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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4
1부 1호선 전동열차 차장 · 13 화서역 · 14 우공이산 · 16 광운대행 열차 · 18 1호선 · 20 관악역에서 · 21 몸이 기억하고 있다 · 22 천안 · 24 오산역 · 25 오병이어 · 26 존중 · 28 명퇴 · 29 끝 · 30 고맙습니다 · 31 한국철도 랩터스 · 32 일과시 1 · 34 2부 안부 · 39 어버이날 · 40 그중의 하나 · 42 손절 · 44 이력서 · 46 아내의 손 · 48 꼼꼼바느질 · 49 김밥천국 · 50 아버지도 이러셨겠구나 · 51 사회생활 · 52 조암 동서 · 54 아따 참말로 시상 재미지네 · 56 내 자리 · 57 일과시 2 · 58 3부 몸 · 63 가지 않은 길 · 64 출판기념회 · 66 금서 · 68 퇴고 · 70 겉멋 · 72 Best 댓글 · 74 전성기 · 76 욕심 · 77 코로나19 · 78 네 편 · 79 내가 기억하마 · 80 돌아오지 않는 봄 · 81 포수 미트 · 82 일과시 3 · 83 4부 봄비 · 87 눈 · 88 내 몸만 모른다 · 89 에베레스트 세르파, 아파 · 90 하이테크 · 91 설날 기차표 예매 · 92 금의환향 · 93 인구주택총조사 · 94 거울 · 96 열여덟 딸에게 · 97 한 지붕 두 가족 · 98 저 잘 있습니다 · 100 발문_ 선한 싸움을 마친 노동자 시인에게 바치는 헌사(조호진) ·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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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고 출발 부저 누르려는데
헐레벌떡 계단을 뛰어내려 온다 못 본 체 그냥 출발하면 되는데 객실 안은 터질 듯해서 더 태울 수 없는데 다시 출입문을 연다 눈앞에서 열차를 놓쳐 속상해 할 청춘의 아침을 위해 열차 출입문 40개 스크린 도어 40개 튕겨 나올 듯한 80개 문을 연다 어리둥절해 하다 꾸벅 인사를 하고 타는 그에게 부끄러워 부끄러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노동자로 평생 살아왔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지옥철의 문을 한 번 더 열어주는 거였구나 --- 「관악역에서」 전문 74일 동안 광장을 떠돌다가 늦은 여름이 겨울 되어 돌아왔건만 누구 하나 버선발로 뛰어나오지 않는다 등 떠밀려 들어온 바짝 약이 오른 파업 복귀 한 놈만 걸려라 도끼눈 치켜뜨는데 급하게 벗어놓았던 작업복은 자다 나온 듯 뒷머리 긁으며 이제 오냐고 한다 마치 어제저녁 퇴근했다 오늘 다시 출근하는 것처럼 행로수첩도 시간표도 가방도 모두들 제자리에서 까딱 고개만 돌려 맞는다 다시 새벽 출근이 끔찍하기만 한데 지하 구간이 낯설기도 하련만 두어 달 만이니 적응할 시간을 달라고 투정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웅크린 마음 펴질 시간이 필요했는데 덜컹이는 운전실 벗어나고만 싶었던 그놈의 운전실을 몸이 먼저 자리 잡고 앉는다 --- 「몸이 기억하고 있다」 전문 아내는 꿈을 꾼다 돈 많이 벌어서 아이들 집 사 주고 차 사 주고 그놈의 돈 때문에 우리 아이들 기죽이고 싶지 않아 사장님인 아내가 기를 쓰고 미싱을 밟아 댄다 수원 정자시장 초입 진로마트 위층 운명철학관 옆 205호 달랑 미싱 한 대 니은바리 한 대 허리 휘게 밟아 댈수록 파랗고 누런 돈 대신 눈치 없는 옷들만 깔깔거리며 쏟아지는 꼼꼼바느질 --- 「꼼꼼바느질」 전문 아야 나가 말이여 가끔 울 집 들다봐 주는 최 서방이 고마운께 맨날 천날 먹는 거라 어짤지 몰라도 된장 한 바가지 퍼졌더만은 무담시 비싼 쇠고기를 한 근 끊어 왔더란 말시 그 귀한 걸 내가 어뜨케 먹거써 긍께 벌초 하니라 욕본 성락이헌티 젔제 그란디 그 담날인가 배 상자를 들고 오드라고 그걸 교회 김 집사님 드렸더만은 시상에나 김을 또 가져다 주시드랑께 그랑께 그 김이 매실이 대불고 매실이 또 한과가 대불더만 한과가 또 사과가 대불었단 말시 그깟 된장 쪼깐 퍼준 것뿐인디 고거시 발이 달렸는가 요것 댔다 조것 댔다 함시롱 자꾸만 돌아댕긴다야 시상 참말로 재미지다 하시는 장모님 --- 「아따 참마로 시상 재미지네」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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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뒷면
몸이 타자를 향해 개방되어 있다는 말은 그것 자체로 ‘좋음’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 실존하는 것들은 끊임없이 자연(self-so)으로서의 몸을 괴롭히고 훼손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임금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사회에 내주어야 생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사람은 ‘일’을 해야 삶에 필요한 물질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정신의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임금 노동은 삶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로 한 노역에 지나지 않는다. 