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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5
1부 길 달과 달팽이 · 12 굽은 나무 · 14 거울 부자 · 16 찰칵, · 18 자기 울음을 품은 새 · 20 상처 · 22 하늘의 정면 · 23 너머의 너머 · 26 사다리의 충고 · 28 겹 · 30 이 하늘, 낙화유수 · 32 어떤 용기를 변명함 · 34 그림자 · 36 교차로 사막 · 38 하늘바다 1 · 40 하늘바다 2 · 41 빈집의 기억 · 42 어두운 중심 · 44 2부 겨울 숲에는 그리움이 있다 맨발 · 46 바깥의 깊이 · 48 발자국 암자 · 50 한눈팔기 · 52 나침반 · 54 처음과 하루 · 55 한 사람 · 56 바 · 라 · 보 · 네 · 58 처음의 끝 · 60 하늘 광부 · 62 하나의 한 번 · 64 불편한 신비 · 66 등대 · 68 노을은 부른다 · 70 초혼 · 72 발바닥 · 74 연꽃 미로 · 76 주인 찾기 · 78 3부 집 최초의 거울 · 80 공명 · 82 세상의 생일 · 84 꽃다발 · 86 봄눈 · 87 눈사람 성자 · 88 놀라운 일 · 90 배꼽 · 92 베껴야 산다 · 94 눈맞춤 · 97 주저흔 · 98 역사(力士) · 100 빗방울 망원경 · 102 민들레 대합실 · 104 걸음마 · 106 풍선 인간 · 108 메아리 · 110 마른 물소리 맛 · 112 추파 · 114 비 갠 후 · 115 해설 아침마다 눈뜨면 우렁우렁 도착하는 ‘저기’(황규관) ·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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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랫소리는 이름 모를 한 마리 새가
나무의 귀에 석삼년 세 들어 살면서 둥지에 알뜰히 물어다 놓은 대웅전 주인의 울음을 닮았습니다 절집 풍경 소리 밑에서 배운 담장 없는 금빛 울음은 작은 새의 가슴에서 알이 되었습니다 노란 부리의 새가 품은 이름 없는 노래는 둥지를 울리고 나무를 울리고 아침을 울려서 가지 뒤에서 귀 기울이던 바람을 울려서 어느덧 제 울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오래 품었던 어둠 깨치고, 대웅전을 울리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아침은 노래의 둥지 자기 울음을 품은 작은 새의 둥지 울음이 많은 이 세상은 노래의 주인을 닮아 금빛 울음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 마음의 처마 끝에서 처마 끝으로 풍경(風磬)이 멀리 멀리 보내는 낮은 휘파람 눈부신 울음 가득 자기 이름의 주인이 된 새 --- 「자기 울음을 품은 새」 전문 누가 내려왔던 흔적일까 아니면, 올라가던 중이었나 어느 여행의 발자국이 이리 어지러운가 폐업 철거 중인 점포의 내부 등뼈 훤히 드러날 정도의 안간힘만 남기고 한쪽 벽 구석에 서 있는 사다리 하나 가파른 두 손 두 발 벗어놓고 잠시 숨 고르고 있는 탑? 가만히 창가로 다가가 매만지듯 둘러본다 바닥에선 내려갈 곳 없어 두 손발이 언제나 탑의 시작이었다고 늘 머뭇거리는 내게 일러주고 있다 거리의 매연과 속도에 지친 가로수 나뭇가지도 층층이 흔들리는 탑 사다리 아닌 생이 어디 있겠는가 한 칸 한 칸 다짐하듯 내게 짚어주고 있다 --- 「사다리의 충고」 전문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듯 인간은 자연의 중심이 아니다 저 별 하나가 밤하늘의 주인 아니듯 별빛 같은 내가 어처구니없게도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모든 의미들의 중심이고 부재가 모든 있는 것들의 주인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자연은, 세상은, 중심은 어두운가 그렇듯 분명한 어둠은 인간에게 왜 보이지 않는가 --- 「어두운 중심」 전문 처음과 끝을 동시에 바라보는 사람 빛과 어둠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 탄광촌 식탁에서, 아몬드나무에서, 밤하늘 과녁에서, 자신과 이웃의 얼굴에서 막장 속 석탄 캐듯 하느님 닮은 영원을 캐내고 황금빛, 검은빛이 뒤엉켜 춤추는 밀밭에서 끝내 알몸의 자기 자신을 잉태한 한 사람 머리에서 귀에서 무성해진 검은 날개는 밀밭 한가운데 이르러 길의 끝을 끊어냈네 자기를 끊어낸 길은 찢긴 허공에 떠서 상처의 눈부신 희열을 휘감아 일렁이고 있네 절정에 숨 막힌 해바라기 영혼의 외침도 복숭아 과수원에 번지는 붉은 빛 혼불도 예언처럼 솟아오르는 사이프러스 첨탑도 벌판 가득 귀기 서린 산통의 절규에 취해서 산도(産道) 속의 화가를 향해 밀물져 들어오고 해와 달과 별의 메아리 안으로 침입한 한 사내 처음과 끝을 함께 자기에게 출산한 한 사내 노란 집 빈방 의자에 홀로 앉아 있네 --- 「하늘 광부 - 고흐 생각」 전문 기다리는 두 아이들의 손과 발에 자물쇠를 달았네 아무도 없는 빈집이 되라고 엄마 아빠 돈 벌러 나간 사이 엄마 아빠만이 빈집의 유일한 열쇠가 되었네 수상한 밖이 안전한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사랑스러운 안이 위험한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성냥불에 재가 된 몸으로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네 불타는 안에서 불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네 안과 밖, 불타는 빈집에 갇혀 어디로도 나갈 수 없었네 밖은 이십 년 삼십 년 화르르 번성해서 잿더미가 된 안쪽을 지키고 있네 바닷가 물거품이 된 안쪽을 지키고 있네 안에서 기다리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새카맣게 탄 엄마 아빠의 가슴 나오지 못하도록 밖은 견고한 자물쇠가 되어 화창한 안전한 밖을 지키고 섰네 흉흉한 소문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기억을 날카로운 흉기로 만들어 텅 빈 사람들이 사는 빈집을 너도나도 지키고 섰네 ---「빈집의 기억」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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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고독은 같은 편!
