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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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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신통할 것이 없었다. 독립이 되기로서니, 가난뱅이 농투성이가 별안간 나으리 주사 될 리 만무하였다. 가난뱅이 농투성이가 남의 세토 얻어 비지땀 흘려 가면서 일 년 농사지어 절반도 넘는 도지 물고, 나머지로 굶으며 먹으며 연명이나 하여 가기는 독립이 되거나 말거나 매양 일반일 터이었다. 공출이야 징용이야 하여서 살기가 더럭 어려워지기는, 전쟁이 나면서부터였었다. 전쟁이 나기 전에는 일 년 농사지어 작정한 도지, 실수 않고 물면 모자라나따나 아무 시비와 성가심 없이 내 것 삼아 놓고 먹을 수가 있었다. 징용도 전쟁이 나기 전에는 없던 풍도였었다. 마음 놓고 일을 하였고, 그것으로써 그만이었지, 달리는 근심 걱정될 것이 없었다. 전쟁 사품에 생겨난 공출이니 징용이니 하는 것이 전쟁이 끝이 남으로써 없어진 다음에야 독립이 되기 전 일본 정치 밑에서도 남의 세토 얻어 도지 물고 나머지나 천신하는 가난뱅이 농투성이에서 벗어날 것이 없을진대, 한갓 전쟁이 끝이 나서 공출과 징용이 없어진 것이 다행일 따름이지, 독립이 되었다고 만세를 부르며 날뛰고 할 흥이 한생원으로는 나는 것이 없었다. --- pp.31-32 국가란 무엇인가, 냉소 속에 담긴 뼈아픈 질문 태우 그래서 한생원이 마지막에 ‘만세 안 부르길 잘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매국노 같은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가요. 한생원 입장에서는 나라가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또 다른 도둑처럼 느껴졌을 테니까요. 선생님 맞아. 그래서 모두가 만세를 외치는 순간에 홀로 냉담했던 자신의 태도가 오히려 옳았다고 생각하지. 이건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국가와 개인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는 선언에 가까워. ‘나라가 나에게 해 준 게 무엇인가?’라는 한생원의 항변에는, 국민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국가는 존재 이유가 없다는 작가의 통렬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어. 지현 저는 그 장면에서 작가의 시선이 참 차갑다고 느꼈어요. 한생원을 감싸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새 나라를 찬양하지도 않잖아요. 그냥 모두를 비판하는 느낌이었어요. 선생님 그렇지. 바로 그 ‘거리 두기’와 ‘냉소’가 채만식 문학의 핵심적인 특징이야. 작가는 한생원의 무능과 도덕적 해이도 비판하고, 혼란을 틈타 이득을 취하는 영남 같은 기회주의자도 비판해.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인 재산을 국가가 관리하고 다시 팔 수 있다는 상황으로 농민들을 절망에 빠뜨린 국가를 가장 날카롭게 겨누고 있지. 어느 한쪽 편을 드는 대신, 현실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 독자가 판단하게 만드는 전략이야. 수지 그러면 이 소설은 결국 ‘나라가 독립했느냐’보다 그 나라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를 묻고 있는 거네요. 한생원의 말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도, 그 질문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 아주 잘 봤어. 이 작품이 불편한 이유는, 한생원의 냉소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질문이기 때문이야. 국가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민중의 삶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국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채만식은 이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아. 대신, 웃음과 냉소 속에 그 질문을 그대로 남겨 두지. --- pp.73-74 내가 보기엔, 조선 여자의 옷이 퍽 아름답고 점잖스럽던데, 어째서 양장들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여자들이 서양 사람한테로 시집을 가고파서 그런다고 대답하였다. 