라도, 새로운 방식의 공포에 도전했던 했던 거장들 덕분에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작품의 스펙트럼은 더욱 풍성해졌으며 결과적으로 〈미드소마〉, 〈유전〉, 〈팔로우〉, 〈겟 아웃〉, 〈씨너스: 죄인들〉 같은 독창적인 작품들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귀신 들린 집”에서 “괴물”까지, 식상해 보이는 호러 소재는 어떻게 불멸의 문법이 되었는가? 귀신 들린 집은 왜 공포영화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새롭게 변주되며 사랑받고 있는가? 인간을 공격하거나 잡아먹는 괴물은 어떤 방식으로 창조되는가? 듀나는 귀신 들린 집, 괴물 등의 반복되는 소재들이 기존의 형태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주제의식을 담는 그릇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귀신 들린 집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를 다룬 영화와 역사를 함께한다. 〈초대받지 못한 자〉(1944), 〈이노센츠〉(1961) 등 귀신을 다룬 초창기 할리우드 공포영화들은 대부분 귀신 들린 집 이야기이기도 했던 것이다. 듀나는 비물질적인 귀신이라는 존재를 물질적인 집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귀신’과 ‘집’이라는 소재가 서로 떨어질 수 없다고 설명한다. 또한 귀신 들린 집이라는 소재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실제로 존재할 수도, 혹은 모든 것이 주인공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다는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긴장으로 몰아넣고 플롯에 다층적인 해석을 심을 수 있다. 듀나는 또한 호러물 속 괴물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존재인지 신랄하게 설명하는 동시에 그럼에도 비현실적인 괴물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이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괴물은 언제나 ‘자연스러움’보다는 ‘혐오와 매혹’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이는 종교적 세계관에 등장하는 괴물부터 H. 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 모두가 마찬가지다. 듀나는 인간이 짐승에 둘러싸여 살던 시절 느꼈던 생존의 공포가 어떻게 오락의 형태로 진화했는지 이야기하며, 이러한 괴물에 대한 매혹이 어떻게 〈이티〉와 〈셰이프 오브 워터〉 같은 장르적 변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고통을 오락으로 삼는 장르, 누군가를 괴물로 만드는 장르, 호러는 과연 윤리적일 수 있는가? 듀나는 호러 팬으로서 장르에 대한 애정을 남김없이 드러내지만, 동시에 호러라는 장르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외면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고통이 오락이 되는 장르는 태생적으로 비윤리적인 것이 아닌가? 많은 공포영화 속 괴물들이 여성, 어린아이, 비백인이라는 점에서 이는 혐오를 조장하는 장르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우선 듀나는 호러가 절대로 ‘결백한 장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호러를 ‘비윤리적인 장르’로 몰아가는 것도 너무 단순한 시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가령 공포영화 속 괴물들이 ‘순수한 악’에만 머무르는 경우는 의외로 적다.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영화들에서 괴물은 대부분 공포와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묘사된다. 괴물이 겪는 수난에서 우리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소수자의 고통을 본다. 수많은 호러물에서 죄책감은 혐오감만큼이나 중요하며,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은 벌받을 짓을 했다’라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또한 최근 공포영화의 흐름에서 이성애자 백인 남성의 시각이라는 위계질서가 깨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서브스턴스〉의 코랄리 파르자 같은 여성 감독은 물론 〈겟 아웃〉의 조던 필 같은 흑인 감독들이 주류로 진출해 중요한 공포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플랫폼의 다양화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포함한 여러 지역의 호러물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장르 관습을 넘어선 더 현실적인 공포, 퀴어, 장애인, 그 밖의 지금까지 주인공 자리를 차지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포를 이해하게 될 가능성을 얻는다. 듀나는 호러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배라고 이야기한다. 호러물이 당대에 사람들을 떨게 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호러가 가진 다양한 문법은 거기서 더 나아가 현대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할 수도 있고, 주류가 알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고통을 드러낼 수도 있다. 또한 내면의 지옥을 귀신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집단의 광기를 괴물로 풍자할 수도 있다. 시대를 초월한 호러물의 비밀은 바로 그러한 역동적이고 복잡하고 다양한 ‘공포의 문법’에 있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