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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창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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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5

1부 마리아주

식구·12
고립에 대하여·14
하느님 궁둥이·15
마늘쪽 엉덩이·16
낯선 곳에 도착했다·18
모닝커피·20
늦은 점심·22
꼬리 자르기·24
완두콩이 사라졌다·26
달력을 여러 번 접었다·28
그림자 밖으로 밀려났다·30

2부 따뜻한 밤

따뜻한 방·34
당신의 그림자·37
비린내 풍기는 손·38
돌아갈 곳이 있었다·40
볼록렌즈·42
2021년 12월·44
참 늙기 힘들다·46
호박차·48
아침마다 딱따구리다·50
오래된 집·52
염력·54
빈병·56
벽돌 한 장·58

3부 식구

삽질·62
출판기념식·64
가족사진·66
소꿉친구·68
고향·70
상사화·71
노인 일자리 1·72
노인 일자리 2·74
이사·75
빗살무늬토기·76
손가락이 아프다·78

4부 흔들리는 정원

마스크·80
꽃 진 자리·82
단풍 들겠다·84
고요했으면·85
환청·86
꽃반지·88
미용실에서 단잠·89
흔들리는 정원·90
음복·92
아름다운 눈물·94
들들 볶아서 맛을 찾아낸다·96
바스락거리는 귀·98
똥 싸러 간다·100
죽부인·102
예산 장날·104

해설

꽃 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그리운 감각(오홍진)·107

저자 소개 1

1964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예산에서 살고 있다. 2005년 계간 『시로 여는 세상』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2006년 아르코창작기금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언제였을까 사람을 앞에 세웠던 일이』 『그늘을 베고 눕다』 『우리는 새로 만난 사이가 되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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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205*20mm
ISBN13
9788966551637

책 속으로

시가 써지지 않는 날
누가 이기나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바닥에 앉아 있으려면
엉덩이가 아파서 방석을 찾았는데
요즘은 근육이 생겨 탱탱해졌다

마늘쪽 같은 엉덩이가 지나가면
눈길이 따라가는 이유를 알겠다
시는 엉덩이가 쓰는 것이라고
마감 날 머리를 쥐어뜯어도 안 나오던 것이
책상머리에서 오래 버텨준 엉덩이가
얼마나 옴지락거렸으면
마늘종 같은 시가 쭉 올라올까

물렁거리는 사랑은 싫다
찐한 사랑은 근육으로 뭉쳐진다고
마늘종 같은 시를 만든다
날것으로 고추장에 찍어 먹을 사랑
탱탱한 한 줄을 위하여
엉덩이는 쉬지 않고 꿈틀거린다
---「마늘쪽 엉덩이」중에서

이사 온 지 20년 넘었다
철제 현관문은 삐그덕거리고
화장실은 스위치를 두 번 눌러야 불이 들어온다
아침에 약을 먹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한나절이 지나자 몸이 나른해진다
약봉지를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약은 걸러도 할부금을 15년 동안 꼬박 지불했다
이웃집에서 문을 두들겼다
그러고 보니 초인종도 고장 났다
버섯을 땄는데 먹어보라고 건넨다
나도 이웃집 문을 두들겨보았다
환한 웃음으로 반겼다
초인종을 고치지 않기로 했다

대출금 연장을 위해 농협에 들렀다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 오라고 했다
집 주소가 나란히 찍혀 있다
셋방살이 전전하다 여섯 번째 주소지다
집이 낡았어도 다시 이사할 일 없어 다행이다
천천히 뜯어보니 모든 것이 낡아 있다
돌아누운 아내 등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집이 흔들릴 것 같은 공명이 몸속으로 울렸다
오래된 집에서 늙어가는 부부는
집에 상처가 나지 않게
설렁줄을 당기며 산다
---「오래된 집」중에서

사랑도 병이다
죽음처럼 다가오는 것이어서
떠나간 자리가 도려내듯 아프다
상처가 덧나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는데
병에게 멀어지려 수행 길에 올랐다
길에서 도반을 만났다