이한주의 시에 등장하는 화자들도 마찬가지다. 고객님의 건강이 가정의 행복이라는 안내 방송을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기면서도 정작 내 몸만 모른다 25,000V 전차선 아래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만성피로 위궤양 _「내 몸만 모른다」 부분 현실은 이런 “만성피로 위궤양”을 ‘산업재해’라고 부르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관리 언어이지 삶(몸) 자체의 언어는 아니다. ‘산업재해’라는 말은 임금 노동에 뒤따라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가리키면서 그 훼손된 몸을 다시 의료 산업에 맡기면 된다는 암묵적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는 이런 관리 언어와도 그 본질을 달리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한주 시인은 점점 떨어지는 시력을 두고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전처럼 보이는 대로/ 또렷또렷 말할 자신이 없어/ 한 발 더 가까이 가서/ 깊숙이 본다”(「눈」). 즉 이제는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병원에 가서 고치거나 완화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깊숙이 보려고 한 발 더 가까이 가는 것이다. ‘한 발 더 가까이 감’은 결국 자신의 몸을 다른 존재들에게 바투 당기는 일이며 이런 행위 자체가 몸을 다른 존재에게 개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먹고살기 위해 내 몸무게만큼 저들의 일용할 양식을 지고 오르는 눈 덮인 출근길 눈물 글썽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잠든 아이가 따라 밟을까 _「에베레스트 세르파, 아파」 부분 그것은 어떤 존재의 뒷면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임금 노동을 해야 생존이 가능한 시인 자신의 뒷면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픈 뒷면을 공유해야만 “뻔하고 숨 막히는 작업장/ 촛불처럼/ 온몸으로 외칠 수”(「내가 기억하마」) 있게 된다. 이번 시집에서는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한주 시인이 꿈꾸는 것은 “그깟 된장 쪼깐 퍼준 것뿐인디 고거시 발이 달렸는가 요것 댔다 조것 댔다”(「아따 참말로 시상 재미지네」)하는 세상이다. 이 시집은 그것을 단지 외치지만 않을 뿐이지 시인이 뒷것으로 물러나 있는 방식으로 꿈꾸는 내밀한 고백록인 셈이다. 시인의 말 약력을 보내 달라는 편집자의 요청에 전 시집 『비로소 웃다』를 참고해서 현재 1호선 전동열차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마무리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책이 나오는 7월은 더 이상 전동열차 차장이 아니어서 마지막 문장을 지웠다. 첫 월급을 받고서도 오래 다닐 자신이 없어서 3년짜리 적금을 들지 못했는데 31년 내가 대견하다. 곁을 지켜준 동료들이 고맙다. 그리고 어머니 쿵! 넘어지셔서 우리 형제들을 일으켜 세운 어머니는 막내의 詩集이라고 더 빠르게 읽어 내려가지는 못하시리라.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몸 이 기 억 하 고 있 다 몇 장 넘기시다가 아이고 모르겠다, 덮으시리라. 그러시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건강하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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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노동자’가 된 그가 더불어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의 삶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겸손과 사랑으로 충만한 ‘진짜 노동자의 시’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이름 없는 삶을 좇아 살아왔기에 이제 와서 어떤 세속적 명예나 주목을 바라지도 않는다. 근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영웅이 되기를 바랐던 이들에 의해 구축되어 온 게 아니라 그처럼 지극히 낮아지고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이들의 헌신에 의해 어렵사리 한 단계 성숙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한주 형’이라고 부르며 그의 삶을 따라 배워 온 지난 긴 세월. 나는 그가 김수영 시인이 「거대한 뿌리」에서 얘기한 진짜 ‘강자’일지 모른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내내 행복했었다는 고백도 처음으로 놓아 본다. -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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