이런 내면의 여정이 어린아이의 긍정으로 귀결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공명」에서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지엽말단”이나 “지지부진”이 없다는 맑고 청랑한 목소리는 시의 정황상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뱉는 탄성이지만, 시인이 내면의 주름을 늘리고 깊게 하는 간단치 않은 과정을 통해 얻게 된 득의의 광채이기도 하다. 과거와 미래는, 놀이의 배턴을 주고받는 순간일 뿐 찬란한 현재와 협연하는 도중일 뿐 나 자신과 나 자신의 릴레이를 지속할 뿐 아이들에게 덧없는 시간이란 온몸에 지은 오두막 성당의 종소리 놀이의 빛나는 신전? 손과 발, 눈, 코, 입, 귀 몸에서 몸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공명(共鳴)일 뿐 _「공명」 부분 이 대긍정의 순간은 이 시집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암암리에 추정 가능한, 지난한 밥벌이로서의 삶을 안으로 안으로 새겨 넣으며 도달한 경지일 것이다. 어쩌면 주어진 삶을 감내하고 살면서도 그 비루를 남에게 전가하지 않고 도달한 자기 긍지의 순간일지도 모르고. 단순히 아이들에 대한 혈연적 사랑을 넘어선 환희의 기운이 넘치는 것을 독자들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증명해 줄 작품은 더 있는데, 「세상의 꽃다발」 「생일」 「봄눈」 등등이다.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순간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마음은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자존심, 또 하나는 삶의 짐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않으려는 책임감. 이 둘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인이 부조리한 현실을 빤히 알려면서도 섣불리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고 그동안 안으로 뭔가를 쟁여 넣은 것은, 그러면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실존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것에만 머물지 않는 수련을 나름 닦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이 시집에 실린 작품을 통해서는 그렇다. (이강문 시인은 통상적인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시집 한 권으로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리고 있다!) 하지만 니체적 의미의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낙타와 사자를 지나온 지평이라기보다는 낙타와 사자와 ‘함께’ 사는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그럴 때만이 어린아이의 울음은 떼가 아니게 된다. 왜냐면 그 마음에는 커다란 고독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본래 긍정과 고독은 같은 편이다! 해와 달과 별의 메아리 안으로 침입한 한 사내 처음과 끝을 함께 자기에게 출산한 한 사내 노란 집 빈방 의자에 홀로 앉아 있네 _「하늘 광부 - 고흐 생각」 부분 시인의 말 나의 유일한 독자인 거울아 음침한 자백과 허전한 위선 사이에서 들킬까 안달하며 떨고 있는 내가 보이니? 그럼에도, 시는 세상과 나를 좀 더 잘 보려는 안쓰러운 방식…… 거울 속의 나는 독자의 편지이기도 하니까 내게 터무니없는 사치인 침묵에겐 미안하지만, 거울아 거울아 수렁 같은 편지를 자주 보내주렴 세상의 거울 앞에 처음 선 이 무참한 마음, 알에서 조금씩 깨어나려는 아픔, 어떻게든 기쁘게 견뎌볼 테니 부디 정확한 주소로 잊지 말고 부쳐주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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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문은 내면을 응시하며 무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부끄러움에서 시작한다. 그건 사람이나 사물 나아가 생명에 대해서도 허투루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섬세한 심성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끈질기게 ‘나’를 탐구하고 성찰하면서 텅 비워낸다. 내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나를, 나의 욕망을 털어낸다. “남들의 바깥”인 나는 “나의 유일한 독자인 거울”을 통해 나를 직시한다. 그럴 때 용기가 필요하다. “도망치는 나를 바라보는/ 나의 얼굴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 “냄새 나는 여기를 외면한 비겁함을/ 너머에의 그리움으로 치장한” 나의 위선을 토로하는 용기. 궁극에는 나의 ‘너머’는 ‘나’라는 것을 깨닫는다. - 김사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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