도반은 이미 병색이 완연했다
독에 들면 독을 써야 해서
내 몸을 베어서 도반의 상처에 붙여놓았다
여기저기 상처가 깊어서
마지막 살점까지 다 발라서 붙였다

한시도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
살며시 몸을 기대어 보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함께 걸어온 길에 저녁노을이 닿았다
세상이 붉게 물들어 간다
---「상사화」중에서

호미 들고 설치는데 들꽃 한 송이 피었다
뽑아버릴까 하다가 손이 부끄러워 돌아서는데
어느새 벌이란 놈 달려들고
들풀은 목숨 내놓고 젖을 빨리고 있다
봄이라 여기저기 흐드러진 것이 꽃인데
밭 가운데 들꽃 한 송이 보고 찾아든 벌이나
들판에 풀어헤친 젖가슴이나
살아보자고 그러는 것이다
마침내 꽃이 지자
세상이 과묵해졌다
가끔 고추잠자리가 쉬었다 갈 뿐
깔깔대는 소리는 꽃과 함께 지고 말았다
꽃 피던 시절이 그리운 건
왁자지껄해야 세상 사는 맛이 난다는 거
모든 꽃은 한눈에 들어온다는 거
그러다가 젖이 마르면
날개를 내려놓고 쉰다는 거
마침내 들판이 조용해진다는 거
뿌리까지 삭아 없어져도
꽃이 진 자리에 봄마다
어김없이 꽃이 핀다는 거
다시 세상이 시끌벅적해진다는 거
---「꽃 진 자리」중에서

사무실 앞 소사나무가
단풍에 들어갔다
지난해보다 일주일 늦었다
시끄럽고 번잡한 곳에서
고요를 위해 절정에 오르고 있다
이렇게 고울 수가
소사나무 앞을 지나며
옷매무새를 고친다
나도 단풍에 들겠다

---「단풍들겠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오래된 것’의 귀환

오늘날 한국 시에서 새로운 사물 또는 새로운 사건에 대한 호명은 이제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것들은 사물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상품의 이름 즉 새로운 제품명에 가깝다. 그래서 시나 시집의 제목에서 구체적인 물성이 담긴 경우는 점점 희소해져 간다. 물론 작품 자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인 자신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어떤 혼종의 화자가 등장해서 새로운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정동의 언어를 읊조린다. 이에 반해 김영서의 새 시집 『낯선 곳에 도착했다』에서는 ‘오래된 것’이 대세를 이룬다. 표제작인 「낯선 곳에 도착했다」에서도 “집 안으로 낙엽이 따라 들어”오는 순간에 발생하는 감각이 두드러진다. 낙엽이 집 안으로 들어온 사건은 화자에게서 통념적인 시간 의식마저 지워버리는데 화자의 감각은 그 이유를 묻지도 않고 무방비로 개방된다. 감각의 기억은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드디어 자신이 사실 “오랫동안” 그리 살아왔다는 고해를 이끌어 낸다. 물론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후각을 자극하는 “오래된 와인”이 감각의 구체성을 담보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시인이 ‘오래된 것’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단순하게 열거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오래된 와인”, “오래된 레코드 음반”, “오래된 나무”, “오래된 집”, “오래된 소주병”, “오래된 농기구” 등. 그런데 왜 시인의 마음 안에는 이런 ‘오래된 것’으로 가득 차 있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시인이 처한 삶의 조건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혹은 시인 자신이 점점 ‘오래된 것’이 되어 가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어르신이 한자리를 계속 쓸어 내고 있다
쓰레받기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희미해진 노안으로 자세히 살펴보니 그림자다
그림자도 턱이 있고 굴곡이 있다
_「당신의 그림자」 부분

이사 온 지 20년 넘었다
철제 현관문은 삐그덕거리고
화장실은 스위치를 두 번 눌러야 불이 들어온다
_「오래된 집」 부분

일차적으로 화자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화자 자신이 ‘오래된’ 존재이기도 하고, 화자가 살고 있는 집, 화자 주위의 사물이 ‘오래된’ 것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확실히 ‘오래된 것’의 귀환이지만 그것은 생성이지 복고라고 부를 수는 없다.

