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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보이지 않는 편지 하지 않으려 한다|거미와 그리마는 관계없음|나 돌아가리|나무는 죽어서도 나무|눈썹|변방시인|보이지 않는 편지|붉은 경전|생각은 언제나 흔들린다|소등|솔개가 사라진 자리|우 빤야 사야도 스님|입추 2부. 당신은 영원한 자유입니다 겨울엔 모두 가난한 성자가 된다|섬|내면의 방 13도|당신은 영원한 자유입니다|봄눈 편지|손뜨개의 겨울|생의 문장|엉겁결에|외로운 아이는 홀로여도 행복했네|옥씨기|월정사|푸르디푸른 매혹의 밤|메아리 칼국수 3부. 가슴을 치면 북이 울었다 가슴을 치면 북이 울었다|그 교회에 가고 싶다|냉장고|만가挽歌|공안公案|소년의 눈|손종수 시인|아버지|영혼의 새|용서하고 용서받는 가을입니다|은빛 물고기|자작나무 숲에서|푸른 시름 4부. 거북이 크눌프 루가노 호수|몬타뇰라|거북이 크눌프|느림 평온 자유|크눌프와 낭만 도둑|수채화의 영혼들 시인의 산문_ 여적餘滴 · 최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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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끝인가, 아니면 영원한 자유인가
이번 시집의 중심에는 표제작 「당신은 영원한 자유입니다」가 놓여 있다. 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곁에 남은 것은 고양이와 금붕어, 시들어버린 꽃, 쓰다 만 공책과 연필이다. 할머니의 부재를 두고 고양이는 “할머니는 죽었다”고 단정하고 금붕어는 “할머니는 죽지 않았다”고 부정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선이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금붕어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당신은 영원한 자유입니다” 이어 유리어항의 경계가 사라지고 금붕어는 창을 넘어간다. 시는 “당신은 이제 영원한 자유입니다”라는 문장에 이른다. 시인은 해설 대신 붙인 산문 「여적餘滴」에서 이 작품의 배경을 직접 밝힌다. 그에게 죽음은 기억 속에 머물다 언젠가 사라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현실의 욕망과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영원한 자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죽음은 공포나 비탄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소멸은 때로 고요이고 평화이며, 한 존재가 자신을 둘러싼 경계에서 풀려나는 순간이다. 늙어간다는 것은 조금씩 ‘나’를 지우는 일 시집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나를 지우는 일’이다. 시인은 나이 들어 희미해지는 눈썹을 바라보며 “그게 나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젠가 “저 우주의 무명 속으로/ 나를 온전히 지우고” 가는 일을 순리로 받아들인다(「눈썹」). 또한 시인은 자신을 거목이 아니라 “변방의 풀 한 포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런 흔한 풀꽃”으로 놓는다. 거센 역류에 맞서 영웅이 되려 하기보다 작은 씨앗 하나를 남기고 어느 날 빗방울 소리와 함께 흙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변방시인」). 이러한 낮아짐과 비움은 체념과는 다르다. 오히려 오래 살아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생에 대한 수용에 가깝다. 무엇인가를 더 소유하고 증명하기보다 자신을 가볍게 내려놓음으로써 자유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가까이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보내는 ‘보이지 않는 편지’ 이번 시집이 죽음과 소멸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밑바닥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미안함이 흐른다. 「보이지 않는 편지」의 화자는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이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있는 듯 없는 듯/ 내 어두운 길의/ 반딧불이 되어” 준 사람을 너무 늦게 발견한 것이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은 그 사람이 오래전부터 보내왔지만 읽지 못했던 수천 통의 편지가 된다. 「나 돌아가리」에서는 지난날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이름을 불러 용서를 구하고, 「봄눈 편지」에서는 오래 안부를 전하지 못한 사람을 불러본다. 「메아리 칼국수」에서는 늙어버린 소년이 어머니가 끓여주던 감자 칼국수를 직접 끓이며 사라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푹 끓여야 해 얘야” 그 목소리는 이제 산메아리로만 남았지만, 어머니의 손맛과 홍두깨와 빗소리는 늙은 아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끝나지 않은 모험, 거북이 크눌프 〈4부. 거북이 크눌프〉는 이 시집의 가장 모험적인 부분이다. 헤세 박물관 안뜰의 거북이를 화자로 세운 연작은 여행기와 판타지, 헤세론이 뒤섞인 이야기 시다. 상상과 공상의 차이를 따지는 거북이의 문답, 크눌프라는 이름이 부여한 ‘자유’와 느린 몸이 겪는 ‘부자유’의 아이러니는 흥미롭다. 다만 이 대목의 호흡은 시보다 산문에 가깝다. 정보와 설명이 시적 응축을 앞지르는 순간도 있어, 앞선 시편들의 절제에 익숙해진 독자에게는 다소 느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도를 허투루 볼 수 없는 것은, 목디스크의 통증 속에서도 새 형식을 향해 몸을 밀어붙이는 노시인의 태도 때문이다. 시집 맨 끝에 놓인 「수채화의 영혼들」은 헤세의 무덤에서 거북이의 등에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장면으로 연작을 닫는다. 그 이름이 지워지는 자리가 곧 이 시집이 우리에게 남기는 여운이다. * 꽃 피고 새잎 돋으니 온갖 세속 시름이 다 푸르다 ― 「푸른 시름」 전문 시집 속에서 가장 짧은 시가 「푸른 시름」이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 짧은 시에 가장 길고 깊은 사유를 담아내고 있음을 눈치챌 것이다. 꽃 피고 새잎 돋으니 온갖 세속 시름이 다 푸르다. 시름조차 푸르게 바라보는 눈, 그것이 이 노시인이 평생 지켜낸 소년의 눈일 것이다. 늙음이란 시간의 누적이 아니라 낯섦의 상실이라면, 최돈선 시인의 이 시집은 그 상실을 거부하는 가장 부드러운 저항이다. 이번 시집을 책임편집한 박제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이렇게 말한다. 최돈선 시인은 연세로 보면 우리 곁의 큰어른이지만, 시 앞에서는 여전히 스무 살 문학청년이다. 목디스크의 통증을 안고 떠난 스위스에서 헤세 박물관의 거북이를 만나 한 편의 판타지를 길어 올리고는, “원고지를 처음 대하는 신인처럼” 쓰는 내내 설레었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 앞에서 후배인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또 한없이 든든하다. 이 시집에는 늙지 않는 소년이 산다. 찔레순을 꺾던 소년, 자작나무 숲에서 금관악기를 불던 소년, 비 오는 날 어머니의 칼국수를 끓이는 늙은 소년. 시인은 늙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늙음 속에서 소년을 끝내 지켜낸 사람이다. 고양이와 금붕어가 할머니의 죽음을 두고 다투다 마침내 “영원한 자유”로 건너가게 하는 천진한 상상력 앞에서, 나는 시가 무엇인지 다시 배운다. 세월이 쌓일수록 맑아지는 시가 있다면 바로 이런 시일 것이다. 먼 길 끝에서 다시 첫 줄을 쓰는 시인의 뒷모습을 따라, 나도 오래오래 설레며 쓰고 싶어졌다. ■ 시인의 말 풍경은 볼 때마다 늘 낯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