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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날개의 과녁|비천상|눈물|마중물|수줍은 꼭대기|눈사람 신발|하늘 대롱|거미줄|삭정이|그네|주소|분식집|구경|알밤 줍기 2부 목소리|죽비|하늘의 뿌리|나무 등대|소나무|소나무날|빈틈|뒷모습 경전|내가 하나인 날|일층석탑|돌탑|돌을 잃다|얼굴|소금 한 톨|안녕|자리|숨 자리|난청 3부 건너편 1|건너편 2|표정|몽타주 만다라|모래시계|데자뷔|포토존|저울|틈|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겹눈|씨앗|과녁|얼음 촛불 ㅡ 키세스|검으나 흰 빛 ㅡ 김민기 생각|피의 갱신 ㅡ 백무산 생각|우물집 4부 출항 ㅡ 두물머리|손바닥|손 우물|눈물단지|장송葬送 ㅡ 빛의 말|여행길|나비|바람새|옹이꽃|폐허|은진미륵|하루|한 번|육성|승객 해설 _ 찰나의 파편들로 구성된 생태적 상상력 · 신상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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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얼굴에서 ‘나’를 발견하는 시선
표제작 「몽타주 만다라」는 이러한 시적 사유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인은 지하철과 대합실, 네거리처럼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서 낯선 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입매와 볼주름, 콧잔등에 내려앉은 피곤과 권태와 근심을 채록하고, 그 조각들을 자신이 기억하는 누군가의 얼굴에 겹쳐본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얼굴들은 조금씩 닮아간다. 한 사람은 더 이상 완전히 고립된 한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타인의 표정과 기억과 시간이 그의 얼굴 안으로 들어온다. 마침내 시인은 “백만, 천만, 칠십억 몽타주들이 펼치는 만다라”를 상상한다. 서로 다른 삶의 조각들이 겹쳐져 거대한 하나의 생명 지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선은 이번 시집 곳곳에서 반복되고 변주된다. 이강문의 시에서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 나와 타자, 안과 밖은 단단히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바라보다 어느 순간 서로의 내부로 스며든다. 「날개의 과녁」에서 화살나무는 남을 찌르는 가시 대신 날개를 선택한 존재로 그려진다. 나무의 열매를 먹고 씨앗을 물어 나르는 새들은 다시 “나무가 세상에 펼치는 새로운 날개”가 된다. 한 그루 나무와 새와 씨앗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생명을 이어주는 하나의 관계망이다. 시인은 그 풍경을 바라보다 자신의 “어둠의 가시밭 과녁”에도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다. 「수줍은 꼭대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숲속의 나무들은 자신의 가지가 옆 나무에 닿지 않도록 서로에게 빈자리를 내준다. 과학적으로 ‘수관기피 현상’이라 불리는 자연현상이 이강문의 시에서는 타자를 위한 배려와 공존의 윤리로 다시 읽힌다. 나무와 돌과 새, 인간이 서로의 몸이 되는 세계 『몽타주 만다라』에는 유난히 나무와 돌, 새, 물, 바다, 빛과 어둠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자연은 단순한 배경이나 관조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나무 등대」에서 등대가 항로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만 알려주듯 나무 역시 “알리되 지시하지 않는” 존재다. 땅속의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흐르는 물과 햇빛,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인간은 자연을 해석하거나 지배하는 주체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으로 돌아간다. 「소금 한 톨」에서는 서해 섬의 염부가 길어 올린 소금 한 톨이 “바다와 태양의 선물”이자 “일생의 상처로 단련한 지상의 보석”이 되고, 「얼굴」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세월이 지나간 “바닥”이 서린다. 시인은 삶의 상처를 제거해야 할 흉터로 바라보기보다 한 존재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하는 무늬로 받아들인다. 이 시집의 생태적 상상력은 자연예찬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본래 하나의 거대한 관계망 속에 놓여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된다. 삶과 죽음 역시 서로의 ‘건너편’이다 시집 후반으로 갈수록 이강문의 시선은 죽음과 소멸의 문제로 깊어진다. 「출항―두물머리」에서 강물과 사람과 바람은 끊임없이 서로의 모습으로 변한다. 삶에서 죽음으로 건너가는 길조차 완전한 소멸이라기보다 다른 형태의 귀환처럼 그려진다. “강물도 사람도 바람 아닌 게 없”는 세계에서 떠남은 끝이라기보다 또 다른 존재 방식으로의 이동이다. 「한 번」에서는 밀물과 썰물이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들이는 움직임 속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의 몸 안에서 뒤섞인다. 탄생은 죽음을 품고 죽음은 다시 탄생을 품는다. 이 시집에서 만다라의 원형적 구조가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는 순간이다. 결국 『몽타주 만다라』가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철학적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순간들이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낯선 사람의 얼굴, 나무 사이의 빈틈, 돌 하나, 소금 한 톨, 흔들리는 촛불, 한 마리 새의 날갯짓과 바닷가의 파도 같은 것들이다. 이강문은 그 찰나의 파편들을 하나씩 주워 모아 서로 이어 붙인다. 그러자 서로 무관해 보였던 존재들 사이에서 뜻밖의 길이 열린다. 그 길 끝에서 독자는 발견한다. ‘나’라고 믿었던 존재 속에는 이미 수많은 타자가 들어와 있고, 인간의 삶은 나무와 새와 돌과 바다의 삶으로 이어져 있으며, 탄생과 죽음조차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 시집의 ‘몽타주’는 파편으로 끝나지 않는다. 흩어진 것들을 모으고, 떨어진 것들을 연결하며, 낯선 것들 사이에서 닮은 얼굴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의 ‘만다라’가 된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주어진 삶의 매 순간이 내가 읽고 쓰는 문장들의 흔들림 없는 수신자”라는 자세를 이야기하며 다음 시집에는 “즐거운 기도의 시가 많기를 희망한다”고 적었다. 『몽타주 만다라』는 바로 그 기도로 향해가는 한 권의 기록이다. 삶의 파편을 버리지 않고 오래 들여다보는 일, 그 조각들 속에서 다른 존재의 얼굴을 발견하는 일, 그리고 마침내 흩어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일. 이강문의 시는 그 작고 느린 발견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만다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 시인의 말 한 권의 시집을 이렇듯 또 묶으려 하니, 시집더러 덩그러니 앉아 자신을 읽으라고 다들 시를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시 자체가 자기 자신의 독자’라는 말이 성립한다면, 그런 시의 상태를 추구하는 게 시인의 길이라는 것인가. 부질없는, 헐벗은, 씁쓸한 야망의 신기루 속에서 시행을 부풀리고, 깎고, 잘라내는 행복을 누리는 존경하는 뭇 시인들에게 새삼 경의를 표한다. 주어진 삶의 매 순간이 내가 읽고 쓰는 문장들의 흔들림 없는 수신자라는 자세… 다음 시집은 즐거운 기도의 시가 많기를 희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