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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내 삶을 읽다
1부 나를 설명하던 말이 사라진 뒤 1장 사라진 자기소개 “요즘 뭐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2장 경력의 재번역 내 경험은 어디에서 다시 쓰일 수 있을까 3장 달라진 마음의 기준 나이 드는 마음은 약해지는가, 깊어지는가 4장 몸과의 협상 예전처럼이 아니라, 지금의 몸으로 계속하기 2부 오래 함께 산 사이에도 낯선 순간이 온다 1장 어긋나는 말 오래된 말투 너머, 지금의 마음을 본다 2장 낯선 동거 집안일과 시간을 새로 나누다 3장 관계의 재배치 함께 살까, 따로 살까, 헤어질까 3부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내 자리가 달라질 때 1장 새 식구 자녀의 선택으로 만나는, 또 하나의 가족 2장 지원의 경계 자녀를 돕는 일과 내가 무너지는 일 사이에서 3장 상속 너머의 관계 돈 이야기는 결국 관계의 역사를 드러낸다 4장 내가 처음 보는 사람 부모에게서 새로 만나는 한 사람 4부 돈을 쓰는 일은 삶을 정하는 일 1장 돈의 흐름 모은 돈에서 살아가는 돈으로 2장 더할 돈과 줄일 돈 아끼면 된다는 말로 풀리지 않는 노후 지출 3장 돈과 시간 사이 돌봄이 생활비가 되는 순간 5부 도움을 받는 삶도 내 삶이다 1장 돌봄의 자기결정 도움을 받아도 내가 정할 수 있는 것들 2장 돌봄을 조정하는 일 가족 밖의 도움, 가족 안에 남는 몫 3장 고립되지 않는 연결 혼자 살아도 사람들과 이어져 사는 일 에필로그 - 내 몫으로 남은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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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퇴직을 주로 돈으로 말한다. 퇴직금은 얼마인지, 국민연금은 언제부터 받는지,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일할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한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은 질문이고, 돈이 부족하면 선택할 수 있는 삶도 실제로 줄어든다. 그러나 계산을 마친 뒤에도 오래 남는 감정이 있다. 자신을 설명해 주던 말이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오래 기다린 퇴직이라 해도 마음이 한쪽으로만 기울지는 않는다. 지겨웠던 출근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와 내 자리가 더는 없다는 서늘함이 같은 날 찾아오기도 한다. 떠나고 싶었던 조직을 그리워하는 자신이 낯설고,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게 되니 불안한 마음도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감정이 한동안 한자리에 머문다. 며칠 뒤 만난 이웃이 평상복 차림의 정우 씨를 보고 물었다. “오늘은 회사 안 가세요?” 정우 씨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퇴직했습니다.” 이웃은 “아, 그러셨구나. 이제 좋으시겠어요.”하고 웃으며 먼저 내렸다. 문이 닫힌 뒤 정우 씨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옷차림을 보았다. 좋다고 답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좋지 않다고 말할 이유도 딱히 찾지 못했다. ---p.17 「사라진 자기소개」 중에서 오래 산 부부에게 사랑은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는 한 가지 감정으로 남지 않는다. 고마움과 서운함, 연민과 피로, 익숙함과 외로움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그래서 관계를 다시 생각할 때는 상대를 어떻게 느끼는가만큼, 그 관계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은주 씨도 남편을 생각하면 한 가지 얼굴만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 시절 비 오는 오후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사람과, 퇴직 뒤 같은 집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말을 거의 섞지 않는 사람이 모두 같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이 현재의 외로움을 지워주지도 않았고, 지금의 거리감이 함께 견딘 세월까지 거짓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어느 쪽도 부정할 수 없어서 결론이 하나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이런 마음은 한순간에 생기지 않는다. 젊은 날에는 생계와 양육이 앞에 있었고, 중년에는 노부모의 노화와 자녀의 진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부 사이의 질문은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러다 역할들이 하나씩 빠져나간 뒤, 두 사람만 남은 식탁에서 오래 미뤄온 물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아직 서로의 배우자인가, 아니면 한 가족을 오래 운영해 온 동료인가? ---p.134 「관계의 재배치」 중에서 자식은 내가 키웠지만 며느리와 사위는 다 자란 뒤에 만난다. 다른 집에서 다른 말투와 식사법, 명절 풍경과 가족 사이의 거리를 익히며 살아온 사람이다. 자녀의 결혼으로 관계가 생겼다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한순간에 이 집의 방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함께 보낸 세월이 있다. 아픈 날의 표정과 좋아하는 반찬,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신호가 오랜 시간 쌓여 있다. 새 식구와는 그 축적이 없다. 그런데도 부모는 자녀와 맺어온 친밀함을 새 사람에게 곧바로 적용하려 한다. 친밀함의 결과만 가져오고, 그 친밀함을 만든 시간을 건너뛰려는 셈이다. 며느리를 딸처럼, 사위를 아들처럼 대하겠다는 말이 차갑게 거리를 두겠다는 뜻보다 따뜻한 것은 분명하다. 다만 따뜻한 환대라고 해서 꼭 지금 가족의 누군가로 만드는 데서 시작할 필요는 없다. 딸이 아니어도 귀하게 대할 수 있고, 아들이 아니어도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수 있다. 가족이 되려면 먼저 닮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p.155 「새 식구」 중에서 우리는 오랫동안 돈을 모으는 쪽으로 살아왔다. 월급이 들어오면 생활비를 쓰고 남는 돈을 저축했고, 빚은 줄이고 자산은 늘리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노후를 생각할 때도 먼저 집값과 예금, 연금을 더해 총액을 계산했다. 그 숫자가 클수록 안심이 되고, 줄어드는 숫자는 불안하다고 믿었다. 일을 멈추고 나면 돈을 보는 기준도 조금 달라진다. 집값이 올라도 관리비를 낼 현금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예금이 충분해도 생활비를 어디서 얼마씩 꺼내 쓸지 정하지 않으면 줄어드는 잔액만 자꾸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자산이 얼마나 있는지만이 아니라, 그중 무엇을 언제 생활비로 꺼내 쓸지도 생각해야 한다. 