서울역을 비롯하여 거리에 분뇨가 범람한 것을 보고, 혹시 조선 가옥에는 변소가 없느냐고 S소위가 물었다. 미스터 방은, 있기야 집집마다 다 있느니라고 대답하였다. 썩 좋은 조선 그림을 한 장 사고 싶다고 하여서, 문지방 위에다 흔히들 붙이는, 사슴이 불로초를 물고 신선이 앉았고 한 것을 오 원에 한 장 사주었다. 제일 재미있고 유명한 소설이 무엇이냐고 물어서, 『추월색』이라고 대답하였고, 그럼 그것을 한 권 사고 싶다고 하여서, 여러 날 사러 다니다 못해 동네 노마네 집에 치를 이 원에 사주었다. 이 밖에도 미스터 방은 S소위에게 조선을 소개한 공로가 여러 가지로 많으나, 대강은 그러하였다. 그 공로에 정비례해서, 미스터 방은 나날이 훌륭하여져 갔다. 8ㆍ15 이전에 어떤 은행의 중역의 사택이라던 지금의 이 집으로, 현저동 그 집에서 옮아오기는 S소위의 통역이 되는 사흘 후였었다. 위아래층을 다, 양식 절반 일본식 절반으로 꾸민 호화스런 저택이었다. 정원엔 때마침 단풍과 가을 화초가 아름다웠고, 연못에선 잉어가 뛰놀고 하였다. 시방 주객이 앉아 술을 마시는 방은, 앞은 노대가 딸리고, 햇볕 잘 들고 밝아서, 여러 방 가운데 제일 좋은 방이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벽에 그림 한 장 붙어 있는 바 아니요, 방에 알맞은 가구 한 벌 놓여 있는 바 아니요, 단지 방일 따름이어서, 싱겁게 넓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미스터 방은 실내의 장식 같은 것쯤 그다지 관심할 줄을 아직은 몰랐다. --- pp.97-98 강요된 선택과 실존적 고뇌의 기록 작품 속 서술자인 ‘나’는 일제 강점기 말기라는 암흑 속에서 나약한 지식인이 겪어야 했던 실존적 고뇌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변절이 단순히 부귀영화를 좇은 적극적 출세의 결과만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공포와 보신의 심리 속에서 스스로 타협의 길로 걸어 들어갔음을 고백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술은 순수한 참회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반대로 노골적인 면죄부만을 구하는 변명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작가는 지식인으로서의 도덕적 책무를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시대의 폭력 앞에서 무너졌던 자신의 나약함을 응시하는 한편, 그 죄의 경중과 사정을 따져 보려는 내면의 움직임까지 함께 드러낸다. 기회주의적 세태를 향한 날카로운 일갈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작가의 시선이 단순한 자기연민이나 개인적 반성에 머무르지 않고, 해방 공간에 만연한 이중적 세태까지 함께 비춘다는 데 있다. 작품 속에서 친일협력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인 ‘윤’은 친일협력의 책임 문제를 엄격하게 바라보며, 서술자 ‘나’의 도피적 태도까지 조롱하고 비판한다. 서술자인 ‘나’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떳떳한 비협력자인 윤 앞에서는 자신을 내세우지 못한 채 오히려 죄인의 자리에서 위축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점에서 작품의 의미는 더욱 깊어진다. 작가는 스스로를 ‘죄인’의 자리에 놓은 서술자를 내세워 쉽게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 하지 않으며, 친일 청산의 문제를 단순한 단죄나 법적 처벌의 차원으로만 다루지도 않는다. 그 대신 양심과 윤리, 책임과 처단의 기준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해방 공간의 현실을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친일이라는 역사적 문제를 한층 더 불편하고도 진지하게 성찰하도록 이끈다. --- pp.121-122 꼭대기에는 당집이 있고 주위로 솔과 참나무가 울창하여 그늘이 짙었다. 잔디도 좋았다. 그런 그늘 아래 앉아서 장강을 굽어보고 먼 산을 바라보면서 혹은 잔디에 누워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끝없는 시간을 지우기란 울적하고 삭막한 나의 생활 가운데 만만치 아니한 위안의 하나였었다. 그때 나는 마침 이조사를 읽다가 병자호란의 대문에 이르렀던 참이라 병자란 당시에 조선군이 국왕과 함께 최후의 농성을 하던 남한산성이며 그러다 국왕이 마침내 청병의 군문에 무릎을 꿇어 항복을 한 삼전도며 그리고 양방의 수없는 장졸이 화살과 창끝에 고혼으로 쓰러진 풍남리의 토성이며를 멀리 바라보기가 이날따라 감개 적이 깊은 것이 없지 못하였었다. 