과거는 재탄생한다


왜냐하면, 이미 ‘오래된 것’을 통해 김영서 시인은 기억을 다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소환은 재현으로서의 상기(想起)라고 인식돼왔고 한편으로 기억을 사실의 일정한 왜곡으로 말해져 왔지만, 우리의 삶은 기억을 다시 살면서 기억을 변화시킨다고 말해야 옳다. 기억은 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억의 변용으로 봐야 하며 중요한 것은 기억을 얼마나 현재화하는가 하는 점이다.

살아가는 이야기 끝에 이웃에서 김장김치 한 통 얻었다
김치 통을 들고 북극을 한 바퀴 돌았다
집으로 오는 동안 김치 통이 얼었다
사람도 김치처럼 익거나 쉬거나 하는데
살얼음 낀 동치미 같았으면 좋겠다 흔들림으로 대꾸하는
_「돌아갈 곳이 있었다」 부분

십 년도 안 된 세탁기를 한 번 고장으로 버렸는데
사용한 지 삼십 년 넘어선 나는 어찌 될까
버려진 벽돌을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을 보고
작아지고 단단해지자고
이불로 달빛을 덮는다
_「벽돌 한 장」 부분

표제작인 「낯선 곳에 도착했다」에서 이미 집 안으로 들어온 “낙엽” 따라 시를 쓰는 (현재의) 화자의 모습을 생성시키고 있듯이, 「돌아갈 곳이 있었다」에서도 현재의 “한파경보”를 통해서 과거의 “그 양반”을 상기하고 이미지의 연쇄 끝에 “김장김치 한 통”에 이른다. 그리고 “김장김치 한 통”처럼 자기 삶이 “살얼음 낀 동치미 같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재-과거-현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서 ‘현재′’는 ‘현재’와는 다른 상태임이 확인된다. 「벽돌 한 장」도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버려진 벽돌”을 통해 “작아지고 단단해지자”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김영서의 시는 일반적인 서정시의 문법에 충실한 편이다. 조우한 사람과 사물,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 보면서 서정을 변화시킨다는 차원에서 말이다. 하지만 대상에 대책 없이 끌려가지는 않는다. 대상에 끌려가는 서정시에는 자아의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소멸이 있기 마련인데, 이것은 대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은 결국 자기 인식이다. 그리고 이 자기 인식이 있는 서정시야말로 ‘현대성’을 확보한다. 김영서의 서정시는 자기 인식에서 더 나아가 이웃과의 ‘관계’까지 돌아본다는 점에서 든든한 믿음을 주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간이 생성한다는 점을 눈여겨볼 일이다.
다음의 시가 그 실증이다.

그러다가 젖이 마르면
날개를 내려놓고 쉰다는 거
마침내 들판이 조용해진다는 거
뿌리까지 삭아 없어져도
꽃이 진 자리에 봄마다
어김없이 꽃이 핀다는 거
다시 세상이 시끌벅적해진다는 거
_「꽃 진 자리」 부분

시인의 말

하루를 온전하게 시 쓰는 일에 몰두하는 상상을 한다.
얼마나 복된 일일까?

추천평

김영서는 지금은 시간 저편으로 흘러간 사물들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시를 쓴다. ‘그리움’이라는 말로는 채 표현될 수 없는 장소에서 그 사물들은 꿈틀대고 있다. (…) 시인이 그리워하는 사물이란 달리 말하면 시간을 견디고 끝내 살아남은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별이 쏟아지는 곳은 어딘가에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곳에 쉬이 가지 못하리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그곳에 가는 순간 별이 쏟아지는 기억은 더 이상 시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오홍진 (문힉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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