월급을 받을 때는 ‘매달 들어오는 소득에서 쓰고 남긴다’라는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퇴직 뒤에는 반대로 ‘모아 둔 것에서 생활비를 꺼낸다’라는 시간이 시작된다. 같은 돈인데도 쓰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사람은 월급에서 백만 원을 쓰는 것과 예금 잔액에서 백만 원이 줄어드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된다. 앞의 돈은 생활비였지만, 뒤의 돈은 오래지켜 온 원금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p.241 「돈의 흐름」 중에서 돌봄이 어려운 것은 가족의 마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다. 병원에 함께 가는 일은 눈에 띄지만, 공단과 통화하고 일정을 맞추고 요양보호사에게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약이 바뀐 내용을 가족에게 전하는 일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면 그 일은 이미 맡아온 사람에게 다시 돌아간다. 사회적 돌봄을 이용한다고 가족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 있다고 모든 일을 가족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지금 어떤 일이 있는지 하나씩 확인하고, 가족과 돌봄 서비스가 맡을 몫을 나눈 뒤 상황이 달라지면 다시 조정하면 된다. 모두가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서로 아는 일이다. ---p.328 「돌봄을 조정하는 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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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나이 들면 삶의 중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이가 든다는 말에는 이상하게 ‘줄어드는 것’의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일이 줄고, 소득이 줄고, 체력이 줄고, 역할이 줄고, 마침내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줄어든다. 그래서 우리는 일찌감치 나이 듦을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으로 배운다. 고선주의 『나이 듦의 주도권』이 묻는 것은 나이를 거스르는 방법도,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방법도 아니다. 저자는 오히려 달라지는 것을 정직하게 바라본다. 몸은 전 같지 않을 것이고, 돈을 버는 방식과 쓰는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오래 함께한 사람과의 관계도 그대로 머물지 않는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돌보는 데 익숙했던 사람이 어느 날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애써 희망적인 말로 덮지 않는다. 다만 앞으로의 시간을 미리 초라하게 만들지는 말자고 말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노후’를 하나의 시기로 묶지 않는다는 데 있다. 책에서 인용한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를 보면, 55~64세가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한 평균 연령은 49.2세인 반면 55~79세 가운데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생각하는 희망 근로 연령은 평균 73.4세다. 단순 계산하면 그 사이에는 24년이 넘는 시간이 놓인다. 저자는 이 긴 시간을 단순히 ‘은퇴 후’라고 불러버리면 그 안에서 여러 번 변하는 사람의 삶을 놓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책의 첫 질문은 의외로 소박하다. “요즘 뭐 하세요?” 퇴직 전에는 회사 이름과 직함 몇 글자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그냥 쉬고 있어요”라는 말조차 어딘가 어색해진다. 실제 삶은 몸을 돌보고, 생활을 정리하고, 관계를 다시 조정하며, 무엇을 할 것인지 가늠하느라 분주한데도 사회가 알아듣는 직함이 없으면 자신의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축소해버리기 쉽다. 『나이 듦의 주도권』은 바로 그런 아주 작은 순간에서 인생 후반의 문제를 읽어낸다. 그리고 질문은 점점 넓어진다.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과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오래 산 부부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노후까지 내어주어야 하는가. 늙어가는 부모를 여전히 ‘부모’로만 볼 것인가, 아니면 자기 삶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 다시 만날 것인가. 모으는 데 익숙했던 돈을 이제 어떻게 써야 하는가. 돌봄을 받을 때 다른 사람의 손이 내 일상 깊숙이 들어오더라도 나는 무엇만큼은 직접 결정하고 싶은가. 책은 일, 몸, 부부, 자녀, 부모, 돈과 돌봄을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한다. 삶의 조건이 달라져도 나는 어디까지 내 삶의 주어로 남을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자 해내는 것을 독립이라고 믿어온 사람에게 나이 듦은 잔인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주도권은 모든 문장을 혼자 쓰는 능력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에게 기대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고, 누군가와 함께 결정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말할 수 있는 것. 도움을 받는 삶 역시 내 삶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예뻐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쓴다. 잘하고 강한 자신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느려졌을 때 그 속도에 맞춰주고, 서툴고 약해진 자신에게서도 쉽게 마음을 거두지 않는 것. 그리고 원고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자신만을 향한 태도가 아님을 보여준다. 배우자도, 자녀도, 늙어가는 부모도 저마다 달라지는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나이 듦의 주도권』은 어떻게 하면 늙지 않을 것인가를 묻지 않는다. 달라지는 나와 어떻게 오래 잘 지낼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뜻밖에도 나이 듦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게 한다. 잃어버릴 것을 헤아리는 시간이 아니라, 아직 내 몫으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 인생 후반은 삶의 변두리로 물러나는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처음으로 자기 삶의 주어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