그러한 흥폐의 모양을 보았으면서 못 본 체 이날이 한결같이 유유히 흐르기만 하였으며 앞으로도 얼마든지 되풀이할 세상과 인사의 변천을 보면서, 그러나 못 본 체 몇천 년 몇만 년이고 유유히 흐르고만 있을 저 강 무심타고 할까, 부럽다고 할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참인데 그 몸서리가 치이는 공습 사이렌이 별안간 울리던 것이었었다. 나는 꿈에서 깨난 것처럼 퍼뜩 정신이 들었다. --- pp.135-136 “사람을, 이 사람 저 사람 너무 여럿을 오게 해서, 선생님 퍽 거북하셨을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안심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군은 두 무릎을 단정히 꿇고 앉아서 사과 겸 변명을 한 후에, “어떡허면 좋겠습니까, 선생님?” 하고 침통히 묻는 것이었었다. 징병이며 학병에 대한 것이었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다. “되도록, 나가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무슨 수단을 써서든지.” “….” 말없이, 나를 보는 이군의 그 창백한 얼굴은 빛났다.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괸 눈물이 인하여 넘치어흘렀다. 나도 눈갓이 뜨거웠다. “이왕 한마디 부탁이 있소이다. 꿋꿋한 정신을 기르구, 지켜 주십시오. 강한 자에게 굽혀 목전의 구차한 안전을 도모하는 타협생활보다, 핍박을 받을지언정 굽히지 않고, 도리어 그와 싸워 물리치겠다는 꿋꿋한 정신을 기르구 이겨 주십시오. 우리가 과거 수천 년래 대륙민족의 압제를 받은 것이나 오늘날 일본의 종노릇을 하게 된 것이나, 우리를 침해하고 우리를 억누르는 외적과 마주 싸워 내는 꿋꿋한 정신이 모자랐기 때문입니다. 강한 자에게 굽히고 아첨하여 구차한 일시일시의 안전만을 도모하는 타협주의 이것이 우리 민족성의 큰 결함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불행은 이 민족성의 결함에서 온 것이요, 그 결함을 고치지 않는 이상 우리는 민족적으로 멸망을 당하거나, 내일도 오늘처럼 영원히 불행할 것입니다. 시방 우리한테, 특별히 젊은이들한테 절절하게 필요한 것은, 굴치 않고 싸워 내는 꿋꿋한 정신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따로따로이만 꿋꿋했자 아모 소용도 닿지 않습니다. 여럿이 모이는 데서 비로소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 pp.169-170 이념의 광풍에 맞서 지켜 낸 순수문학의 가치 광복 직후 우리 사회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김동리는 문학이 정치 세력에 휩쓸리지 않고 예술 그 자체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그는 문학이 특정한 정치적 주장을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 대신 ‘인간 본성에 대한 존중’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순수하게 문학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누구의 편을 드는 것보다, 사람의 소중한 가치와 깊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해야 할 진짜 역할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위협 속에서도 그는 이러한 믿음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나 이념으로부터 문학을 독립시키고 순수함을 지켜 내려 했던 그의 단단한 태도는, 갈 길을 잃고 혼란에 빠져 있던 당시 문학계에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기준을 세워 주었다. 결과적으로 김동리의 흔들림 없는 행보는 개인의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학이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고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지 일깨워 준,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 p.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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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